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호] 조정환의 <개념무기들>-맑스주의자 들뢰즈의 정치학ㅣ이수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1-01-26 21:04
조회
749
 

조정환의 <개념무기들> - 맑스주의자 들뢰즈의 정치학


이수영 미술작가


조정환의 새 책 <개념무기들>은 들뢰즈의 철학과 맑시즘을 접속시켜 그들의 사유를 하나의 위상공간으로 데려온다. 이 접속은 맑스가 살았던 산업자본주의와 지금 우리가 속한 비물질노동의 인지자본주의라는 서로 다른 크로노스의 시간대를 가로지른다. 하지만 두 사상가는 자본주의를 연구한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계를 사유하며 혁명의 조건에 대한 연구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아이온의 시간에 속한다. 조정환은 이러한 이유를 들어 들뢰즈는 맑시스트라고 말한다. 같은 이유에서 맑스는 들뢰지안(deleuzian)이기도 하다.

조정환이 무기들로 삼은 들뢰즈의 개념들은 기계론, 시간론, 정동론, 주체론, 정치론, 속도론이다. 욕망하는 기계로서의 상품, 아이온의 시간으로서의 노동가치론, 정보시대의 윤리정치로서의 정동, 소수정치론의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기계적 잉여가치로서의 속도와 탈영토화의 분열흐름의 속력. 맑스와 들뢰즈 두 사람의 사유는 조정환을 변환자(transducer)로 삼아 서로 접속한다.

<개념무기들>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첫째로, 고전적 맑시즘의 노동과 가치에 대한 들뢰지안적 변환이다. 맑스의 개념인 ‘자본주의 시초축적’은 에너지의 연결, 절단 그리고 채취의 관점에서 파악되는 들뢰즈의 ‘역사적 사회기계의 계보학’으로 설명된다. 맑스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설명한 ‘자본주의 발전의 법칙’은 들뢰즈의 ‘자본주의 공리계’로 설명된다. 맑스가 가치의 척도로 삼은 크로노스의 노동시간은 인간적 잉여가치로 절대적인 것이었다. 반면 들뢰즈에겐 기계적 잉여가치가 절대적이다. 잉여가치는 인간적 노동시간에서 기계적 잉여가치의 가처분 시간으로 이동한다. 소득과 구매로 환류되는 화폐는 소득 구매와 상관없는 화폐 즉 부채, 신용이라는 화폐로 이동한다.

둘째, 들뢰즈에게도 주체 개념이 있음을 조정환은 강조한다. 들뢰즈가 해체시키고자 했던 주체는 권력장치들이 구성한 산물이자 효과인 주체들, 즉 국민, 대중, 시민, 노동자와 같은 주체들이었다. 이들은 권력장치들 바깥에 놓여 보이지 않는 자들인 비국민, 여성, 실업자, 비인간 등도 생산했다. 들뢰즈의 주체들은 미분적 애벌레-주체, 애매한 전구체, 절단하고 연결하는 분열자, 도래하는 민중과 소수자 들이다. 조정환은 자본 권력의 산물인 노동자로 환원되지 않는 혁명의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를 자본주의에서 탈주하는 벡터로서 변환하고, 혁명을 국가장치의 점거가 아닌 새로운 시공간의 창출과 점거로 변환한다. 이런 점에서 들뢰즈가 누구보다도 충실한 맑스주의자임을 분명히 한다.

셋째, 정동이론을 정보시대의 정치윤리학적 동력으로 삼고 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가 노동에 집중했다면 정보화 시대는 일상과 미시적 욕망에 주목한다. 정보화 시대인 현재 일상의 삶 전체를 압도당하며 상품화 노동화되고 있는 욕망과 감정에 정동이론은 주목한다. 그 어느 때보다 인종·성별·계급 간 혐오와 공포, 분노 등 정서적 갈등을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정보와 정서의 한계를 넘어설 힘을 들뢰즈의 정동이론에서 구하고 있다. 정동은 인종·성별·계급이라는 구성된 개체 밑으로 분열해 그 누구도 아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도 없는 차원에서 역량들의 소통관계를 창출하는 동역학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동이론은 정치윤리적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주된 관심사는 들뢰즈의 탈영토적 흐름의 가속이 파시즘적인 블랙홀로 빨려들지 않도록 할 새로운 대안을 시대적 과제로 두는 것이다. 조정환은 이 시대적 과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방법의 하나로 들뢰즈의 ‘소수정치론’과 네그리의 ‘삶정치론’을 비교한다. 현실정치에 소극적인 들뢰즈의 도주선은 공통성의 조직화에 적극적인 네그리의 다중개념과 조정환의 ‘섭정’개념에서 만난다. 들뢰즈가 도주선은 영토성에 깃들어 있다고 강조했음을 상기시키며 위로부터의 좌파정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소수정치적 섭정이라는 문제틀로 양자의 관계를 구체화해 나갈 길을 구상한다.

조정환은 자신이 삼은 시대적 과제 풀기 위해 들뢰즈를 계승하는 철학인 사변적 실재론과 신유물론에 대한 연구를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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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1년 1월 14일 〈울산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bit.ly/3qSglH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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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들뢰즈 사상의 진화』(질 들뢰즈 지음, 갈무리, 2004)


들뢰즈의 사상을 초기 저작부터 후기 저작까지 일관되게 분석하여, '제국' 이론과 '다중' 이론의 철학적 뼈대를 찾아간다. 저자는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사회사상의 발전을, 그의 철학적 핵심을 지배하는 비판적 문제의식들의 발전으로 시기별로 치밀하게 추적한다. 베르그송, 니체, 스피노자라는 현대 철학의 계보학에서 초기의 들뢰즈가 받은 영향들을 뿌리부터 살펴보며, 이를 후기 들뢰즈의 저작과 연결시키면서 살펴본다. 1부에서는 들뢰즈의 철학적 도제수업의 여정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들뢰즈와 가따리의 저작들을 들뢰즈 초기 사유의 궤적과 연결지으면서, 현대의 사회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들뢰즈 맑스주의』(니콜래스 쏘번 지음, 갈무리, 2005)


들뢰즈의 소수정치(학)과 맑스의 자본주의 동학 비판 사이의 정치적, 개념적, 문화적 공명점들에 대한 비판적이고 도발적인 탐구인 이 책은 들뢰즈를 부재하는 책, <맑스의 위대함>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첫 번째 책이다.이 책은 첫째로 소수정치학, 소수적 관점에서 들뢰즈, 맑스, 네그리를 독해한다. 둘째로 들뢰즈가 맑스를 다루는 특유한 방식을 고찰한다. 셋째로 들뢰즈의 텍스트들 속의 잠재적 맑스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들뢰즈의 텍스트들 외부에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고찰한다.


비물질노동과 다중』(질 들뢰즈, 조정환 외 지음, 자율평론번역모임 외 옮김, 갈무리, 2005)


‘신자유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신경제, 포스트 포드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한 권에 엮은 책. ‘물질노동이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 변화를 주요 현상으로 지적하고,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과 지성노동을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1부에는 ‘정동’에 관한 질 들뢰즈의 연속 강의, 2부에는 마우리찌오 랏짜라또와 삐올로 비르노의 글을 실었다. 3부에서는 새로운 주체성, 미적 생산, 시간의 재구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비물질노동 개념을 발전시켜 보려는 우리 나름의 이론적 개입을 담았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격 논쟁』(알랙스 캘리니코스 외 지음, 이원영 옮김, 갈무리, 1995)


알뛰세의 구조주의 철학과 포스트구조주의의 성격 문제를 둘러싸고 영국의 국제사회주의자들 내부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묶은 책.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을 위해 알뛰세의 구조주의적 철학 개념의 일부를 수용해야 한다는 캘리니코스의 입장과 알뛰세의 구조주의 철학과 그것의 유산으로서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해 필요한 주체성 개념을 억압하는 반(反)마르크스주의 철학이라고 보는 존 리스, 피터 빈스 등의 입장이 논쟁의 두 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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