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호] 너무나 물리적인, 너무나 상징적인 테러 : 『대테러전쟁 주식회사』 / 최혁규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8 20:57
조회
3085
너무나 물리적인, 너무나 상징적인 테러 : 『대테러전쟁 주식회사』


최혁규 (문화사회연구소)


2000년 이후 국제 정세를 뒤흔들어놓은 두 가지 주요한 사건은 ‘9.11 테러’와 ‘리먼 사태’일 것이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미국 국방부 건물이 붕괴되며 전세계를 테러의 두려움에 떨게 했던 ‘9.11 테러’는 당시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로 인해 전지구적 수준의 대테러전쟁으로 확산되었고,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위기이자 금융 헤게모니의 위기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전지구적 사회질서를 뒤흔들어버렸다. 이 역사적 사건들은 단순히 거시적 수준에서 국제 정세에 영향을 준 것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우리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한국군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최근 통과된 ‘테러방지법’까지 우리 사회와 삶에 대테러전쟁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렇다면 이 대테러전쟁의 기원은 무엇인가? 전지구적 차원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전쟁의 주역은 누구인가? 도대체 이 전쟁은 어떻게 확산되었는가?

『대테러전쟁 주식회사』(War on Terror Inc., 2007)는 이런 질문에 답한다. 탐사보도저널리스트 솔로몬 휴즈(Solomon Hughes)는 9.11 테러 이후 대테러전쟁이 어떻게 확산되었고, 이를 추동한 세력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아래 어떤 권력관계가 숨겨져 있는지를 낱낱이 파헤쳐 폭로한다. 휴즈는 안보산업복합체(security-industrial complex)를 만들어낸 사기업들을, 즉 테러를 굴러싼 구체적인 사건과 당시의 전지구적 상황, 그리고 그 속에 개입된 다양한 인물들과 기업 등을 빠짐없이 서술하면서 은폐되어왔던 사실들을 보여준다. 그는 대테러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정치 엘리트와 산업 엘리트의 은밀한 거래를 고발하며 ‘진실의 정치’를 충실히 수행한다.

대테러전쟁의 핵심적인 문제인 안보의 사기업화는 80-90년대 사영화 경험에서부터 살펴봐야 한다. 80년대 영국과 미국은 죄수나 난민들을 구류하는 교정시설과 수용시설의 사영화를 시도했고(안보의 사영화), 군사숙소와 군사기지를 사영화해서 본격적으로 군사시장을 만들어냈던 경험도 있다(군사의 사영화). 그리고 90년대 이후 냉전의 종식과 함께 또다른 변화가 시작된다. 냉전 이후 자신의 시장을 잃었던 방위기업들은 전쟁터에 군사적 운송수단을 제공하는 급유기 사업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정부는 추가 군사인력이 없이도 더 넓은 군사적 세력 범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실패한 개발도상국에 미국이 직접 개입해 정치·군사·경제 체제를 재구축하고자 했던 기획에서 사기업은 일련의 국가건설의 프로그램 서비스를 했다. 그리고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용병시장과 같은 신흥 군산업이 생겨났고, 이 용병은 언제든지 출정 가능한 민간군대로 운영되었다.

9.11 이후 미국 정부는 실추된 미국의 위상을 복원시키고 무너진 국가의 이미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만이 아니라 영국의 블레어 총리 또한 ‘국토안보’라는 기치 아래 전쟁을 실시했다. 이런 과정에서 사영화의 대표적인 분야는 민간홍보회사이다. 이들은 전쟁을 선전하는 사영 선전기업으로, 언론을 통해 이라크를 야만과 테러로 규정하는 것에 주력했다. 진짜 ‘테러리스트’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규정하고 홍보하는 게 중요하게 되었다. 즉, 적과 야만을 설정하고 그보다 군사적·정치적으로 우월한 미국이라는 이미지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설첩보요원도 생겨났다. 비밀첩보활동을 하던 정보기관을 사영화해서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시장이 형성되었고, 비밀첩보활동을 통해 정치적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국가건설이라는 명분으로 이라크에 자리잡은 군사업체들은 부패와 폭력 등으로 인해 정치적·경제적 문제들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또한 영국과 미국은 개인들의 행위 정보를 수집하는 혁신적인 정보기술을 개발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국가가 이것을 관리하고자 했다.

휴즈는 대테러전쟁의 이면에서 이를 추동해오고 있던 안보산업복합체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즉 미국의 군사적인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안보의 사영화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상세하게 서술하며, 현재 국제 정세가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엘리트의 지휘 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것을 촉구한다. 그에게 있어서 “안보산업복합체의 영향력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첫걸음은, 안보산업복합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탐사보도저널리즘 특유의 끈질진 집착을 통해 밝혀낸 사실들의 폭로이자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사회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 대테러전쟁이 은폐하고 있었던 탐욕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진실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 권력이 우리를 어떻게 통치하고 있는지를 살핌으로써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전략적 장이 어디인지, 즉 새로운 정치의 장소는 어디인지를 모색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먼저 제기해야 할 중요한 물음이 있다. 정치 엘리트와 산업 엘리트는 미국의 지배력과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안보산업복합체를 만들어냈고, 이라크와 기타 국가들을 야만적인 적으로 규정하면서 군국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폭력을 가했다. 다시 말해, 패권국이었던 미국은 자신의 위기 속에서 안보산업복합체의 구성을 통해 전지구적 테러라는 물리적 차원의 폭력 행사만이 아니라, 물리적 폭력의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야만이자 악이라고 적을 규정하는 상징적 차원의 폭력을 행사했다. 휴즈도 후기에서 강조하고 있듯, 냉전 시기를 지나 현재까지도 “야만인에 대한 공포”, 즉 내·외부적 적의 규정은 물리적인 폭력 이전에 문화적 정체성의 차원에서 그리고 상징적인 질서의 차원에서 하나의 규범이자 폭력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까? 물리적 테러만이 아니라 상징적인 수준에서 가해지고 있는 테러에 대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저항의 지점을 어떻게 강구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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