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7/11 『어셈블리』 10, 11장

작성자
bomi
작성일
2020-07-08 14:30
조회
46
『어셈블리』 세미나공지합니다.

*일시: 7월 둘째 주 토요일(11일) 저녁 7시 30분
*장소: 다중지성의 정원 세미나실 X 각자의 공부방(인터넷 화상 연결)
*공부범위:
『어셈블리』 275~382p
3부 금융통제와 신자유주의적 협치
10 금융이 사회적 가치를 포획한다.
11 화폐가 사회적 관계를 제도화한다.
*발제:
각자 토론거리, 질문거리 등을 정리하셔서 본 세미나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됩니다.
게시판 공지글 중 <역사 비판 세미나 토론 방식에 대해>에 안내된 내용을 참고해 주세요.
http://daziwon.com/?page_id=4273&uid=3899&mod=document&pageid=1



지난 세미나 후기 >>>>>>>

[근황토크]

<해파리 떼 – 곤충 – 코로나 – 수영장 - 달팽이 – 생태계 –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 이중 내부성>

엊그제에는 제주도 바다에 엄청난 무리의 해파리 떼가 있었다. 해파리가 대여섯 마리씩 무리를 지어 거의 편대 이동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바닷속에 들어갈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그 많던 해파리가 모두 사라지고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주에는 바다에 엄청난 양의 물고기알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아무래도 바다에 큰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여름이 되어서 매일 곤충들과 맞닥뜨리고 있다. 시골 생활 7년 차 정도 되었는데 특히 주방 공간에서 곤충들과 전쟁을 많이 벌이게 된다. 이제는 웬만한 곤충들 앞에서는 까딱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곤충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았다. 이제는 공존하자는 마인드다.
미국 사는 지인과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분은 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창작작업과 강의 등을 한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강의를 준비해야 해서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강의를 하거나 그런 사람들은 온라인 강의가 아니면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여전히 우리의 삶을 마구 뒤흔들고 있다. 마음 한쪽에 늘 근심을 품고 살고 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마찬가지다. 여름이 되어 수영장을 갔는데 코로나로 인해 더는 당일 자유 수영자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마침 며칠 후 수영강습 등록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등록하였다. 그런데 또 막상 수영장에 매일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에서 걱정이 올라온다. 그나마 내가 사는 지역에는 코로나 확진자가 없어서 그래도 하자고 마음먹긴 했는데 그렇다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실내 암벽타기 운동을 좋아하고 많이 했었다. 그런데 운동 공간이 워낙 좁다 보니까 코로나 이후로 하지 못했다. 코로나가 좀 완화되었을 때 다시 하려고 했는데, 곧 다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집에다가 컨테이너를 설치해서 아예 실내암벽타기 하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던 통계자료 조사의 결과가 잘 나와서 기분이 좋다. 이제 글만 잘 쓰면 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사는 집에도 벌레가 좀 있다. 요즘 새로 발견되기 시작한 게 달팽이다. 5살 아이는 달팽이뿐만 아니라 모든 벌레와 친하다. 달팽이를 그냥 키워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데 달팽이는 워낙 번식이 빠르다. 아프리카 왕 달팽이라는 손바닥만 하게 큰 달팽이가 있는데 이전에 어린이집에서 한 마리씩 분양해 주었었다. 꼭 한 마리만 키워야 한다고 하더라. 두 마리를 키우면 번식이 너무 빨라 감당이 안 되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버리면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된다고 한다.

며칠 전 게리 유로프스키의 강연을 보고 채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물인간이 되기로 결심하고 지금 열심히 해먹고 있다. 깻잎순나물과 시금치나물을 해 먹었다.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책이 나왔는데 너무 예쁘다. 이 책의 저자 제이슨 W. 무어는 세계 생태론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환경 사회학, 환경정책, 세계사, 맑스주의, 페미니즘 철학 등 이런 것을 다 가져와서 이야기한다. 마치 세상의 책을 모두 읽은 것 같다.

며칠 전 김종철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녹색평론의 발행인이시다.
제이슨 무어는 전통적 녹색사상이 인간과 자연을 인간 대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이원론적으로 구분해서 보는 결함이 있다고 파악 한다. 인간 대 자연의 구분법은 데카르트 철학에서 시작되어서 칸트에게서 공고화 되고 모더니즘의 골간을 이룬 사상체계다. 비유물론의 하먼, 행위자 네트워크이론의 라투르도 마찬가지고 제이슨 무어도 데카르트로부터 유래된 이원론이 지금까지의 사고법, 인간과 자연, 환경의 외부관계를 너무 강하게 하나의 프레임으로 가지고 있고 이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질적으로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 속에서 인간의 실행이 자연의 변형을 가져오고 또 그러한 자연의 변형이 인간의 삶에 들어와서 영향을 미치고 하는 것인데 말이다. 기계류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기계도 인간 외적인 요소인 듯하지만 이미 인간 삶의 일부로 들어와 있다. 제이슨 무어는 이를 이중 내부성이라 부른다. 인간과 자연, 혹은 인간과 기계 모두 서로가 내부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생태계 개념으로 정리한다. 굉장히 커다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읽어볼 만한 가치가 큰 책이다.

[어셈블리 토론 시작]

<관료 행정가 – 갈등, 적대 – 제3의 영역 – 중재, 매개 – 행정: 사물의 관리 – 검찰수사시민위원회 – 현실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 - 컴퓨터를 이용한 행정 – 계획경제 – 실험 – 우리 호주머니 속 연산기기 – 다중의 행정 – 언론: 정보의 관리 - 정보의 차단, 왜곡 – 정보공개청구 – 무조건적이고 기계적인 정보공개 – 사회적 파업과 투쟁 - 번역 - 매개와 정화 – 하이브리드 – Entrepreneur 기업심 – 전도하기 – 말잡기 – 타락의 번역, 생성의 번역 – 사회적 조합주의 – 인지자본주의 공장>

베버에 의하면, 근대의 관료 행정가는 이해관계로부터 분리된 이성적 관리를 해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결국 시민들로부터 분리된다. 관료 행정가의 특성을 사후적으로 소급해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관료제라고 하는 것이 입헌주의와 맺는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면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내적 갈등이 있다고 먼제 전제를 하고, 그러한 시민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제3의 영역이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그런 과정이 있다. 이 제3의 영역이 사회로부터 분리되고 사회 위에 옹립된 것이 국가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민사회 내부의 갈등과 적대라고 하는 것이 관료제라고 하는 것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토대로 놓여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 사이의 적대와 갈등이라는 것에서 출발해 이성과 법에 따라 행동해야 할 필요성이라는 것이 생긴다. 만약 사회에서 당사자 간에 자연스럽게 중재가 가능해진다면 누군가가 이성과 법에 기초해서 독립적인 기관을 구성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레닌같은 경우도 국가라고 하는 것은 사회 내의 화해 불가능한 적대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제3의 영역이 중재한다고 할 때 중재는 곧 매개를 의미한다. 과연 순수매개라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질문이 여기서 나온다. 노동과 자본이 적대하는 현실에서 순수한 매개는 과연 어떤 식으로 할 때 가능해질까? 맑스는 국가라는 것은 순수매개를 위장해서 지배계급의 이익을 관철해나가는 위장자라고 표현했다.

사물들의 관리자로서 관리역할이라고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남는다.

베버는 국가의 기능 중에서 남게 될 최후의 영역을 행정에서 찾는다. 행정의 역할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 유지하고 잘 이어가고 계승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베버는 자본주의 속에서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롭고 순수한 매개자로서 관료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관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현재 목도하는 검찰, 판사 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번에 이O용 불기소 권고를 한 것이 수사시민위원회라고 하는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검찰 외부 전문가들이 모여서 심의를 하는, 원래 그런 취지인 건데 그 결과는 사실상 황당무계하다. 국민들에게 그 심의 내용을 전혀 알려주지도 않는다. 왜 그들이 불기소를 권고 한 것인지, 명료한 합의 내용에 대해서 전혀 전달하지 않는다.

현실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에서는 관료제가 자본주의 관료제보다도 사실상 더 비대해져 있는 상태다. 과거의 소련이나 중국, 북한과 같은 곳의 이 관료들을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논란이 많이 일어났었다. 이들은 분명 자본가 계급은 아니다. 자본가 계급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국유화된 이 자본 집단을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 하는 문제다. 관료계급이 국가 통제를 행사한다. 거의 소유에 가까운 소유는 아닐지라도 전체의 부를 점유하고 통제력을 행사한다. 90년 91년에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당 관료의 상당 부분이 소유권을 독점적으로 차지하는 그런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다. 순수성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현실사회주의를 겪은 후에 관료집단을 하나의 계급으로 보는 힘이 훨씬 강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관료는 아직도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인 보조물의 성격을 유지하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관료계급이라는 것도 복지국가 이후에는 경제적 계급에 대한 보조자로서의 역할보다는 훨씬 독립적이고 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본여진다.

자본가 계급이 성숙하지 못했던 시기에 자본가를 육성해내는 역할을 박정희가 했었다. 정경유착 체제를 도입하고 국가와의 연합 속에서 비로소 자본가가 될 수 있는 그런 체제를 구축했다. 자본체제는 사실상 국가자본주의의 소산물이다. 국가가 자본의 종속적 변수였던 그런 초기자본주의는 이념적인 자본주의 틀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 흐름이 전두환 7년 김영삼까지 이어져 왔다고 봐야 한다. 김대중부터는 신자본주의로 이행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자본주의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니다. 작지만 강한국가를 말하며 스케일은 줄이지만 훨씬 강한 역할을 국가가 떠안는다. 코어로 갈수록 현실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박정희식 국가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이어져 오는 역사 내내 사실상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한국이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였다고 볼 수는 없고 전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가라고 하는 것이 지배계급의 일부로서 자본가계급을 구성하는 능동적 행위자라고 볼 수 있다. 순수자본주의에서는 국가자본은 사실상 성립될 수 없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전개된 모습에서는 부르주아적 사적 자본의 경향과 국가자본이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서구 복지국가 같은 경우도 50프로가 국가자본이고 신자유주의에서도 전체 자본의 상당부분은 국가가 대부분 차지하고, 투자하고 있다. 국유기업, 공영기업, 방송국, 지하철, 특히 금융권 등.

행정은 개개인들의 삶을 연결해 줄 수 있는 그러한 넓은 의미에서의 사물의 관리를 말한다.
따라서 화폐, 인간, 기계, 정보 이런 것들을 잘 연결해 줄 수 있는 능력도 행정 능력이라 부를 수 있다. 예전에 칠레에서 1973년에 혁명이 일어났었다. 아옌데 정부가 덕분에 그 힘으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그때 아옌데 정부에서 실험했던 게 컴퓨터를 이용한 행정이었다. 대형 컴퓨터 6대를 중앙에 두고 각급의 생산 단위들에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이다. 농업, 공장, 사무실 등 각각의 생산 단위들에 모두 컴퓨터를 연결하고, 생산이 되면 그 양을 바로 컴퓨터에 입력하도록 만들었다. 과거 소련 케이스를 반성하면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소련이 계획 경제를 한다고 했지만 그 계획이 불가능 했다. 왜냐하면 생산단위들이 생산량을 속이기도 하고 또 생산량을 집계해서 총합을 만들어내는 게 어려웠다. 따라서 분배도 엉성했다.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었으므로 부정에 의해서 침식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컸다. 아옌데 정부가 컴퓨터로 완전히 관리하면 관료의 부정부패를 차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컴퓨터에 의한 계획경제를 실험했다. 결국 이것은 생산과 분배의 관리를 기계적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관료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해보자는 취지였다. 생산량을 투명하게 기록한다면 어디에 뭐가 넘치고 어디에 뭔가 부족한지 알 수 있고, 그러면 적재적소 분배가 가능하리라는 아이디어였다. 이 실험은 쿠테타로 중단되었지만, 무척 중요한 실험이었다.

아옌데 정부의 6대의 대형 컴퓨터보다 우리의 호주머니 속 기기의 연산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지금 집단이 마음만 먹는다면 개개인들의 활동이 핸드폰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보고가 되고 네트워킹이 되면서 사회적 사물의 능력들을 유연하게 배분해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상태에 있다. 지금도 페이스북에 자기의 삶을 일일이 알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상당한 위험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인데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는 욕망들이 있다. 사적 정보 노출이 매우 위험한 지금의 상태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만약 프라이버시 노출이 범죄에 이용되지 않고 그것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상황을 가정해 보면 (또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넓은 의미에서의 사물의 관리를 다중들이 기계의 매개를 통해 얼마든지 유연하게 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상태에 우리는 이미 와 있다. 갖가지 것들로 많은 것들이 왜곡되고 장벽에 부딪혀서 잠재력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고갈되거나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은 정보의 관리라 볼 수 있는을 것이다. 오늘날 기술 발전으로 다중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이 생겨나면서 도대체 제도 언론은 왜 필요하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오늘날 제도권 언론은 공동체에서 정보의 관리와 유통이라는 유인학 역할보다는 편파 왜곡 보도를 통해 오히려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히려 사회에서 없으니만 못한 기관이 되어가고 있다.

긴급재난문자라는 것이 거의 매일 온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다 받고 있을 것이다. 핸드폰이 등록되지 않은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게 거의 즉각적인 위험정보로서 우리에게 도달한다. 이처럼 만약 남북정상회담 같은 것을 한다고 했을 때 그 회담 내용 등이 모든 사람의 핸드폰으로 배달된다면 개개인들은 훨씬 더 민첩하게 현실을 알면서 살아나가게 될 것이다. 기업의 결정도 마찬가지다. 이번 이O용의 경우, 이리저리 하여 국민연금을 빼돌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민연금은 국민기업에 가까운 것인데 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이 거의 알 수 없고 그에 따른 실질적인 피해를 받고 있다.

기업들은 ‘영업비밀’ 운운하며 중요한 결정사항들을 다중에게 알리지 않아도 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저 장부 속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더불어 매스 미디어에서는 각양각색의 왜곡 보도가 이루어진다. 미디어를 통해 그릇된 인지체계를 주입한다. 오히려 매스미디어를 전혀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왜곡 정보를 알지 못해 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지경이다. 매스미디어를 오래 접하면 공해에 완전히 노출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오히려 사람의 두뇌가 망가져 버린다. 현재 미디어 비평 전문기구들이 있긴 하지만 너무나 부족하고 유해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긴급재난문자는 국영 시스템이다. 긴급재난문자처럼 국영시스템과 같은 그런 중앙 집중화된 것 말고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나누는 소통이 필요하다. 피투피 방식의 인터넷을 통해서 직접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관료체계에 의해서 폐쇄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정말 실시간으로 소통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의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점을 그들(관료들) 내부에서도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관료들 내부에서 이루어진 결정들과 생산된 것들은 국민에게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이 "정보공개청구"다. 그런데 이 “정보공개청구”의 절차가 현실적으로 무척 까다롭게 되어있다. 따라서 청구할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정보가 넘어가게끔 되어 있다. 이래서는 안되고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공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료의 입장에서 그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의지를 내보이는 것 정도로는 안 된다. 관료체계에서 생산된 것은 무조건 기계적으로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디지털 테일러주의와 관료제 국가, 그리고 부르주아적 중부유럽의 식민주의/제국주의 vs 다중의 정동적 인지적 생산, 다중의 기업심, 사회적 생산>사회적 조합>사회적 파업, 집단적 실천을 통해 언어를 새롭게 번역하기, 공통체
이 대립적인 양자를 실천적 번역의 문제로 설정하는데 여기서 번역하기란 무엇인가? 라투르의 번역과는 어떻게 다른가?
사회적 파업이라는 형태 투쟁의 제안과 번역이라는 문제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여기서 번역이란 것이 뭘 의미하는 것일까? '번역'을 핵심적으로 삼는 것이 라투르이다. 라투르의 번역과는 어떻게 상관관계가 있을까?

‘번역과 주체성‘이라는 일본학자 사카이 나오키의 '번역'개념을 가져온다. 사카이 나오키는 번역을 1대1로 옮겨 놓는 작업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번역이 주체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번역 자체를 주체의 형성으로 본다. 텍스트적인 기원으로는 발터 벤야민이 번역에 대해 글을 많이 썼는데 그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다.
라투르의 번역이란 매개 번역이란 말로도 나온다. 무엇보다 라투르의 경우에는 번역이라는 게 언어적 행위를 훨씬 넘어선다. 다른 것과 맺는 네트워킹으로 들어가는 그런 의미가 있다. 라투르는 정화와 매개라는 두 개의 현대적인 현상을 지적한다. 현대성은 원리적으로만 보면 하이브리드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화만 한다. 그런데 근대의 놀라운 점은 바로 정화만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매개화 즉 하이브리드를 엄청많이 생산하는 기능을 해왔다는 것이 라투르의 생각이다. “우리가 근대인이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라는 것은 근대가 뒷문으로 생산한 하이브리드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거를 적극적으로 추구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이다. 근대는 하이브리드를 엄청 다양하게 생산해낸다. 기계, 정보 등. 이게 바로 근대가 비공식적으로 산출해낸 비근대성이라고 라투르는 본다. 하이브리드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매개, 번역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하이브리드나 매개나 이런 것에 번역을 두기보다는 집단적 실천을 통해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것을 번역이라 말한다. 이것은 들뢰즈 한테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네그리와 하트는 기업심을 다르게 번역한다. ‘ Entrepreneur‘에서 entre를 영어로하면 between이다. preneur > prendre는 영어의 take이다. 그러니까, between take. 즉 두 개가 있으면 둘 사이에 그어지는 사선, 탈주선처럼, 사이에 끼어서 작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라투르식으로 말하면 매개 능력을 말하는 것인데, 무엇보다 네그리 하트는 언어의 의미를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데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
사실 이게 맑스의 방법이기도 하다. 맑스주의는 영국의 정치경제학과 독일의 고전 관념론 철학과 프랑스의 유토피아 소셜리즘을 결합한 것이다. 물론 그것들을 다 다르게 번역해서 결합하는 것이다. 우선 애덤 스미스의 학문을 번역한다. 이 과정에서 잉여개념, 노동개념 등 각각의 개념이 다 달라진다. 독일 고전 관념론인 헤겔의 변증법도 번역한다. 맑스의 변증법. 맑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원천으로 삼았지만 완전히 다르게 유물론적으로 번역해서 자신의 철학을 정리한다. 관점의 역전. 전도하기라는 게 번역 과정 속에 들어감으로써 낡은 의미로부터 절연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뜻을 새겨넣는다. 이것을 번역이라 보면 좋을 것 같다.

책에 보면 말잡기라고 하는 것이 나오는데 가짜뉴스 유튜버들이 하는 것도 말잡기인 것 같다. 그들이 페미니즘이나 폭력이나 이런 거를 가져와서 거기에 마구잡이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요즘 특히 그런게 심해지는 것 같다. 책에서 언어를 타락시키는 방식으로 해석한다는 토니 블레어 예시처럼 말이다. 이번에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가지고 보수 언론들이 이것을 일종의 정치적 정규직화라고 해석했다. 문제인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서 정규직화하는 거고 그것의 결과는 열심히 공무원 시험을 하는 청년들을 좌절시키는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했다. 문제는 커다랗게 제기하고 해결은 손톱만큼 내어놓는 논리적 사기다. 이런것이 인천공항 정규직 하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다. 기존에 있던 자리가 정규직화되어 버리면 내자리가 없어져 버린다. 허탈하다. 이런식의 반응을 부추기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맞는 말처럼 들리고 퍼지고 있다. 사실상 이러한 주장이 결국은 비정규직을 그대로 유지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청년분노의 이름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현재 청화대에서는 공무원의 정규직화가 비정규직이 자신의 직책만 바꾸는 거고 새로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먹혀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의 개념을 타락시켜서 뭔가 얼핏 보면 맞는 것 같은 논리를 가지고 계급차별, 직급차별, 임금차별을 마구 뒤섞어서 우리의 판단에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정의라는 개념을 타락시키는 방식으로 번역작업, 말잡기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짜뉴스도 과연 번역(말잡기)이라고 볼 수 있을까? 네그리와 하트는 번역이란 복수성을 동원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가짜뉴스 유트버들도 과연 복수성을 동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일단 번역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떤 번역인가 라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정의, 계급이라는 단어가 출발했을 때 갖고 있었던 연관개념 그것과 연결된 개념들이 만약 10개 정도였다면 그중에 한, 두 개와만 결합하는 방식으로 정의를 쇠약하게 만드는 번역이다. 또 잘못된 것과 연결하는 번역이고 ’양두구육‘이라는 말처럼 앞과 뒤가 맞지 않게 연결하는 번역이다.
청년층이라고 하는 일부의 복수성도 동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특이성과 결합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싱귤라하지 못한 사람들의 불만 같은 것을 동원하고 그 사람들을 집합적 주체로 가져온다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도 지금 복수적 주체성을 동원하는데 특이성을 지닌 하층민들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백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노동자이면서 현재 다른 이주민 때문에 일자리가 위태한 사람들, 실업 위기를 가진 백인 노동자들. 이들이 트럼프주의의 튼튼한 기반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들이 백인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관된 집단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책에 ’사회적 조합주의‘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말은 90년대 말에 한국에서도 많이 유행했던 말이다. 그때의 사회적 조합주의는 노동자이되 공장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거나 공장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함께하자는 의미였다. 한국같은 경우는 화물연대같은 것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도로가 공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전형적 공장과는 다른 노동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조합에 가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논쟁이 있었고 이후 일반노조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책에서 말하는 ’사회적 조합주의‘는 더 넓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합의 공간을 실제 공장보다 넓게 설정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일하는 학생들, 주부들도 가입할 수 있고, 게이머들이나 연예인들도 가입할 수 있는. 메트로 폴리스가 하나의 거대한 인지자본주의 공장이니까 말이다.

’사회적 조합주의‘와 함께 ’사회적 파업‘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사회적 파업은 거부일 뿐 아니라 긍정이기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피해자, 약자, 소수자와 연대하는 운동도 사회적 파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본의 아래서 기능하는 권력이 좌절되게 만드는 것이라면 모두 사회적 파업일 수 있다. 새로운 관계를 창출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새로이 창출된 관계가 전쟁, 제국주의 성폭력 이런 기획들을 좌절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때 파업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어떻게 주체성들이 새로운 유형들을 창출할 것이냐의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낮에 비혼주의자들의 인터뷰를 잠깐 보았는데, 이들이 아예 마을을 이루어서 살고 있었다. 거기서 함께 생활해나가는 것도 사회적 파업이라 생각했다. 혼인을 통해서 무상으로 자녀를 낳게 하고 양육을 시켜 노동자로 만들도록 하는 것도 자본의 기획의 일부이다. 그런 면에서 혼인관계가 아닌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은 분명 사회적 파업의 긍정적인 방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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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New 비밀글 [새책공지] 라즈 파텔, 제이슨 W. 무어,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 8월 22일 시작!
ludante | 14:11 | 추천 0 | 조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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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다중지성 연구정원 세미나 회원님들께 요청드립니다.
다중지성의정원 | 2019.11.03 | 추천 0 | 조회 305
다중지성의정원 2019.11.03 0 305
공지사항
역사비판 세미나 - 매월 2, 4주에 진행됩니다.
ludante | 2019.07.04 | 추천 0 | 조회 503
ludante 2019.07.04 0 503
공지사항
역사비판 세미나 사회/후기작성 순서
ludante | 2019.03.16 | 추천 1 | 조회 642
ludante 2019.03.16 1 642
공지사항
역사 비판 세미나 토론 방식에 대해
amelano joe | 2019.03.02 | 추천 2 | 조회 967
amelano joe 2019.03.02 2 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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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토요일 7시30분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첫 시간 공지입니다.
ludante | 2020.08.08 | 추천 1 | 조회 46
ludante 2020.08.08 1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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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어셈블리> 마지막 세미나 후기입니다.
ludante | 2020.08.08 | 추천 0 | 조회 23
ludante 2020.08.08 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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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리 14~16장 토론거리
amelano joe | 2020.08.08 | 추천 0 | 조회 24
amelano joe 2020.08.08 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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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후기] 8/8 『어셈블리』, 14~16장 공지/ 12,13장 후기
bomi | 2020.08.03 | 추천 0 | 조회 34
bomi 2020.08.03 0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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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장 토론거리
ludante | 2020.07.25 | 추천 0 | 조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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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장 독서노트와 토론거리
amelano joe | 2020.07.25 | 추천 0 | 조회 39
amelano joe 2020.07.25 0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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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13장 발제
Ji soon Park | 2020.07.25 | 추천 0 | 조회 33
Ji soon Park 2020.07.25 0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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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후기] 다음 세미나 7월 25일 12장 13장
Ji soon Park | 2020.07.21 | 추천 0 | 조회 39
Ji soon Park 2020.07.21 0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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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장의 핵심 명제들
amelano joe | 2020.07.11 | 추천 0 | 조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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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어셈블리 10, 11장 토론거리
ludante | 2020.07.11 | 추천 0 | 조회 28
ludante 2020.07.11 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