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7/3 『추제의 해석학』, 1982년 3월 10일 강의

작성자
bomi
작성일
2020-07-03 19:01
조회
375
삶과예술 세미나 ∥ 2020년 7월 3일 금요일 ∥
텍스트: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심세광 옮김, 동문사, 2001.


<파레시아와 수사학의차이점>

수사학은 말하기의 기술이지만 파레시아는 기술이 아니다. (411)

파레시아는 참된 담론의 특수한 실천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신중과 능란의 규칙이 파레시아를 만든다는 점이다. 신중과 능란의 규칙이란 진실을 듣는 개인이 진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최적의 순간에 최적의 형식과 조건하에서 그 개인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조건이다. 정리하면, 진실 말하기 즉 파레시아는 듣는자가 그 진실을 수용할 수 있는 알맞은 때에 듣는자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형식으로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파레시아의 규칙들을 규정하는 것은 kairos, 즉 계기이다. 왜냐하면 계기는 개인들 상호간의 상황이고 진실을 말하기 위해 사람들이 선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말을 듣는 자와 그에게 말해야 하는 계기에 따라 파레시아는 참된 담론의 내용이 아닌 그것을 말하는 형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예 1)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참된 담론을 소유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이 아무 때고 아무 곳에서 아무에게나 이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파레시아는 아니다. 밤마다 술을 마시고 고성을 지르는 이웃 때문에 고통받는 진연자씨에게 무턱대고 다가가 "이웃을 사랑하세요."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반감을 사고 되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예 2)
들뢰즈-가타리는 천의 고원에서 존재에 관한 참된 담론을 13가지 각기 다른 형식으로 풀어냈다. 물론 13개의 장들이 모두 각기 다른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저자가 존재에 관한 각기 다른 13가지 진실을 말한 것은 아니다. 13개의 장은 존재의 진실을 말하기 위한 13번의 각기 다른 계기들을 만들어 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삶의 어느 순간에 천의 고원의 한 장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책을 펼쳐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이전에 읽을 때는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여러 구절이 다시 눈에 들어오고 이전엔 느낄 수 없었던 감응이 일어난다. 저자들이 글자로 가공해 놓은 진실이 듣는 자인 나의 적기와 만난 것이다.

수사학은 본질적으로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담당한다. 수사학은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은 항시 말하는 자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이에 반해 파레시아는 완전히 다른 목표와 목적을 갖는다. 물론 파레시아에서도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그들에게 무엇을 명한다거나 이러저러한 일을 그들이 하도록 유도하거나 영향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이 세상에서 도달 가능한 모든 복락에 도달한 주체, 지혜로운 주체, 덕 있는 주체를 특징짓는 자기 자신과의 숭고한 관계를 통해 그들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축하는 데 성공하도록 하는 게 근본적인 관건이다. (413)

예 3)
밤마다 만취한 이웃의 고성방가에 시달리며 이웃을 증오하는 진연자씨가 이웃을 사랑하도록 설득하는 두 종류의 말하기가 있을 수 있다.
1) 우선 수사학적 말하기가 있다. A씨의 화려한 언변 덕분에 진연자씨는 더는 이웃을 증오하지 않고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A씨는 진연자씨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 있는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였다. A씨의 말에 큰 위로를 받은 진연자씨는 A씨 교회의 열혈 신도가 된다. 주말마다 듣는 A씨의 강론은 매번 진연자씨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실상 이웃집 술주정뱅이로 인한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었다. 이웃집 주정뱅이로 인한 고통이 더하면 더할수록 연자씨의 신심은 깊어지고 헌금 액수도 높아졌다. 열렬한 교회 활동으로 어느새 교회의 간사직을 맡게 된 진연자씨는 A씨에게 배운 언변(수사학)을 활용해 이웃집 술주정뱅이를 깨우쳐야 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월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한껏 고양된 연자씨는 이른 아침부터 과감히 옆집을 찾아갔다가 그만 큰 화를 당하게 된다.
2) B씨도 A씨처럼 이웃 때문에 괴로워하는 진연자씨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연자씨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진실을 말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몇일 간 연자씨를 지켜보던 (적절한 형식을 모색하며 적기 kairos를 기다리기) B씨는 마침네 연자씨가 웹툰 만화를 즐겨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B씨는 연자씨에게 자본주의와 알콜중독의 관계를 재밌게 풀어낸 웹툰 한편을 추천해 준다. 진연자씨는 B씨가 추천해 준 웹툰을 보며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게 하던 이웃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웃을 통해 자신이 참여하고 있고 또 동시에 자기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숙고해 보게 된다.
자본주의와 알콜중독과 또 고성방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연자씨는 이제 만취한 이웃의 고성방가가 마냥 짜증스럽지만은 않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며 또 웹툰을 추천해 준 B씨에게 진실을 들으며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관계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 진연자씨는 이제 이웃에게 긍정적인 관심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이웃을 사랑하게 되었다.) 더불어 자신과 이웃을 괴롭히는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관계 구축의 여러 실천들도 고민하게 되었다.
전체 0

전체 483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SF읽기] SF의 전환; 도약 - 7월 26일 시작! (2,4주 수요일, 저녁7시)
bomi | 2023.07.16 | 추천 0 | 조회 2843
bomi 2023.07.16 0 2843
공지사항
세미나 홍보 요청 양식
다중지성의정원 | 2022.01.11 | 추천 0 | 조회 2453
다중지성의정원 2022.01.11 0 2453
공지사항
[꼭 읽어주세요!] 강의실/세미나실에서 식음료를 드시는 경우
ludante | 2019.02.10 | 추천 0 | 조회 5527
ludante 2019.02.10 0 5527
공지사항
세미나를 순연하실 경우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ludante | 2019.01.27 | 추천 0 | 조회 5193
ludante 2019.01.27 0 5193
공지사항
비밀글 <삶과 예술> 세미나 참가자 명단 - 2019년 1월
다중지성의정원 | 2018.02.25 | 추천 0 | 조회 55
다중지성의정원 2018.02.25 0 55
475
4/3/ 세미나 공지, 필립 K.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chocleda | 2024.03.22 | 추천 0 | 조회 58
chocleda 2024.03.22 0 58
474
3/13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읽을 거리
bomi | 2024.03.13 | 추천 0 | 조회 27
bomi 2024.03.13 0 27
473
3/13 세미나 공지_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bomi | 2024.03.11 | 추천 0 | 조회 52
bomi 2024.03.11 0 52
472
2/28(수) 구드룬 파우제방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토론거리
chu | 2024.02.28 | 추천 0 | 조회 100
chu 2024.02.28 0 100
471
[SF읽기] 2/28(수) 구드룬 파우제방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세미나 공지
chu | 2024.02.25 | 추천 0 | 조회 101
chu 2024.02.25 0 101
470
1/14(수)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kindred)>(1979)
희정 | 2024.02.13 | 추천 0 | 조회 92
희정 2024.02.13 0 92
469
1/31 [체체파리의 비법] 읽을 거리와 토론 주제 발제
chocleda | 2024.01.31 | 추천 2 | 조회 153
chocleda 2024.01.31 2 153
468
1월 31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체체파리의 비법> 세미나 공지
chocleda | 2024.01.17 | 추천 0 | 조회 143
chocleda 2024.01.17 0 143
467
10일 세미나를 17일로 순연합니다!
bomi | 2024.01.10 | 추천 0 | 조회 182
bomi 2024.01.10 0 182
466
1/10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자료와 토론거리
bomi | 2024.01.09 | 추천 0 | 조회 201
bomi 2024.01.09 0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