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2021.02.05] [신.만.사] '증언혐오' 저자 조정환 대표 "윤지오는 살아있는 장자연" /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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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작성일
2021-02-06 15:15
조회
38


[여성신문 2021.02.05] [신.만.사] '증언혐오' 저자 조정환 대표 "윤지오는 살아있는 장자연" /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414


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 그의 책 <멋진 신세계>에서 "66번의 반복이 진실을 만든다"고 썼다. 그는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묘사하며 정보 과잉의 시대를 예견했다. 책 속에서 사람들은 홍수처럼 뉴스가 넘쳐나는 일상을 산다. 자연스럽게 자극적인 정보에만 관심 갖고 중요한 사실은 잊게 된다. 이처럼 헉슬리는 미래 사람들이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존재가 될 것을 우려했다.

90년 전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된 듯 하다. 바야흐로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가 판을 치는 '탈진실(Post-truth)' 시대다. 혐오와 왜곡된 정보의 범람 속에서도 진실을 지키고자 하는 이가 있다. 바로 <증언혐오>, <까판의 문법> 저자인 조정환 다중지성의정원 대표다.

정치철학자인 조정환 대표는 80년대 말 노동해방문학을 정립한 대표적 이론가다. 그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간부라는 이유로 90년 내내 10년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사노맹의 마지막 수배자'로 불리기도 했다. 수배기간에도 그는 맑스주의의 자율주의적 재구성을 연구했고, 도서출판 갈무리를 창립했다. 현재는 도서출판 갈무리와 함께 세미나/자율평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다중지성의정원을 운영 중이다.

<증언혐오>, <까판의 문법> 두 책 모두 윤지오 씨에 대한 마녀사냥을 다룬 책입니다. 조정환 대표님이 관련한 책을 쓰실 거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증언혐오>와 <까판의 문법>은 원래 쓰려고 했던 책이 아닙니다. 2019년 봄, 저는 한 학술행사에서 '예술인간' 을 주제로 논문 발표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제기한 개념 중 하나인 '예술인간' 의 관점에서 윤지오 씨의 증언활동의 의미를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현대사회가 비전문가 대중에게 예술가이길 요구하고 강요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전문가 대중이 예술능력을 획득하면서 다른 존재로 변이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한 말이 '예술인간' 입니다. 한편으로 '증언하기' 와 '예술하기'는 본질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경험을 기록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 활동의 본질이니까요. 보통의 사람은 진실을 증언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윤지오 씨는 2009년 장자연 씨 죽음 이후 2008년 본인이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증언했습니다. 함께 활동한 장자연 씨가 죽게 된 이유를 밝히기 위해 나선 것이지요. 저는 윤지오 씨가 일종의 '예술인간' 이 되어서 증언행위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논문을 발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2019년 4월, 갑자기 윤지오 씨에 대한 비방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결국 윤지오 씨는 쫓겨나듯 한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과정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예술인간 이론이 틀렸고, 내가 사회를 잘못 읽고 있었나? 아니면 반대로 증언자에 대한 엄청난 마녀사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이제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논문을 써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건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1주일 정도 기초자료를 확인하니 내 관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사건 자료와 생각을 1년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까판의 문법>, <증언혐오> 두 권의 책을 냈습니다.

윤지오 씨와 장자연 씨를 계약직 연예 노동자로 호명하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여성의 경우 역사적으로 가사노동이라는 일종의 강요된 노동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가사가 노동으로 분류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요. 가사는 노동이라기보다는 보잘 것 없는 잡역으로 간주되었고 그것을 행하는 이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업체나 공장에 가도 여성이 수행하는 일은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거나, 여성은 남성보다 인정받기 어렵지요.

<밥·꽃·양>이라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면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현대자동차 식당여성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과 회사와 노조를 상대로 한 원직복직 투쟁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를 들어갈 때 남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해고에는 반대하면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해고에는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우리도 노동자인데 노동자인 너희들이 우리 해고에 왜 동의를 하느냐고 한참을 싸웠지요. 이처럼 실제로 고용된 여성들조차도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 떠밀려 나갔던 것이 여성이에요. 예외적인 공간의 존재로서 간주됐죠. 넓혀보면 여기에는 동물이나 자연도 포함되어있지요. 물론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연예인들도 포함됩니다.

그렇게 보니 연예인들은 노동자로서 불려지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장자연 씨나 윤지오 씨 모두 2008년~2009년의 한류 문화 정책과 관련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아래서 한류 정책이 시작되었고 소위 고부가가치산업(예술, 연예, 영화 등)을 전략적으로 성장시켰죠. 많은 이들이 부푼 꿈을 안고 연예계에 발을 들였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정치, 언론, 재벌, 법조계 등 권력층의 사람들이 한 몸이 되어 연예인들을 성착취했죠. 한류의 어두운 이면 중 하나 입니다. 그 속에서 일하는 연예 노동자들이 어떤 경험을 겪고 있는지 밝히는 게 우리 사회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버닝썬', 'YG성접대의혹' 사건 등을 보면 한류 문화는 성접대, 마약 등과 연루되어 있어요. 심지어 그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죠.

고 장자연 씨 같은 경우가 그런 부조리를 거부한 사람이에요. 방 씨 성의 사장이 자기에게 성접대를 하게끔 강요했다고 고발 했잖아요. 남성 권력자들은 성접대를 강요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많은 연예인 지망생이 싫다고 말하지 못했겠지만 장자연 씨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고발 문서를 쓰고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어 결국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한 사람이 장자연 씨입니다. 윤지오 씨는 장자연 씨보다 어려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가 어떤 경험을 겪는지 지켜보았습니다. 또 조O천씨 성추행 사건을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장자연 씨의 죽음까지 보며 자기 꿈을 포기하고 연예 노동을 떠난 사람이에요.

현재 한국은 인지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굴러갑니다. 산업 자본주의의 노동착취가 공장에서 일어난다면 인지 자본주의의 착취는 문화예술계, 연예계 등에서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영화, 연예계는 새로운 공장이죠. 저는 그 지점에 주목해 연예공장에서 자본과 노동 관계가 어떻게 전개 되는지 살펴본 것입니다. 이 착취는 공장 노동자들이 1960~80년대에 겪었던 착취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것 없어요. 어떻게 보면 더 심하죠.

이번 윤지오 씨에 대한 마녀사냥에는 일반 대중이 아닌 변호사, 작가 등 흔히 지식인이라고 불렀던 이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딱히 누가 지식인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엘리트층이 독특한 계급으로 소명의식을 갖고 움직였습니다. 6-70년대 한국만 해도 그랬지요. 그렇지만 2000년 이후 한국에 신자유주의 물결이 급격히 일면서 지식인 또한 노동자로 그 위치가 격하 되었습니다. 지식인조차 영리적 목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죠. 이제 다중이라고 하는 범주 속 인지노동자의 일부가 바로 지식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스스로 한 사람의 기업가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노동자이자 기업가인 이 시대 지식인들은 자신의 계급을 어떻게 상승 시킬지 계산하며 움직입니다.

다른 한편 지식인층은 사회에서 자기발언력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사회 하층민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훈, 박준영 변호사, 김대오 기자, 서민 교수 등이 윤지오 씨에 대해 말하는 내용을 보면 자기 나름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사건을 바라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박준영 변호사 같은 경우 2019년 3월에 벌써 윤지오씨 증언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사람이예요. 본인이 과거사조사위 활동을 하다 보니까 문재인 정부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윤지오를 부른 것 아니냐 같은 관점이었죠. 윤지오 씨의 증언이 적폐청산이라는 프레임으로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을 공격하는 문재인 정부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인식한 거죠. 정작 윤지오 씨의 인간적 경험과 증언내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잘 몰랐습니다. 사실에 대한 정보가 지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다시 말하자면 인간 윤지오 씨나 인간 장자연 씨의 고통에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문맥 속에 윤지오씨를 위치시킵니다. 진실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정치환원적 관점은 박훈 변호사에게서도 비슷하게 발견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사자의 삶의 고통, 열망, 희망에 대해 관심 갖지 않는다는 겁니다. 커다란 정치 게임 속에서 행위자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본인들의 말과 행동이 증언자인 윤지오 씨에게 어떤 상처로 남을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무리한 단정과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윤지오 씨 후원 계좌를 자율적 증여 공통장으로 해석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증여, 현재 이것이 가장 예민한 문제죠. 최나리 변호사가 후원자 300여명의 이름으로 소송을 시작했고 재판은 아직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2월로 미뤄졌다고 하더라고요. 주요 주장은 윤지오 씨가 사기쳤다는 것입니다.

최나리 변호사의 주장은 박훈 변호사의 고소 주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박훈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윤지오 씨는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람입니다. 박훈 변호사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윤지오 씨가 jtbc와 인터뷰 중 비영리 시민단체를 만들 거라고 말한 것에서 찾습니다. 박 변호사는 그날 인터뷰에서 윤지오 씨가 자신이 받는 위협을 과장 했으며, 돈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윤지오 씨가 후원금을 받게 된 계기는 이상호 기자의 유튜브 방송입니다. 윤지오 씨는 당시 실제로 신변위협을 겪고 있었고 경호비를 사비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이상호 기자가 적어도 경호비만은 시민이 후원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며 윤지오 씨 개인 통장을 화면에 내보냈습니다. 당시 후원한 이들의 온라인 의견과 통장에 찍힌 격려의 말을 읽어보면 경호비까지 사비로 쓴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다, 힘내라, 연대한다는 내용이 제일 많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다들 후원한 것이겠죠.

이렇듯 후원은 '증여'행위입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서로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사회를 만들고 또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윤지오 씨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도 자율적 증여를 통해 사회적 공통장을 구성하려는 노력이었다고 봅니다.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는 기부금을 금지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기부금을 권장하는 쪽으로 기부금품법의 성격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기부금품법에 문제점이 남아 있지만 증여활동을 활성화하고 합리적으로 관리하려는 방향으로의 법제 개선이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윤지오 씨는 자신의 경호비를 비롯해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를 돕기 위한 비영리단체 활동을 위해 자발적 후원자로부터 증여받았습니다. 이것은 기부금품법이 지향하는 취지와 부합하며 어디에도 문제 될 여지는 없는 일입니다.

조정환 선생님은 왜 윤지오 사건에 대해 관심 갖으시나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도 묻습니다. 왜 사노맹과 연이 있는 사람으로서 조국사건에 대해선 다루지 않고 윤지오 씨에 대해 글을 쓰냐고요.

당장 제가 윤지오 사건에 몰두하느라 관심을 둘 여력이 없기도 했지만, 다중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사건들을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프롤레타리아라고 할 수 있는 다중의 복잡하고 다양한 관심, 이들의 처절한 경험, 바로 그만큼 폭발적일 수 있는 이들의 잠재적 에너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게는 권력 내부의 갈등으로서 다중과는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조국 사건보다 다중의 직접적 경험이 사건으로 비화한 장자연, 윤지오 씨의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두 권의 책을 통해 '예술인간' 윤지오의 증언은 한국 사회의 힘센 권력자들에게 장자연 씨가 성폭력을 당한 사건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만큼 위험한 일이고, 또 위험한 만큼 정의롭고 고귀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권력자들의 성폭력을 증언하는 윤지오 씨의 증언실천이 안전하도록 만드는 것은 지식인과 시민들이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지는 것은 삶과 사회가 안전해지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조정환 대표는 <증언혐오>에서 고통에 대한 앎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의 기울임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실천적인 것이라 말한다.

거짓과 혐오가 일상이 되어 진실이 빛을 잃는 탈진실 시대다. 가냘픈 목소리들은 더욱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조정환 대표는 공통진실을 찾아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다시금 묻는다.

"지금 지키지 못하면 윤지오와 윤지오의 진실은 언제 지킬 것인가?"

그 응답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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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혐오』 | 조정환 지음 | 갈무리 (2020)
『까판의 문법』 | 조정환 지음 | 갈무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