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의 부름』, 『광기의 산맥』 세미나 후기

작성자
bomi
작성일
2022-11-01 21:48
조회
323
1) 작품에 등장하는 괴물에 관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괴물은 인간이 도저히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존재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물질적인 형상을 띤다는 점이다. 이는 공포 서사에 등장하는 또 다른 불가해한 존재들인 악마, 귀신, 유령 등과 같은 이른바 초자연적인 존재와는 다른 점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괴물의 물질적 형상이 보다 분명히 드러나는 작품은 ‘광기의 산맥’이다. 동굴 속에서 잘 보존된 괴물의 화석(일종의 미라?)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그것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발굴하고 해부한다. (귀신은 발굴, 해부할 수 없다.) 하지만, 괴물을 해부해서 얻을 수 있는 앎은 없었다. 이 해부실험은 ‘프랑켄슈타인’에서의 해부실험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았다.
‘프랑켄슈타인’에서는 해부실험의 결과로 괴물이 태어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수많은 동물을 해부하면서 생명의 비밀을 알아냈고, 그 앎으로 새로운 생명, 괴물을 창조하는 데에 성공했다. 반면‘광기의 산맥’에서는 괴물이 해부당한다. 하지만 과학자는 해부를 통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해부의 결과는 오히려 죽음(생성이 아닌 파괴)이다.
메리 셸리의 괴물도 러브크래프트의 괴물도 인간으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두려움과 공포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른 점은 괴물 쪽에서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가이다. 메리 셸리의 괴물은 끊임없이 인간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하고 또 인간을 배우려 하다가 결국 좌절하고 증오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괴물은 인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물론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사실상 배울 필요도 없는데, 왜냐면 괴물들은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2)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겪는 공포에 관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공포소설일까? 현재 한국의 어른 독자들 중 러브크래프트의 글을 읽으며 크게 두려움을 느끼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을 공포소설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야기의 주된 테마가‘공포’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깔린 주된 정서는 공포와 매혹이다. 기이한 것(상형문자, 조각상, 건축물 등)을 마주한 등장인물들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고 그것의 수수께끼를 추적한다.
기이한 것과 마주쳤을 때 느끼는 매혹은 불가해한 것을 더 알고자 하는 욕망과 닿아있고, 대상을 더 알고 싶다는 욕망은 그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과도 닿아있다. 하지만 수수께끼에 다가가는 러브크래프트의 등장인물들은 인간의 이해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대상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인물들이 얻게 되는 것은 우주의 진실이 아니라 우주적 공포다. 그리고 그 결말은 죽음이다. 따라서 소설 속 화자는 그 비밀에 함부로 다가가지 말 것을 경고한다. 하지만 동시에 소설은 인간이란 매혹과 공포라는 두 줄로 엮어 짠 거대한 그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려는 시도처럼도 보인다.

3) 과학소설에 나타나는 호기심

인간의 호기심과 탐구심은 과학소설의 주요한 모티브 중 하나다. 메리 셸리의 작품,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모두 (각각의 호기심, 탐구심이 뻗어나가는 경로는 다르지만) 인간의 호기심이 초래하게 될 파괴적인 결과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더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늘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말하는 SF 작가다. 그에 이르러 문제는 호기심 그 자체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를 묻는 수준을 넘어서고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뀐다. 그 호기심이 파괴적인 결말을 낳았다면, 왜 그런가? 인간의 탐구심은 어떤 조건 속에서 파국적 결말을 향하게 되는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죽음에 이르는 각 인물의 상황(직업, 사회적 욕망, 경제적 조건 등)을 서술하긴 하지만, 그 조건들이 소위 ‘우주적 공포’와 맞물려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크게 조명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눈여겨볼 만한 요소는 있다. 공포 속 인물들이 다양한 유형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서 괴물(우주적 공포의 실체)을 향한 인물들의 행동양식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괴물을 무시하는 유형, 2) 괴물을 숭배하는 유형, 3) 괴물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유형의 인물. 이 중 두 번째 유형은 주로 ‘혼혈’로 지칭된다. 괴물을 숭배하며 공포에 짓눌려 끔찍한 종교의식을 치르는 이들은 한 마디로 미개한 자들이다. 하지만 괴물이라는 실질적인 위협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첫 번째 유형의 인물에 비해서는 어쨌든 예민한 더듬이를 가진 자들이라 할 수 있겠다. 세 번째 유형은 주로 지식인(고고학자, 과학자, 기술자 등)들이다. 이들은 위험한 괴물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이성’의 힘으로 그들의 비밀을 파헤치려 하지만 결국 죽거나 미쳐버린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나타난 인물 유형들을 오늘날 기후위기 속에서 나타나는 인물 유형들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1) 기후위기 자체를 무시하는 유형, 2) 기후위기 속에서 거대한 자연(신)의 힘을 숭배하는 유형, 3) 기후휘기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유형의 인물. 이러한 유형 분류는 흥미로운 동시에 분류 자체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것 같다.

4) 보충

『심층 적응』(젬 벤델, 루퍼트 리드 외 지음/ 김현우, 김미정, 추선영, 하승우 옮김/ 착한책가게 2022)은 기후 위기에 따른 인간 사회 붕괴는 이제 더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책은 기후 위기를 부인하는 태도를 가장 먼저 버려야 할 문제적 현상이라 말하며 기후 붕괴의 가능성에 대한 반응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심층 적응』p.208~217) 1) 낭만적 반응, 2) 혁명적 반응, 3) 합리적 반응, 4) 반동적 반응. 저자는 물론 이 분류가 모든 반응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이 유형 분류를 통해 이러한 반응들이 부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식별하고 “더 많은 대화와 성찰을 이끌어내고자”하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의 모든 반응 유형들에 대한 대안 유형도 제시한다. 5)‘중독 치료적’ 관점에서의 반응.
5) 중독 치료적’ 관점에서의 반응이라는“이 접근법은 ... 현재의 지속 불가능한 존재의 습관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중독과 애착에서 벗어날 방법을 탐구”(p.214)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대안 (신경생리학’이라는 과학적 방법과 용어를 동원하는 대안) 제시가 직면할 비판들도 이미 알고 있다. 사실상 신경생리학이라는 과학적 담론은 과거에 “다양한 차별 정책과 차별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경과학의 언어를 이론적인 방식과 은유적인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기후 붕괴가 유발한 공포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중적인 위기의 다른 측면이 유발한 공포와 관련하여 새로운 사실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엔도르핀, 아드레날린을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것이다. ” (p.215)
책에서 종종 불교의 수행법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최근 스님들의 법문에도 종종 신경과학의 용어들이 비유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후 신경과학이 등장하는 과학소설을 읽을 때 다시 꺼내 보면 좋을 만한 생각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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