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호] 장소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 – 『난민, 난민화되는 삶』ㅣ박상욱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07-27 22:18
조회
54
 

장소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 – 『난민, 난민화되는 삶』


박상욱 (병역거부자)


난민과 관련된 또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2018년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도착한 이후, 먼 대륙의 일처럼 보였던 난민 문제는 비로소 한국 사회에 진입했다. 그 영향이 반영되듯 난민을 주제로 한 책들 역시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활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이러한 정세적 흐름 속에서 세 차례에 걸친 ‘티치인Teach-in’ 공론장을 토대로 현장과 대학을 아우르며 탄생했다. 여기서 매개로 기능한 티치인이란 무엇일까? 공저자 신지영은「여는 글 – 마주침의 한계-접점」에서, 1965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여 미시간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밤새워 토론했던 사건을 통해 처음 부각됐다고 말한다. 이 흐름은 동시기 일본의 베트남 반전 운동을 배경으로 삼아 크고 작은 티치인 모임으로 퍼져나갔고, 일본의 가해자성과 더불어 여성운동, 재일조선인 운동, 환경 운동 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며 확장되었다. <난민x현장> 팀은 일본의 사례처럼 신분, 젠더, 인종 등의 위계를 벗어나 제국주의 ‘외부’로 형성되었던 티치인을 모델로 삼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책을 펼치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연구자, 활동가, 예술가를 망라한 13명에 이르는 공저자가 담아내고 있는 주제의 범주였다. 이들은 로힝야 난민, 난민 활동가, 성 소수자 난민, 베를린 이주와 정주의 기록, 민족국가 바깥의 ‘위안부’, 병역거부자, 전쟁 산업, 동물까지 아우르며 난민화의 메커니즘과 고정화할 수 없는 정체성을 살펴보고 있다. “국적이 없는(혹은 국적을 포기한) ‘난민’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 바깥으로 내몰리고 있는, ‘난민화’되는 사람들까지 포함”(272p)한 것이 이 책의 독특한 지점이다. 구성을 간략히 정리한다면, 세 차례 걸쳐 열린 티치인(신인종주의와 난민, 로힝야 난민 이야기, 반군사주의와 난민)의 발표문과 현장 기획에 대한 기록은 3부에 실려 있고, 1, 2부에서는 티치인 주제를 보완하거나 문제의식을 다각도로 확장시키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다양한 주제의 포괄은 소재 나열에 그치거나, 고통의 무게를 가늠하는 측정기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소수자 사이의 접점 역시 인식하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한계를 갖기 마련이다. 해서 저자들은 그 각각의 정체성들이 서로를 되비추고 “한 존재가 겪는 고통은 다른 존재의 고통과 연결되며, 한 존재의 해방은 다른 존재의 해방 없이 불가능”(37p)함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한국 사회는 예멘 난민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전쟁 문제에서 책임이 없는 것일까? 평화활동가 쭈야의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는 한국산 살상무기를 비롯한 각종 군사 지원이 어떻게 예멘 내전에 연루됐는지 다루면서 우리의 일상이 군대, 방위산업과 결코 무관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특히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방위산업 전시회 아덱스에서 활동가들이 펼친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한 기록은 은폐된 ‘살인 전시장’의 장소성을 드러내고 있다. 해당 기록을 접하며 놀라웠던 것은 정부가 ‘학생의 날’을 지정해 청소년들에게 직접 무기 체험을 권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전시되고 거래되는 무기들이 어디서 사용되고 누구를 겨냥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418p) 군사주의의 일상화, 이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국민 국가의 역사에서 군대는 오랫동안 시민권의 획득과 연관되어왔다. 복무 대상자는 주로 건강한 신체를 가진 이성애자 남성이었고, 그 범주에 속하지 못한 장애인, 성 소수자, 여성은 주변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병역거부자의 존재 그 자체는 시민을 병사로 만드는 군사주의의 실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141p) 하지만 병역거부자라고 다 똑같을까? 이용석의 글「병역거부 운동」은 애초 입영 영장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과 달리, 감옥에 갇힌 병역거부자 역시 전쟁 영웅에 대항하면서도 또 다른 남성 영웅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병역거부 운동에 있어서도 여성은 항상 이들을 지원하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또한 중산층 대학생들이 사회운동 차원에서 공개적인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가난한 계급 청년들이 뒤늦게 탈영하거나 ‘기피자 ’로 감옥에 들어가는 경향에서 드러나듯, 병역거부 운동 역시 군사주의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젠더, 학력, 계급과 교차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또 다른 층위에서 심아정의「‘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마음」은 가까운 친구의 병역거부를 증언하는 것에서부터 병역을 이행했으나 한일 양국에서 배제 당한 재일조선인, 해외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성소수자 병역거부자들의 사례를 통해 ‘거부’와 ‘기피’의 경계를 되묻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요청한다.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가 확장될수록 얼마나 많은 삶의 조건들이 군대와 얽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차리게 된다. 예를 들어, 공장제 축산과 동물 학살을 반대하며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매 끼니의 밥상은 육식을 거절하는 전쟁터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고기를 먹든 안 먹든 배급량이 정해져 있는 군대의 식단은 채식주의자로서의 일상을 지켜낼 수 없게 만들 것이고, 이 또한 병역거부의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움’도 병역거부의 언어가 될 수 있다면, 이제 더 많은 ‘두려움’들이 말해져야 하고, 아직 말을 찾지 못한 ‘기피의 마음’과 그밖에 ‘별별’ 이유들 또한 모조리 병역거부의 사유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173p)


그러나 ‘두려움’이 언어가 되기 위해선 ‘오인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먼저 견뎌내야 한다. 요컨대 도미야마 이치로는「평화를 만드는 말의 모습」에서 타자의 배제를 전제로 한 “00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00가 아니다.”의 몸짓을 되묻는다. 00와 발화자는 똑같이 차별 당하는 위치에 있지만, 00를 다시 배제의 영역에 놓음으로써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구조를 문제 삼은 것이다. 이 발화의 자리에 놓이는 것은 비단 학살당하는 조선인과 혼동될까 두려워했던 오키나와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피자로 오인되지 않기 위해 입증해야 하는 병역법 위반자, ‘대한민국 출산지도’ 사태 때 여성이 암소 같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임을 강조했던 여성들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길을 가야할까? 도미야마는 그들이 예감한 폭력, 즉 오인될지 모른다는 공포 앞에서 느낀 겁쟁이의 언어가 새로운 장소를 형성할 조건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공포를 의식 깊은 곳에 눌러 감추려고 하는 사람과 그것을 말로 표현하려고 하는 사람이 같은 장에 머무르는 것이다.”(462p) 함께 영위할 수 있는 장을 끌어안고 일단 머물러 있는 것, 바로 여기서부터 도미야마가 전유한, “장소의 운명을 바꾸는 활동”이 시작될 수 있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장소의 운명’을 묻는 책이다. 필자는 이 서평에서 세 번째 티치인 ‘반군사주의와 난민 : 활동과 사유의 연대를 모색하며’에 포함된 이용석, 쭈야, 도미야마 이치로의 발표문과 2부에 실린 심아정의 글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언젠가 공저자이자 티치인 기획자 중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그는 얘기 도중 갑자기 “대학에서 병역거부 관련 티치인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던졌다. 시민사회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시작된 지 이십 년이 되어가도, 그동안 대학에서 해당 문제를 다룬 토론장이 열린 적은 드물었다. 정치제도 안에서 대체복무제가 논의되는 상황이라지만, 젠더 전쟁의 최전선이 되어버린 대학에서 병역거부 운동을 공론화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려를 표하자 그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되물어왔다. 그저 가볍게 던진 말이라 여겼는데, 어느 날 ‘반군사주의와 난민’이라는 주제로 나온 세 번째 티치인 포스터를 마주하게 됐다. 포스터에는 고심의 흔적이 묻어나듯, 병역거부 운동의 교차성, 난민과 무기거래, 그리고 평화의 말을 주제로 한 활동가와 연구자의 발표가 어우러져 있었다. 위계-없음을 지향하는 티치인 현장은 다양한 청중으로 가득 찼고, 오인될까 두려웠던 금기의 장소는 난로가 되어, 새로운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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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0년 7월 27일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s://bit.ly/30X9I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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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마이너리티 코뮌』(신지영 지음, 갈무리, 2016)


2009년 가을 ~ 2015년 초까지 도쿄.서울.뉴욕의 길에서 만난 소수자 마을(minority commune)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의 반전.반빈곤 활동,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활동, 야숙자들의 공원 점거 활동, 재일조선인 코뮌과 인종주의적 차별, 3.11 이후 탈원전.반원전 활동, 헤이트 스피치에 대항한 카운터 데모, 비밀보호법과 전쟁헌법 반대 활동 순간들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 순간들은 미군 기지 반대 운동, 두물머리, 세월호, 재능교육, 쌍용 자동차 투쟁을 하는 한국의 거리와 연결되며, 2014년 ‘범죄 인종주의’에 저항하며 뉴욕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아메리카 아프리칸들과 접속한다.


증언혐오』(조정환 지음, 갈무리, 2020)


이 책 『증언혐오』(그리고 이와 동시에 출간하는 『까판의 문법』)은 2019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5년이 되는 날에 시작된 증언선 윤지오호의 침몰이라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기울인 1년여에 걸친 집중적인 연구의 결실이다. 이 두 책은 하나의 사건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증언혐오』는 사람들을 위한 증언자의 증언증여와 증언자를 위한 후원자의 화폐증여에 의해 형성된 진실 공통장을 중심에 놓고 이에 대한 혐오의 경향이 변호사, 기자, 작가 등의 전문가 집단과 SNS 등에서 발생하는 모습을 그렸다.


까판의 문법』(조정환 지음, 갈무리, 2020)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 윤지오의 증언을 통해 형성된 진실 공통장에 대한 반발, 거부, 억압, 배제의 메커니즘이 증언자를 사기꾼으로 만드는 마녀사냥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한다. 이것은 일명 '까판'이라 불리는 반공통장 공간의 운동으로 나타나는데, 이 공간은 SNS 까계정에서 출발하여, 변호사·기자·작가·교수와 같은 전문가 집단, 신문·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 국회의원·경찰·검찰·법원 같은 국가기관 등에 광범위하게 산포되면서 우리 사회의 지배적 논리이자 주류 담론 문법으로 자리 잡아 결국 전 사회적 까판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이 전 사회적 까판의 논리와 운동 메커니즘을 권력형 성폭력 가해권력이 사용하는 권력 테크놀로지로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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