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3부 정리40~3부 끝)

작성자
eiron90
작성일
2019-07-31 16:40
조회
691
3부 정리40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증오를 받는다고 표상하며, 자신은 증오받을 아무런 원인도 그 사람에게 주지 않았다고 믿는 자는 도리어 그 사람을 증오할 것이다.”(196) (cf. 치욕)
=>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증오하게 되면 나도 그에 자극받아 그 무언가를 증오하게 된다(정리27에 의해, 183). 여기서 나의 증오의 원인은 ‘어떤 사람’, 즉 외부에 있다. 말하자면 나는 외적 원인의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으로 자극받아 변화한 것이다.(정리13의 주석, 173) 그런데 이때 그 ‘어떤 사람’이 나를 증오하는 경우를 가정하면, 나의 슬픔의 원인은 오직 나를 증오하는 그 ‘어떤 사람’에게만 있다.(“그러나 (가정에 의해) 그는 자기를 증오하는 사람 이외에는 이 슬픔의 어떠한 원인도 표상하지 않는다.”) 즉 나는 오로지 나를 증오하는 그 ‘어떤 사람’ 때문에 슬픈 것이다.(“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증오를 받는다고 표상함으로 인하여,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의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으로 자극받아 변화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활동능력을 감소시키거나 억제하는 사물의 존재를 배제하려 노력한다.(3부 정리13, 172) 따라서(도리어) 나는 나의 코나투스를 감소시키는 유일한 원인인 그 ‘어떤 사람’을 증오하게 되는 것이다.(“슬픔으로 자극받아 변화된 인간의 노력은 전적으로 슬픔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정리37의 증명, 193)
* “도리어”: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증오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젠 오히려 그 사람이 나의 증오의 대상이 됨.

=>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면 나도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건 감정적으로 당연하게 여겼으나(이럴 경우 ‘도리어’가 해명되지 않음), 이 증명을 통해 그 ‘당연한’ 감정적 반응을 코나투스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3부 정리47
“우리가 증오하는 대상이 파멸되거나, 또는 다른 어떤 해악을 입는 것을 우리가 표상함으로써 생기는 기쁨은 어떤 슬픔을 수반한다.”(201)
=> 내가 싫어하는 타인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슬픔을 동반한다. 그것은 (정리27에 따라, 184) 우리와 유사한 어떤 이가 슬픔을 느끼는 것을 우리가 표상함으로써 우리도 그와 유사한 감정으로 자극받아 슬픔을 느끼게 되는 일종의 ‘연민’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기쁨은 지속적이거나 확고하지 못하며, 불완전하고 다소 부정적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완전한 기쁨을 느끼는 것은 누군가의 불행이 전혀 없을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나의 행복이란 타인의 행복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함을 암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나의 코나투스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부 정리49
“우리가 자유로운 것으로 표상하는 사물에 대한 사랑 및 증오는, 다른 사정이 똑같다면, 필연적인 사물에 대한 사랑 및 증오보다 크지 않으면 안 된다.”(202)
=> 자유로운 것 = 그 자체 = 내재적 원인 = 타당한 원인
필연적인 것 = 부분적 = 다른 외부 원인도 존재 = 타당하지 않은 원인
=> 자유로운 것으로 표상되는 사물은 기쁨/슬픔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으로서 그 기쁨/슬픔을 전부 설명할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랑/증오는 최대가 될 것이다. 반면, 필연적인 대상에 대한 사랑/증오는 이보다 적으며 부분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