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호] 실체. 이미지, 사건 / 김상범

기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6 10:52
조회
869
실체. 이미지, 사건


김상범


1. 실체의 사라짐

광고 중의 광고, 광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장품 광고 속에는 현대 사회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가장 인공적이고 세속적인 ‘꾸밈’을 위한 사물인 화장품은 어떤 광고를 통해 자연스러움과 청정함, 깨끗함을 지닌 사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들은 화장품을 통해서 자신이 자연미인으로 거듭나기를 원한다.

이러한 화장품 광고는 실체에 대한 이미지의 승리를 상징한다. 이미지의 가공으로서의 ‘시뮬라시옹’의 과정이 먼저 실체보다 존재론적으로 선행하고, 더 우위에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늘날 ‘민낯’은 인위적인 시뮬라시옹의 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계산된 채로 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민낯’은 더 이상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낯’이 아니다. 실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 우리의 시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실체’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욕망은 매우 강렬하다. 이러한 강렬한 믿음과 욕망은 다음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1971년의 어느 날 인종학은 자신의 역설적인 죽음을 살짝 스쳤었다. 그날은 필리핀 정부가 8세기 동안을 외부세계와 접촉 없이 정글 깊숙이에서 살아온 몇십 명의 테이세이데이인들을 다른 주민들, 관광객들, 인종학자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다 원시 상태로 보존하기로 결정한 날이다. 이 결정은 인종학자들 자신들이 앞장서서 취해진 것이다. 그들은 원주민들이 그들과 접촉하자마자 마치 외부 공기에 노출된 미이라처럼 즉각 해체됨을 보아왔다.1)

오늘날 실체적인 것이 있다면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대상 자체의 붕괴와 해체, 그리고 이러한 작용의 결과로서 역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진’ 주체 자체의 붕괴와 해체일 것이다. 왜냐하면 주체와 대상은 모두 주체와 대상을 구성하면서 이 둘을 엮는 ‘사건’들에 의해 존립하는데, 어떠한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주체와 대상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붕괴와 해체가 실체로서의 주체와 대상에 존재론적으로 선행한다. 그러나 시스템은 주체와 대상이라는 허구 없이는 작동할 수 없기에 ‘사건’에서 ‘사건성’을 박탈하여 주체의 정체성과 대상의 정체성을 보존하도록 인위적으로 프로그램된 ‘가짜 사건’만을 허용하고. 이러한 정체성을 붕괴시키는 ‘우발적 사건’은 마치 그것이 발생하지 않은 것인양,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고 한다. 이러한 가역성의 환상 속에서 과학은 대상을 인위적으로 박제함으로써 보존하려고 한다. 보드리야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대상은 과학에게는 상실되었지만, 그러나 <처녀성>에는 손상이 가지 않아 앞으로는 안전할 것이다.2)

대상을 닿을 수 없는 곳에 보전해둠으로써 역설적으로 대상에 접근할 수 없게 된 이 사태는 ‘과학의 죽음’을 상징하는가?

2. 푸코의 권력론

아니다. 이것은 근대적 과학의 죽음만을 의미할 뿐이다. 실체로서의 주체가 실체로서의 대상에 접근한다는 인식론에 기반한 근대적 과학은 그 시작부터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주/객분리를 극복하여 ‘사건’의 과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실체'에서 '사건'으로의 이행은 '행위자'를 삭제하기에 선형적인 인과율이나 능동/수동,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푸코의 ‘계보학’은 바로 이러한 ‘사건’의 과학에 속한다.

"권력은 성의 몸통을 양팔로 꽉 붙잡는다. 의심할 여지없이 유효성의 증대이고 통제되는 영역의 확대이다. 그러나 또한 권력의 관능화이고 쾌락의 증진이다. 이는 이중의 효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서 권력의 행사 자체에 의해 일종의 충동이 권력에 주어지고, 일종의 흥분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활동을 보상하면서 감시와 통제를 더 한층 진전시키며, 농밀한 고백에 힘입어 질문자의 호기심이 새로운 활기를 얻고, 쾌락을 포위하고 노출시키는 권력 쪽으로 그 쾌락이 역류한다."3)

여기서 주체와 객체, (선형적인) 원인과 결과, 능동과 수동의 구분은 사라져 있다. 푸코가 ‘권력’을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이러한 구분법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의 역사> 이후의 푸코는 권력이 사람들을 대상화시키고 소외시키며 억압시킨다고 고발하지 않는다.

권력이 사람들을 대상화시키고 소외시키며 억압할 뿐이라면 그러한 권력은 나약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권력은 유연한 전략과 전술을 쓰지 못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강렬한 의식적, 무의식적 저항감정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인간을 소외시키며 억압한다는 가설은 권력이 사람들의 활동성과 욕구에 대해서 부정하고 억압한다는 가설인데, 이것은 오늘날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막대한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욕구와 능력을 자신의 전략과 전술에 맞게 ‘활용’할 수 없는 ‘무능력한’ 권력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자연상태'의 개인, 혹은 '순수한 개인'을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법이나 도덕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자연적인 욕망을 해방시키면 권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이것은 오히려 체제가 요구하는 시뮬라크르 이다. 이러한 사고는 권력이 주체의 소유라는 환상에 근거해 있다. 그러나 푸코의 권력론은 이러한 환상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권력이 주체의 소유를 벗어나 있다는 것은 권력관계 속에서 권력행사의 효과가 대상에만 미치지 않고 (권력행사의) 주체 자체에 어떤 효과를 낳으며, 더 나아가 (권력행사의) 주체를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권력행사는 일종의 ‘사건’이며 이것은 주체와 대상 모두를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의 권력론은 권력에 대한 관념론적이고 정태적인 접근법을 유물론적이고 동적인 접근법으로 변형시킨다. 푸코가 전략과 전쟁 모델을 강조하고 권력에 대한 법적, 도덕적, 주권적 모델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의 ‘사건성’은 주체 혹은 대상에 귀속시킬 수 없는 것이기에, 권력행사와 이에 대항하는 저항은 모두 어떤 주체에 귀속할 수 없는 것이며 주체와 대상 자체를 구성하는 권력관계 자체에 귀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저항을 저항 주체에 귀속시킬 수 없고 저항의 대상인 ‘권력행사의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권력과 무관한, 권력관계의 외부에 있는 저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으며, 그렇지만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그렇기 때문에 저항은 권력에 대해서 외재하는 것이 아니다."4)

3.사건의 해방

이렇게 ‘실체성’에 기반한 인식은 오늘날 위기를 맞고 있고, 이러한 위기는 생각보다 심각한 인식론적 위기를 가져온다. ‘실체’의 과학에서 ‘사건’의 과학으로의 이행은 선형적인 인과율이나 주/객이원론, 그리고 능동과 수동의 구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이러한 근대적인 인식론 자체가 붕괴한 상태에서 새로운 과학을 수립해야 함을 의미한다.

‘사건’은 본래 근본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우발성을 가지는데, 현대의 미디어 시스템은 이러한 ‘사건’을 ‘이미지’로 표상함으로써 이러한 사건을 통제가능하게 만드려고 하며, 이렇게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만 일어나게 한다. 미디어/담론 권력과 이와 맞물려 작동하는 하부구조적인 권력은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모델’에 의해 계산된 사건만을 발생시키려고 하고 이미지-체계에 의해 복속되지 않은 사건을 발생하지 않게 만들거나 이렇게 프로그램되지 않은 사건이 효과를 가지는 것을 저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테이세이데이인의 사례가 보여주는 함의이다.

사건을 이미지 생산의 체계에 복속시킴으로써 이미지의 조작과 지배를 통해 사건을 지배하는 것이 오늘날 고도-기술 사회에서 권력의 작동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지화할 수 없는 ‘블랙홀’로서의 사건의 생산이 필요하고, 이를 통한 ‘사건’의 해방이 필요하다.

1)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하태환 옮김, 민음사,2001 p.28
2) 같은 책p.29
3) 미셸 푸코, <성의 역사1>, 이규현 역,나남출판,1994,pp.62-63
4) 같은 책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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