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저널 2020.06.26] 진실은 왜 밝혀지지 않는가? / 표광소 시인

서평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20-07-01 17:27
조회
210


[울산저널 2020.06.26] 진실은 왜 밝혀지지 않는가? / 표광소 시인


기사 원문 보기 : http://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80785629780


검찰의 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5월 3일부터) 1년 남짓 장자연 씨의 동료·지인·유족·기획사직원·당시 수사에 관여한 경찰·경찰 지휘부·검사·조선일보 관계자·술 접대 성 접대 등 의혹과 관련된 주요 인물·언론인 총 84명을 조사한다. 그럼에도 배우 장자연 씨의 사망 관련 리스트와 성폭행 의혹을 확인하지 못한다.
이에 장자연 씨의 11년째 기일에 발행한 <증언혐오: 탈진실 시대에 공통진실 찾기>(조정환 지음, 2020년 3월 7일, 도서출판 갈무리)는 이 사건의 진실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이유를 찾아 나선다. 먼저 경찰·검찰에 출석해 2009년 한 해에 무려 10차례나 증언하고, 과거사위원회에도 증인으로 출석(2019년)한 윤지오 씨의 증언과 다양한 경로로 입수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검토한다.

전문 지성의 ‘권력장'과 구별되는 다중 지성의 자율성을 탐구하는 <증언혐오: 탈진실 시대에 공통진실 찾기>는 권력자·착취자·가해자·남성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성폭력 체제가 피해자(장자연)의 증언 문건을 희화화하고 증언자(윤지오)의 진술을 미궁에 빠뜨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피해자의 진실을 흐지부지 덮고 가해 권력을 보호하는 한편 증언자에게 ‘직접적으로 증언을 하지 말도록 가로막은 것은 가부장제 권력’(공통진실 91쪽)의 ‘마약에 취한’ ‘초점 잃은 눈’(공통진실 36쪽)이라고 규정한다.

국가는 가정에서 가부장제 권력의 ‘사적 처벌 행동에 최대한 덜 관여함으로써 가부장제를 돕고 그것과 동맹하는 방식으로 가부장제 가족을 자신의 세포기관으로 포섭’(공통진실 91쪽)한다.

2020년의 n번방 동영상·2019년 버닝썬 게이트·2013년 법무부 차관 성접대·2009년 장자연 씨 사건과 (사회 및 생활 곳곳에 보편적으로 확산돼 있는) 성폭력 체제를 집중적으로 바라보는<증언혐오: 탈진실 시대에 공통진실 찾기>를 읽으며 나는 왜, 코리아나 호텔 사장의 부인 이미란 씨가 “조선일보 방용훈을 어떻게 이기겠어요?”(2016년 9월 1일 밤 12시)라고 절규하는 목소리가 떠오를까? 그리고 왜, 운전기사에게 “돈 벌 거면 똑바로 벌어”, “나 아저씨 죽여 버리고 싶어 진짜”, “미친 사람이야 돌머리” “머리통 한 대 때리면서 소리 지르고 싶어”라고 폭언을 하는 TV조선 방정호 대표의 초등학교 3학년 딸의 목소리가 떠오를까?

조선일보는 왜 장자연 씨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실무자에게 ‘청룡봉사상’(부상 1000만 원, 1계급 특진)을 수여하고, 이 사건 조사를 지휘하는 경찰 간부를 방문해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고 협박할까?(언론 권력과 경찰의 유착이 의심되는 이런 내용을 보도한 MBC를 조선일보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법원은 MBC가 무죄라고 선고한다.)

경찰은 2009년 3월 13일부터 장자연 씨 사건을 수사한다. 수사 진행 75일째 되는 날(2009년 5월 27일)에 이 수사 실무자의 한 사람에게 <조선일보>는 청룡봉사상을 수여한다(수상자를 추천하고 심사하는 기간과 장자연 씨 사건 수사 기간이 겹친다). 수상식에 이 사건의 핵심 피의자 방 씨(조선일보 대표)가 참석한다.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고 126일째 되는 7월 20일에 수사결과(수사 대상자 전원에게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처분)를 발표한다.

그리고 10년 뒤 장자연 씨 사건 수사 경찰이 청룡봉사상을 수상한 사실이 드러난다. 유착을 의심하는 여론을 의식한 경찰은 청룡봉사상과 장자연 씨 사건 수사는 관계가 없다고 발표한다. 과연 그럴까? 조선일보와 경찰이 유착하지 않았는데, 경찰은 왜, 피해자가 문건에 기록한 ‘조선일보의 방사장’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일까?

피해자가 문건에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살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사장님이 잠자리를 요구하게 만들었다’라고 기록한 내용을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마땅한 경찰은,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고)(멸시하며) 기획사 대표(김종승)의 스케줄 표에 있는 ‘2008년 7월 17일 조선일보 사장 오찬’의 사실 여부를 수사하고, ‘조선일보 방사장’이 누구인지, 장자연 씨가 기록한 피해가 사실인지 확인하거나, 그 상대를 대상으로 수사조차 진행하지 않는다.

경찰은 또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나에게 룸살롱에서 술접대를 시켰다’는 문건의 해당 인물을 조사해야 함에도 그를 피내사자 신분으로 조사만 하고 이후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경찰 41명이 4개월 남짓 진행한 수사는 한 마디로 부실하다. 왜 그럴까? 조선일보의 청룡봉사상 때문이 아니고, 조선일보가 대책반을 만들어 대처하며 협박한 때문도 아니라면, 경찰이 이 사건의 증거를 은폐하고 법을 왜곡한 이유가 무엇일까? <증언혐오: 탈진실 시대에 공통진실 찾기>가 살펴본 것처럼 대한민국 전문 지성의 ‘권력장’이 <조선일보>-경찰/검찰-자유한국당-인터폴(공통진실 452쪽)로 이어지기 때문일까? 그래서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며 가장 핵심이 되는 초동 수사부터 (고의로) 잘못한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경찰이 압수수색을 어떻게 그토록 데면데면 대충할 수 있을까? 경찰은 피해자의 집과 차량을 수색할 때 침실만 수색하고 옷방은 ‘제대로’ 보지도 않는다. 피해자의 다이어리와 수첩이 ‘여러 개’ 존재하는데 그 중에 일부만 조사한다. 명함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 조사한 자료들을 기록에 남기거나 사본을 만들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휴대폰의 기록도 누락한다.

검찰의 과거사위원회는, 반드시 기록해야 할 자료들을 누락시킨, 경찰의 이례적이고 의도적인 증거 은폐가 의심 된다고 발표(2019년 5월 20일)하고 “수사기관의 증거 은폐와 법 왜곡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입법 추진을 권고한다.

그런데 웬일일까? 검찰의 과거사위원회는, 조선일보가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밝힐 뿐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는다. 이로써 “고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 주세요”라고 총 23만5796명이 참여한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시작한 검찰(과거사위원회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는, 검찰이 이 사건 부실 수사의 주체이도 하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철학의 논리로 꼬치꼬치, 경찰·검찰·법원의 수사(2009년) 자료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2019년) 자료들을 분석한 <증언혐오: 탈진실 시대에 공통진실 찾기>는 전문 지성의 ‘권력장’이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방법은 ‘강제수사권을 갖는 특검이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와 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철저한 재수사’(공통진실 197쪽)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권력장’이 특검을 시작할 가능성은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희박하다.

따라서 ‘진실을 자유롭게 하는 것, 우리를 당당하게 만드는 것은 아래로부터 다중의 봉기와 항쟁, 그리고 혁명뿐’(공통진실 127쪽)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다중 지성의 ‘공통장’은 생명의 눈을 깜박이며, 근거도 없는 거짓말·지어낸 소문·모욕 들의 탈진실 현상에서 지금 탈주를 시작한다. 내 마음에 진실이 있다. 내 마음을 성찰하는 다중·저항자·피해자·여성의 눈은 ‘장자연 씨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열망하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실사구시적으로 응시하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봐야 할 것을 놓치지 않는 다초점의 눈’(공통진실 36쪽)이다.

초점이 분명해야 공격의 화살이 어디서 날아오고, 함정이 어디에 있고, 생존의 출구가 어디로 열려 있는지 살필 수 있다.



8961952285_1.jpg

『증언혐오』 | 조정환 지음 | 갈무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