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호] 난민이 누구냐고? ‘난민화되는 삶’을 살펴보길ㅣ나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09-04 20:59
조회
52
 

난민이 누구냐고? ‘난민화되는 삶’을 살펴보길
경계와 구획을 넘는 저항의 언어 『난민, 난민화되는 삶』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활동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사람으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러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난민협약 제1조 A항 2조에 있는 ‘난민’의 정의이다. 2018년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왔을 때 국내에서 난민 혐오 여론이 고조되며 ‘가짜 난민’이라는 말이 떠돌았지만, 이 정의에 따르면 거짓선동이었다는 게 바로 드러난다. 여타의 다른 조건에 상관없이, 난민의 정의에 해당하는 사람은 난민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협약에도 불구하고 국경을 넘어선 난민들은 매번 그들의 자격을 심사받는다. 타협하거나 바꿀 수 없는 신념이나 삶의 조건, 또는 실질적인 생존의 위험으로 인해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격까지 포기하고 떠나왔음에도 애써 찾아간 곳에서 다시금 ‘보호받을만한 자격’을 입증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는 것이 난민이 처한 아이러니다.


전쟁과 처참함을 강조하는 이미지들은 때로 난민을 또 다른 자격 심사대에 올리는 잣대가 된다. 각기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연이 담긴 삶의 맥락은 삭제되고, 자신을 떠나오게 했던 하나하나의 조건들이 최대한 두렵고 처참한 이미지와 함께 난민 자격 심사에 부합하는 이야기로 선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멘 난민들은 심지어 한국 국민 전체의 심사대에 올랐다. 조금이라도 안전한 생존의 조건을 찾아 도착한 곳에서 이들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명품 시계를 찼다는 이유로, 언제 여자와 아이들을 해칠지 모른다는 이유로 다시 쫓겨날 것을 요구받았다.


국가 밖으로 ‘쫓겨남’뿐 아니라 ‘거부함’도 난민화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김기남 외 지음, 갈무리)은 이렇게 ‘국민’의 이름으로 난민의 자격을 심사하던 당시 한국사회의 모습을 계기로 하여 시작된 작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누가/무엇이 난민이냐’고 묻는 대신 ‘어떻게 난민이 되는가’에 집중한다.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어서 떠나온 사람들, 국가가 요구하는 국민의 모습으로 살 수 없어서 돌아가기를 포기한 사람들,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난민화’(난민화되는 삶)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여기에는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조선인 ‘위안부’ 배봉기, 노수복, 배옥수의 삶이 있고, 독립연구활동가 심아정이 전하는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단지 ‘쫓겨남’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거부함’으로써 난민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스스로 국가와 국민이라는 경계를 넘고 저항의 자리에 선 주체로서의 난민의 위치를 보게 해준다.


이 책의 첫 글인 신지영의 “‘증언을 듣는 자’에 대한 증언”은 난민인권센터 활동가 달팽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난민과 난민화가 지닌 복잡한 정치성에 대한 그의 고민을 따라간다. 자격을 심사받고 동정과 시혜에 호소하는 난민 운동이 아니라, 난민화의 근간에 있는 폭력의 정치를 드러내는 난민 운동, 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정치화하는 난민 운동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인터뷰이(달팽이)가 참여하고 있는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의 활동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난민, 성소수자, HIV/AIDS감염인 등 소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끊임없이 고정된 틀 속에서 정의 내리고 규율하려는 정치 권력의 폭력을 드러내고 저항하는 일, 그러한 활동과 연결된다면 ‘난민 인권’도 협소한 인정/증명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난민화되는 동물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송다금의 글이다. ‘난민화’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송다금은 난민화의 문제의식을 동물에게까지 확장한다. 저자는 “동물은 전쟁 발발이나 재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인간에 의해 서식지를 빼앗기고, 개체 수를 조절 당하며, 일상적으로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점에서 태생부터 ‘난민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 영토 안에 살지만 신변을 보호해 줄 국가도 없고, 필요에 따라 아무 데로나 이송되고 이용되는 동물들은 난민과 같은 신분으로 태어나 전쟁이나 재난의 과정에서, 도살되기 위해 국외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재난민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동물들의 재난민화는 난민 구호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아프리카 니제르에 빨간 염소를 보내는 국제 구호단체의 캠페인에서 염소를 1인칭 화자로 등장시켜 스스로 팔려가고, 분배되고, 먹이가 되는 과정으로 묘사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난민에 대한 타자화가 다시 동물에 대한 타자화로 이어지는 문제를 세밀하게 파고든다.


난민의 전형화된 ‘이미지’를 벗어나


이 책에서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이미지와 재현에 관한 성찰이다. 저자들은 이 책을 만든 계기가 된, 프로젝트 그룹 ‘난민×현장’ 행사의 포스터에서부터 이에 대한 성찰을 깊이 있게 해나갔다. 가령, 인형을 들고 있는 난민 어린이의 뒷모습이 가운데에 배치된 첫 번째 행사 포스터의 경우, 원래는 활동가들이 든 현수막 앞에서 질문하고 있는 어린이의 사진인데 포스터에서는 배경을 흐린 채 어린이의 뒷모습만을 강조함으로써 쉽게 동정을 유발하는 이미지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성찰이 있었다.


난민 재현에 관한 주제들은 난민과 이주노동자의 전형화된 이미지를 벗어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욕망을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들을 살펴보는 전솔비의 글과, 일본군 ‘위안부’ 증언자이자 각기 오키나와, 태국, 베트남 난민 커뮤니티에서 살았던 배봉기, 노수복, 배옥수에 대한 재현을 살피는 이지은의 글에서 보다 깊이 있게 이어진다.


남성화된 국민국가의 서사 속에서 배치되고 다시 선별되어 온 ‘위안부’ 재현의 과정은 국가의 폭력과 국가 간 폭력으로 인해 국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다시 국가의 틀 속에 검증하고 배치하는 난민 자격 심사와 이들을 타자화하는 재현의 과정 속에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이제 ‘난민을 위한 연대’를 넘어서, ‘난민화’의 과정에 있는 우리 각자의 삶이 연결된 지점을 살펴보고 연대의 방식을 찾아 경계의 횡단을 시작해보면 좋겠다. 그 시작점을 열어주는, 풍부한 고민들을 오랜 시간 벼리고 정성스럽게 담아내 준 <난민, 난민화되는 삶>의 필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0년 9월 1일 <일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s://bit.ly/331yDf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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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마이너리티 코뮌』(신지영 지음, 갈무리, 2016)


2009년 가을 ~ 2015년 초까지 도쿄.서울.뉴욕의 길에서 만난 소수자 마을(minority commune)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의 반전.반빈곤 활동,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활동, 야숙자들의 공원 점거 활동, 재일조선인 코뮌과 인종주의적 차별, 3.11 이후 탈원전.반원전 활동, 헤이트 스피치에 대항한 카운터 데모, 비밀보호법과 전쟁헌법 반대 활동 순간들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 순간들은 미군 기지 반대 운동, 두물머리, 세월호, 재능교육, 쌍용 자동차 투쟁을 하는 한국의 거리와 연결되며, 2014년 ‘범죄 인종주의’에 저항하며 뉴욕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아메리카 아프리칸들과 접속한다.


증언혐오』(조정환 지음, 갈무리, 2020)


이 책 『증언혐오』(그리고 이와 동시에 출간하는 『까판의 문법』)은 2019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5년이 되는 날에 시작된 증언선 윤지오호의 침몰이라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가 기울인 1년여에 걸친 집중적인 연구의 결실이다. 이 두 책은 하나의 사건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증언혐오』는 사람들을 위한 증언자의 증언증여와 증언자를 위한 후원자의 화폐증여에 의해 형성된 진실 공통장을 중심에 놓고 이에 대한 혐오의 경향이 변호사, 기자, 작가 등의 전문가 집단과 SNS 등에서 발생하는 모습을 그렸다.


까판의 문법』(조정환 지음, 갈무리, 2020)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 윤지오의 증언을 통해 형성된 진실 공통장에 대한 반발, 거부, 억압, 배제의 메커니즘이 증언자를 사기꾼으로 만드는 마녀사냥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한다. 이것은 일명 '까판'이라 불리는 반공통장 공간의 운동으로 나타나는데, 이 공간은 SNS 까계정에서 출발하여, 변호사·기자·작가·교수와 같은 전문가 집단, 신문·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 국회의원·경찰·검찰·법원 같은 국가기관 등에 광범위하게 산포되면서 우리 사회의 지배적 논리이자 주류 담론 문법으로 자리 잡아 결국 전 사회적 까판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이 전 사회적 까판의 논리와 운동 메커니즘을 권력형 성폭력 가해권력이 사용하는 권력 테크놀로지로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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