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최초의 포괄적 경계 연구 이론서ㅣ조경희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1-05-25 13:24
조회
125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최초의 포괄적 경계 연구 이론서


조경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경계'라는 말은 언제부터 지금처럼 친숙한 말이 되었는가. 우리는 지리적인 국경선을 경계라 부르기도 하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경계를 말하기도 한다. "사물이나 영역을 구분하는 선"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떠나,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수한 경계border와 마주치고 있다. 안과 밖, 자와 타를 구분하는 경계의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냉전기에 형성된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더욱 우리의 신체와 감각에 각인되었다.

샌드로 메자드라와 브렛 닐슨이 집필한 <방법으로서의 경계>는 이처럼 보편화된 경계에 대한 폭넓은 이론적, 개념적, 실천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전지구적 스케일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 예컨대 무엇이 경계를 만드는가? 이주와 노동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작동되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경계의 이미지는 구획하는 선borderline인가, 영역boundary인가? 혹은 경계는 변방frontier, 주변성marginality과 같은 인접개념과 어떻게 구분되는가?

이와 같은 의미론적 탐구를 통해 이 책은 경계를 세계에 대한 지식과 행위를 포괄적으로 재구성하는 "인식론적 장치"이자 "투쟁의 장"으로 파악한다. 경계는 단순히 사람, 화폐, 물건들의 전지구적 이동을 분할하는 선이 아니라, 그것들을 접합articulation하는 핵심적인 장치라는 것이다. 경계에서 사고한다는 것은 방법론적인 것 이상의 무언가, 즉 정치적 주체성에 관한 질문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주된 관심은 경계연구의 이론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경계를 통해 새로운 인식론적 지평과 투쟁의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데 있다.

저자 샌드로 메자드라Sandro Mezzadra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정치철학자이자 유럽 이주연구 및 경계연구의 대표 논객이다. 공저자 브렛 닐슨Brett Neilson은 호주 웨스턴시드니대학의 문화사회연구소 교수로 글로벌화, 노동, 자본의 관계와 그 변용을 연구한다. 저자들은 1990년대 초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이주민들에 대한 국경통제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에 개입했다. 정치 행동주의activism에 입각한 저자들의 유사한 경험과 관심이 그 뒤 여러 통로를 통해 경계에 관한 폭넓은 대화로 이어졌다. 한편에서 그들은 "우리는 모두 불법이주자다"와 같은 보편주의적 슬로건의 한계, 즉 활동가의 윤리와 이주자들의 경험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주의를 돌리고 있다. 이주 당사자들의 경험에서 경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닌 삶-죽음과 직결되는 물질적인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이탈리아 지중해는 이미 수많은 이주자들의 무덤이 되었고, 호주는 보트피플을 태평양의 수용소에 억류하는 이주통제의 ‘외주화’를 진행해왔다. 이 책은 30년 동안 그들이 목격한 자본-국가 친화적인 경계레짐과 이주자들의 자율적인 경계투쟁 사이의 역동적 과정을 서술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서문과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들은 경계에 관한 방대하고 포괄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각 장을 짧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장 '경계의 확산'은 이 책의 핵심내용인 경계적 사고에 대한 기본 틀을 제시한다. 그동안 장벽, 담장, 요새, 철조망 등의 은유로 재현되어 온 경계의 지배적 이미지를 유보하고 경계를 "분할을 만들면서 동시에 연결을 구축"하는 구성적인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2장 '제작된 세계'에서는 근대 지도제작법의 탄생으로부터 오늘날의 전지구적 공간의 생산까지 수백 년에 걸친 경계 생산의 과정을 개관한다. 정치지리학과 제국주의의 발전, 2차 대전 후 미국의 냉전적 지역연구와 탈식민 개발담론과 함께 자본주의가 세계를 어떻게 제작해왔는지를 추적한다. 3장 '자본의 변방'에서는 전지구적 노동의 증식multiplication of labor이라는 이 책의 핵심어를 통해 국제노동 분업이 어떻게 상이한 노동레짐 사이의 경계를 착취함으로써 작동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4장 '노동의 인물형'에서는 노동의 증식 개념의 구체적 사례로서 돌봄 노동자와 금융거래 노동자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의 이주노동이 자본과의 긴장, 운동, 투쟁의 현장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5장 '시간적 경계의 공간 속에서'는 공간성과 함께 국가와 자본의 시간성 차원에서 생성되는 경계를 검토한다. 예컨대 인도의 정보기술 노동자들을 상시적으로 대기시키는 전지구적 직업소개 시스템, 그리고 '불법' 이주자들을 억류, 격리, 추방하는 난민수용소의 절차과정이 어떻게 그들의 신체에 시간적 경계를 각인시키는지 분석한다. 6장 '통치성의 주권기계'에서는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통해 경계레짐을 작동케 하는 권력의 집합을 살펴본다. 국경통제를 생체정치적으로 관리하는 기술과 지식--여권, 사증, 건강증명서 등과 결합된 디지털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인도주의적 국제이주기구조차도 탈영토적 경계레짐 형성에 참여하고 있음을 조명한다. 7장 '구역, 회랑, 그리고 탈개발적 지형'에서는 앞에서 본 복수 권력의 집합이 노동하는 주체와 경계의 공간들을 창출하고 어떻게 착취적으로 운영하는지를 중국과 인도의 특별경제구역을 통해 가시화한다.

마지막 두 장에서는 통치성과 경계레짐에 대한 정치적 주체성의 수준을 검토한다. 8장 '주체 생산하기'에서는 시민-노동자라는 근대 이원적인 인물형이 해체되고 있음을 밝히면서 과잉된 경계레짐이 경계투쟁의 증식과 만나 이주민들의 주체성 생산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9장 '공통적인 것 번역하기'에서는 경계투쟁를 조직화하고 이종성을 생산하는 핵심으로서 번역 개념을 검토한다. 서로 다른 투쟁 사이의 번역을 통해 공통적인 것the common의 지평을 열어갈 가능성을 조망하고 있다.

이상의 거친 요약이 각 장의 풍부한 지견들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책 후반부는 동시대에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통치성의 중층적 구성과 변용, 경계레짐과 경계투쟁 사이의 긴장과 갈등의 과정을 생생하고도 정교하게 보여준다. 경계의 관점을 도입한다는 것은 정주-이주, 중심-주변, 포섭-배제, 연결-분할, 주권-인권 등의 개념의 경계를 근본적으로 비대립적으로 재구성함을 의미한다. 저자들은 경계가 사람과 영역을 분할하고 배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연계하고 포섭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포섭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선good이라는 고전적인 인식에 반대하면서 차별적 포섭이라는 개념을 통해 포섭과 배제가 중첩되는 통치성의 모습을 제시한다. 공간적 시간적 경계를 내포한 이주자들은 노동시장 효율화의 달성과 사회적 통합의 성과를 위해 선별적으로 포섭된다. 한국의 온정주의적, 시혜주의적 다문화주의, 그리고 포스트코로나 시대 미등록이주민을 둘러싼 공중보건 담론의 맥락에서도 차별적 포섭 개념은 충분히 유효성을 갖는다.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자본의 증식과정에서 구성되는 촘촘한 통치성에 대한 분석과 함께 경계를 내포한 주체들이 수동적이지 않는 잠재력을 지닌다는 것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데 있다.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기본적으로 1960년대 이탈리아 오페라이스모operaismo(노동자주의)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지만, 동시에 서구에 대한 아시아․아프리카 반식민anticolonial 운동의 정치적 상상력을 이주자들의 경계투쟁과 이으려 하는 노력도 읽을 수 있다. 이 점은 물론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연구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메자드라는 2016년 기타가와 신야와의 대담에서 1990년대 초 비물질노동을 둘러싸고 여전히 "가장 진보적 주체"를 탐구했던 포스트 오페라이즈모 논의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역사적 시간의 직선성을 의문시하는 탈식민주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サンドロ・メッザードラ × 北川眞也, 「危機のヨーロッパ――移民・難民、階級構成、ポストコロニアル資本主義」, 〈人文書院〉http://www.jimbunshoin.co.jp/news/n14769.html)

비슷한 문제의식은 5장에서 시간성의 관점을 도입해 "경계횡단과 경계투쟁의 주체적 경험들이 척도의 연대기적 형식이나 역사의 진보 모델이 포함할 수 없는 시간적 효과를 가지는지를 드러내고자"(203쪽) 하는 시도에도 나타나 있다. 이 책에서 ‘탈식민적 자본주의’와 같은 용어는 모호하게 쓰이고 있지만 말이다.

탈식민주의에 대한 관심은 마지막에 논의한 번역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저자는 번역을 주체들 사이의 이종성과 공통성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으로 보고, 사카이 나오키의 두 가지 양식의 말걸기를 인용한다. 즉 '균질언어적 말걸기'와 '이언어적 말걸기' 중 후자를 통해 ‘외국인 다중’이라는 불안정한 주체들이 서로 우발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동질성을 전제로 한 연대가 아닌 번역불가능한 것과의 조우를 통해 '공통적인 것'이 생성된다고 전망한다. 역설적으로 보이는 이 지점이야 말로 방법으로서의 경계가 지향하는 투쟁의 장이다.

경계연구에 대한 요구가 해마다 늘고 있는 가운데 <방법으로서의 경계>는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최초의 포괄적인 경계연구 이론서라 할 수 있다. 평소 메자드라의 글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평자에게도 번역서 출간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의 출간이 번역의 가능성과 함께 경계에 대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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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1년 5월 22일 <프레시안>( https://bit.ly/3hRqWli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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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스틱스(logistics)는 비즈니스의 물류와 전쟁의 병참을 가리키는 말이다. 로지스틱스는 상식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로지스틱스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서도 상품을 이동시키는 순수 기술적인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이 책은 유통 기술에 대한 책이 아니며 전쟁술에 대한 책도 아니다. 저자는 로지스틱스가 순수 기술적인 방편이 아니라 “완전히 정치적인” 기획이라고 주장하며 로지스틱스를 현대 세계의 중심적인 문제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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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선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싣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그들을 신세계로 데려갔다. 노예무역과 미국 농장체제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졌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노예선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뛰어난 수상 경력의 역사학자인 마커스 레디커는 『노예선』에서 해양기록에 관한 30년간의 연구를 정리하여 이 전례 없는 함선에 관한 역사를 만들어 냈으며 함선의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격동하는 인간의 드라마를 그려냈다. 그는 상어를 꼬리처럼 끌고 다니는 “떠다니는 지하 감옥”에 타고 있는 선장, 선원, 노예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를 냉혹하게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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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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