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호] 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ㅣ이수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1-10-13 13:17
조회
27
 

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이수영 (미술작가)


포스트휴먼에 대한 상상은 일단 ‘인간(human)’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점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인간이 되고 싶어 했던 많은 비인간들을 보아왔다. 인어공주, 구미호, 웅녀. 이들의 간절함에 나는 항상 마음이 아렸다. 목소리를 잃거나, 어두운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어야 하거나, 인간 남성의 간을 100개나 먹어야 하거나, 이들이 인간이 되기 위한 시련은 혹독한 것이었다. 여우-여자와 생선-여자는 실패했지만 사실은 반어적으로 성공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정신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휴머니즘의 속성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류는 소머즈, 육백만불의 사나이, 로보캅과 같은 기계 증강 신체를 가진 사이보그들이었다. 이들이 기계로 분류되지 않고 인간으로 여겨지는 것은 팔, 다리, 귀 등이 기계일 뿐 뇌나 주요 장기가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정의를 사랑하고 이성적인 판단력과 합리적인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뇌와 주요 장기만이 아니라 팔, 다리, 귀 마저 모두 순수한 인간 신체를 가지고 있는 노예, 여성, 장애인, 유색인, 미성년, 비국민 등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 것과 비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소수자들은 합리적 판단과 행동에 책임을 질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인간이 되고 싶어 한 벰·베라·베로 요괴들과 블레이드러너의 레플리칸트(Replicant)처럼 기계로만 이루어진 로봇들도 있다. 요괴와 레플리칸트들은 결국 인간에게 배신당했지만 이들이 애잔했던 이유는 사랑, 욕망, 외로움, 애증을 알기 때문이었다. 관객들에게 그들은 이미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국 이성과 정의, 사랑, 자의식과 같은 속성을 가진 개체라는 것인가. 비물질적인 이런 속성을 탑재하고 있다면 그 신체가 동물, 요괴, 기계, 인간이든 뭐든 상관없다는 것인가. 과연 그럴까. 인간의 신체를 가진 여성, 장애인, 미성년, 노예, 비국민, 유색인은 정말 그런 정신적 속성을 가지지 못해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오히려 저런 것들은 짐승, 요괴, 기계에 불과하다며 어떤 대상들을 핍박할 때 휴머니즘의 속성을 들먹인 건 아닐까.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인간중심주의적 휴머니즘이 근대에 구성된 역사적 산물로 자본주의-서구-비장애-백인-성인-남성의 개체성을 모델로 하고 있음을 밝힌다.


디지털 시대는 다를까. 인공지능 비서, 내비게이션과 같은 서비스 앱은 여전히 여성으로 재현되며 온라인 사이버 공간은 젠더, 인종, 계급 혐오로 우리를 재육화(再肉化)하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폐쇄적 집단으로 더욱 좁아지고 ‘좋아요’와 ‘구독 수’를 갈구하며 상상계적 이미지에 걸맞은 ‘부캐’를 생산하느라 우리는 ‘공간적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다. 수술을 하고 소설을 쓰고 운전을 하는 인공지능 기계들이 인간의 영역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든다. 스마트폰을 한순간도 손에서 떼지 못하고 온갖 앱과 기계에 이미 습합된 삶을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해러웨이적 의미로 이미 사이보그이며, 캐서린 헤일즈가 20년 전 이미 과거형으로 질문했듯이 포스트휴먼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린 근대적 휴머니즘에 갇혀 있는 듯하다.


이현재가 분석한 사이보그 페미니즘의 관찰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 있다. 메갈과 워마드로 대표되는 디지털 페미니즘의 여성성이 어떻게 온라인 상상계적 신체 이미지에 대한 더 강고한 복종으로 이어지는 지, 일베와 왜 같아진 건지, 이 아이러니한 폭력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유인혁 역시 웹소설 캐릭터들이 노동의 성실성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해내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안에 갇혀있음을 잘 분석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근대적 휴먼개념을 포스트(脫) 할 수 있을까.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은 캐서린 헤일즈의 사이버네틱스의 계보와 모라벡, 마투라나, 바렐라, 해러웨이 등 다양한 포스트휴먼 학자들의 이론적 계보를 점검해준다. 김재희는 시몽동의 이론인, 이질적인 것들이 여전히 들끓으면서 잠재력으로 작동하는 ‘전(前)개체적 집합체’로서의 개체를 소개하고 있다. 김은주는 다른 존재자들과의 마주침 속에서 변용능력을 갖는 들뢰즈의 ‘정동체로서의 신체’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둘 다 포스트휴먼의 방향을 이종의 것들과의 관계에서 변화하는 집합신체개념으로 근대적 휴먼의 개별성(individual)을 대체하고 있다. ‘인간’은 규정된 동질의 속성을 갖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며 변화하는 관계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이중원은 로크와 흄, 피터 싱어, 화이트헤드가 정의한 인격에 대한 여러 개념들을 소개하면서 인공지능로봇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인격’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운전을 하고 의료진단을 하는 등 인간과 강하게 유착되어 있는 이 로봇들에게 책임과 자율성의 범위가 어떻게든 요구되고 있으며, ‘포스트휴먼 시대에 기계는 더 이상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체가 아니라 인간의 몸과 마음의 일부로 주체화가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중원은 인간의 속성으로 여겨진 고전적인 인격 개념인 자율성과 도덕성 대신에 인간이나 다른 기계들과의 관계에 따른 차등적 인격개념으로 조작적 도덕성, 책무 등을 제안한다.


온라인에서 네트워크와의 단절은 죽음을 뜻한다. 이미 디지털 신체인 우리가 관계망에서 단절된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다. 자본주의 디지털 네트워크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디지털 리얼리즘’과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시대에 더욱 더 우리는 바깥을 상상해야만 한다.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은 무엇인가. 혐오와 배제로 타자를 생산하는, 타자를 도구적으로 대상화하는, 이종성을 두려워하여 폐쇄적 동질성으로 패거리를 만드는 고립된 개체로서의 인간을 넘어서야 한다. 더 넓은, 뭔가 이전과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니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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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1년 10월 11일 <대자보>( https://bit.ly/3BQNWIl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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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포스트휴머니즘의 쟁점들』(강우성, 김성호, 박인찬, 유선무, 이동신, 정희원, 황정아 지음, 갈무리, 2021)


이 책은 소위 ‘포스트’ 시대의 새로운 해방적인 가치로서 포스트휴머니즘에 열광하거나 포스트휴머니즘이 근대적 휴머니즘과 단절될 수 없는 연장선상에 있음을 환기하는 대신, 인간중심주의 이후에 제기된 다양한 쟁점들을 고루 조망한다. 이 책은 신유물론, 객체지향 존재론, 사변적 실재론 등 최근 대두된 이론적 지형에 대한 충실한 길잡이인 동시에 이를 기반으로 영화와 문학 작품에 대한 문학 연구자들의 깊이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


브뤼노 라투르 - 정치적인 것을 다시 회집하기』(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1)


사변적 실재론과 객체지향존재론의 주창자 그레이엄 하먼의 『브뤼노 라투르 : 정치적인 것을 다시 회집하기』는 사회과학계에서 슈퍼스타가 된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브뤼노 라투르의 진화하는 정치철학에 관한 선구적인 해설서이면서 객체지향 정치학을 발전시키려는 실험적 시도다. 이 책에 따르면 근대성의 정치철학은 정치가 전적으로 인간 행위자들의 영역에 속한다고 상정하고서 시민과 국민국가 사이의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근대성의 정치는, 무지에 대립하는 진리의 이미지에 기초해야 한다는 진리 정치 관념과 어떤 초월적 진실의 심급도 없는 권력투쟁 그 자체가 진리라는 권력 정치 관념 사이에서 동요해 왔다.


객체들의 민주주의』(레비 R. 브라이언트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1)


칸트 이래로 철학은, 마음과 세계 사이의 관계, 그리고 객체에 대한 인간의 접근과 관련된 인식론적 물음들에 사로잡혔다. 『객체들의 민주주의』에서 브라이언트는 우리에게 이런 전통과 단절하고 다시 한번 제일 철학으로서의 존재론에 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브라이언트는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뿐만 아니라 로이 바스카, 질 들뢰즈, 니클라스 루만, 아리스토텔레스, 자크 라캉, 브뤼노 라투르, 그리고 발달 체계 이론가들에게 의지함으로써 자칭 ‘존재자론’(onticology)이라는 실재론적 존재론을 전개한다.


존재의 지도 :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레비 브라이언트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자연주의와 유물론을 당당히 옹호하는 한편으로, 이들 친숙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문화 자체가 어떻게 자연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브라이언트는 범생태적 존재론을 지지하는데, 요컨대 사회는 담론과 서사, 이데올로기 같은 기표적 행위주체들과 더불어 강과 산맥 같은 비인간의 물질적 행위주체들도 고려함으로써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생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브라이언트는 새로운 기계지향 존재론의 토대를 구축한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브뤼노 라투르 지음, 홍철기 옮김, 갈무리, 2009)


이 책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고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탈근대주의의 근대성 비판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라투르가 말하는 근대인의 본질은 이분법이 아닌 ‘하이브리드’의 증식이다. ‘하이브리드’의 이해를 통해서만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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