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호] 바꿔야 산다ㅣ김명환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8 22:02
조회
844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3


바꿔야 산다






2000년 1월 14일, “간접선출 된 대의원 결정사항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판결은, 세 번에 걸친 간접선출을 통해 임원을 선출해오던 철도노조에, 본격적인 직선제규약개정투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철민추(철도민주노조추진위원회) 사무실에 들렀다. 마침 해고동지 구호사업으로 판매할 북한술이 들어오는 날이라 어수선했다. 직선제투쟁에 대해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북한술 구매대금 지급보증만 서고 왔다.

호소문 ‘노동귀족의 종말을 위한 협주곡’을 써 철민추 사무실에 팩스를 보냈다. 소식지에 실어도 되냐는 철민추 사무국장 이철의 동지의 전화에, 필자의 실명을 밝히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그런데, 직선제투쟁 선전팀이 구성되면 같이 하고 싶은데요.”
나는 벼르던 말을 꺼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철의 동지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휴대폰만 쳐다보며 며칠을 보낸 나는 직선제 비대위(위원장 직선제 및 철노 민주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운수쪽 대표를 맡고 있던 구로열차 유기천 지부장에게 부탁했다.

“고맙습니다.”

지부장이 짧게 대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날 직선제 비대위 집행을 맡고 있는 김병구 동지의 전화가 왔다. 그는 내게 직선제투쟁 선전팀에서 일해 달라고 했다.

“영광입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아름답게 만든다! 정확하게 만든다! 돈을 아끼지 않는다! 『바꿔야 산다』 편집방침으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제작은 서울동차투쟁으로 해고된 윤윤권 동지가 맡았다. 논설과 정세는 이철의 동지가 주로 썼다. 기사는 공투본(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지도부와 상황실 상근자들이 쓴 것을 내가 기사체로 바꿨다. 만평과 일러스트는 격월간지 『삶이 보이는 창』 일러스트를 맡고 있던 최정규 화백이 맡았다.

초고를 판에 앉히고, 초교를 출력한 다음 교정 교열 윤문을 했다. 판을 정리해 2교, 3교, 4교……, 끝없이 출력하고 판을 바꾸고 교정하고 또 출력하고 판을 바꾸고 교정하고,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바꿔야 산다』를 만들었다. 승무를 하고 쉬는 시간에 기사를 쓰고, 퇴근하면 상황실에 가 교정을 봤다. 자료가 필요하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작업 중에 졸릴까봐 밥을 먹지 않았다. 먹을 기회가 생기면, 언제 또 먹게 될지 모르니 그 식당에서 제일 비싼 걸 먹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처음이자 마지막 편집장’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바꿔야 산다』는 불티나게 팔렸다. 운동권의 주장 일색인 유인물과 다르게, 기사체 문장은 객관적이라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금방 직선제가 될 것처럼, 대세가 이미 직선제인 것처럼 객관을 가장했다. 당당한 논조로 도덕적 우위를 과장했다. 선전이 조직이고 조직이 선전인 영광을 『바꿔야 산다』는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배포 속도를 제작 속도가 따라잡지 못했다. 역동적인 투쟁의 속도도 제작 속도가 따라잡지 못했다. 사건을 쫓아가기에도 벅찼다. 꿈속에서도 『바꿔야 산다』를 만들었다.

2월 22일 저녁 9시경 공투본 농성장을 괴한들이 습격해 농성장은 피바다가 됐다. 밤새 호외를 만들었다. 마지막 교정쇄를 막 넘기려는 순간 다시 공투본이 농성장을 탈환했다는 연락이 왔다.

에이, 씨발! 삐라나 뿌리고 탈환하지……. 나는 투덜대며 다시 호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국노총이 농성장 습격 계획을 세웠다. 조직동원 문건이 입수됐다. ‘특종’이었다. 특종에 흥분한 나는 제보된 팩스를 원본 그대로 보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제보자는 큰 곤경을 치렀다. 그 빚을 갚기 위해 나는 몇 년 뒤 발전노조 설립선거 홍보를 맡았다.

『바꿔야 산다』의 특종으로 한국노총의 계획은 무산됐다. 해방공간의 노동운동처럼 쇠파이프와 각목이 날아다니는 철도노조의 현실을 보면서 문득 ‘무협지’ 생각이 났다. 어떤 무협지보다 재미있을 거 같았다.


‘김명환정통무협소설’ 타이틀을 걸고 「철노제일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제1화가 나가고 바로 『바꿔야 산다』 편집권을 박탈당했다. “조합원의 피 같은 돈으로 장난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앞으로 『바꿔야 산다』는 지도부 검토 후에 인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편집권 박탈을 해임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통보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딱 보름 후에, 나는 꼬랑지를 내리고 검열을 받아들이겠다며 기어들어가, 『바꿔야 산다』를 다시 만들었다. 공투본 공동대표 이영익 동지가 검열관에 선정됐다.

“그냥 알아서 하세요.”

검열을 하러 상황실에 들른 그는 『바꿔야 산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덕에 「철노제일검」은 무사히 연재를 마칠 수 있었다.


조합원들의 폭발적인 투쟁에 밀린 철도노조는 3월 7일 직선제로 규약을 개정했다. 53년 만에 임원선출권을 조합원이 갖게 된 것이다.

철도노조와 철도청의 공격을 막아 민주노조진영의 조직력을 보존하는 ‘시즌2’가 시작됐다. 철도청은 지도부를 줄줄이 소환했다. 나에 대한 감시와 미행도 부쩍 늘었다.

공투본은 부산에서 열린 철도노조 민영화반대집회에 참여했다. 호외를 만들기 위해 지도부로부터 기사를 받았다. 기사는 철도노조에게 협상을 구걸하는 내용이었다. 초교를 시뻘겋게 물들이며 당당한 논조로 바꿨다. 2교, 3교, 4교……, 밤새 교정을 보고 구로로 돌아와 승무를 했다. 1시간 30분 휴식이었다. 신도림에 있는 상황실로 OK교정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그런데 얼핏 스친 갈색 재킷이 수상했다. 다른 사람과 스칠 때 꼭 눈을 마주치는 버릇이 있다. 그러면 그 눈과 다시 마주칠 때 신기하게도 기억이 난다.

육교 계단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꺾었다. 갈색 재킷도 꺾는다. 다시 왼쪽으로 꺾자 갈색 재킷도 따라온다. 에이, 씨발! OK교정은 물 건너갔군……. 구로에서 신도림으로 넘어가는 달동네 고갯길을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맴돌았다.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꺾자마자 철대문 앞에 숨었다.

“까꿍!”

갈색 재킷 앞으로 쑥 나서며 양 손의 손가락을 벌려 양 볼에 대고 활짝 웃었다. 갈색 재킷은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놓았다.

구로에 돌아와 OK교정 없이 인쇄를 걸라고 전화했다. OK교정 없이 잉크를 바른 『바꿔야 산다』는 치욕의 『바꿔야 산다』가 되고 말았다. 윤윤권 동지의 실수로 철도노조에 협상을 구걸하는 초교가 인쇄된 것이다.


지도부에 대한 징계와 구속이 잇따르자 조합원들은 위축됐다. 수세에 몰린 지도부는 40미터 철탑에 올라 부당징계에 항의하는 농성에 돌입했다. 대중투쟁의 국면이 징계최소화를 위한 여론전으로 바뀐 것이다. 나는 『바꿔야 산다』가 할 일이 끝났다고 판단했다.

도서관에 가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복사했다. 드레퓌스에 대한 억울한 누명과 프랑스 관료들의 유대인 혐오를, 공투본 지도부에 대한 억울한 누명과 철도청 관료들의 민주노조 혐오로 패러디했다. 에밀 졸라는 3일에 걸쳐 썼지만, 패러디하는데 7일이 걸렸다.

매체에 발표해야 했다. 매체에 발표함과 동시에,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실렸던 ‘롤롤로’지 판형 그대로 철도판을 만들어, 대량으로 인쇄해 시민들에게 뿌릴 계획을 세웠다.

『월간조선』에 투고했다. 거절당하자 월간 『말』에 투고했다. 거절당하자 『한겨레21』에 투고했다. 철도판 『나는 고발한다』는 끝내 매체를 구하지 못했고, 지도부는 철탑에서 내려와 명동성당 농성에 합류했다.

몇 년 후, ‘조선일보 기고 거부 문인성명’ 참여를 묻는 송경동 시인의 전화가 왔다. 공투본 시절 『월간조선』에 투고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상한 말로 ‘투고’지, 사실은 ‘청탁’이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가 왜 이러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마에서 진땀이, 등짝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공투본 지도부가 명동성당 단식농성을 끝내자, 지도부에게 송별회를 요구했다.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한 지도부 덕에, 나 또한 여한 없이 퇴각할 수 있었다. 단식 후 막 복식을 시작한 지도부는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했다. 나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내 빛나는 편집장 시절과 작별했다.



* 김명환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4년 사화집 『시여 무기여』에 시 「봄」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월간 『노동해방문학』 문예창작부장, 2000년 ‘철도노조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기관지 『바꿔야 산다』 편집장, 2007년 철도노조 기관지 『철도노동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같은 제목의 시집과 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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