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 <자본론> 1권 읽기-1 |김상범

기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5 12:31
조회
65
<자본론> 1권 읽기-1

김상범(대학생)


1. 추상적 노동, 가치형태, 물신숭배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는 추상적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또한 <자본론> 1권의 가치형태론을 다루는 부분에서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과의 관계를 통해서 규정되는 듯이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언설들은 서로 모순되는가? 많은 사람들은 <자본론>의 핵심적 요소가 노동가치설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자본론>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가치형태론이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가치는 오직 상품과 상품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p.60)

‘가치형태’는 상품과 상품 사이의 관계들의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에는 두 가지 극(pole), 두 가지 위치가 있는데, 그것은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이다. ‘등가형태’에 위치한 상품은 ‘상대적 가치형태’에 위치한 상품의 가치를 표현하며, 마르크스는 재치있게 ‘등가형태’에 위치한 상품을 ‘거울’에 비유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심오한 주석을 달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도 상품과 같은 상황에 있다. 인간은 손에 거울을 들고 탄생하는 것도 아니며, ”나는 나다“라고 주장하는 피히테류의 철학자로 탄생하는 것도 아니므로 인간은 우선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된다.”(p.67)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체성(identity)을 부여받는 것처럼 ‘상대적 가치형태’에 위치한 상품은 ‘등가형태’에 위치한 상품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identity를 부여받게 된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을 역사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분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우리는 가라타니 고진의 말대로 그것을 일종의 논리적 분석이라고 보아야 한다. 마르크스가 가장 단순한 가치형태라고 부르는 두 사물의 가치관계, 즉 하나는 ‘상대적 가치형태’에 위치해 있고 다른 하나는 ‘등가형태’에 위치해 있는 두 사물의 가치 관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가치형태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기 시작하는 것은 두 위치의 ‘차이’를 보기 위함이지, 실제로 두 사물의 물물교환으로부터 화폐경제가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상품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따라 ‘가치형태’를 분류한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물신숭배’를 다루는 부분에서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상품들의 사회적 관계’에 의해 가려지는 것을 ‘물신숭배’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상품들의 사회적 관계'는 일종의 가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모순인가?

이 난점은 ‘상품들의 관계의 체계’를 일종의 언어체계 혹은 기호체계라고 볼 수 있다면 해결된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가치는...각각의 노동생산물을 하나의 사회적 상형문자로 전환시킨다.”(p.95)

이러한 기호체계는 그러나 사회적 산물이다. 그것은 노동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기호체계는 ‘추상적 노동’에 의해 탄생한다. 이러한 ‘추상적 노동’은 일종의 ‘이념적인 것’이고 ‘잠재적인 것’으로서, 경험을 통해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 존재가 요청되는 것이다. 그리고 잠재적인 것과 이념적인 것으로서의 ‘추상적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과 그 상품의 가치는 현실적인(actual) 기호체계에 기입됨으로써 현실화된다. 이러한 '추상적 노동'에 의한 상품의 생산은 상품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생산하거나 재생산한다. 또한 상품은 그 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추상적 노동에 의해 생산됨으로써 잠재적인 가치를 갖지만 이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그 상품이 '등가형태'에 위치한 다른 상품에 의해 그 가치가 표현될 때이다.

이렇게 추상적 노동을 잠재적인 것, 상품들의 관계의 체계를 현실적인 것(the actual)으로 볼 때만이 <자본론>을 모순 없이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기호체계는 ‘실재’(the real)로서의 추상적 노동을 완전히 가려서 마치 기호체계가 노동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물신숭배가 ‘자립성의 가상’에 근거한 것으로써 종교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왜 상품들은 ‘가치’를 부여받을 때 일종의 ‘상형문자’가 되고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이러한 상형문자들의 기호체계가 ‘실재’로부터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그 의미가 실재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의미가 불확정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호들은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 그 의미가 고정되어 있다.

2. 화폐와 가치형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화폐란 무엇인가? 화폐는 일종의 상품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상품과 '위상학적으로' 구별되는 하나의 상품이다. 화폐는 '일반적 등가물'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화폐가 다른 상품들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등가형태'에 위치하는 유일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상대적 가치형태'에 위치한 다른 모든 상품들은 '등가형태'에 위치한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화폐에 의해 identity를 부여받는다. 이렇게 '화폐형태' 속에서는 상품은 화폐라는 '거울'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존립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루동의 주장대로 화폐를 폐지한다고 해서 화폐 지배의 사회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품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구조 전체를 변혁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구조에서 새로운 상품이 '일반적 등가물'의 위상을 차지함으로써 또 다른 화폐가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화폐 또한 다른 상품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위상을 가질 수 있다. 마르크스의 비유를 빌리자면, 화폐라는 왕이 왕의 위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상품이라는 신하와의 관계 속에서이다. 이것은 주권권력이 다중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힘을 가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치형태론에 의거한 화폐 분석은 마르크스를 마르크스 이전과 이후의 경제학자들과 구별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스미스, 리카도 등의 고전파 경제학자들과 이를 이어받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화폐가 일종의 '힘'이자 '권력'이라는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상품과 화폐의 교환이 비대칭적이며 이러한 비대칭이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판매'와 '구매'의 비대칭이다.

3. 가라타니 고진의 가치론의 한계

이렇게 마르크스와 다른 경제학자들을 구별시켜주는 것은 가라타니 고진의 말대로 '가치형태론'에 있다. 이와 같이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에 주목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연구는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자본론>의 어떤 측면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가라타니 고진은 '가치형태론'을 너무나 중요하게 고려한 나머지, 가치론에 있어서 노동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치형태론'에 대한 강조와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는 '생산에서 교환으로' 우리의 연구방향을 변경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고, '노동'이나 '생산'이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철회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위대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가치형태'만을 강조하는 것은 구조주의적 사고나 물신숭배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한다. 상품들 사이의 관계의 체계를 강조하며, (추상적) 노동을 이론에서 배제하는 것은 이러한 체계나 구조를 변혁할 원동력을 배제해버리는 '구조주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체계나 구조에 대한 물신숭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현명하게도 '가치형태'를 강조하면서도 이것이 사회적인 (추상적)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빠뜨리지 않았고, 체계나 구조를 변혁할 힘을 이러한 노동에서 찾았다.

이렇게 가라타니 고진과 같이 '가치형태론'을 강조하고 가치론에 있어서 노동을 폐기하는 것은 이론 스스로를 딜레마에 빠뜨리게 하고, 마르크스의 위대한 점은 '가치형태론'을 강조하면서도 노동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지 않는 이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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