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호] 플랫폼·코인은 잉여가치…그 너머에 절대 궁핍이 있다ㅣ염인수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1-08-03 16:57
조회
119
 

플랫폼·코인은 잉여가치…그 너머에 절대 궁핍이 있다


염인수 (고려대 연구교수·문학비평)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에서 「1861~63년 초고」의 위치

아직도 출판이 완료되지 않은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이하 MEGA)은 모든 텍스트를 네 부문으로 분류한다. MEGA의 I부(Abteilung)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모든 저작, 저술, 기사, 연설문을 『자본』 및 관련 텍스트를 제외하고 모은 것이고, II부는 『자본』과 그 준비 과정의 텍스트를 모아 놓은 것이다. 그밖에 III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모든 서신, IV부는 발췌와 노트 및 난외주기로 이루어진다.

1850년부터 1867년 『자본』 제1권 출판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는 당시까지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 기획에 본격적으로 몰두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기획을 “정치경제학 비판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이라고 통칭했으며, 이 명명을 바탕으로 ① 「1857~58년 초고」 즉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MEGA II부 1권), ②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MEGA II부 2권), ③ 「1861~63년 초고」(MEGA II부 3권), ④ 「1863~68년 초고」(MEGA II부 4권), ⑤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제1권 초판(MEGA II부 5권) 및 ⑥ 재판(MEGA II부 6권)을 썼다. 이중 마르크스가 생전에 출판한 저술은 1859년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와 1867년의 『자본』 제1권 초판, 1872년 제1권 재판밖에 없고, 「1857~58년 초고」와 「1861~63년 초고」는 마르크스 사후 각각 70여 년(1953년), 100여 년(1982년)이 지나서야 책으로 출판되었다.

물론 「1857~58년 초고」 즉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 모스크바에서 처음 발간된 것은 1939년이고, 「1861~63년 초고」의 절반 이상 분량을 차지하는 “잉여가치론”이 독립된 책으로 출판된 것은 1950년이므로, 우리는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그룬트리세”와 “잉여가치학설사”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이 원고들에 일찍부터 익숙했다. 이 익숙한 명칭에 따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을 정리하자면, 그 순서는 (1) “그룬트리세”(1857~58) → (2)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 → (3) “잉여가치학설사”(1861~62) → (4) 『자본』 제1권(1867)이 된다.

(1)~(4) 텍스트 중에서 (3) “잉여가치학설사”만은 한국어 완역본이 없었다. 올해 5월 MEGA 한국어판이 II부 3권 즉 ③ 「1861~63년 초고」부터 출판되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두셀은 자신의 마르크스 연구를 앞서의 ①~⑥ 중 ①, ③, ④를 대상으로 수행하였다. 마르크스의 생전에 출판된 적이 없었던 초고들만을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그 이유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두셀의 마르크스 연구의 계기와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엔리케 두셀의 라틴아메리카적 마르크스 연구

엔리케 두셀은 라틴아메리카 해방철학의 주창자 중 한 사람이다. 『해방철학』(1977), 『해방윤리』(1998), 『해방정치』(2007)를 주저로 하는 그의 사유는 해방과 타자라는 이념에 천착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윤리적 보편성의 관점에서 논하고자 한 것이었다. 두셀의 이력에서 우리는 네 개의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유럽 유학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시기, 두 번째는 멕시코로의 망명과 맞물려 해방철학을 정립한 시기, 세 번째는 해방철학을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으로 강제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초고들을 연구한 시기, 네 번째는 해방의 윤리와 해방의 정치를 정립한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의 마르크스 초고 연구는 라틴아메리카의 궁핍한 현실을 경제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기왕의 해방철학에 실천성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었다고 두셀은 말한다. 해방철학을 정립하기 이전부터 두셀의 주된 관심사는 유럽 중심성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는 유럽의 마르크스 이해와는 다른 길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두셀이 MEGA II부에 포함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 그중에서도 출판된 저작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초고들에 해당하는 ① 「1857~58년 초고」, ③ 「1861~63년 초고」 ④ 「1863~65년 초고」만을 대상으로 세 권의 책(『마르크스의 이론 생산』,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최종적 마르크스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을 저술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산 노동과 외재성

「1861~63년 초고」에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를 순수하게 이론적인 형태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나타나는 외양의 형태―산업이윤, 지대, 이자 등의 형태―로도 전개한다. 또 이 초고에서 마르크스는 상대적 잉여가치 증가와 테크놀로지의 관련을 집중적으로 논하면서 노동이 자본에 형식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포섭되는 양상을 명시한다. 이 초고에는 출판된 『자본』 제1권의 중요한 이론적 논점들이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생산재 산업 부문과 소비재 산업 부문 사이의 잉여가치 교환 문제(제2권의 재생산 도표), 산업 부문 간의 경쟁과 산업 부문 내의 경쟁을 통한 이원적 가격균등화 문제(제3권의 평균 이윤율과 지대) 등 『자본』 전반의 핵심 아이디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미 해방과 타자를 중심으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해왔던 두셀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의 주요 논점들이 대부분 들어 있는 이 초고에서 다른 무엇보다 외재성과 산 노동에 주목한다.

『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에서 두셀이 주목한 산 노동은 자본의 내적 계기가 아니고, 자본의 총체에서 발생한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는 초고에서 이렇게 썼다. “대상화된 노동의 유일한 반정립은 대상화되지 않은, 산 노동이다. 전자는 공간에 현존하고 후자는 시간에 현존하며, 전자는 과거 속에 있고 후자는 현재 속에 있으며, 전자는 사용가치 속에 이미 구현되어 있고 후자는 과정 중의 인간 활동으로서 자기 대상화 과정에 지금 참여하는 상태이며, 전자는 가치이고 후자는 가치를 창조한다.”(MEGA 독일어판 II부 3권, 30쪽) 이에 대해 두셀은 “자본은 주어진, 과거의 총체이자 축적된 노동이다. 산 노동은 (아무것도 아닌 자본으로부터) 실제적 가치를 창조하는 현실성으로서, 산 육신성, 활동으로서의 주체성이자 자본과는 다른 외재성이다”라고 쓴다(『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379쪽).

산 노동은 자본의 바깥에 이미 있던 것이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를 기술하기에 총체성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 총체성은 외재성을 도외시하고 모든 것을 자본적 일자의 자기분열 또는 자기모순의 작용으로 환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셀의 마르크스 해석처럼 외재성에 초점을 맞출 때 이미 막대하게 축적된 잉여가치가 현실에서 나타나는 여러 외양―플랫폼, 인공지능, 코인 등등―너머의 절대적 궁핍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다. 자본 내의 모순적 요소를 찾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이 경우엔 변증법적 운동에 의해 자본 자체의 총체성 범위는 끝없이 팽창할 따름이고 우리의 눈에는 반쪽짜리 현실만 들어오게 된다―애초에 자본 바깥에 자본과 완전히 별개의 질서로 있어 온 외재적 요소, 그러나 자본이 형식적으로 실제적으로 포괄한 요소에 주목한 것이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의 참된 의미라고 두셀은 해석한다.

마르크스 초고 연구의 실천적 의의

두셀에 따르면 해방철학은 유럽 바깥에서 가능한 유일한 철학이며, 억압받는 자들의 입장에서 모든 종류의 억압을 검토할 수 있는 보편적 사유를 지칭한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적 궁핍 속에서 해방철학의 담론만으로는 본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는데, 이후 해방윤리와 해방정치에서 두셀은 서구의 의사소통적 합리성 이론과 보편적 담론윤리의 기획이 유럽이 상정하는 세계 바깥에 있는 타자를 포함할 수 없음을 밝히고, 이 외재성이 담론 공동체의 숙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원리를 정립하는 데까지 나아가고자 했다.

두셀 사유의 이와 같은 전개는, 실천적으로는 그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이론적으로는 그가 쿠바를 제외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좌우해 온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이론화를 자신의 마르크스 연구로부터 끌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세기 말부터 전지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가 지배적 체제로 성립한 이후, 최근 갠지스강의 충격적 사진이 증거하듯 여전히 우리 세계에 곤궁과 비참이 만연하고 소수만이 과두제적 안전 속에 있을 뿐이라면, 두셀이 1980년대에 수행한 마르크스 초고들에 대한 주석 작업은 선구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적인 것이 되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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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마르크스를 향하여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1년 7월 30일 <교수신문>( https://bit.ly/3jmEwwa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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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공산주의의 현실성 : 현실성의 존재론과 실행의 정치』(브뤼노 보스틸스 지음, 염인수 옮김, 갈무리, 2014)


브루노 보스틸스는 우리 시대 비판 이론의 떠오르는 별들 중 하나이다. 다니엘 벤사이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안또니오 네그리, 로베르토 에스뽀지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 알바로 가르씨아 리네라 등 저명한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생각에 대한 포괄적인 전유와 예리한 문헌비판적 방식을 통해 저자는 잠재성의 존재론에 대해 현실성의 존재론을, 실행(the act)에서 유리되는 정치학에 대해 실행의 정치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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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맑스에 대한 회의로 맞이하는 청산주의적 시류를 거부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맑스 청산이 아니라 오히려 맑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 책은 『자본』 읽기의 정치경제학적 읽기, 철학적 읽기라는 오랜 전통들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자본』의 모든 범주들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쌍방, 즉 두 계급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범주로, 이 갈등과 투쟁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사적 범주로 읽어가는 ‘정치적으로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사빠띠스따』(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서창현 옮김, 갈무리, 1998)


북미자유협정(NAFTA)의 발효에 때맞추어 1994년 1월 1일 멕시코의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하여 1997년 8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사빠띠스따 투쟁의 성격과 의미,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밝힌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흔히 '원주민 게릴라들'이라고만 알려져 있는 사빠띠스따들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지배하에서 자신들의 공동체적 삶의 양식과 세계관을 어떻게 지키고 또 발전시켜 나가는지, 또 그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전 세계에 유통시키기 위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사이버스페이스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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