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호] 놀이로서의 민족주의 ― 『아이돌이 된 국가』를 읽고ㅣ김정구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2-09-16 16:39
조회
482
 

놀이로서의 민족주의 ― 『아이돌이 된 국가』를 읽고


김정구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2015년 11월 21일, 한국의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타이완의 국기를 흔들었다. 이 사실은 중국의 SNS인 웨이보와 QQ를 통해 알려졌고, 중국 네티즌들은 쯔위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반대했다고 거세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쯔위와 트와이스 멤버들은 애초에 출연하기로 했던 중국의 설날(춘절) 특집 프로그램에서 배제당했다. 하지만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점점 확산되었고 소속사 JYP는 공식적으로 이를 사과하고 쯔위는 영상을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 사건은 즉시 타이완에서 거대한 정치적 논란으로 확대되었다. 마침 2016년 1월 실시된 타이완 총통 선거 바로 직전에 벌어진 이 사건은 선거 막판, 타이완의 정체성을 둘러싼 핵심 이슈로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이 같은 타이완의 상황이 중국의 네티즌들에게 알려지면서, 중국 최대의 인터넷 커뮤니티 ‘디바(帝吧)’는 중국 네티즌들에게 타이완의 독립(臺獨)을 주장하는 매체와 개인들의 홈페이지를 점령하도록 선동했다. 『빈과일보』, 싼리 TV, 총통 당선자 차이잉원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6개의 조직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공격 준비를 갖춘 ‘디바’의 네티즌들은 1월 20일 오후 7시를 기해 일제히 『빈과일보』, 싼리 TV, 차이잉원의 페이스북을 공격했다. “디바가 출정하면 풀 한 포기도 안 남는다(帝吧出征寸草不生)”라는 구호 아래 출정의 참가자들은 3시간 이내에 차이잉원의 페이스북에 2만 6천 건의 게시물을 올렸다. ‘디바 출정’은 실시간으로 웨이보, 위챗, QQ, 바이두 게시판을 통해 생중계되었고 이튿날 오후 5시까지 시나 웨이보의 ‘디바 페이스북 출정’ 해시태그는 6억 1천만 뷰에 도달했다. 이후 ‘디바 출정’은 중국 네티즌들에게 전설이 되었고, 이후 중국 ‘사이버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아이돌이 된 국가: 중국의 인터넷 문화와 팬덤 민족주의』(이하 『아이돌이 된 국가』)는 이 ‘디바 출정’과 중국 ‘사이버 민족주의’의 특징과 의미를 다방면에서 논의한 학술 연구서다. 이 책은 중국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 방법으로 분석한 8편의 글을 담고 있다. 20세기 이후 중국 민족주의의 계보를 추적하여 현재의 중국 사이버 민족주의를 고찰하는 한편(2장 「중국 민족주의의 역사적 이해」), ‘디바 출정’이 중국의 상업 문화와 온라인 하위문화(subculture)의 배경 속에서 배태된 사회 문화적 맥락을 분석하기도 한다(1장 「21세기 중국에서 사이버 민족주의의 수행」; 3장 「팬에서 ‘소분홍’으로」; 4장 「“오늘 밤 우리는 모두 디바 멤버들이다”」; 8장 「네 아이돌을 사랑하듯 네 나라를 사랑하라」). 또한 이 사건 속에서 발견되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으로 문자 기반의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 중심의 시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을 주목하기도 하고(5장 「사이버 민족주의 운동에서의 밈 커뮤니케이션과 합의 동원」; 7장 「비주얼 액티비즘의 경합」), 이 커뮤니티의 집합 행동이 사회학적 해석 모델인 상호작용 의례(interaction ritual)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6장 「집합 행동」). 이를 위해 8편의 글은 다양한 연구 방법론을 통해 ‘디바 출정’을 분석한다. 관련 문헌을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인터넷 댓글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건의 참여자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그들의 경험과 감정을 조사/분류하기도 하고(3장), 사건 당시의 댓글과 이미지를 캡처하여 출현 빈도와 시간 패턴을 통계로 수치화하기도 한다(4장). 각각의 글은 서로 다른 연구 방법과 관점을 통해 ‘디바 출정’을 분석하고 있지만, 이 8편의 글이 주목하는 ‘디바 출정’의 중요한 특징은 몇 가지 공통적인 지점으로 수렴한다.

우선, 이 책에서 주목하는 ‘디바 출정’의 중요한 특징은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환경이 삶의 기본 조건이 된 중국 젊은 세대가 형성하는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다. 다시 말해 ‘디바 출정’의 주요 세대였던 중국의 90년대생이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에 대한 인식과 이들이 수행한 집합 행동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디바 출정’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중국의 ‘사이버 민족주의’가 과거의 세대가 경험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미디어 환경 속에서 구성되었다는 것을 중요한 특징으로 파악한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이 중국 사이버 민족주의는 기존의 관방 민족주의와는 달리 대중 중심의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중국의 관방 민족주의가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애국주의 교육으로 정의된다면, 사이버 민족주의는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소비자 민족주의의 성격을 갖는다. 소비자에 의해 구성되는 민족주의라는 의미에서 중국의 사이버 민족주의는 국가를 아이돌로 인격화하여 소비하는 팬덤 문화, 즉 팬덤 민족주의의 성격을 갖는다. 이 책은 팬덤 문화와 결부된 사이버 민족주의가 대중 중심의 자발적 행동이라는 관점에서 2016년 ‘디바 출정’을 뉴미디어 시대의 상업적 주체가 스스로 정치화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마지막으로 ‘디바 출정’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들의 행위가 유희적 놀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바 출정’에서 사용된 댓글과 밈 이미지를 실증적으로 연구한 연구자들은 중국 네티즌들이 단순히 타이완의 독립을 반대하고 비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풍자와 유머 때로는 이해와 포용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주목한다. 심지어 ‘디바 출정’이 타이완 네티즌을 공격하거나 설득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자신의 ‘셀프 퍼포먼스’에만 집중한 자기 만족적인 행위였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민족주의와 놀이는 이 ‘디바 출정’의 핵심적 특징을 구성하며 동시대 중국 사이버 민족주의의 의미를 대표한다.

중국의 인터넷 하위문화로서 새롭게 등장한 ‘놀이로서의 민족주의’는 국가에 대한 사랑인 동시에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인정투쟁(recognition struggle)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주류문화에서 인정받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민족주의는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식의 놀이일 뿐 아니라,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는 편리한 기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중국 인터넷 문화에서 유행하는 ‘탕핑’(躺平, 평평하게 눕는다는 의미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은 이와 반대의 지점에서 중국 네티즌의 인정 욕망을 표현하는 인터넷 하위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디바 출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사이버 민족주의가 적극적인 인정 욕망이라면 ‘탕핑’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기 위한 소극적인 인정 욕망일 것이다. 급속하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꿈꾸는 것이 불가능해진 현재의 중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젊은 세대의 자조 섞인 한탄이 아닐 수 없다.

동시대 전지구적 현상으로서 『아이돌이 된 국가』에서 다루고 있는 중국 젊은 세대의 팬덤 민족주의는 현재의 한국 상황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보수화와 특정 정치인들을 향한 팬덤 문화가 여러 가지 의미(특히 포퓰리즘의 차원)에서 논의되어 왔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는 사회 변화의 중심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지만,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 남은 것은 ‘N포세대(연애, 취업, 결혼 등을 포기한 세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같은 시대적 유행어들 뿐이다. 현실 속에서 초라해진 자신의 존재와 목소리를 국가나 특정 정치인에 기대어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이들 세대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지도 모르겠다. 『아이돌이 된 국가』는 중국의 젊은 세대를 분석한 사례를 통해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젊은 세대의 인정투쟁으로 귀결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참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이 책이 제공하고 있는 자세하고 풍부한 역주는 중국 인터넷 문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한국 독자들이 무리 없이 중국의 특정 개념과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시의적절한 연구서가 출판될 수 있도록 애써주신 번역자들과 출판사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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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된 국가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2년 9월 16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https://bit.ly/3DyPOcb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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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정동의 힘』(이토 마모루 지음, 김미정 옮김, 갈무리, 2016)


포스트포디즘적 산업구조와 글로벌화의 진행 과정에서는 다양한 특이성을 띤 미조직 노동주체들이 존재한다. 이 새로운 집합적인 주체는 종래의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틀로는 포섭되지 않는, 제도적 틀을 넘어서 존재하는 사회적 주체이다. 그들은 네그리와 하트가 다중이라고 부른 특이한 사회적 주체와 겹쳐볼 수 있는 존재이다. 지금 이들이 새로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조건 속에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그들의 정동, 감정, 의견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제국의 게임』(닉 다이어-위데포드, 그릭 드 퓨터 지음, 남청수 옮김, 갈무리, 2015)


<세컨드 라이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비디오게임과 가상 환경 들에 대해 급진적인 정치 비평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게임들을 마이클 하트와 안또니오 네그리가 이론화한 21세기 초자본주의 복합체인 ‘제국’의 전형적 매개체로 분석하고 있다. 가상게임 행위가 부상해 온 과정을 추적하고, 제작자들과 이용자들에 대한 영향을 평가하며, 게임과 실제 간, 육체와 아바타 간, 스크린과 거리 간의 관계를 묘사한다. 『제국의 게임』은 어떻게 비디오게임이 전 지구적 자본의 문화적·정치적·경제적 힘들을 구체화시키며, 동시에 그에 대한 저항의 수단도 제공하는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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