『호모 사케르』 1장 - ‘법의 형식’, '경제 영역' 발제문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20-02-09 09:10
조회
610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법의 형식’ 119-143p


4. 1. 카프카는 「법 앞에서」라는 우화에서 주권적 추방령의 구조에 대한 모범적인 윤곽을 제시한 바 있다. “문은 열려 있지만 누구에게도 열려 있지 않다”(데리다), “시골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데, 이는 이미 열려 있는 곳에서 들어가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카치아리) 이런 관점에서 카프카의 우화는 더 이상 어떤 것도 명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강력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법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주권적 예외라는 도식에 따르자면, 법은 스스로의 적용을 유예함으로써 자신을 시골 사람에게 적용시키며, 또한 시골 사람을 외부에 내버려둠으로써 자신의 추방령 속에 포획하는 것이다. 열린 문은 오직 시골 사람만을 위한 것으로 그를 배제시킴으로써 포함시키고, 포함시킴으로써 그를 배제한다. 아감벤은 이것이 모든 법의 정점이자 근원이며, 노모스의 본래적인 구조라고 보았다. 언어 또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간을 자신의 추방령 속으로 포획하는데, 그것은 말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의식하지 못한 채 항상 이미 언어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언어에 선행하는 모든 것은 바로 언어로부터 배제됨으로써 언어와 관계를 맺게 되는, 언어에 의해 전제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4. 2. 하지만 법의 구조에 대한 이런 해석이 정말로 카프카의 의도에 충실한 것일까? 숄렘은 카프카의 『소송』에 기술되어 있는 법에 대한 관계를 ‘계시의 무’로 정의하면서, 법은 단순히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 불가능한 것이라는 형태로 출현한다고 해석했다. 숄렘이 카프카에게서 읽어낸 ‘의미 없는 효력’은 주권적 추방령의 구조를 적절히 드러내는 규정이며, 법과 전통의 추방령은 자신의 내용을 ‘영도’로 유지함으로써 인간들을 순수한 내버려짐의 형식 속에 포함시킨다.

4. 3. ‘의미 없는 효력’으로서의 법의 순수한 형식은 칸트와 더불어 근대(성) 속에 최초로 등장한다. 칸트는 법으로부터 모든 내용, 즉 의지의 대상을 없앤다면 남는 것은 단지 보편적인 입법의 가장 단순한 형식뿐일 것이라고 보았다. 아감벤이 보기에 순수한 의지, 즉 법의 형식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의지란 카프카의 주인공인 시골 사람처럼 “자유롭지도 자유롭지 않지도 않다”(칸트, 『도덕 형이상학』) 이렇듯, 칸트가 두 세기 전에 숭고한 ‘도덕 감정’이라는 용어로 예견한 법의 순수한 형식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대중사회와 전체주의 국가들에 ‘경이로운’ 방식으로 실현된다. 아감벤에게 있어 의미 없이 유효한 법에 복종하는 삶이란 가장 무고한 몸짓, 또는 최소한의 망각조차 극히 끔찍한 결과를 유발할 수 있는 예외 상태의 삶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칸트에게서 도덕법의 순수한 형식적 특성이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요구의 기반을 이루듯, 카프카가 그려낸 마을에서도 법의 잠재성[역량]은 그것이 삶과 구분되지 않을수록 더 타당하다. 요제프 카의 존재 그리고 그의 육체 자체가 결국에는 소송과 일치하게 된다.

앞선 분석들대로 법과 삶의 구별 불가능성 속에서 예외 상태의 본질적 특성을 보려 한다면, 예외 상태에 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해석이 충돌하게 된다. 하나는 숄렘이 언급했던 ‘법의 순수 형식’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규칙이 된 예외 상태는 법의 해소를, 또한 법이 자신이 다스려야만 하는 삶과 구분되지 않게 되었음을 지적한 벤야민의 해석이다. 벤야민의 메시아적 니힐리즘은 무를 무화시켜버리고 법의 내용을 초과하는 법의 형태에 유효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아감벤은 오늘날 삶과 법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려는 모든 시도는 이 두 가지 명제로 소급되며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4. 4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대해」의 8번째 테제에서 진정한 예외상태를 주장한다. 그것은 법의 의미 없는 효력, 즉 규칙이 되어버린 예외 상태와 대립되는 것이다. 해독 불가능해졌지만 삶으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문자의 불분명함(진정한 예외상태)은 문자 속에 완전히 용해되어버린 삶(예외상태)의 절대적 명징함과 대립한다. 아감벤은 오직 이 지점에서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추방령의 관계를 통해 여전히 결합되어 있는 두 항(벌거벗은 생명, 법의 형식)이 서로를 지양하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게 된다고 보았다.

4. 5. 아감벤은 카프카 이야기에 앞선 해석자들과 또 다른 관점으로 질문한다. 예컨대 열려 있음이 바로 법의 침해할 수 없는 권능이라면, 우리는 시골 사람의 모든 행동이 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해 결국 문을 닫도록 만들려는 고도의 전략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목숨을 대가로 했지만 시골 사람의 시도는 성공했고, 법의 문을 영원히 닫히게 만들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쿠르트 바인베르크는 ‘저지당한 기독교적 메시아’의 형상을 제안했는데, 아감벤은 이를 토대로 시골사람의 메시아적 임무는 다름 아니라 잠재적인 예외 상태를 현실화시키고 문지기에게 법의 문(예루살렘의 문)을 닫도록 강제하는 일이라고 해석한다. 메시아는 일단 문이 닫힌 뒤에야, 즉 의미 없지만 유효한 법이 정지된 후에야 비로소 그곳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법률적 관점에서 볼 때 메시아주의란 결국 일종의 예외 상태 이론이다. 단 유효한 권력이 그러한 예외 상태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전복시키는 메시아가 그것을 선포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4. 6. 낭시는 법의 존재론적 구조를 내버려짐으로 규정하면서, 우리 시대뿐만 아니라 서양의 전체 역사를 ‘내버려짐의 시대’로 사유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기술한 구조는 법의 형식 내부에 머물러 있으며, 내버려짐이란 주권자의 추방령에 넘겨진 존재로서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어떤 길도 열려 있지 않은 것으로 제시된다. 아감벤이 판단하기에 우리 시대가 사유에 위임한 과제는 단지 의미 없지만 법의 침해 불가능한 형태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과제를 그것만으로 한정시킨 모든 사유는 우리가 앞서 주권의 역설로 규정한 바 있는 존재론적 구조를 반복할 따름이다. 모든 법이념을 초월해 내버려짐을 사유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주권의 역설에서 벗어나 모든 추방령에서 자유로운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버려짐의 관계는 관계의 일종이 아닐 수도 있으며, 존재와 존재자의 함께-있음은 관계의 형식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하이데거)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와 존재자가 이제 각자의 길을 간다는 뜻이라기보다, 오히려 양자 간에 아무 관계도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다름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사실을 더 이상 관계라는 형식 속에서 사유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요구된다.




‘경계 영역’ 145-152p


벤야민의 「폭력 비판론」은 폭력과 법을 결합시키는 환원 불가능한 연결 고리를 거리낌 없이 폭로하고 있다. 아감벤은 벤야민의 분석이야말로 주권 연구에 있어 필수적인 전제로 보았으며, 연결 고리는 법 제정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 사이를 변증법적으로 진동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두 가지 형태의 폭력 사이에 작동하는 순환적 변증법을 파괴하기 위해선 세 번째 형태가 필요한데, 그것은 벤야민에 의해 ‘신의 폭력’이라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핵심 쟁점임에도 벤야민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떤 실증적인 기준도 명시하지 않을 뿐더러, 판단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사례가 존재할 가능성마저 부정한다. 유일하게 확실한 점은 신의 폭력이 법을 제정하지도 보존하지도 않으며, 다만 법을 ‘탈 정립’한다는 사실뿐이다.

주권적 폭력은 신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형태의 폭력, 즉 벤야민이 「폭력 비판론」에서 양자 간의 변증법을 정의하려고 했던 두 가지 형태의 폭력 중 어느 하나로 완전히 환원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주권적 폭력과 신의 폭력을 혼동해도 무방하다는 것은 아니다. 신의 폭력에 대한 정의는 그것을 예외 상태와 결부시킬 때 쉽게 내려진다. 주권적 폭력은 법과 자연, 외부와 내부, 폭력과 법 사이의 비식별역을 창출해낸다. 그렇지만 주권자란 바로 그것들을 식별 불가능하게 만드는 만큼 또한 식별해내는 능력을 보유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폭력과 법 사이의 연결 고리는 주권자에 한해서 비식별 지점에서도 여전히 유지된다. 반면 벤야민이 신의 폭력이라고 정의한 폭력은 예외와 규칙이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것은 법을 제정하지도 보존하지도 않으며 다만 탈-정립할 뿐이다.

아감벤은 벤야민이 해당 에세이에서 신의 폭력을 상세히 정의하는 대신, 폭력과 법 사이에 있는 연결 고리의 담지자, 즉 그가 ‘벌거벗은 생명’이라 부른 것으로 초점을 바꾼 것이 우연일 수 없다고 보았다. 생명체에 대한 법의 지배는 벌거벗은 생명과 함께 존재하고, 법적 폭력의 해소란 처벌과 함께 그 생명체를 정화시키게끔 만드는 그러한 죄를 방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우리 시대가 인류의 생명 심지어 동물의 생명에까지 부여한 신성함이라는 원리는 이러한 연결 고리의 해명에도, 또 생명체에 대한 법의 지배를 의문시하는 데도 아무런 쓸모없다. 이 신비주의 사상 속에서 죄를 지은 것으로 낙인찍힌 담지자, 즉 그것이 정말 벌거벗은 생명인지는 의심스러운 것이다. 하여, 최근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생명의 신성함이라는 교의의 기원에 대한 연구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아감벤은 바로 이러한 벤야민의 문제의식을 이어간다. 서양 전통에 있어서 삶 자체에 부여된 특권이나 신성함의 차원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고대 그리스처럼 동물 희생을 찬양하고 종종 인간 희생물을 바쳤던 사회들에서도, 생명 그 자체는 신성시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생명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그 자체로 신성한 것으로 간주 되었을까? 과연 무엇이 주권 속에서 예외화되고 포함되며, 또 누가 주권적 추방령의 대상이 되는가? 이제 아감벤은 지금까지 나온 함의를 한층 발전시켜서 벤야민, 슈미와 함께 논지를 전개해갈 것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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