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정치론>

작성자
diatime23
작성일
2020-03-05 19:43
조회
109
신학정치론 독해의 맹점

<신학정치론>을 제대로 읽는 길은 어떤 단어에 대한 선입견을 얼마나 잘 내려놓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 같다. '복종'을 외부의 강압에 못이겨 억지로 따르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자유'를 무한히 긍정적인 인간의 권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스피노자의 문장을 제대로 독해하기 힘들다. 어떤 단어가 등장하든, 그 단어에 대해 내가 품고있는 개인적인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올바른 독해를 위한 방법이다.

스피노자는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만약 누군가 금연을 시도한다고 할 때, 그가 자꾸만 금연에 실패하는 이유는 그가 의지박약이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그는 자신이 왜 금연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금연의 해로움과 이로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 즉 앎의 문제다.

법을 따른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귀찮은 일이고, 외부의 강제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는 도대체 왜 그 법에 따라 살아야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대리기사를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 성가시고 짜증나는 일로 여겨지는 사람은 음주운전단속법을 따라야 하는 상황 자체가 외부의 강압으로 느껴진다. 그는 단지 국가가 정해놓은 어떤 권위, 처벌에 대한 두려움같은 겉으로 드러난 위협에 못이겨 법에 굴복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음주운전이 공동체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이며, 그것이 옳지 않음을 완벽하게 인식한다. 따라서 술을 마시는 경우 아예 차를 가지고 나가지 않거나, 대리운전기사를 부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때 이 사람은 처벌의 위협이나 국가의 강제와 같은 겉으로 드러난 두려움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 그는 법에 복종하지만 그 무엇도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다.

'자유'라는 단어가 존재하려면 우리에게는 '제약'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자유라는 단어가 있을 필요도 없다. 이러한 제약은 인간 생존의 기본적인 틀이며 조건이다.(박종현, <헬라스 사상의 심층>) 인간이 생물로서 자연 속에 살며 공동체를 형성할 수 밖에 없는 한 개개인은 스스로 따르고 지켜야 하는 기본 틀이 필요하다. 스피노자가 국가의 진정한 목적은 자유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일정한 조건, 즉 제약을 전제로 한 것이다. "국가의 평화와 평온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결코 보존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국가의 통제를 받지만, 통제를 승인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이성에 달려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할 수 없으며 그리고 모든 사람은 결코 파기할 수 없는 자연권에 의거한 자기 생각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우주의 만물과 상호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가족과 공동체, 사회, 법이나 종교, 관습, 문화 등 다양한 외부적 요인들과 늘 엮여있다. 하지만 결국 그 외부 요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나 자신의 이성에 달려있다. 비판적 사고와 독창적 시각은 환영받지만 무조건적이고 무분별한 복제와 수용은 무지와 불성실로 지탄받는다.

요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것 같다. 누군가 조용히 사유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알고리즘으로 자동 추천하거나 원하는 걸 먼저 찾아서 알려온다. 혹은 어떤 고정관념을 만들어 놓고 그것만이 답인 것처럼 타인을 설득하고 꼬드긴다. 그리고 다들 좋다고 하는 걸 하지 않으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무시한다. 사유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그들은 자유롭다.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무한히 신뢰했던 것 같다. 그리고 미처 그것이 발현되지 않더라도, 열등하다는 자괴감을 주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