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론』 | 리처드 카니 지음 | 김동규 옮김 | 2021.7.23

카이로스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21-07-25 15:28
조회
1056


보도자료

재신론
Anatheism : Returning to God After God

신 이후의 신(ana-theos)은 가장 오래된 지혜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창조적 ‘무-지’(not knowing)의 순간이다.


지은이 리처드 카니 | 옮긴이 김동규 | 정가 21,000원 | 쪽수 384쪽
출판일 2021년 7월 23일 | 판형 국판 (145*210)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총서명 Mens, 카이로스총서 77 | ISBN 9788961952637 93100
도서분류 1.철학 2. 예술철학 3. 종교철학 4. 문학

인터넷서점 바로 가기 :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영풍문고


재신론은 세속적인 것을 통해 신성한 것을 거부하면서 신의 세계를 없애기를 바라는 무신론이 아니다. 결국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을 하나로 붕괴시켜 초월과 내재의 어떠한 구별도 부정하는 것은 (고대 또는 뉴에이지) 범신론(pantheism)일 것이다. 재신론은 성스러운 것이 세속적인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재신론은 성스러운 것이 세속적인 것 안에, 세속적인 것을 통해, 세속적인 것을 향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나는 심지어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은 구별되기는 하지만,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결론 : 이방신들을 환영하기, 278쪽


『재신론』 간략한 소개

이 책은 교조적 유신론과 전투적 무신론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제안한다.

신의 죽음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우리가 신성하다고 부르는 것들을 추구하는 좀 더 책임감 있는 방식과 새로운 종류의 종교적 기획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는가? 저명한 철학자 리처드 카니에 따르면 우리는 가장 오래된 지혜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창조적 ‘무-지’(not knowing)의 순간에 와있다. 재신론은 모든 위대한 종교의 핵심, 즉 이방인에 대한 환대와 적대 사이의 내기에 놓여 있는 첫 사건을 가리킨다. 우리 자신의 재신론적 순간의 근원을 분석함으로써, 카니는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신으로의 귀환이 어떻게 가능한지뿐만 아니라 더 자유로운 신앙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재신론』 상세한 소개

신의 죽음 이후의 신을 찾기 위한 도전적 모험

“홀로코스트 이후, 히로시마 이후 ... 신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 한 전부 모욕에 불과하다.”(24쪽) 1882년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다. 이 책의 저자 카니에 따르면 우리 시대 유신론에 대한 가장 큰 부정은 1940년대 엘리 비젤이 아우슈비츠에서 “신”이 교수대의 밧줄에 달려 죽었다고 선언했을 때이다.

유럽대륙철학과 종교철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리처드 카니가 신의 죽음 이후의 신을 찾기 위한 사유의 모험을 펼친다. 니체와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신의 죽음 이후,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희생당한 이들을 보고도 침묵하는 신에 대한 회의 이후, 우리는 다시 신을 믿을 수 있는가? 비극적인 전쟁과 참사를 수 차례 경험한 우리에게도 이 물음은 낯설지 않다.

카니는 ‘재차’, ‘다시’, ‘이후’ 등의 뜻을 가지는 Ana라는 접두어를 사용하여 Anatheism, 곧 재신론이라는 기획을 제안한다. 그는 신의 죽음 이후에 도래하는 신을 믿는 신앙의 모험을 철학적으로 펼쳐낸다. 카니는 교조주의적인 신학이나 해묵은 전통에서 비롯한 전지전능한 신 개념을 해체하고,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타자로서의 이방인인 신을 신-이후의-신으로 제시한다.

이 신은 그저 이방인으로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존재를 보증받는 것이 아니라 이 신에 환대로 응답하는 나의 ‘내기’와 더불어 신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치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는 내기에 동참했고,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에 굴복하여 비로소 새로운 신앙을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카니에 의하면, 이런 모험은 기성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도 어떤 초월과 신비를 맛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낯설고 헐벗은 이방인을 환대하면서 익숙했던 낡은 삶의 방식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카니는 이것 역시 재신론적 삶의 방식이라고 명명하며, 신-이후의-신을 찾는 한 가지 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재신론의 모험은 철학, 신학, 문학, 실천을 가로지른다

카니는 이러한 자신의 모험을 철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경전을 새롭게 해석해내고, 철학적으로는 에티 힐레숨, 디트리히 본회퍼, 한나 아렌트, 폴 리쾨르, 에마뉘엘 레비나스, 자크 데리다 등 홀로코스트 이후 철학자들의 논증을 재신론적으로 전유하고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이후의-신에 관한 주요 현대 사상가들의 생각을 카니를 통해 폭넓고 깊이 있게 쫓아가 볼 수 있다. 또한 카니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셰이머스 히니 등 여러 탁월한 소설가와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유신론과 무신론을 가로지르는 재신론적 상상의 산물을 발견한다. 더 나아가 카니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삶에서 이방인을 환대하는 삶을 몸소 보여준 마하트마 간디나 도로시 데이의 삶과 사상을 좇아가면서 행동으로 몸소 재신론을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본다. 이에 독자들은 철학과 신학, 종교, 문학, 실천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종횡무진 모험에 동참하면서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물론이고, 이론과 실천의 갱신을 위한 여러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이방인 환대를 위한 내기

특별히 본서는 종교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종교의 이방인 탄압이 계속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 시대에 종교와 신앙이 나아갈 길, 종교간 대화와 화해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책이다.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다종교 사회의 길을 걸어왔지만, 종교간 대화와 화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공존 및 대화의 증진과 관련해서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극단적으로는 종교나 무신론의 이름으로 타종교를 비방하고, 이방인을 혐오하며, 타자를 배제하는 폭력적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한다. 카니는 그 스스로 아일랜드의 종교 분쟁을 경험한 철학자이자 지금도 이론적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종교적 타자와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구도자적 철학자이다. 이에 그의 구도자적 이론이 담고 있는 이방인 환대를 위한 내기는 종교간 갈등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적지 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재신론은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철학 기획이다

재신론은 유럽대륙철학과 해석학의 맥락에서 21세기의 시작부터 지금에 이르는 여러 종교철학적 기획 가운데 가장 참신하고 영향력 있는 연구로 손꼽히고 있다. 카니의 바로 앞 세대 해석학자인 가다머와 리쾨르 역시 종교철학과 관련해서도 큰 영향을 미친 저술을 남겼지만 명확하게 종교철학의 명저라 할 만한 한 권의 책을 쓰지는 않았다. 그들의 현상학과 해석학을 이어받은 카니가 그 원천을 발전시켜 바로 이 『재신론』이라는 탁월한 작품을 저술했다는 점에서 유럽대륙철학의 발전과 관련해서 본서가 가지는 의의는 적지 않다. 아마도 시간이 흘러 21세기 유럽대륙종교철학의 명저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이 책이 반드시 그 목록에 들어가리라고 전망해도 좋을 것 같다. 또한 근대적인 진보 이념의 파국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아우슈비츠 이후 신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종교와 신앙을 포기하지 못한 철학자라면 누구라도 지나칠 수 없는 사유의 과제로 간주하였고, 이는 종교철학의 중대한 주제로 계속 다뤄지고 있다. 바로 이 맥락에서 본서는 홀로코스트 이후의 신과 종교에 대한 담론을 촉진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재신론이 곧 고통 속에서 침묵한 전통 신정론의 비호를 받는 신의 죽음 이후의 신을 모색하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재신론이 우리 시대의 철학으로 손꼽힐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며, 이 동시대적 기획으로부터 많은 이들이 적지 않은 통찰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추천사

나는 카니의 책을 너무나 재밌게 읽었다. 특별히 ‘재’(ana)라는 주제, 곧 이전처럼 믿는 것 또는 다시 믿는 것 사이의 구별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말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를 위한 심원한 구별이다. ‘재’(ana)에 의해 열린 가능성은 믿음과 믿지-않음을 둘러싼 새로운 입장과 오래된 입장을 결합하고 재조합하는 확장된 선택의 큰 팔레트를 제공한다.
― 찰스 테일러, 『세속의 시대』의 저자

나는 재신론 개념이 유신론과 무신론, 형이상학과 종교를 넘어, 신적 사건 그 자체의 가능성으로 귀환하는 하나의 경로, 곧 제3의 길을 열면서 신의 죽음의 죽음을 증언하는 매우 적절한 한 가지 방법이라고 본다.
― 장-뤽 마리옹, 『존재 없는 신』의 저자

이 책은 포스트모던 세계에서의 신앙의 삶에 대한 흥미진진하고 상상력 가득한 강력한 해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니는 의심과 독단주의를 넘어 세속적인 것 안에서 성스러운 것을 찾기 위해, 세계 내에서 신을 보기 위해, 더욱 성숙하고 복잡한 신앙을 되찾기 위해 숨 막힐 정도로 많은 문헌과 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 책에는 우리가 카니로부터 기대하게 되는 모든 것 ― 명징하고, 매혹적이며, 매력적인, 우리 시대의 유럽 대륙 종교철학에의 주요한 공헌 ― 이 담겨 있다.
― 존 카푸토,『신의 죽음 이후』의 공동 저자

수많은 독단적 신자들은 자유로운 정신을 전혀 지지할 수 없는 신을 만드는 완벽한 기술을 가지고 있고 … 반면에 어떤 무신론자들은 너무 둔감한 과학적 공리주의를 가지고 있어서 가장 가까운 제단에서 당장 개종하고 싶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아일랜드 철학자 리차드 카니가 이 독특한 신앙의 해석학을 저술한 것은 이러한 극단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 보기 드문 솔직함과 열린 마음으로 쓰인, 우리의 생각을 가다듬게 만드는 이 책에 우리는 경의를 표해야 한다.
― 『르몽드』

지난 1백여 년 동안의 신의 ‘죽음’ 혹은 ‘사라짐’ 이후, 신을 사유하기를 ― 또 심지어 우리 삶을 신에 헌신하기를 ―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진심 어린, 실천적이고 대단히 현실적인 논증이다. … 리처드 카니는 신 이후의 시대에, 신 뒤에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자 하며, 이를 매우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 제임스 우드, 『뉴요커』의 비평가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리처드 카니 (Richard Kearney, 1954~ )
철학자. 보스턴대학 ‘찰스 B. 시릭 기금’ 석좌교수. 1954년 아일랜드 코크 출생. 더블린대학(UDC)를 졸업하고 캐나다 맥길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더블린대학, 소르본대학, 호주 가톨릭대학, 니스대학의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두 편의 소설과 시집 한 권 등 유럽철학과 문학에 관한 25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고 20여 권의 책을 편집, 공동편집하며 유럽대륙철학의 다양한 분야, 특히 현상학, 해석학, 종교철학 분야에서 의미 있는 작품을 썼다. 2000년대 이후 재신론으로 대변되는 독창적인 종교철학적 사상을 구축하여 현존하는 가장 탁월하고 통찰력 있는 종교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일랜드 예술위원회, 아일랜드 고등교육청의 일원이었고, 더블린대학 아일랜드 영화학교의 학과장을 역임, 왕립 아일랜드 아카데미의 회원이다. 아일랜드의 공공지식인으로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초안 작성에 참여하였고,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그가 주도하는 <게스트북 프로젝트>는 종교·인종·역사 갈등으로 점철된 지역에서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한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화해와 치유의 장을 여는 의미 있는 기획이다. 주요 저서로 The Wake of the Imagination, Poetics of Imagining, Touch, 『현대 유럽철학의 흐름』(한울), 『이방인, 신, 괴물』(개마고원), 『재신론』(갈무리) 등이 있고, 그 외 다수의 공동저서와 논문이 있다.

옮긴이
김동규 (Kim Dongkyu, 1980~ )
총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폴 리쾨르 연구로 석사 학위, 마리옹과 리쾨르의 주체 물음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벨기에 루뱅 대학교 신학&종교학과에서 마리옹의 계시 현상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공저,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공저,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공저, 『선물과 신비 : 장-뤽 마리옹의 신-담론』 등이 있고, 역서로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탈출에 관해서』,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 『윤리와 무한』, 『해석에 대하여』공역, 『예술로서의 삶』공역, 『과잉에 관하여』 등이 있다. 이외에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운영위원,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이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종교&신학과 박사 과정에서 현대 유럽 대륙철학과 종교철학, 종교 간 대화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재신론』 역자와의 문답

Q. 카니는 왜 다시 신을 다시 새롭게 사유한다고 말하는지요? 프로이트, 맑스, 니체에 의해 “철학적으로 공식화”되었듯이 신 개념이 해체가 필요하다면, 해체 이후에는 신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지요?

해 아래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이전에 있던 것이 죽었다고 해도 이전에 있었던 모든 유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데리다가 형이상학을 해체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고전 텍스트와 더불어서 해체된 것의 잔해 속에서 (플라톤의) ‘코라’라는 개념을 길어냈던 것처럼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에 의해, 아유슈비츠 같은 역사적 비극 아래 신의 죽음이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신과 관련해서 어떤 것을 사유할 수 있고, 또 무언가를 벼려내야 합니다. 카니는 이것이 서구 유산이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때의 신은 형이상학적 신이나 신성은 아니지만, 죽음의 잔해에서도 다른 신의 이름은 여전히 도래할 수 있지요. 카니는 그 다양한 신의 이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이런 점에서 카니는 신이 아닌 다른 것의 가능성을 가로막지는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신은 낯선 것으로서 굳이 종교에 집착하지 않는 이들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또한 여전히 신을 고수함으로써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유대교, 이슬람, 그리스도교와 같은 아브라함 종교의 유산에서의 대화 가능성을 증진시킵니다. 신 자체를 버리는 게 급진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종교간 대화의 가능성의 여지를 닫아버릴지도 모릅니다. 이 점에서 카니의 재신론, 신을 다시 말하고자 하는 시도는 서양만이 아니라 동양의 다종교적 사회와도 대화의 여지를 열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급진적이고 더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Q. 신의 죽음 이후를 사유하는 니체, 아렌트, 본회퍼, 리쾨르 등의 사상가들과 카니의 ‘재신론’이 갖는 변별점은 무엇일까요?

카니는 어떤 변별점을 만들어내기보다 자신의 스승들로부터 재신론의 영감을 얻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합니다. 즉, 신을 다시 사유한다는 자신의 기획은 완전히 새로운 기획이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유산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음을 그는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니체는 좀 다르겠지만, 아렌트, 본회퍼, 리쾨르는 재신론의 사유를 재신론이라는 이름 없이 선구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Q. 카니는 왜 문학작품들에서 ‘재신론’에 대한 영감을 가져올까요?

카니는 재신론을 교조적 유신론과 전투적 무신론을 동시에 넘어서려는 시도로 기획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재신론은 개개인의 실존이 신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기성 종교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이들도 이방적인 것, 곧 낯선 것과의 만남 아래 재신론적 모험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지요. 카니가 언급하는 작품을 보면, 예외 없이 일상 안에서 초월을 발견하는 신비의 경험이 언급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명시적인 형태의 종교적 신이 없이도 초월을 경험하고, 신비를 경험한다고 볼 수 있지요. 카니는 이를 유사-성찬례적 경험이라거나 성사적 상상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런 점에서 종교를 넘어 낯설고 신비한 어떤 것과의 만남을 통해 삶을 갱신하고 새롭게 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재신론은 유의미합니다.

Q. 카니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뿐 아니라, 무신론, 힌두교, 불교 등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습니다. 재신론에서 이런 다양성과 대화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히 재신론과 무신론의 관계가 흥미롭게 느껴지는데요, 어떻게 재신론과 무신론이 공존 가능한 것인지 조금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신론은 교리 중심적 신론과 신앙을 거부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은 어떤 교리나 전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종교가 다른 종교를 무시하거나 배제할 근거가 재신론적 기획 안에서는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유대교는 그리스도교에게, 그리스도교는 이슬람교에게, 또 이슬람교는 힌두교, 불교에게, 이처럼 각 종교의 신앙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 곧 종교적 타자입니다. 이방인의 환대는 이렇게 종교적 타자와의 만남을 함축합니다. 무신론도 유신론자에게는 타자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요. 무엇보다도 재신론은 참된 신을 찾기 위해서는 무신론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무신론은 종교의 소멸을 추구하는 전투적 무신론이 아니라 신의 부재를 알려줌으로써 영혼의 밤을 맞이하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의 유신론 비판을 통해 신자들은 ‘신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믿는 신은 참된 신이 아니지 않을까’하는 영혼의 밤에 처할 수 있습니다. 카니는 바로 이 밤을 거쳐야만 신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보지요. 이런 점에서 무신론은 신을 찾는 데 필수적인 방편입니다. 카니가 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무신론자에게도 유신론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날 대화하는 무신론자들은 바람직한 종교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배움을 얻고자 하는 무신론자들을 보시지요. 또 무신론자이지만 종교의 유산이 너무 귀하여 버릴 수 없다고 한 알랭 드 보통을 보시지요. 이처럼 무신론자도 종교적 신앙을 통해 어떤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재신론과 무신론은 공존합니다.

Q. 『재신론』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이슈는 오늘날의 난민 문제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난민의 존재가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고 그에 대한 혐오도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책이 ‘열린 경계’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습니까?

재신론은 일종의 실존론적 내기입니다. 이 내기는 이방인을 환대하는가 적대하는가를 숙고 끝에 결정하고 이방인을 맞이하는 내기입니다. 대부분 종교 전통에서 참된 신앙의 획득, 삶의 갱신은 타자와의 만남에서 비롯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도 내기를 걸어야 합니다. 이방인 환대를 통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닫힌 사회로 갈 것인가? 재신론은 이런 기획을 여러 철학 텍스트와 종교 경전에 대한 해석을 통해 고양시킵니다. 특별히 이 시대 난민들은 주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옵니다. 이들에게 완고한 무신론이나 전통 유신론이 도움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재신론을 통해 추구하는 이방인과의 대화, 이것은 종교간 대화와 종파간 대화를 포함합니다. 이런 식으로 재신론의 사유 방식을 확장하면, 우리는 이주민이나 난민과의 공존과 대화의 길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카니가 강조하는 성찬례적 삶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것을 좀 세속화하면 빵과 술을 타자와 공유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성사적 상상이 난민과 삶을 공유하고 먹을 것을 공유하는 삶도 열어줄 것입니다.

Q. 이방신이란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낯선 자로 도래하는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규정 가능하면 낯설지가 않습니다. 규정할 수 없고 내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낯선 자입니다. 그 낯선 자가 바로 신입니다. 무함마드가 동굴 속에서 들었던 음성, 본회퍼가 감옥에서 다시 만난 그리스도, 모두 낯선 이방신입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신도 교리적 틀을 제거하면 낯선 자가 됩니다. 무엇보다 이 이방신은 인간 타자일 수도 있습니다. 카니도 인용한 것처럼 성서의 그리스도는 지극히 작은 자, 아무것도 아닌 자, 보잘것없는 자에게 한 것이 자기에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지극히 작은, 낯선 자들에게 깃든 신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방신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신성이 깃든 낯선 자가 곧 이방신이라고 느슨하게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신론자에게는 무신론자가 낯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 종교는 서로 다른 종교에게 낯설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자신이 믿지 않는 타종교가 섬기는 신, 거기서 우리는 이방인으로서의 신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요.


책 속에서 : 재신론

내가 재신론적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 곧 믿느냐 마느냐를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 용납될 뿐만 아니라 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공간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나는 본서를 유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치열한 합리적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지적 아고라로 간주하고 싶다.
― 서문, 19쪽

신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우리가 신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무지의 밤으로부터, 포기와 단념의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나는 것은 무엇인가? 특히 ‘신’을 버리고도 여전히 신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들어가는 말 : 신 이후의 신, 30쪽

신정론과 신정정치는 유신론적 통치성의 사악한 후예다. 나는 그 대안이 이방인의 재신론이라고 생각한다.
― 2장 내기를 걸며 : 5중의 운동, 109쪽

신의 죽음은 삶의 신을 낳는다. ... 신의 약함에 대한 반응은 인간의 강함에 대한 반응이다.
― 3장 이름으로 : 아우슈비츠 이후 누가 신을 말할 수 있는가?, 133쪽

재신론은 성스러운 것에서 세속적인 것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것 속에서 성스러운 것을 되찾는 것이다.
― 5장 텍스트에서 : 조이스, 프루스트, 울프, 223쪽

재신론은 모든 아브라함 신앙에 내장된 선택지다. 그것은 이방인 앞에서의 신의 에피파니로 시작하고 또 끝나기 때문이다.
― 6장 세상으로 :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사이?, 250쪽

아마도 우리는 재긍정의 해석학을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환영적 신을 버리고 살아있는 신을 되찾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도,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은 다시 한번 ‘예’라는 말로 답해져야 한다.
― 7장 행동으로 : 말과 살 사이, 257쪽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8
서문 15

1부 서막

들어가는 말 : 신 이후의 신 29
1장 바로 그 순간에 : 초대받지 않은 손님 51
유대교의 내기 52
그리스도교의 내기 60
이슬람교의 내기 71
2장 내기를 걸며 : 5중의 운동 86
다섯 가지 순간 87
종교간 번역 100
통치자에서 종으로 : 무력함의 힘 106
3장 이름으로 : 아우슈비츠 이후 누가 신을 말할 수 있는가? 113
홀로코스트의 뒤를 이어 등장한 암흑시대의 예언자들 115
본회퍼의 종교 없는 신앙 127
리쾨르의 탈[이후]종교적 신앙 135
최후의 언약 144

2부 막간

4장 살이 되어 : 성사적 상상 153
살의 현상학 156
메를로-퐁티의 성사적 비전 158
사르트르의 고별사 167
크리스테바와 감각의 미학 171
5장 텍스트에서 : 조이스, 프루스트, 울프 177
조이스 181
프루스트 192
울프 205
텍스트적 횡단 218

3부 후주곡

6장 세상으로 :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사이? 225
자기비움의 윤리를 향하여 226
적대에서 환대로 나아가기 233
성스러운 세속성 235
이슬람의 물음 240
범위를 확장하기 250
7장 행동으로 : 말과 살 사이 255
도로시 데이 258
장 바니에 266
간디 270
결론 : 이방신들을 환영하기 277
I 278
II 281
III 286
IV 291
V 293
VI 295
VII 300
에필로그 302

감사의 말 308
옮긴이의 말 310
후주 322
인명 찾아보기 376
용어 찾아보기 379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난민, 난민화되는 삶』(김기남, 김현미, 도미야마 이치로, 미류, 송다금, 신지영, 심아정, 이다은, 이용석, 이지은, 전솔비, 쭈야, 추영롱 지음, 심정명 옮김, 갈무리, 2020)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난민화된 삶이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연쇄되어 있는가를 보게 한다. 그리고 이 간극 혹은 한계-접점에서, 타자에게 기꺼이 자신을 개방하고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어떻게 지금 여기의 삶이 저 먼 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가, 또 지속적으로 연결의 감각을 가질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신정-정치 : 축적의 법과 국법의 이위일체 너머』(윤인로 지음, 갈무리, 2017)

화폐의 힘을 ‘현실적인 신’이라고 표현한 맑스, 자본주의를 기독교의 형질을 띤 것으로 포착한 벤야민, 현대 국가의 주요 개념들이 환속화된 신학의 개념이라고 했던 슈미트, 국법의 진정한 실험실이 교회법이었다고 한 아감벤. 이 책은 그런 성찰들을 따르면서, 신, 신성, 신적인 힘이 경제적 이윤과 정치적 권력 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중심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여러 각도에서 비평한다.

『예술로서의 삶 : 니체에서 푸코까지』(재커리 심슨 지음, 김동규, 윤동민 옮김, 갈무리, 2016)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말하고, 즐기고, 고통을 받으며 숨을 쉬고 있는 한 자기의 삶에 대한 관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술로서의 삶>은 바로 이러한 철학의 물음에 충실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재커리 심슨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물음에 예술로서의 삶이라는 철학자들의 통찰을 나름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니체,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마리옹, 카뮈, 푸코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를 수놓은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제시한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저자는 ‘예술’을 매개로 정돈한다.
전체 299
번호 썸네일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299
<신간> 『기준 없이』 | 스티븐 샤비로 지음 | 이문교 옮김 | 2024.2.24
갈무리 | 2024.02.29 | 추천 0 | 조회 146
갈무리 2024.02.29 0 146
298
<신간> 『예술과 공통장』 | 권범철 지음 | 2024.02.06
갈무리 | 2024.02.05 | 추천 0 | 조회 260
갈무리 2024.02.05 0 260
297
<신간>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 | 문병호·남승석 지음 | 2024.1.24
갈무리 | 2024.01.29 | 추천 0 | 조회 279
갈무리 2024.01.29 0 279
296
『초월과 자기-초월』 | 메롤드 웨스트폴 지음 | 김동규 옮김 | 2023.12.29
갈무리 | 2023.12.30 | 추천 0 | 조회 388
갈무리 2023.12.30 0 388
295
『대담 : 1972~1990』 | 질 들뢰즈 지음 | 신지영 옮김 | 2023.11.30
갈무리 | 2023.12.04 | 추천 0 | 조회 405
갈무리 2023.12.04 0 405
294
『자기생성과 인지』 | 움베르또 R. 마뚜라나, 프란시스코 J. 바렐라 지음 | 정현주 옮김 | 2023.11.3
갈무리 | 2023.11.06 | 추천 0 | 조회 427
갈무리 2023.11.06 0 427
293
『#가속하라』 | 로빈 맥케이·아르멘 아바네시안 엮음 | 김효진 옮김 | 2023.09.22
갈무리 | 2023.09.26 | 추천 0 | 조회 752
갈무리 2023.09.26 0 752
292
『동아시아 영화도시를 걷는 여성들』 | 남승석 지음 | 2023.08.30
갈무리 | 2023.08.29 | 추천 0 | 조회 992
갈무리 2023.08.29 0 992
291
『건축과 객체』 | 그레이엄 하먼 지음 | 김효진 옮김 | 2023.07.20
갈무리 | 2023.07.23 | 추천 0 | 조회 723
갈무리 2023.07.23 0 723
290
『문두스』 | 김종영 지음 | 2023.06.23
갈무리 | 2023.06.27 | 추천 0 | 조회 681
갈무리 2023.06.27 0 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