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공지] 2/8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4장 폭동, 포그롬 그리고 혁명

작성자
bomi
작성일
2020-02-03 17:07
조회
425
2월 8일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4장 폭동, 포그롬 그리고 혁명 세미나가 열립니다.
4장을 재밌게 읽으시고 논의하고 싶은 내용을 세미나 전에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발제문의 형식은 게시판 공지글 중 <역사 비판 세미나 토론 방식에 대해>에 안내된 내용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토요일 저녁 7시 30분, 다중지성의 정원 3층 세미나실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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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세미나 기록)

<근황토크>

최근에 한 문학상 수상자가 수상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출판계의 수상제도, 계약 문제, 저작권 문제 등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A: 영세한 출판사들이 많다. 원고료가 일종의 증여와 비슷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고려 없이 작품을 상품 판매처럼만 생각하는 때도 있다.

B: 지금까지는 관행대로 하다가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다른 방식을 생각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는 비단 출판업계만의 문제는 아니고 산업 전반의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들이 많이 일어나니까 이제 그에 대한 대응이 있어야 하겠다 싶긴 하지만, 사실 이번 경우가 아주 특별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A: 이번에는 작가들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그 문제 제기가 어떻게 사회에서 수용되고, 작가가 의도한 만큼의 강도를 가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대형 출판사들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작가들의 문제 제기가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잡지는 그렇게 판매가 잘 되는 것 같지 않고, 해당 출판사도 그다지 큰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B: 출판사의 재정 문제가 좋으냐 나쁘냐만을 기준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돈을 굉장히 많이 버는 웹 플랫폼이 오히려 매우 불공정한 계약 사항을 내 거는 경우가 많다. 돈을 아무리 잘 벌어도 갑을 간의 권력 격차가 크니까 그렇게 한다.
A: 만약, 출판사의 사정과 관계없이 작가들에게 주는 인쇄를 균등하게 설정하자고 하면, 각 사업장의 개별적인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 결국 문학계가 공멸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출판이 과거보다 현저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건 사실이다. 먼저, 문학이라고 하는 행위에 대한 보상체계, 달리 말하면 예술 활동에 대해 시장주의적이고 법률주의적인 접근만이 과연 해결책일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고 본다. 사실상 문학이나 예술은 시장에서 제대로 된 노동가 치론에 따른 대가를 받기가 어려운 시장에서 배제되는 활동영역으로 점점 더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다 시장 법칙에 준하는 보상이 이뤄줘야 한다는 주장을 일반론적으로 관철시킬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새로운 작업은 그러한 보상체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뜻을 모아야 할 때가 많은데,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기업환경으로만 바라보면서 왜 거기는 다른 곳과 동일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냐고 문제 제기를 하게 되면, 피해는 오히려 그러한 곳들(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곳들)이 받게 된다. 이미 자리를 잡은 큰 출판사들은 사실상 타격이 없다.
현 정부의 최저시급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를 보지 않고 했을 때 중소기업과 영세기업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현재는 정부도 중소기업체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점점 예외 조항들이 늘어나고 있다.

B: 최저임금을 지키지 못할 정도의 중소기업들은 도태되는 게 산업 전체를 보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 정도로 수익 창출이 되지 않는 기업들은 오히려 빨리 해체되어서 산업의 다른 부분들도 재배치 되는 게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출판사의 경우 예전과 지금은 출판되는 책들의 종류와 수도 다르다. 그리고, 재정이 좋지 않은 출판사에서 질적으로 좋은 문학이 나오고 있다는 보장도 사실상 없다. 질이 좋지 않은 책들이 출판되어서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A: 어떤 상황, 어떤 계약상의 법적제재가 가해져도 큰 출판사들은 그대로 살아남는다. 문제는 작은 출판사들이다. 그리고 작은 출판사들은 인쇄 부수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설사 좋지 않은 책이 나온다고 해도 사실상 그렇게 큰 사회적 피해를 줄 수가 없다. 문제는 오히려 대형 출판사들이다.
정말 작은 잡지에 글을 싣는 분들은 전혀 고료를 안 받는 예도 있다. 이런 잡지는 외부 투고를 받았을 때도 원고료 대신 책을 주고 하면서 겨우겨우 운영되고 있다. 그래도 꼭 있어야 하는 잡지나 출판사들이 있는데, 법적 강제를 당해서 폐간되게 되면 오히려 업계 전체가 더 큰 손실을 받게 된다.

B: 당사자들 간의 합의를 해서 하는 거면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이번에 발생한 문제는 문학상을 받은 당사자들이 출판사가 내건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책에 내지 않겠다고 하는 거고, 또 그 출판사의 법적 상거래의 입장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좋지 않은 출판 관행은 수정이 되어야 한다.

A: 물론 출판사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중간에 뒤집은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고, 작가가 미리 그 계약 사항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번 일이 문제로 성립되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을 소득 관점에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작가는 사실상 글 쓰는 것만으로 시장에서 먹고살 수 없다. 시장 내에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덜한 것이다. 관심을 시장 속으로 가져왔을 때 저작권 문제는 계약자들 당사자 양쪽의 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쟁점을 정의의 문제로 가져가기는 힘든 점이 있다.
정부지원금을 받아서 출판하는 경우는 상당 기간 글을 어떤 형태로든 출판하지 못한다는 조건을 걸고 계약을 할 때가 있다. 상대적으로 원고료를 많이 받을 수 있지만, 계약 기간동안 그 글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한다. 정부 지원을 받는 학술계에서는 이러한 계약이 사실상 관행처럼 되어 있다. 그걸 사기업 수준에서 적용하는 출판사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3장, 전쟁과 강간>

먼저 각자가 돌아가며 토론하고 싶은 의제를 쭉 이야기하고 후에 토론을 시작하면 좋겠다.

O: 54쪽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전쟁은 평시에도 남성이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멸시를 극대화해 폭발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심리적 배경을 제공한다. ... 그 과정을 통해서 여성이 진짜로 중요한 세계와는 관련 없는 주변적 존재이며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수동적으로 구경만 하는 존재라는 남자들의 오랜 의혹을 확신으로 만들어준다."
전쟁과 일상의 연속을 이야기한 사람들이 많다. 전쟁을 통해 평시에도 있는 여성에 대한 멸시가 폭발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일상도 이미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상은 전쟁과 얼마만큼 유사한가? 혹은 일상은 얼마만큼 전쟁의 연속인가? 일상/정치, 전쟁의 관계는 무엇일까?

B: 국가라는 것이 사실 전쟁기계라는 표현이 나온다. 국가 통치의 메커니즘이 곧 강간의 메커니즘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은 전쟁 때 미국군대의 강간, 처벌 통계자료를 제공한다. 한국군대의 통계자료를 요구할 수 있을까? 한국군의 강간, 처벌 통계자료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미국의 구좌파들이 강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모습이 한국의 현좌파들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벵골이나 베트남전에서의 강간의 실상이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가해자들이 자신들이 아닌 경우에는 역시 매우 인도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A: 베트콩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흥미로웠다. 전시 강간의 상황을 실증적으로 자세히 이야기했는데, 상대적인 비교로서 전시에 베트콩들의 강간이 적었다고 이야기하며 그 원인을 세 가지 이야기했다. 첫째, 베트콩은 강간을 총살형으로 강하게 다스렸다. 둘째, 군사법적 조치 외에 베트남전이라는 것의 성격에서 베트콩이 처해있는 독특한 위치가 있었다. 바로 여성들이 전사로서 대거 참여하고 있어서 베트콩은 여성 병사들의 평판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베트콩은 게릴라전을 펼쳤는데, 게릴라전은 남, 여 인민 모두에게 지지를 받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는 전술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세 가지 요인이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들과 대비해서 베트콩의 조건과 처방을 우리 시대에 되살려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

B: 이는 베트콩의 특수한 상황만은 아니다. 대체로 게릴라전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보인다.

AB: 전시 강간이 어떻게 예술작품이나 혹은 보고서 등의 글에서 재현되고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도 해보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전시 강간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게 언제, 무엇을 통해서였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주 어릴 때 본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떠올랐다. 물론 그때는 '전시 강간'이라는 용어도 몰랐고, 그냥 힘든 시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정도로 보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재현이 얼마나 판타지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해 보자.

A: 페미시국광장 첫 번째 집회에서 발언자가 나와서 성폭력은 여성에게 일상이다라는 발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일상과 전쟁이 그렇게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성폭력을 굉장히 특수한 상황에 일어나는 일로 예외화 시키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B: 성폭력은 언제나 일상이었다. 다만 말을 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 강간과 평시 강간은 정도가 다르긴 하다. 너를 창녀로 만들겠다는 위협이 우리의 일상에 늘 있고 그 때문에 여성들이 항상 두려움에 떨고 모든 것에 제약을 받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상과 전시가 똑같다고 말해버리면, 실제로 더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과 전쟁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서 그 둘이 똑같다고 하는 것은 좀 어폐가 있는 것 같다.

A: 전시와 평시의 연속성 말고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B: 책에서 남성은 전쟁기계라고 했는데, 전쟁 메커니즘이 일상 운영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 등장하는 후치메이드 연구가 분명 그런 점을 보여준다. 다만 일상에서는 완화된 계약 등을 통해 이러한 메커니즘이 돌아간다. 여자들이 사회에서 재생산의 역할을 담당하는 구도 자체가 권력과 지배 관계를 품고 있는 것인데, 일상에서는 그것이 계약 등을 통해 완화된 형태로 드러나고 전쟁상황에서는 지배 관계 자체가 폭발해버린다.
흔히 강간이 남성이 자신의 씨를 많이 뿌리는 전략이라고 하는데, 전시 강간의 패턴, 강간 후에 어김없이 죽이는 그런 패턴을 보면 강간이란 씨를 뿌리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강간은 성욕과도 관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성욕의 해소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권력차를 강화하고 지배를 강화하는 게 목적이다.

A: 산업에서도 계급 간의 적대적인 만남의 과정이 평화의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계약을 맺어 구직 과정을 거쳐서 자본이 노동을 부리는 게 산업이라고 불리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자본에 굴복하고 있을 때 평화가 나타난다. 어쨌든 합의의 형태를 띤다. 역力관계를 인정하는 게 화합이다. 力관계를 뒤집으면 폭력이 일어나는 건데 力관계를 인정하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굴복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게 일정하게 힘의 안정성이 유지되니까 평화가 있는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관계도 일정한 계약관계다. 남자와 여자가 계약을 맺어서 혼인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노동 계약 관계와 차이가 없다. 힘대힘의 일정한 안정성이 정체된 형태로 유지되는 것이다.

B: 노동 계약 관계보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사회적인 기대와 관습이 덧씌워져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해소가 더 어려운 관계다. 그런 면 때문에 영패미들이 기혼여성들을 가부장제의 부역자라고 얘기한다. 결혼한다는 은 기존의 力관계를 승인하고 들어가서 사는 것이므로 力관계를 뒤집길 바라는 영패미들은 기혼여성을 가부장제의 부역자라 보는 것이다.

A: 혼인 계약과 또 다른 관계가 있다. 성매매 계약. 거기서도 포주라거나 하는 사람과의 일 종의 거래 관계다. 하지만 이 두 계약은 이질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하나의 과정의 양 측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B: 성매매는 일반적인 계약관계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상황에서 성매매가 전쟁 수단의 일부로 있었다. 그런데 책을 보면 부대 안에서 성매매를 할 수 있어도 강간이 없어지진 않는다. 성매매는 허가된 강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상황에서의 강간과 평시의 성매매가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A: 성매매가 강간이라 한다면 결혼도 본질적으로 강간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B: 강간이라기보다는, 표현의 문제인데 책에는 정복과 지배와 그것을 활용하는 고문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A: 정도 차이다. 성매매 여성들이라고 해서 그 과정을 폭력적으로 경험한다고 무조건 보기는 어렵다. 力관계의 불균등이 있는 한에서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 속에서 모든 게 강제된 것이라고 봐야지 그것들을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B: 부부 사이에서도 폭력이 발생하는데, 그래도 이 경우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들이 있다. 성매매 여성들의 기록을 읽었을 때는 이 사람들이 손님의 상태에 따라 여러 전략을 쓸 수는 있지만, 그 사람들이 폭력을 당하거나 했을 때 거기에 법적으로는 대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건 아주 큰 구조적인 한계다. 결혼한 사람들은 개인에 따라 법적인 걸 찾거나 아니거나 하지만 성매매 여성은 아예 법적으로 하기가 어렵다. 성매매 여성은 오히려 법적 호소를 하면 잡혀갈 위험이 있다. 성매매 여성에게는 사회적 낙인도 있다. 아내들은 그 정도의 배제를 받지는 않지 않는가.

A: 미국에 갔을 때, 노숙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노숙 여성들도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미국 여성들이 가정폭력을 너무 많이 당해서 이것이 노숙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데, 나와서도 도망을 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노숙 여성들은 고정된 자리에 있으면 잡히니까 계속 옮겨 다녀야 하고, 친구를 만들 수 없어서 더 고통스럽다.

AB: 결혼제도, 혼인 계약이 엄청난 속박이 되기도 한다. 남편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여성이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였지만 이혼소송이 쉽지 않았다. 3년에 걸친 이혼소송 끝에 다행히 겨우 이혼했다. 이혼한 여성은 9개월간 다른 남자와 새로운 혼인 계약을 할 수 없다는 법 조항도 있었다. 다행히 2005년에 이 법은 폐지되었는데,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계정 되어서, 지금도 법 해석에 따라 여러 변수가 생긴다고 한다.

B: 우리나라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 보면 자신의 엄마, 애인, 부인, 누나.... 사진을 찍어 올린다. 한국 사회가 아기 엄마를 맘충이라 얘기하는 게 한국 사회가 더는 재생산을 포기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한국 사회가 전쟁이 나면 얼마나 심해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도 군통계를 한 번 꼭 보고 싶다.

A: 정보공개 요청을 하면 어떻게든 응답이 있을 것이다.

B: 제주 4.3때도 굉장히 많이 강간하고 죽이고 했다. 서북청년단. 베트남 이야기 나오면서 생각이 든 게 베트남은 한국에서 대통령이 사과했을 때, 신경 안쓴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당시 승전국의 아량이라는 말도 있었다. 베트남 정부가 한국 정부의 만행을 크게 문제로 삼지 않는 게, 한국군이 만행을 저지른 게 남베트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 승전국은 북베트남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승전국의 전쟁범죄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구조가 여성을 학대하고 정복하고 고문하고 하는 것들이 그래도 여성이 시민권을 얻고 하면서 좀 나아졌고 앞으로도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기 위해선 가정이 빨리 파괴돼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O: 여성운동에서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좋은 남자가 있으면 된다는 식의 해법을 내리거나 했는데, 이런 해법은 허상이라는 걸 4B(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를 뜻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표어)가 폭로했다고 생각했다. 또 여성의 차별에는 분노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별은 받아들이면서 여성 착취를 본인이 성공한 전문직 여성이 되면 된다는 식으로 해법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려면, 전시와 평시의 연속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B: 미국에서도 레디컬 페미니즘에서는 레즈비언 운동이 있었는데, 그들은 남성과 동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구분했다. 그러니까, 남성과 여성의 구분만을 버리고 계급은 그대로 인정한 채 자신이 같은 계급의 남성과 동등해지기를 원했다.
여성들의 호소, 소위 페미니스트들의 호소에 비웃곤 하는 남자 중에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한 사람도 있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를 비난하면서 여성에 대한 남성 가해자에게는 관대하다. 똑같은 혐오의 논리를 가지고 어디서는 비난하면서 동시에 어디서는 인정한다.
레디컬페미들중에 혐오를 굉장히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혐오를 학습하나? 학교에서부터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게서 그런 혐오와 폭력의 기술을 배워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O: 그런데 의문스러운 게 왜 4B를 외치는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반자본주의 운동은 하지 않을까? 4B를 외치면서도 왜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 자신들의 성공을 향해서 달려가는가?

B: 신자본주의가 약간의 틈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수행력이 있는 여성들을 고용해 주었다. 알파걸이 자기 계급의 여자와 자기 계급의 여성을 만든다. 분리통치의 전략이 그대로 먹혀들어 간다.

A: 일본에서 신자유주의 초기의 프리터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지금의 프리터는 이중삼중으로 착취당하는 비정규직이 되었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의 우월한 지위라면, 그것이 꿈이라고 한다면, 여성주의 운동이든 어떤 운동이든 폭넓은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다.

B: 학교에서부터 사람들을 순치시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체 개념들도 많이 파괴되었다. 학교에서부터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의 경쟁자라는 인식을 많이 심어줬다. 경쟁을 통해 더 많은 권력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다 아등바등하면서 사는 것 같은데, 한국이 특히 심한 것 같다.

AB: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학교나 교육의 문제도 있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문화 예술, 드라마나 소설 등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가치 등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체나 연대 등을 이야기하면 왠지 촌스럽게 느껴지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A: 신자유주의의 경제 논리가 현재 일반문화로 스며있다. 2,30년 전 같으면 수치스러웠을 행동들을 매우 당당하게 하고 예전에는 당당했던 일들이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로 밀려난다.

B: 예전에는 수치스러웠는데 지금은 당당해진 행동들, 어떤 게 있을까?

A: 돈 버는 문제가 그렇고, 대학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80년대를 생각해 보면 대학을 다닌다는 게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대학을 어쩔 수 없이 들어가고 난 후에도 그게 기득권을 챙기기 위한 것임을 깨닫고는 빨리 그만두려고 하는 게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으로 여겨졌다. 그런 생각에 대해 마음으로 인정을 해 주었다. 스스로가 당장 대학을 떠나진 못하더라도 떠나는 사람들 혹은 떠난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다. 돈 버세요, 라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오히려 돈을 못 가지면 수치스럽거나 부끄럽게 되어버리는 가치 역전이 일어났다.

B: 부자는 범죄자다. 부자가 되겠다는 것은 당연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동시에 만든다는 것이므로 범죄다. 모두가 부자 되세요, 라는 불가능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한다. 모두가 대학 붙으세요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건 때에 사람들이 살아나오라고 기원할 때도 사실 좀 헛된 환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AB: 세월호 때는 좀 다르지 않은가? 에어 포켓 이야기 나올 때, 물론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단 몇 명이라도 생존자가 있을 거로 생각하고,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나오길 바라는 건 헛된 기원이 아니다.

A: 72시간 동안은 실제 생존, 구출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B: 선박사고는 그렇지 않다. 배가 뒤집히면 그 안에서 살아나오기는 힘들다.
미드를 보면 왜 저렇게 꽃밭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디즈니 영화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모습들을 보면 굉장히 잔인하다. 악의를 끝까지 몰고 가는데, 그게 자신에게 어떤 실익을 주어서도 아니다. 그저 남이 고통받는 걸 보면서 즐기려고 끝까지 몰아붙이는 경우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생산되고 있는 웹소설이나 웹툰에서 그런 묘사가 너무 심각하다. 재현물의 문제다.

A: 현시점에서 많은 것들이 공동체적 번영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건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최종 도달점이라기보다는 이전에 추구해왔던 노선들이 역사적 과정에서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한 후유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대체할 논리라거나 힘이라거나 실례 이런 것들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렇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여러 경로가 가능할 것이다. 진짜 파멸로 서로 줄달음을 쳐 가는 경로가 있을 것이고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사람들의 감정이 결집할 수도 있다. 뭔가 커다란 사고로 빌딩이 붕괴한다고 했을 때 생겨나는 여러 반응, 여러 경우가 그렇다. 어떤 경우는 각자가 살기 위해 서로를 집어삼키고, 어떤 경우는 힘을 합쳐서 상황을 뚫고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한다. 어떻게 나아갈지 아직 결정돼있는 건 아니다.

B: 기존의 것이 모두 파괴되어야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재해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이 재해가 일시적이고 곧 구원의 손길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 때는 서로 돕는다. 도움이 올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드러난 그런 암담한 파멸의 상황이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많이 나온다.

A: 그것 또한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B: 중학교 때 처음으로 좀비 영화를 봤다. 그때는 저런 걸 왜 만들지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온통 좀비물이다. 이전에는 아예 인간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괴생명체가 적이었다면 좀비물에서는 내 가족들이 적이 되고, 타자가 되고, 거기서 살아남는 방법이 필요하게 되는데, 현재 대부분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된 것 같다.

O: "좀비의 혁명을 욕망한다."라는 책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A: 3장의 끝에 페미니즘과 반전운동의 관계를 논하는 부분이 나온다. 서로 각계 운동을 해 나가다가 손을 내밀었는데 거절했다는 이야기....

B: 페미니스트들이 강 건너 불 보듯 했다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과연 누가 손을 잡아주지 않았는가는 더 따져봐야 할 문제다.

A: 4장 전체가 저자가 전쟁과 강간을 분석하면서 페미니스트가 전쟁에 어떻게 관여해야 하느냐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끝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과거에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저자의 감상이 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데, 너무 짧긴 하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생각이나 논리를 알 수 있으려면 좀 더 길어야 했는데 부족하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쓰여 있는 글에 기초해 해석해보자면, 저자의 생각은 전시에는 강간이 전쟁의 전술로 생각될 만큼 여성을 피지배자라거나 전리품이라거나 약탈 강화의 대상인 사물들이라거나 이런 비슷한 걸로 보는 현상들이 집중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누구보다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여성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 장의 끄트머리에 한 것이라 생각한다.

B: 페미니스트는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건 페미니스트를 남성의 시선에서 전유하려는 해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의제를 남성의 시선에서 전유하려는 해석이 일상에서도 많이 벌어진다. 지난 탄핵 집회에서도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문제의 우선순위가 항상 밀린다. 당시 여성들의 문제는 잠시 뒤로 밀어 두라는 시민단체의 논리와 맥이 같다.

A: 탄핵집회 당시에 실질적인 주도 세력이 과연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성문제에 관한 쟁점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걸 누가 운동을 주도하고 있었느냐의 문제도 돌리기는 힘들다.
그러니까 이 저자는 반전평화운동과 여성운동이 연합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고. 여성은 누구보다도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는 전쟁에 반대해야 하고, 반전운동을 하는 사람은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의 괴리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B: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은 다 페미니스트여야 한다는 말도 더 고민해봐야 한다. 여성이 누구보다 전쟁에 반대할 동기를 갖는다는 건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여성이 반드시 전쟁에 반대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이는 전 인류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책임 지우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A: 누구나 다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데, 그 반대해야 할 의무를 여성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인가?

B: 그렇다.

A: 텍스트에 좀 더 집중해보면, 저자가 양쪽 집단이 대화할 때라는 전제를 붙이고 있는데 이 말은 그동안 대화가 단절되었다는 것에 대한 성찰로 보이고. 그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든다.

B: 여성들은 남성들과 싸웠지만, 인권운동가들은 그런 여성들을 땔감으로 쓴 그런 역사가 있다. 지금도 많은 운동권이 여성운동을 배반했고, 배반하고 있다. 지금도 남성 지식인들이 페미니스트들에게 왜 여성 문제만 얘기하느냐는 식의 공격을 여성운동이 들어오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전선을 스스로 정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모두 자신이 정하는 게 여성의 운동이다.

A: 자기 정체성의 필요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건 물론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지금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이유로 해서 이 책을 읽고 우리의 결론이 전쟁 문제는 전쟁의 문제이지 여성 문제는 아니다라는 쪽으로 결론이 흘러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전쟁 문제를 여성들의 문제로만 하는 건 배격해야겠지만 여성들이 전쟁을 반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다. 여성들이 전쟁을 반대해야 한다는 것과 전쟁 문제가 여성만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B: 프롤레타리아들이 남성성을 벗어나서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초월적 입장에 서겠다는 것이 아닌가? 남성은 철저하게 남성의 자리에서 발언해야 한다.

A: 남성성의 강요는 남성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B: 남성의 위치에서 발언하라는 것과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남성이 남성의 위치에서 발언하라는 것은 각자의 성으로 받게 되는 조건들, 그러한 조건 속에 살아온 개인의 이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으로서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A: 다시 책에 주목해보면, 이 텍스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는 말은 반전평화운동과 여성운동이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반전운동의 과제를 여성이 받아안고, 반전운동쪽도 여성의 문제를 받아안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해석하고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B: 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여성운동이 반전운동의 요청을 받았고, 하지만 침묵했고, 평화운동을 함께 하지 못했고, 당시에 우리의 여성운동의 힘이 미약했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고, 따라서 여성운동의 힘이 더 커져야 하고, 더 커지는 시기를 잡아야 할 것 같다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운동의 힘이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이 다른 운동을 여성운동 아래로 복속 시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 가지만 더 짚고 가자면, 사실상 여성운동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해왔었다. 여성운동 쪽에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경우는 드물다.

A:여성운동이 힘을 키우는 것은 여성 의제만으로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의견은 그렇다.

O: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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