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5일 세미나 공지 / 9월 11일 세미나 후기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09-22 11:53
조회
459
이번 주 토요일(9/25) 저녁 7시 30분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세미나의 마지막 시간을 진행합니다.
범위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권 (하), 6장과 결론 부분입니다.

10월 부터는 『한국사와 농민』이라는 책으로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브로델(유럽)의 관점에서 쓰인 세계사 공부에 이어 이번에는 15-18세기 한반도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어질 세미나의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공지할 예정입니다.




<9/11 세미나 후기>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5장

- 키워드로 묶어서 질문을 진행해보려 한다. 우선 1번 ::브로델이 다룬 다섯 지역에서 서술의 충실성 정도를 비교해보자.

- 1번과 상관있는 게 브로델이 왜 인도, 중국에서 끝냈는가의 문제다.
취지는 브로델이 유럽사람인데 다루는 영역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체를 다루다가 3권부터는 러시아, 터키, 인도, 중국 쪽을 다 다루어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맥락을 나름 세계라는 영역에서 자기 이론을 도출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의욕이 뒷받침되는지 질문할 수 있다. 또 유럽 세계 분석은 앞에서 보았듯 상세한데, 비유럽 지역은 브로델이 공부한 한계 속에서 분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중요도로 보면 중국이 엄청 거대한 영역이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도로 보면 상세하게 분석될 영역인데 그렇지 않고 아주 조금 다뤄진다. 인도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중으로 다뤄진다. 지역적 서술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아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했다. 그래서 목차를 보면 아메리카에 대해선 꽤 길게 다루었고, 블랙 아프리카, 러시아, 터키, 극동, 즉 대체로 순서가 다른 비중과 얼추 비슷한듯하다. 그런데 이게 브로델 자신이 판단했을 때의 비유럽 경제에서의 중요도 차이에 따른 서술인지, 유럽에서의 어떤 거리에 따라 서술순서를 잡았는지, 아니면 자기가 좀 아는 영역부터 순서를 잡은 건지 그런 설명은 없다. 우리가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대체로 극동 하면 동북아 쪽을 염두에 두는데 브로델에게 극동은 인도 쪽부터 시작, 혹은 그보다 더 서쪽으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그 지역적 유형도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지역명을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동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이 좀 인도를 제외하면 너무 스케치적이어서 극동 서술이 이 책을 통해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관점에서는 멀리 있는 터키가 좀 상세하게 다뤄지는 불균형이 있다. 어떻게들 읽었는가.

- 지배와 저항이 5장의 부제인데 그것을 유럽과 관련해서 유럽의 지배와 그에 대한 저항식으로 개괄하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유럽의 지배와 저항 등과 관련이 좀 멀지 않은가. 식민지 기록으로부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을 가져왔다. 이런 이야기가 있기도 해서.

- 그럼 이 책은 유럽 중심의 책으로서 유럽과의 관련사, 유럽연관사를 서술했다고 한정 지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앞부분에서 유럽을 다루겠다고 한정을 지은 부분도 없었던 듯싶다. 그렇다 해도 중국 같으면 비단길 같은 것을 통해 유럽과 상당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어서 지금 다뤄진 것보다는 더 상세하게 다뤄졌어야 하지 않나. 또 19번 질문에서 중국을 육상 중국, 해상 중국 이렇게 구분했고 15-18세기 조선을 유럽경제에서 보면 중국 세계권으로 포함 시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다뤄지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면 육상 중국, 해상 중국 중에서 한반도는 어디에 속한다고 보았을지 의문도 들었다. 일본은 해상 중국에 포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접할 수 있는 자료가 한정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있다.

- 5장 앞부분에 보니 유럽중심주의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기는 했다. 첫 장 마지막 문단... 이 장에서는 그렇게 보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538쪽은 극동지역에 대해 논의의 여지가 있는... 극동에서는 유럽의 지위가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대목이 있어서 말씀드린다.

- 그럼 일본, 중국 사례 살피지 못했다고 서술하는 대목이 있어서 1번 질문은 이런 한계점 안에서 쓴 걸까, 그래서 여기까지 쓴걸까라고 생각했었다. 1번은 넘어가고 2번으로 가자. 2,4,5,6,7,13번 질문들이 브로델이 서술하는 관점과 위치에 대한 문제의식과 엮인다는 생각은 했다.

- 텍스트 발췌하고 떠오르는 문제의식을 순차적으로 정리한 것이어서 브로델 생각들이 서술될 때 반복적으로 쓴 것이니 그렇게 해도 될 것 같다.

- 식민지 모국이라고 번역된 대목들이 흥미로웠다. 모국이라고 쓰면 돌아가야 할 곳의 뉘앙스... 모국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게 가리는 게 많은 것 같다. 백인 노예 드러내는 방식, 블랙아프리카 얘기할 때 폄하 뉘앙스에 대한 이상한 느낌.

- 주로 식민지와 식민지 모국의 관계에서 모국이라고 쓰는데 이 말은 브로델만 쓴다기보다 널리 쓰이는 말인 듯싶다. 식민지와 중심국가 사이의 관계를 혈족적 관계로 묘사하여, 보호하고 보호받는 관계로 서술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이 든다. 모국이 식민지에 대해 하는 게 보호만은 아니고 수탈, 감시하고, 변경화하여 예속시키고, 유혹하고 등의 작업이 모두 식민모국의 역할이기 때문에 가정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딱 맞지 않는 역할도 있는 것 같다.

- 다른 역사가에게 느껴지는 식민/제국 관계에 대한 강한 이의제기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표현들이 너무 나이스하지 않나 싶었다.

- 우리가 식민지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와도 연관성이 큰데, 식민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 텍스트에서 여실하게 나타났다는 생각이 든다. 브로델은 통상적 제국주의론(제국주의가 식민지에 대해 상품, 자본을 수출하고 원료를 수탈한다는... 맑스주의적 제국주의론)과 거리를 두면서 식민 모국과 식민지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고, 식민지라는 것이 외부(유럽)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하는 관계만은 아니었다는 부분을 애써 말하는 것... 질문9번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결국 제국주의라 불리는 식민지를 근대화시켜서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었다는 내용을 품고 있는데 그 논리와 깊이 연관될 수 있는 주장들이 있다. 특별히 영국, 미국 관계를 서술할 때 길게 서술하면서 논리적 골격이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했지만, 오늘날은 종주국으로 가는 케이스가 아니었느냐... 식민체험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주게끔 하는 서술이다. 제국주의뿐 아니라 식민주의라는 표현도 1, 2권에서는 잘 안나와서 식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가 생각을 했었는데, 식민주의 부분은 인정을 하는데, 식민주의 구도를 설명할 때는 상당히 다르게 식민지 사회 내부에서 얻게 되는 게 분명 있어서 식민단계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매개자를.... 상인 집단 등의 경우는 유럽에 대한 식민지 경제를 탐욕적으로 욕망하는 단계에 있었다고 마치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 포스트콜로니얼 쪽에 아이디어 제공한 느낌도 들었다.

- 포스트콜로니얼, 인도계 영미문화, 문학 쪽에서 나왔기 때문에 포콜 같은 경우는 식민지가 대상화되거나 주체화되는 측면이 더 초점에 놓인다는 생각이 들고, 포콜은 국가를 중심으로 주체화하기보다는 서발턴을 일정하게 주체화시키는 차원에서 전개되는데 브로델 논의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논의에 중심에 놓이면서 국가 내의 계급구성 분석을 하면서 그 국가의 상층계급, 중국 일본 등은 귀족이라 불리는 지배층이 식민화의 적극적 매개자로 설정이 되어 설명되므로 직접적 연관성보다는 식민관계를 다르게 읽을 필요에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크레올 얘기의 경우도 상인들이 마주치는 공간, 특히 말레이시아 인근에서 향신료나 부추, 금은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말레이시아어를 기초로 한 링구아 프랑카가 발전되었다는 이야기를 실제로 하고 있다. <말라카의 영광>이란 곳에 나온다. 731-732쪽에 나온다. 무역에 필요한 언어로서의 링구아 프랑카. 지금 논의에서 브로델의 서술전략 등은 식민 모국과 식민관계를 일방적 관계로 보고 지배-수탈의 관계로 상상해왔는데 브로델의 경우는 가령, 백인 중 일부가 원주민, 흑인 등과 큰 차이가 없는 고난을 겪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변명도 했다.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있을 수 있는 생각. 그러나 있을 수 있다고 해서 필요한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가부장주의를 논의할 때 여성의 피해나 고통을 언급할 때 남성들이 주로 많이 대응하는 게 남자들도 고통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식의 언어를 많이 하는데 맥락상 그런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 그런 게 4,6,7,8번 질문도 그런 것이다. 8번에서는 인종보다 경제 요인 더 중요한 것이었다라고 하는 것. 인종주의보다 경제 쪽으로 논점을 돌리는 방식. 어떤가.

- 8번 질문. 아프리카로부터 아메리카로 흑인들이 대규모로 유입된 것은 인디언들과 유럽으로부터의 이주민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식민지상의 요구가 변화를 불러오고 어떤 결과를 초래한 것은 인종적인 요인보다는 경제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경제상의 요인을 인종적 요인보다 강조하는 것이 타당할까?

- 9월 말에 나올 라인보우 책에서 읽었는데 확실히 차이는 느껴진다. 라인보우 책에서는 가해자 고통을 강조하거나 백인이 이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도둑이 누군지, 사람들이 도둑과 얼마나 싸웠는지 그런 이야기가 가득하다. 산업지역으로 들어간 투쟁으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라인보우는 백인 여성인데 아메리카 선주민, 흑인노예와 손을 잡고 도망치는 노예들을 돕는 이야기를 다룬다. 조명하는 인물형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 605쪽의 구절도 그렇다. 인종적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요인이라, 유럽의 문제만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서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3번 질문처럼 착취가 아니라 변경화(邊境化)로 이름을 바꿔 말하는 방식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읽은 것 같다. 559쪽 구절도 그렇다. 식민지 모국이 지켜줬다. 노예제 봉기를 막아줬다. 즉 누구의 편에 서서 글을 쓰는가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 543쪽 사례도 어이없었다. 그 자체로만 봐도 물타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 편이 불확실한 것 같았다.

- 식민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인정하는 듯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야 식의 이야기

- 20번 질문의 매개자라는 표현을 보자. 은폐하는 방식들..

- 지배가 외부로부터 만이 아니라 내부로부터도 이뤄진다. 그 이유가 식민지에서 식민화를 원하는 사람들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원하는 사람들이 지배권을 원하므로, 종주국이 원하는 것은 가서 협력자만 창출하면, 예속민으로 만들어준다는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책임 주체는 두 개다. 식민종주국인 당사자와 매개자 집단이 있다.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럴 때에도 매개자와 종주국의 책임을 동등하게 보는 게 사고법에서 올바르냐하는 문제다.

- 변경화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했다. 10번 토론거리다. 왜 변경화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 프론티어 변경과 변경화의 변경이 달라서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궁금했다.

- 566쪽의 변경은 프런티어다. 보통 프런티어는 개척자라는 말을 많이 쓴다. 황무지 같은 곳으로, 제일 앞에있는 것은 프론트, 앞장서서 개척한 사람들을 프론티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변경화라는 말로 번역한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토론거리 10번에서 변경화 이것은 575페이지에 나온다.
이때는 marginalization, 마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중심지대가 있으면 중심지대가 쭉 퍼져나가면서 다른 부분과 이루는 경계선 그것을 마진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세계 경제를 중심으로 봤을 때 그 중심으로 편입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닌, 중심부와 접촉하고 있되 중심부의 외부에 있는 그것을 변경이라 볼 수 있다. 이걸 한국어로 번역할 때 주변화라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중심에 봉사해야 하고, 국제분업의 강요에 의해 직분을 강요당한다는 것. 이 둘이 핵심적으로 사용된다. 착취라는 말을 피하려는 이유는 매개자들, 매개 집단들이 거기에 있고, 이익의 상당부를 매개 집단이 가져간다는 것을 상당히 강조한다. 매개 집단은 식민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착취라고 하면 모든 것을 식민지에서 종주국으로 빼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그것을 브로델은 경계하고 있다.

- 현실은 어떨까? 영국과 미국의 관계가 처음엔 착취관계였지만, 점점 변경화 그다음 독립 이럴 수 있겠는데, 미국의 경우가 일반화될 수는 없다고 본다. 한국 같은 경우는 엔엘경향이든 피디경향이든 간에 종속성, 식민지라는 말과 신식민지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종속성은 공유하고 있었는데, 90년대 초반이 되어서 그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80년대에 널리 익혔던 종속이론 텍스트들이 안 읽히기 시작하고, 식민지 반봉건(주의가 득세한다.) 안OO같은 사람이 일본으로 공부를 가서 이후에 90년대 중반에 돌아와서 중진 자본주의론이라는 것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의 입장에서는)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가 아닐뿐 아니라 한국은 식민지에 불과한 것, 하지만 중진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선진은 아니라 할지라도 후진도 아니고, 중진이라는 레벨로 뛰어 올라갔고, 사회 성격으로는 자본주의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고, 안OO등이 대학 연구소에서 뉴라이트 노선을 개발해서 한국사회에 뉴라이트 이론들이 역사서술로 퍼져나가는 모집단이 되었었는데, 그러한 이론적 변화하고 한국 사회의 현실적 변화를 생각해보면, 식민지나 신식민지라는 것이 90년대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에 안맞는 느낌은 있었고, 90년대 중반에 신자유주의로 빠르게 한국이 바뀌면서 신자유주의 담론으로 빠르게 바뀌었고, ...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이후의 한국사회를 뭐로 볼꺼냐는 논쟁적 문제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는 그 이론을 격파시킬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생겨났는데... 미군 철수문제부터 시작해서 미국에 대한 예속의 극복이 눈앞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분위기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경우도 일반화될 순 없고, 아주 특수한 상황이다. 중국의 급부상과 함께 한반도가 체제경쟁의 경쟁장으로 되고 여기에서 상당히 호조건의 교역관계나 금융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예외적 상황. 다른 나라들은 전혀 그렇게 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 변경화라는 말을 착취라는 말 대신 쓸 수 있는 나라들이 과연 몇 개나 될 건가? 브로델도 오히려 획일적으로 하나의 논리로 쓰지 말고, 노예제냐 봉건제냐, 등등. 봉건제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고.. 미국 사회에서 논할 때 남북미 아메리카를 뭘로 볼지...답은 여러 가지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착취인가 변경화인가 하는 문제도 착취관계가 강한 지역이 있고 변경화가 강한 지역이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고, 어느 하나로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문제다.

- 변경화는 한국에는 적용될 수 있는가?

- 변경화는 한국에 적용하면 딱 맞지는 않은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지금 상황에서 보면 일정 정도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한국의 가장 큰 시장으로 기능했고, 한국 자본주의 발전에서 아주 큰 동력으로 작용한 건 맞는데, 군사적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아니다. 군사적으로 보면 자립성을 전혀 같지 못한 상태이고, 정치적으로도 노무현이나 문재인 정부나 일정한 한반도의 자립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뜻대로 안됐다. 노무현은 초기에 반미에 가까울 정도로 독립성이나 자립성을 주장했지만, 역공을 받았고, 막판에는 FTA등 거의 친미로. 예속 상태에서 정책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예속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미국에 예속은 훨씬 심해지지 않았는가, 영어를 사용하는 게 과거에 운동권에서는 거의 배신자와 같은 분위기가 있었는데, 물론 학교 내에서 제도적으로는 영어를 가르쳤지만, 90년대에 운동권이 해체되면서 본격적으로 영어의 주도권이 확 올라가고. 대학이나 이런 곳에서도 거의 영미 유학자들이 발언권을 다 갖고 있고, 언론에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으로 보면 정치,문화,군사적으로는 예속이 더 심화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 80년대에 '변경' '변경화' 관점에서 착취, 수탈 문제를 달리 보려는 논의들이 실제로 좀 있었던 것일까? 이문열 대하소설 <변경>에서의 논리가(아마 80년대 운동권에 대타의식 같은 것) 지금 브로델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질문드린다.

- 있었다. 80년대를 두 개의 시기로 구분해보면 86년을 분기점으로 이전 시기, 이후 시기. 이전에는 맑스라거나 이런 사람의 담론은 공식적으론 금지 상태에 놓여있었다. 맑스의 저작, 맑스주의의 저작이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고, 원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 독일어. 맑스 원전을 읽었지만, 실제로 맑스 이야기가 학술계 일반 차원에서 부담없이 널리 읽힌 것은 87년 선거 이후 88년 정도에 맑스 도서의 해금조치가 있어서 본격 출간. 그러면 좌파적이거나 저항적이거나 이런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뭘 읽었냐면 두 종류. 하나는 종속이론 하나는 서구맑스주의 루카치나 칼 코르쉬, 프랑크푸르트학파 이런 사람들 책은 금서가 아니었다. 보통 오소독소한 맑시스트들이 수정주의라고 부르는 책들로 맑스이야기를 추론하는 식의 독해가 이뤄졌었고, 그것의 경제학 판본이 종속이론, 월러스틴, 안드레 프랑크 이런 사람들을 대표로 하는 종속이론이 주변부 이론이라고해서 널리 읽혔다. 한국사회에서 그 이후로 맑스주의로 변화된 정OO 선생같은 경우가 주변부 종속이론을 많이 소개하는 역할. 그런 주변주 이론이 한 4,5년 정도 널리 읽혔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 러시아 일본의 폐쇄/쇄국과 관련하여 동아시아의 쇄국정책(위키)에 대해 논의해 보자.

- 중국. 일본. 브로델이 다루는 이 시간에는 쇄국정책에 가까운 정책을 폈다고 하는데, 왜 그랬을까? 유럽의 기본 정책은 식민정책. 위험을 무릅쓰면서 외부로 뻗어나가는 경향을 가졌고, 유럽이라는데가 너무 좁아서 뻗어나가려했다는 말을 쓴다. 러시아 중국 조선 일본은 그런걸 찾아보기 어렵다. 몽골은 칸들이 외부로 계속 뻗어나갔던 시기가 있었긴 하다. 제주도에도 보면 몽골군대가 제주도로 와서 공격을 했다는 그런 팻말, 유적들이 있다. 애월읍에 항몽유적지. 함덕에도 삼별초의 난을 진압을 했던, 몽고군대와 고려 연합군을 기념하는 팻말 같은 게 있다. 몽골이 제주도 끝까지 왔다는 말. 그런데 일본 원정에서는 실패하고 더는 가지 않았는데. 몽골은 초원지대라서 배가 없었으므로 당연한 일. 갈 수 있는데 까지는 다 왔다는 말. 그런 게 중국 역사에서는 사실 예외적이다. 서구가 몰려오는 1800년대 연간. 일본이 1830년 이후 쇄국을 했다는 것처럼 17세기부터 시작 19세기부터 쇄국을 했고 한국도 쇄국을 했는데, 그 동기가 어디에 있었을까,

- 찾아보니까. 쇄국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온 단어라고 하고, 쇄국정책이 있던 시기에는 해적과 밀무역이 성행했는데, 특정 도시에서만 무역하게 하고 밀무역, 해적들의 무역을 통제하기 위한 것. 말은 쇄국이지만, 사실상 그 기간에 무역이 굉장히 활발했다고 한다.

- 쇄국이라고는 했지만, 조공무역도 활성화되어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일본과 한국이 모두 중국을 형님 나라로 모시고, 조공을 통해서 조공을 바치고 그러면 중국이 조공한 것보다 더 많이 되돌려주는 그런 관계를 맺었었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의 나라인 셈이다. 사실 중국 관점에서 보면 중국, 일본 한국은 친척관계 하나인 셈이다. 대 유럽, 대 아메리카 등을 상대로는 문호를 닫아놓은 상태.
중국의 정화선단은 명나라 초기. 정화는 1371-1434년. 고려 때 조선 초기. 요 때 활동했던 사람, 정화가 거느린 선단. 이 배의 무리는 포르투갈의 배에 비해서 크고 성능도 뛰어난 선단이었고, 이 정화의 선단이 남중국에서 출발해서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 저 페르시아 홍해까지 엄청나게 많은 배가 나섰던 적이 있다. 정화선단의 남해원정, 대원정인데, 이 대원정 이후에 중국은 해안 상업을 폐쇄하고 내륙 산업으로 전환을 한다. 이후 해군은 안 한다. 일본은 섬나라이니까 계속 배를 통한 무언가를 했을 것이다.
왜 중국이 해양 쪽을 포기했는가. 중국이 해양을 포기하고 내륙화 되었던 이유는 명나라 때부터 한족보다는 몽골 거란 여진 돌궐 이런 세력들이 커지고 계속 남쪽으로 쳐내려오면서 북쪽이 아나키 상태로 들어가고 있었고, 북쪽을 방어하는 게 급선무가 되고, 그래서 만리장성같은 성곽을 쌓아야 하는 긴급한 과제가 주어진다. 그래서 해양을 포기하고 대륙으로 에너지를 쏟았다는 해석이 있다. 물론 그것말고도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주된 경제활동이 농업이었으므로 쌀을 경작하는 농업에 특화되어 있는 특성이 있고 그런 것도 내륙화를 재촉하는 조건이 되겠지만,
조선같은 경우도 신라때는 해양진출을 많이 했다. 과거로 가면 갈수록 한반도는 해양 세력에 가깝다. 백제 이쪽도 일본쪽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는 등. 선박, 선원 이쪽이 많이 발전하는데, 우리가 기억하는 인물로는 장보고 같은 인물. 활동 시기가 통일신라시대 때라고 볼 수 있다. 한중일을 중계무역을 하면서, 해양활동을 했던 사람. 장보고가 새운 절도 산둥반도에 있다. 삼국, 통신, 고려 이때 해양활동이 활발했는데, 조선시대로 오면서 해양보다는 내륙에 집중. 이런 것이 나중에 개항기 시기에 서구 세력에 참패를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일본의 경우는 임진왜란 직후이고 이때에는 일본의 중심지가 나라에서 애도 쪽으로 옮겨가고 애도에서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말하자면 평화정책을 취해서 일본이 가장 큰 평화시대를 맞이함. 이때 농업에 집중. 폐쇄 시기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서구세력이 19세기에 일본을 쳐들어왔을 때에 깜짝 놀라서 개항을 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이런 식으로 중국, 조선, 일본의 쇄국정책이 공통되면서도 각기 다른 특징을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미 (노예무역등이) 성행하고 있을 때고 그러니까, 서구 문물의 배를 받아들이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던지 그런 소문이 이미 (중국, 한국, 일본에) 나지 않았을까?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민중등 사이에) 소문이 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해 봤다.

- 임진왜란 당시에 흑인 용병이 있었다고 한다.

- 백정도 사실상 외국인(지금으로치면 터키인에 가까운?)이었다는 말도 있다.

- 돌궐족 말갈족 여진족. 중국의 요하강의 동쪽에 있었던 종족이다. 고구려인도 그중에 일부이고, 돌궐 여진 말갈 혈통을 구분하기 힘든 뒤섞이는 영역. 돌궐을 유럽어로 표현할 때 터키가 된다고 한다. 터키가 한국 전쟁이 터졌을 때 제일 먼저 왔던 지원군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형재다 돌궐족은 원래가 중국에서 동이족이라고 부르는 일부였었고 형재 관계다. 이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그런 것도 있고, 킹덤이라는 영화가 있다. 여진족 이야기다. 압록강 이북 지역에 여진족이 살았는데 그 여진족이 일정하게 몰락하다가 사파강 주변에 다시 터를 잡고 전사들로 훈련된 집단이 있었는데... 압록강 이남 지역에 일부는 이주를 해서 살고 있었고, 한반도 이내로 들어와서 살고... 이 부락들 사이에 일정한 적대관계가 있었다. 조선쪽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을 일종의 배신자. 이런 부족, 사람들이 적잖이 발견이 된다.
고구려 백제 신라일부 이 모두가 다 중국의 몽골족이라거나 한족이라거나 이런 거에 떠밀려서 남하를 해서 나라를 건설한 이주 국가로 평가가 되고 있더라. 고구려족은 말할 것도 없고 백제도 그러한데 백제지역에 있던 마한, 목포라거나 진도 순천 이쪽에 전주 나주 이쪽에 있던 원주민들이 세운 나라가 마한인데 부여족이 내려와서 진압하고 세운 나라가 백제. 북쪽에서 내려온 민족 집단들이 국가를 건설하는 데서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물론 이 지역들에는 신석기때부터 이미 살고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원주민들을 지배하는 종족이 부여족이고 백제나 신라 고구려라는 나라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있었다거나 백정이나 이런 부분들은 여진족이 조선에 들어와서 살았던 것처럼 여러 민족이 한반도로 들어와서 살았던 것이고, 아무래도 소수민족이니까. 향소부곡, 하이라키의 아래 집단으로 살았다.

- 번과 23번을 이어서 해보자.
22. 19세기 이전의 인구로 보나 부로 보나 비유럽 세계가 유럽에 비해서 우세했다는 것이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 또 적어도 영국의 승리의 여명기인 나폴레옹의 파멸 직후까지도 유럽이 자신이 착취하는 세계보다 부유하지 못 했다는 것이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해서 유럽의 우위가 확립되었는가 하는 점이고 어떻게 그 우위가 유지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740)
::이 세계사의 역전 드라마와 그 전후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자
23. ::산업혁명이 왜 발전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지배의 도구, 경쟁 파괴의 도구로 되었는가?

- 요즘에 미중,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논하면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다 어쩔 것이다라는 비전, 역사적 퍼스펙티브를 내놓는 사람이 많다. 세계사에서 시계추가 서에서 동으로 넘어오고 있다고 해석하고, 이런 변화는 뚜렷해 보이기도 하는데 긴 역사에서 생각해보면 러시아라는 나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련이라는 나라는 1991년 해체 이후에 새롭게 쓰기 시작한 나라고 그 전에는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러시아를 아시아로 본다면, 1917년에 혁명을 해서 1935년이 되면은 스탈린이 집권을 해서 경제발전이 신속히 이루어져 세계 제2위의 대국으로 부상을 한다. 스푸트니크라고 하는 우주선을 미국보다 먼저 쏘아 올린다. 미국보다 앞섰다는 의미다. 그런 시기였으므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상대로 하는 경쟁적 위치는 이미 소련이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랬는데 미국의 유일지배가 나타난 건 1991년 소련의 해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고 그 다음엔 경쟁을 할만한 나라가 없었다. 일본이 제2위였는데 일본은 2차대전 이후 당연히 종속국이고 예속 상태이고 경제적으로만 발전된 상황. 소련과는 다른 상황. 미국의 하위 부속품으로 차지한 2위였다. 지금 중국은 러시아의 위치를 대체하면서 나타났는데, 미국과 소련은 경제적 협력은 이뤄지지 않았고, 교역망이나 이런 것도 이뤄지지 않았고, 은밀한 무역 형태는 있긴했지만, 어쨌든 분리된 두 영역, 경쟁적 위치에 있고, 분리되어 있으면서 그 분리의 해택을 미국과 소련 양자가 모두 누리는 그런 구도였었다. 적대적 공존이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남한과 북한처럼. 그런데 지금 중국은 미국과 경쟁하고 있긴 하지만은 하나의 경제처럼 뭉쳐있다. 중국에 미국의 기업들이 상당정도 가있고, 트럼프 이후로 많이 돌아가기는 했지만, 아직 부지기수로 남아있고, 생산기업들이 중국에 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생산된 대부분이 가는 곳이 미국시장이다. 중국에서 만든 것을 대부분 미국이 소비한다. 사실상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두 나라로 되어있고, 경제적으로는 차이메리카라고 부를 정도로 그렇게 구도화되어 있어서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 풍경과 미국과 중국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이런 상태에서 역전 드라마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중국을 단일한 국내시장으로 파악할 때는 뭐가 더 우월한가가 말이 되는데, 둘 다 한 몸처럼 얽혀있는데, 어떤 쪽을 때어내는 게 잘 안 된다. 중국의 우월 시대가 눈앞에 있다는 말을 계속 쏟아내고 있는 현실인데...

- (브로델은) 1988년에서 1990년 사이...그전에는 비유럽이 우세했고 이후에는 유럽이 우세했다라고 볼 수 있겠다. 브로델이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이 늘 강했다는 식의 관점은 아니고 유럽이 어떻게 더 강한 지역으로 바뀌었냐의 조건을 분석하고 그 이유를 유럽 세계 경제의 형성에서 찾고 화폐 금융을 핵심적인 것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중국도 상업 금융의 우위는 아니고 제조업 세계공장이라는 것처럼 세계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좀 다르고. 상업의 우위를 통해서 세계로 뻗어나간 유럽헤게모니는 유럽주위를 낳았는데, 중국 중심주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질문도 해 볼 수 있겠다.

- 산업혁명에 따른 별다른 강조는 없고 금융화폐에대한 설명은 상세하게 이뤄지는데 산업혁명은 군데군데 말은 하지만, 산업혁명의 구조를 자세히 분석한 것은 지금까지는 없었고, 이 부분은 맑스나 맑스주의가 잘 분석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산업혁명이 침략의 도구가 되고, 독점의 도구가 되었는지는 자본론같은 거에서 더 잘 설명이 되었다. 산업화. 기술의 도입과 기계화를 통해서 경제잉여를 거대하게 창출하고 창출 그 자체가 목적이 된 경제가 되기 때문에 더 큰 이윤을 낳기 위한 움직임. 이런 운동이 이 체제에 디엔에이처럼 새겨져 있고 확대재생산 발전의 도구로 사용이 되고, 이 잉여는 반드시 소비가 있어야 하고, 창고, 쌓아놓은 쓰레기는 반드시 소비가 되어야 하고,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고, 현실화되어야 하고, 그 소비의 공간을... 지역내에서의 잉여는 대외로 수출해서 외부에서 반드시 소비해야 하므로 지배의 도구가 된다. 경쟁에서 특정한 부분이 우위에 설 때에는 낮은 부분을 계속 흡수하면서 집적과 집중이 이뤄지고 그것은 독점이 된다는 것이 자본론의 서술 메커니즘이다.

- 뻗어나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몽골과 유럽. 둘 다 세계적으로 넓게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양상은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유목민적인 확장과정은 우리가 잘 알 수 없다. 몽고 같은 경우는 들뢰즈가 천개의 고원 같은 데서 유목민들의 특성, 특이성을 분석하는 긴 조항들이 있는데, 전쟁기계 이런 표현들이 등장하는데, 군사적인 방식으로 계속 외부로 뻗쳐나가는 것으로 그리고, 그런데 유럽같은 경우는 그것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내륙에서는 말을 타고 끊임없이 행진을 해나가는 모습. 유럽은 배를 타고 희망봉을 가거나 아메리카 대륙을 가거나 그런 식으로 소수의 모험가들이 지리상의 발견. 서양 관점에서의 발견행위를 해나가고 다시 돌아오고. 그러면서 나중에는 좀 더 무장을 해가지고, 무장한다고 해봐야 소수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인원을 가지고 직접적인 지배를 해봐야 가져가는 물량자체가 작기 때문에 군사적인 작전보다는 거래나 협상 이런 걸 통해서 빚을 지게 한다거나 유혹을 해가지고 상대방이 그물망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 자신의 매개자 협력자, 봉사자를 만들어서 지배영역을 넓혀나가는 방법을 썼다는 것, 그런 식의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대외 진출이 몽고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 한국의 역사를 보면, 고구려가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중고등학교 국사시간에 광개토 대왕을 중심으로 우리에게도 이런 뻗어나가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꽤 강조해서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로 다룬다. 중국의 신세대들은 그것이 한국사라고 하면 웃을 것이다. 현재 그런 놀라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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