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호] 페미니즘적 세계생태론의 가능성을 생각한다ㅣ박이은실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09-18 17:20
조회
89
 

페미니즘적 세계생태론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페미니스트들에게, 특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모두에 비판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 제이슨 무어의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는 매우 반가운 책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페미니스트들은 신분제가 붕괴되고 모든 시민이 서로로부터 자유롭고 서로 평등한 근대시민국가에서 살게 되었다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적 구조는 변함이 없는가를 질문하고 분석해왔다. 이것의 핵심에는 비대칭적 성별이항구조라는 인식체계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여성다움과 남성다움,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 등과 같은 성별이분법적 담론이 그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를 두고 래윈 코넬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로서의 신분제도가 이분화된 성별로 대체되었고, 따라서 성별이분법은 근대의 신분제도와 다를 바 없다고 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였다. 한편, 캐롤 페이트만은 근대의 아들들이 중세봉건적 아버지로부터 해방되어 독립적인 시민 남성으로 거듭났던 반면, 딸들에게 허용된 것은 아버지 가부장의 손에서 남편 가부장의 손으로 양도되는 것이었을 뿐 중세봉건적 가부장 자체로부터의 해방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페이트만은 근대적 시민계약의 바탕에는 바로 아내를 가진 남성이라는 시민 표준과 이들 사이의 연대(형제애), 그리고 이를 작동가능하게 만들어준 은폐된 ‘성적 계약’이 있다고 분석했다. 성적 계약은 성별이항구조에 철저히 기반하고 있으며 성별이항구조는 무엇보다 비대칭적이다. 근대가 가치 우위에 둔 문화, 이성, 합리성의 영역은 남성의 영역으로, 열등한 위치에 둔 자연, 감정, 비합리성 등의 영역은 여성의 영역으로 배정되어 왔으며 따라서 남성의 영역과 여성의 영역은 시작부터 비대칭적 관계에 있어 왔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비대칭적 이항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섹슈얼리티에서부터 성별노동분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안들을 검토해왔으며 이런 가운데 이분법적 사유체계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분법적 사유체계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문화를 나누고 문화를 우위에 두며, 몸과 정신을 나누고 정신을 우위에 두고, 감성과 이성을 나누고 이성을 우위에 둔다. 그리고 이 모든 이분법적 사유의 정점에 동물과 인간을 나누고 인간을 우위에 두고, 여성과 남성을 나누고 남성을 우위에 두는 사유체계가 작동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유체계를 문제삼음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은 왜 여성들에게 가사노동과 양육노동과 같은 특정 노동만이 이상적인 노동으로 배정이 되는지 그리고 그 노동에 대한 댓가가 왜 주어지지 않는지, 왜 여성들은 임노동의 장에서 노동할 때조차 성차별적 임금격차에 시달리게 되는지, 왜 여성의 일은 본업이 아니라 부업으로 여겨지고(본업은 가정주부) 그게 아니라면 진지한 업이 아니라 ‘자아실현을 위한 개인활동’ 정도로 여겨지는지, 왜 임금노동을 하는 여성들이 가정에서 가사노동과 양육노동 등의 부불노동(제이슨의 용어로는 ‘무상 일‘)을 여전히 도맡게 되는지 등을 질문하고 분석해 왔다. 또한, 이와 함께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 동성애 혐오와 이성애 규범성, 여성의 가정주부화, 모성 이데올로기, 아동기 개념의 등장 등과 같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 이런 구조를 지속시키는 데 역할을 해 왔음을 밝혀 왔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합리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독립적인 경제적 인간‘이라는 관념에 기반하여 작동하는 경제제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음과 같은 제이슨 무어의 사유는 이와 잘 호응하고 있다.


나는 자연/사회의 이원론이 근원적으로 근대성의 폭력에 가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종과 젠더, 섹슈얼리티, 유럽중심주의의 이원론들... 그 모든 이원론의 원인, 즉 자연/사회 이항구조를 다룰 적기다. (24쪽)


우리가 유상/무상 일의 결합을 전제로 삼는다면, 자본주의와 가치 관계는 자본의 소유주와 노동력의 보유자 사이의 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역사적 조건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무상 일이다. (124쪽)


(재)생산관계와 관련된 것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다. 모든 종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노동한다. 오직 인간만이, 게다가 그 점에서는 오직 일부 인간만이 그렇다. 가치 법칙-가치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가치의 실제적인 역사적 작용-은 매우 특정한 의미에서 인간 중심적이다, 오직 인간의 노동력만이 가치를 직접 생산한다. 나무, 또는 말, 또는 지질학적 분화구는 대가를 지불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상품화된 노동력은 말이나 나무의 무상 일이 없다면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무상 일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토대다. (471쪽)


필요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본은 자본의 회로 바깥에 있지만 자본주의 세력권 안에 있는 생명의 무상 ‘일’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문명을 가동하는 동시에 강제와 동의, 합리화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서 그런 문명을 창출하려고 노력한다. (473쪽)


페미니스트들은 이미 오랫동안 ‘계급’의 문제를 다루는 자본주의 비판(적색)과 자연 수탈과 파괴에 대한 비판(녹색), 그리고 성별권력관계를 문제삼는 가부장제 비판(보라)이 각각 동떨어진 비판이 아니라 이들 사이의 교차적 관계를 전제하는 통합적 비판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이중체제론(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주목)과 가부장체제론(자본주의를 가부장제의 연장선에서 분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제이슨 무어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한 작업, 즉, 데카르트적 이분법에서 탈피하여 세계를 인식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착취와 전유를 개념적으로 명료하게 구분하면서 자본축적이 어떻게 근본적이고 기본적으로 자연, 식민지, 여성의 생산에 대한 전유를 토대로 하고 있는지, 무상으로 혹은 한껏 값싸게 가져다 사용하기 위해 전유 대상의 자연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을 촘촘하고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매우 활용도 높은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생산(노동) 영역의 바깥에 위치되면서 동시에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들이 구성되는 방식과 유지되는 방식을 꼼꼼히 살피다보면 왜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한 근대시민국가의 등장과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로 구성되는 생산관계를 기반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등장이 동시에 이루어졌는지, 이 과정에서 ‘여성’에게 어떤 일이 벌어져 왔는지를 보다 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중세 신분제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자유와 평등이 근대시민국가에서 실현되기 시작함과 동시에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왜 함께 일어났는지, 즉, 노동력을 팔 자유는 있지만 (이것도 여성에게는 매우 늦게 허용되었다) 팔지 않을 자유는 보장받지 못했기에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구조가 왜 나란히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여성이 무상 일을 도맡게 만들고 여성이 하는 일을 가치가 덜 하거나 무상의 일로 인식하도록 하는 풍토가 어떤 장치들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구축되었는지도 보다 분명하게 사유할 수 있게 해 준다.


제이슨 무어의 표현대로 자연과 사회가 각각 따로 존재한다고 보지 않게 되면, 즉, 자연 속의 사회, 사회 속의 자연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분석에 들어가게 되면 지금까지 서로의 연결성이 흐릿하거나 혹은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상 매우 촘촘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인간은 환경을 형성하고 환경은 인간을 형성한다. ... 현재 새로운 패러다임이 가능한데, ... 나는 그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계생태론으로 부를 것이다. ... 세계생태론은 우리가 21세기 난제를 해결할 수 있으려면 지적으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필요하다. (21쪽)


코로나 시대, 여성들이 감당하고 있는 노동과 관계가 양적으로 더 많아지고 노동조건은 질적으로 더 열악해지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로 대변되고 있는 자연이 인간 사회에 일종의 보복을 혹은 응징을 가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억울한 일이다. 코로나로 대변되는 이 문제를 양산시킨 장본인들은 뭐니뭐니해도 자본가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무어의 말대로, 생태문제 따로, 자본주의 따로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가 생태를 대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자연에 돌이킬수 없는 시스템적 부화가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인가? 자연인가? 자본주의적 자연인가? 혹은 자연-속의-자본주의인가?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물어야 할 것이 있어 보인다. 양육이라는 ‘무상 일’ 이전에 출산이라는 인간 생산 자체는 착취와 전유 어디쯤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 세계생태론에서 이 문제가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는 그저 세계생태론이 아니라 페미니즘적 세계생태론이 필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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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0년 9월 11일 일상비평 웹진 <쪽>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s://bit.ly/2FSwjz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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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치스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며 증식해 온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본 관계 내의 광범한 대립과 적대가 어떻게 노동과정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에 맞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오늘날의 정치적 관심사를 설명하기 위해 맑스의 사유를 주의 깊게 다시 읽고 해석한다. 원래 지난 30년 동안 반자본주의 운동을 둘러싼 논쟁들에 기여하기 위해 쓰인 이 책은 카펜치스의 저작들을 공통의 미래로 이행하는 이 시기의 투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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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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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의 저자로 알려진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고전적 저작.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이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4, 5백년 동안 여성, 자연, 식민지는 문명사회 외부로 축출되고, 가려져 왔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왜 가려졌는지, 이 부분의 가치와 비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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