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지성 In&Out 2023.01.15] 포스트휴머니즘의 절실한 세 목소리 / 이동신(서울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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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작성일
2023-01-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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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지성 In&Out 2023.01.15] 포스트휴머니즘의 절실한 세 목소리 / 이동신(서울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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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구상했던 것이 2015년이니 출간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만큼 큰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나름 포스트휴머니즘을 일찍 접하고 박사논문까지 썼던 사람으로 이 새로운 분야를 국내에 자세히 소개하고 문학과 문화비평에 어떻게 접목할지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상황이 달라졌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특정한 과학기술에 대한 것에서 그 기술로 인한 인간 정체성 및 사회 전반의 변화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인공지능, 사이버네틱스, 디지털 테크놀로지 등의 과학기술이 일으킨 변화에 주목하며 캐서린 헤일스는 1999년에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를 출간하여 포스트휴머니즘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알파고로 인한 관심과 맞물려 포스트휴머니즘은 국내 학계에서도 급속도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연구자로서 자신의 연구 분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분야 소개로 책을 쓰려던 필자로서는 난감한 일이기도 했다. 소개만 하기엔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논의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많은 만큼 부족한 점도 보였다. 과학기술로 촉발된 관심이라 포스트휴머니즘의 이론적이고 윤리적인 측면, 즉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비인간 존재를 중시하고자 하는 면이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에 참여하며 동물연구, 특히 캐리 울프가 동물에 주목해 전개한 포스트휴머니즘을 헤일스의 과학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보다 깊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또한 기후 위기, 인류세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사물이라는 비인간 존재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 결과 새롭게 사물을 논의하는 신사물론, 특히 그레이엄 하먼이 시작한 객체지향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이 얽혀 새로운 방향으로 책을 이끌었다. 여전히 포스트휴머니즘을 소개하고자 하지만 이제는 과학기술, 동물, 사물을 함께 고민하는 분야임을 밝히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 책은 각각 과학기술, 동물, 사물의 영역에서 시작한 캐서린 헤일스, 캐리 울프, 그레이엄 하먼의 작업을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모아 공조의 터를 다지고자 한다. 물론 세 사상가에게 직접적인 공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포스트휴머니즘을 연구하는 이는 그런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다. 21세기의 위급한 상황이 과학기술, 동물, 사물 중 한 영역에서만 인간중심주의를 타파한다고 해결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인 상황이고, 인간과 동물과 사물 모두가 한데 얽혀있는 상황이기에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서는 불완전한 해답이 될 수밖에 없다. 포스트휴머니즘이 지금 시대에 진정으로 유의미한 논의가 되려면 총체적으로 상황을 다루어야 하기에, 세 사상가의 공조는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각자의 시작점도 다르고 분야도 다르기에 세 사상가를 포스트휴머니즘이란 한 줄기로 모으는 일은 쉽지 않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학문적 입장의 차이를 경시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책은 세 사상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포스트휴머니즘을 대하는 그들의 감정에 주목함으로써 나름의 연결점을 찾는다. 2장에서 다루는 헤일스는 사이버네틱스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정신을 우위에 두고 몸을 지우는 경향이 가속화되고, 그와 같은 경향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라는 이름의 인간중심주의를 반영한다고 비판한다. 그의 포스트휴머니즘은 과학기술로 사라지는 듯이 보이지만 결단코 사라지지 않는 몸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다. 인간이 자신의 정신 속에 고립된 존재가 아닌 물질세계와의 교류로 만들어진 포스트휴먼임을 확인시키는 것이 몸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로 인한 포스트휴먼의 탄생을 논의하는 헤일스에게 그러한 탄생 이전에도 존재해온 비인간 존재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러한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 속에 살아왔고, 따라서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인간중심주의 논의에서 빠질 수 없다. 3장에서는 인간이 만든 수많은 제도가 전제하는 고유하고 독자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개념이 종중심주의의 결과라고 비판하는 울프를 다룬다. 울프의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 개념 자체가 동물과의 자의적 구분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고유하고 독자적인 인간이라는 개념과 그 개념에 근거한 갖가지 제도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그의 작업의 원동력은 인간 개념에 남아있는 동물의 흔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상실감’에서 나온다.

인간 개념에 항상 남아있는 동물의 흔적은 결국 그 개념에 철저히 인간만이 담겨있는 적이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울프에게 인간은 이미 언제나 포스트휴먼이다. 하지만 과연 동물의 흔적만이 있을까? 울프는 포스트휴머니즘을 사물로 확장하는 일에 머뭇거리지만, 인간중심주의의 폐해가 사물에 가장 심각히 드러나는 현실에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러한 현실은 사물의 존재 이유가 인간의 쓰임새로만 결정되고, 그렇기에 인간이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일을 당연시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하먼이 필요한 이유다. 4장에서 다루는 하먼은 하이데거의 도구 논의를 확장하여 모든 사물이 존재론적으로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가능성을 드러내는 일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객체지향철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에 대한 ‘놀라움’을 되찾고자 한다. 사물이라는 존재 하나하나가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포스트휴머니즘의 교훈이 전해진다.

‘몸부림’, ‘상실감’, ‘놀라움’이라는 세 가지 감정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을 설명하는 이유는 이 감정들이 결국 하나의 감정으로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절실함’이다. 전 지구를 위협하는 21세기의 상황들은 절실한 대응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들이 인간과 사물을 구분하는 뿌리 깊은 이분법적 세계관, 인간중심주의를 실현하려는 세계관에서 초래되었다는 사실은 눈에 보이는 문제만을 해결하는 임시방편적 대응이 미흡함을 알린다. 상황의 근본 원인이 그대로 남아있기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스트휴머니즘의 ‘절실함’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고찰이며 이전과는 다른 미래에 대한 구상이다. 절실하기에 더 고민하고 더 구체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의 ‘절실함’이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을 합치라고 지시한다. 책은 그 지시를 따른 결과다.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 | 이동신 지음 | 갈무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