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후기] 3/26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p.317~끝까지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03-15 23:17
조회
425
[공지]
역사비판 세미나 다음 시간 안내입니다.
<일시> 3월 27일 (토요일) 저녁 7시 30분
<범위>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1> 317쪽~끝까지

세미나 시간에 나누고 싶은 질문거리, 토론거리는
세미나 시작 전까지 본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됩니다.



[후기]
3월 12일 세미나 기록입니다.

요일 : 2장부터 얘기해보자.

토 : 느낀 바를 그냥 얘기해보겠다. 생각을 많이 해 본 게 서양과 동양이 예전에 서양에서 과학도 발달하고 민주주의도 발달하고 20세기나 19세기에는 서양이 동양을 압도했었다. 그래서 서양이 어떻게 저렇게 저런 힘을 갖고 어떤 우위점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다 보니 밀을 경작하는 사회와 쌀을 경작하는 사회 차이가 자세히 나왔다. 밀 경작 사회의 경우는 목축과 같이 했고... 그래서 간단히 말하면 밀은 윤작을 하고 직접 재배지에서 2-3배 땅이 더 필요하고 휴경지가 있어야 하고 그래서 목축과 밀 등이 연계되고 타지역 노동자들이 맞물려서 결국은 교역이나 등으로 사회가 분권적으로 되는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동양은 쌀재배 자체가 많은 관계나, 수확에 있어서 집약적 노동력이 필요하니 국가 권위는 더 필요하니까 서양은 좀 더 분권적이고 상업이 발달한 기반이 되고, 동양은 중앙집권적, 전제적 사회가 된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일 : 2, 3번 질문거리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월 님이 덧붙이실 얘기가 있을까. (2. 제2장의 부제목은 '빵'으로 되어 있는데 '빵과 밥'이 좋지 않았을까? 밀과 쌀의 대비, 서양과 동양의 관계를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135쪽/ 3. 밀 경작지역과 쌀 경작지역의 문화적 정치적 차이는 무엇인가?(2장)

월 : 아무래도 서양사람이어서 쌀 서술은 짧았다. 밀/쌀 대비는 분명한데, 밀 서술이 많았고 가치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서술된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출신과 관련해서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쌀은 다루었지만, 밥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서 제2장의 부제목은 '빵'으로 되어 있는데 '빵과 밥'이 좋지 않았을까? 밀과 쌀의 대비, 서양과 동양의 관계를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135쪽)라는 질문을 했다.

요일 : 밀 경작지역과 쌀 경작지역의 문화적 정치적 차이는 무엇인가?(2장) 이야기도 더 해보자.

금 : 서양은 밀을 재배하고 밀은 목축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것이 대규모 곡물의 원거리 무역과도 연계되면서 사회 자체가 그 산업기반 자체에 의해 분권적인 형태를 가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동양은 쌀이란 곡물의 특성상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국가 권위가 강화되었고, 전제적, 독재적이었던 것 아닐까. 이런 게 19, 20세기 서양 서세동점 상황의 근본적 기반이 되었던 것 아닐까.

월 : 잘 들었다. 보충한다면 밀은 물이 없어도 잘 자라는 작물. 쌀은 논에서 경작, 밭에서 경작 두 종류로 구분을 했는데, 우리 입장에선 논벼가 중심이고, 물이 없으면 성장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중앙집권적이라는 표현도 물을 관리하는 기관, 치수(治水)의 문제와 쌀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경작지 전체의 공간을 대상으로 한 치수 전략이 필요하게 되고, 그래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와 쌀이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고, 또 쌀은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데 밀은 자연력의 도움을 받는다. 마을 공동체 생성하는 촉발요인으로서의 쌀. 그래서 쌀 경작지에서는 공동체적인 밀집문화 발전, 밀 경작지는 개인중심의 분권적 문화가 발전하는 경향적 차이는 있다. 쌀 경작지는 아시아권에 치우쳐있고 밀은 상대적으로 서구 쪽에서 식민지 쪽으로 산포시켰기 때문에 경작지가 넓은 셈인데 그럼에도 쌀 경작지에서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문화가 밀경작지에서 먼저 발전해나온 특징 정도를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요일 : 관련 부분은 200쪽에 있었다. ‘논의 과잉시설은 국가의 과잉시설을 의미한다’는 부분이 있다. 논은 공장과 같다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또 덧붙일 게 있나.

수 : 밀/쌀 경작지 문화적 차이 관련 흥미로웠던 건, 도시와 시골 관계가 다르게 묘사된 부분이 있다. 쌀 경작지는 시골/도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생관계였다는 것. 논은 퇴비로 인분, 쓰레기를 도시로부터 제공 받았다. 그에 반해 밀 경작지는 도시가 시골을 착취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밀농사를 시골에서만 짓고 도시와 시골 사이에 상인들이 중요하게 부상하는 것 같았다. 질문은... 쌀 경작지가 중앙집권화되는 모습이 많이 그려졌는데 브로델은 농민들이 핍박받았다든가 하는 얘기를 특별히 하지는 않았는데, 뒤쪽에 옥수수 얘기가 나오는데 쌀에 비해서도 서술 분량이 적었는데, 쌀과 옥수수 차이점이 쌀이 노동집약적 작물이라면 옥수수는 7일에 하루만 일해도 될 정도로 노동력이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대목... 그래서 여기는 아주 자유로운 것에 대한 묘사가 나오려나 했는데 그런 서술은 없었다. 즉 노동력이 덜 필요한 것이 ‘저주’ 같은 뉘앙스로 읽혔다. 오히려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건축물을 짓는 등에 동원되면서 더 힘들어졌다.. 식의 묘사가 있어서... 노동집약적이냐 노동이 덜 들어가냐가 중앙집권적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에 핵심적이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들 의견이 궁금하다.

요일 : 지금 이야기는 217-219쪽에 있다. 쌀/옥수수 경작이 정치적 형태를 결정하는 것처럼 쓰고 있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월 님 질문 1번과 관련지으면 재밌겠다 생각했다.
1. "곡물은 왕이다"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곡물과 정치, 곡물과 권력) 이 표현 속에 담겨 있는 저자의 역사관은 무엇인가?(191쪽)

목: 방금 대목 나도 흥미로웠다. 벼농사 중심 문화권에서 1년 내내 농사,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리다보니 보르델 식으로 말하면 문화적 에너지 소비 여력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브로델은 그런 게 양가적이다. 옥수수 재배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즉 브로델은 people 삶에 대해 일정정도 관심 가지고 조명해보려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곡물은 왕이다’라고 얘기한 것도 밀도 쌀도 결국 권력이 먹을거리를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했다는 얘기.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봤다.

금 : 하나 더 얘기하면, 옥수수 같은 경우는 노동력을 적게 필요로 하는 동시에 화전민의 일로 이해했는데, 옥수수 재배하는 일은 노동 자체가 단순한 건데, 다른 문명과의 경쟁 속에서 생각하면 쌀, 밀은 대규모 인구 부양을 할 수 있는데,.. 옥수수 문명 경우 취약한 문명으로 이해한 게 아닐까.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명, 밀을 주식으로 하는 문명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월 : 왕이라면 보통 주권을 한 몸에 집약하고 있는 존재인데 권력체라고 봐도 될 텐데, 그 자리에 ‘곡물’이 차지하고 있는 게 재밌다고 생각했다. 권력의 운동을 가장 기본적인 일상으로부터 찾으려는 관점이 이 표현 속에 들어있다. 아래로부터의 역사관과도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중적인 것과도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주목되는 사물적인 것, 사물성과 권력을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었다. 먹는 것을 중심으로 놓고 권력 구성을 생각한다고 했을 때, 목축보다 농경을 중심으로 문장 구성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 문화를 세계사 전체의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표현 방법이 이 문장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요일 : 아래로부터의 역사와 관련되는 것 같은 입장에 대한 문장을 221쪽에 있었다.
가령 ‘새 작물은 기존의 식물이나 사람들의 음식습관의 저항에 부딪히게 마련이지만 결국 넓게 퍼져 굳건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 우선 가난한 사람들이 첫 문을 연다.’는 대목의 경우 <어셈블리> 4장 마지막 부분과 비교.. 이주민, 빈자들의 힘에 관한 서술과 관련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 : 브로델이 서구 학자여서 공통적으로 동양적 삶의 방식에 대해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좀 미진하다고 여겨진 부분이 있었는데 204쪽 하단에 쌀이 동양, 중국에서 지배적인 곡물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쌀의 음식의 맛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204쪽 아래에서 4버째 줄에는 ‘여기에서 우리는 문명의 선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부분.... 왜 쌀을 우월한 것으로 여기고 의식적으로 선택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요일 : 브로델이 쌀 문화권에서는 왜 쌀을 선택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을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을까..라는 것에 대한 의문일까.

목 : 그렇다.

수 : 쌀 부분 읽으면서 재밌었던 것은 쌀 품종이 발명품처럼 이야기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물에 적응시키고 농사도 단순히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첨단의 방법처럼 느껴졌다. 문명화의 상징처럼 쌀 재배 방법들이 읽혔다.

요일 : 질문에 대해선 잘 대답하기 어렵지만, 내가 올린 질문을 먼저 보면... 230쪽 "감자 기근" - 우리 시대에 감자 기근 같은 재난은 어떤 것일까. 식품 품종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 그리고 240쪽 이후에, 야만인과 원시인에 대한 묘사는 저자의 편견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유목민적 방식이나 수렵, 채집 방식에 대한 이해는 부족해 보였다. 정주민 상태보다 발전이 덜 된 것으로 보는 게 문제가 아닌가. 비참과 야만은 자본주의 인클로저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하지 않나.

화 :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얘기를 듣고 떠오른 책인 <낡고 오래된 것들의 역사>라는 책을 검색하던 중이었다. 그건 식량과 관련이 없어서 그 생각하느라고 놓쳤다.

(휴식)

요일 : 월 님 질문부터 보자. 3장의 제목에서는 사치품이 일상 용품과 대조되고 소제목에서는 대중적 음식과 대조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3장)

월 : 사치품vs.일상용품이고, 사치품은 일상용품에서 배제한다는 의미일텐데... 사치품이란 것도 긴 역사 속에서는 일상성을 띠어가고, 커피, 차, 술 등은 사치적인 특징과 일상적인 특징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왜 이렇게 대비시켰을까라는 의문.... 그런데 소제목으로 넘어가면 사치스러운 음식과 대중적인 음식을 구분하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비대중적인, 고급음식과 같은 레벨에 놓음으로써 뉘앙스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적인 것과 사치스러운 것이 대비될 때에는 하이라키가 전제되는데, 3장 전체의 특징이면서 잘 정돈되지 않은 지점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요일 : 사회적 위계와 희소성의 차이가 정돈이 안 되는듯하다는 말씀인데, 내가 올린 토론거리 중에 관련된 것이 있는데 253쪽 "사치는 메울 수 없는 사회적 수준의 차이를 반영한다. 이것은 곧 영원한 “계급투쟁”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계급투쟁이라는 말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는 것일지 궁금했다. 이와 관련해서 해리 클리버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이 참조가 될 것 같아서 한 대목을 가지고 왔다. 234~235쪽이다.
“...식품의 교환가치에 관한 두 계급 관점의 중요성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상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식품의 교환가치는 자본에게 잉여가치의 원천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에게 식품의 교환가치는 노동력의 교환가치와 비교되어 식품에 대한, 그리고 그 식품이 제공하는 영양 및 힘이라는 사용가치에 대한 그들의 접근을 결정한다. 따라서 식품의 교환가치는 노동계급의 소득과 힘을 침식하며 이윤과 통제의 맥락에서 본 자본의 위치를 강화한다. 실제로, 절대적 희소함이 있지 않은 한, 가격(화폐형태 혹은 교환가치)은 배고픔을 항구적으로 만듦에 있어 자본의 핵심 무기이다. 현재의 위기에서처럼 자본이 식품의 교환가치의 전 지구적 상승을 획책할 때 자본은 이윤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의 힘도 증대시키고 있다.” 즉, 브로델에게 계급투쟁은 무슨 의미일까.

월 : 문자 그대로 보면 사회적 수준의 차이라고 봤기 때문에, 계급(위치를 따진다기보다 적대적 관계를 서술할 때)/계층(집단의 위계 속에서의 위치) 구분하는데, 브로델 용어는 사회적 관계의 범주라기보다는 사회적 수준(계층) 범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부르디외 같은 사람들이 ‘구별’을 중심에 놓고 사회학적 서술을 할 때와 유사한 방식으로 계급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정투쟁과도 유사성을 갖고, 맑스 계급투쟁이란 말과는 뉘앙스상 차이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253쪽에 단락이 나뉘면서 사회적 수준 차이, 구별 만들어내고 내가 다른 집단에 속한다, 다른 존재다 라는 것을 도드라지게 하려는 것과 상관있는데, 그 다음 단락에서는 그걸 다시 문명 투쟁으로 번역한다. 이건 “사치스러운 음식은 왜 나타났는가?(3장)”라는 질문으로 연결될 것 같다. 생산보다 사치가 도약의 촉진요인이라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다른 역사관을 가져온다는 생각이 든다. 사치라고 하면 소비에 더 가까운 범주인데, 소비 중에서도 꼭 일상적이거난 필수적인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소비로서의 사치가 중요한 도약의 촉진 요인이라고 표현. G.바슐라르도 필요 이상에 대한 정복은 필수적인 것에 대한 정복보다 더 큰 정신적 자극을 준다고 하고, 맑스주의 범주에 대한 일정한 도전들을 표현하는 용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이 도약의 촉진요인이라고 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보다는 지배계급의 새로운 실험 혹은 필요를 넘어서는 도약들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바라보는 경향과 무관치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 : 브로델이 모스와 바슐라르의 말을 연결하는데, 각각 다른 맥락에서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바슐라르의 문장만 놓고 보면 욕망이 그 자체로 소비로 연결된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브로델이 각 학자의 글을 인용, 나열하면서 오히려 욕망을 소비에 연결시키는 효과가 생겨났다는 생각이다.

일 : “이 투쟁은 계급만이 아니라 문명의 투쟁이기도 하다”라는 부분에 밑줄을 쳤는데, 충분히 이해를 못했기에 더 얘기를 하고 싶다.

월 : 브로델은 계층=계급 식으로 쓰고 있어서 그러다 보니 계급 개념은 문명 개념과는 별도로 고찰할 문제로 등장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문명이란 것 자체가 위계를 둘러싼 싸움 속에서 발전되어 나온다는 관점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르주 바타유 같은 사람은 소비, 소모, 낭비 같은 것이 역사에서의 엄청난 동력이라고 말하고, 심지어 전쟁도 소비하는 것이므로 역사발전에 동력이 된다고까지 한다. 소비로서 사치를 이해하는 경향도 분명 있다. 이 책은 음식 생산자가 아니라 음식과 음료의 소비라는 것이 갖는 지역적, 역사적 특징을 서술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는 의미에서 사치 개념이 브로델에게는 소비 쪽으로 더 많이 연결되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한글본에 보면 ‘계층적 차이’를 쓰고 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의 옮김인지 잘 모르겠다.

요일 : 영어본에서 ‘계층적 차이’는 하이라키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치품이 무엇인지가 중요할 것 같다. 사치품이란 그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사치품은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월 : 저자에 의하면 사치품은 대중들의 일상 용품이 아닌 것으로 정의될 것 같다. 역사 속 귀족, 엘리트의 일상 용품이 대중들의 일상 용품으로 전화될 때 그걸 문명발전, 역사발전과 비슷한 의미처럼 쓰는 것 같다.

일 : 어떤 부분에서는 대중적 부분에서 올라갔다는 대목이 있었던 것 같다. 사치품과 일상용품이 그렇게 구분되는가에서 헷갈렸다. 식욕돋는 많은 것들이 지금 생각할 때 사치품은 아닌 범주에 든다는 생각도 들었고, 254쪽까지 넘겨서 보면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사태가 자본주의적 구분이 완벽치 않았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앞부분(밀/쌀/옥수수) 뒤에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고기가 풍요로웠다는 얘기가 나오고 그런 것들이 체계가 바뀌기 시작하는 대목을 의도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지만 후추라는 게 사치품이었는지가 궁금했다. 뒤쪽에 약간의 맛 차이 때문에 열광, 필요로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긴 하다.

수 : 브로델이 동양의 논농사를 문명이라는 것에 대한 긍지로 주목한 것과 비슷한 관점에서 후추 얘기도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어, 쌀 얘기 할 때 풍기는 뉘앙스가 버터 바른 빵이 쌀보다 더 맛있는데 쌀을 고집했다는 뉘앙스이긴 했지만, 쌀의 맛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읽혔다. 왜 쌀을 고집했느냐, 맛을 떠나서 동양에서는 쌀이 바로 문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브로델이 방점을 찍었고, 후추의 경우도 실제 맛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후추를 음식에 넣는다는 상징, 동양에서 쌀농사=문명의 상징처럼... 그런데 여기에는 클래스=하이라키 얘기가 계속 나왔는데, 후추의 경우도 향신료로 사용하고 후추를 이용해서 뭔가를 한다는 게 사치라는 의미는 비슷한 맥락일 것 같다.

월 : 후추를 서양에서 더 좋아하는 육식문화와 관련있을 것이다. 쌀과 밀을 수확률에서 10:1, 6:1 이런 식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단위면적당 수확률은 쌀이 엄청 높은 생산 효율성을 보이기 때문에 일단 쌀 경작을 하면 같은 땅덩이에서 먹여 살릴 인구수가 많다는 것. 아시아권 인구가 서양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도 이런 방식으로 설명 가능하겠다. 밀을 주식으로 할 때 대부분 목축을 병행하는데,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경작의 작물의 종류를 목축업과 연관지을 수 없는 것이다. 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경작물을 재배해야 하고, 동물이 먹어 치우는 곡물의 양이 엄청나기 때문에 거기에서 생산되는 고기를 먹는 것과 곡물을 직접 사람이 먹는 것 비교하면 후자가 훨씬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생산 효율성 측면에서 낫다는 것. 그러므로 서구에서 밀경작과 목축업을 겸한다는 것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계층들이 ... 목축업이 인구 축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겠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수 : 브로델이 중간중간 스스로 관점을 갖고 코멘트하는 내용이 있는데, 물론 그런 실질적 이유나 실리적 효과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식의 코멘트가 많았다. 그것 이외에 작동하는 것이 뭘까라고 했을 때 인간의 선택이라고 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꼭 실리적 효과 때문만이 아니라는 식의 뉘앙스가 뭘까를 봤을 때.... 명분 같은 게 떠오르기도 했다. 어떤 게 작동을 하고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하고, 뭔가 실리가 있고 명분이 있는데 그것들이 계속 같이 작동하는 식으로 브로델이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 : 아까 문명의 선택이라 표현이 나왔는데, 인간의 선택이다라고 읽힌다. 지구라는 표면 위에서 밀, 쌀, 소, 돼지, 말, 닭 이런 게 존재하는데 동물들이나 식물들의 전략을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종들의 자기 번식 전략들(밀은 밀대로, 쌀은 쌀대로...) 속에서 인간이 거기에 유혹된다거나 그것과 연합한다거나(이용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비인간 존재들의 번식전략과 인간과의 관계가 동시에 고려될 필요가 있고, 그게 각 지역마다 문명 차이를 가져온 여러 요인들 중 중요한 하나로 간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수 : 브로델이 다양한 사례들을 서술하는 데에서 그런 게 읽히는 것 같다. 중간중간 브로델의 코멘트의 관점 뉘앙스가 인간에게 실리와 명분이 있다는 식으로 읽혔다. 명분은 계층적 사유, 의식에서 선택하게 되는 부분들이 좀 엿보였다.

일 : 약간의 차별화라고 봐야 할까. 난 너와 달라 식의 사치...

수 : 문명이 야만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고나 할까.

금 : 취향이란 말이 생각이 났다. 취향은 자기 선택이 아니라 계급화되어 있는 것이고, 물질문명 속에서 이미 한계치가 정해져 있고 취향이 차별화 전략으로 쓰인 것 아닐까.

목 : 브로델 역사서술방식이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맑스적 관점에서 사회사를 설명하긴 하지만 중간중간의 코멘트는 확실히 인간의 물질적 측면 뿐 아니라 정신적 측면, 접근들이 같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당시에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의 측면을 역사 변동의 중요한 포인트로 가져와야한다는 필요성 같은 것 느끼지 않았을까.

토 : 이걸 브로델이 코미디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 부자와 일반 대중이 있는데, 사치라는 개념도 그렇고 공모관계, 합의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어떤 통찰에서 이런 서술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계급간의 공모관계 (부자는 더 돋보이고 싶어하고 대중간 차별화를 하고 싶어하는 식이라기보다는 말도 안되는 사치품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식의 사례들…. 맥락이 사치를 위한 사치, 굉장히 그것 자체가 웃기는 풍자극 같은 것이 문명 형성 안에 핵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식의 서술이라는 것... 사치라는 게 알고 보니 부자들만의 돋보이기 위한 니즈가 아니라 계층 서로간의 공모관계에 대한 통찰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 : 포인트가 좀 다른데 내가 읽은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논의해온 맥락에서 한때는 사치품이었던 게 다른 때는 그게 대중화되면서 일상용품이 되기도 하고, 한 지역에서는 사치품, 다른 곳에는 아니거나 등등 좀 난 다르게 읽은 것 같았다.

목 : 부족하니까 찾고 싶고 그런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사치라고 하는 게 인간의 욕망과 결부되어 있고, 계속해서 사회적 동력으로 점점 더 부각되는 방식.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와중에,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런 와중에도 제일 먼저 접할 수 있는 그런 계급과 부자들만 먹을 수 있던 것이 결국 대중들이 먹으면서 더는 사치가 아니게 된다. 끝도 시작도 없는 사회적 특권층을 바라보는 공모관계. 그런 게 없으면 사치라는 개념도 없고 불가능한 것이다.

금 : 그러한 부분을 잘 포착해서 읽지는 못했다. 사치와 관련된 욕망이라고 하는 게 어떤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보는지는 잘 포착하지 못했다.

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브로델은 맑스주의자들보다 자본주의를 훨씬 앞당긴다. 역사적으로 는 15에서 18세기, 그리고 브로델은 공간적으로보면 지중해 연구자다. 맑스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15~8세기는 상업주의가 발흥해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왕, 귀족 계급과의 연관성을 벗어나지 못한 봉권적 왕권체제 하에서의 종속적 생산관계로 부상해 올라온 것이지 지배적 관계는 아니다. 그러한 브로델과 맑스주의의 차이를 염두해 두면서 사치와 대중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맑스에게) 부르주아지는 사치에 반대하는 개급이다. 산업이라고 하는 것이 인더스트리얼, 근면하다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근검절약을 모토로 삼는 계급이다. 그래서 맑스는 브루주아지와 청교도를 연결한다. 부르주아지와 사치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의 금융자본가들은 사치와 무관하지 않지만 적어도 부르주아의 발흥은 사치와 반대하면서 나온다. 사치는 당연히 왕정, 귀족계급과 연결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한 생산이고 축적을 위한 생산이다. 사용을 위한 생산은 아니라는 것이다. 축적을 위한 생산이 자본주의였던데 반해서 15세기 왕정과 연결되어있는 모든 생산관계는 사치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 당시는 경제잉여라는 게 거의 왕에게 수집되었었고, 축적에는 관심이 없고 과시에 관심이 있다. 음식, 패션 이런 옷을 잘 입는다거나 그런 식으로 사치를 통한 과시를 통해서 자신의 지배력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봉건사회의 지배계급. 사치를 본질로 삼는 지배 체제라고 맑스주의로는 생각할 수 있다. 사치문화가 낭만주의 문화와도 연결되는데, 커다란 우주적인 소비문화와 통하는 낭만주의다. 그런데 브로델은 맑스주의와는 다르고, (사치가) 초기 자본주의가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는 동학으로 삼았던 메커니즘이라 생각된다.

금 : 254페이지에서 보면, “그러나 우리는 서구의 궁정에서 비롯된 사치가 초기 근대 자본주의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 베르너 좀바르트의 견해를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 이라고 질문을 제기하는 부분만 보면, 과연 사치를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보는 게 브로델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좀바르트 이야기가 3장에서 여러번 언급되는데, 오히려 브로델은 사치를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보는 것과 차별을 두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련해서, 266페아지를 보면, “그러나 민중들의, 다시 말하면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반대가 사실이다. ...” 이 대목도, 성급히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대목만 보면 브로델이 단순하게 직선적인 발전적인 사관을 따르는 것 같지는 않아서, 논의 대목들을 어떻게 이해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일: 줌바르트와 브로델의 다른 점은 어떤 부분이 있을까? 사치에 관한 내용이 계속 이어지니 다음 시간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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