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호] 버려진 형식주의를 세공하다 : 기이한 형식주의의 일어섬ㅣ안진국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2-05-02 15:29
조회
545
 

버려진 형식주의를 세공하다 : 기이한 형식주의의 일어섬


안진국 (미술비평가)


그레이엄 하먼의 『예술과 객체』는 다음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관계적인 것, 정치적인 것, 규정된 것, 미적이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은 모두 지금까지 오십 년이 넘도록 같은 파도를 탔다."(407) 이 마지막 문장에는 하먼이 『예술과 객체』를 쓴 동기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관계적인 것, 정치적인 것, 규정된 것, 미적이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먼이 '직서(直敍)주의적인 것'이라고 말했던 것들이다. "오십 년이 넘도록"은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고, "같은 파도를 탔다"는 '유지됐다', 혹은 '주류였다' 정도로 해석 가능하다. 이 마지막 문장을 다른 말로 바꿔본다면, '직서주의적인 것들이 포스트모더니즘 시기 동안 유지됐다'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이 문장은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쉽게 말해 포스트모더니즘 시기 동안 직서주의적인 것들이 유지됐지만,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쓴 문장이다. 이 마지막 문장 위로 이런 문장도 있다. "우리는 21세기가 펼쳐짐에 따라 지배적인 미적 매체가 변화하리라 예상해야 한다."(407) 『예술과 객체』는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예술이 보여주고 있는 헤겔주의적 접근에서 예술 자체의 본질을 찾으려는 칸트주의적 접근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예술을 세계를 규정하는 역사적·문명적 프로젝트와 결부하려 하지 말고, 예술의 자율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이전의 근대주의적인 접근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하먼은 『예술과 객체』를 통해 이전의 형식주의가 지닌 혁신을 수용하고 결함을 보완한, 비근대주의적이고 반직서주의적인 '기이한 형식주의', 즉 '객체지향존재론의 예술론'을 주장한다.

OOO는 빈칸이 아니에요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을 처음 접한 사람은 OOO를 보며 당혹스러워한다. <싱어게인>이란 음악경연 방송프로그램에서 출연자에게 "나는 _____ 가수다"라는 문구를 주고 빈칸을 채우도록 하는데, OOO는 마치 이 문구의 빈칸을 연상시킨다. "나는 OOO 가수다"처럼 말이다. 하지만 OOO는 무언가 채워야 할 빈칸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객체가 가득한 그릇이다. object-oriented ontology의 약어인 OOO는 "트리플 오"라 불린다. 한마디로 객체지향존재론이다.

『예술과 객체』는 OOO를 기반으로 객체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예술 흐름과는 다른, 예술의 고유한 존재론적 지위로 복귀할 수 있는 예술론, 철학과 협업할 수 있는 예술론을 제안한 책이다. "객체의 자율적 현존을 신봉하는" OOO는 "자족적인 객체라는 형식주의의 기본 원리를 승인"(18)하기 때문에 OOO 예술론은 형식주의를 기반으로 이론을 구축한다. 하지만 칸트의 미학적 근대주의가 지녔던 "우주를 단 두 가지 종류의 사물들, 즉 '인간'과 '여타의 것'으로 분할하는 분류학적 유형의 철학"(328)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래서 하먼이 OOO 예술론을 비근대주의적인 '기이한 형식주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과 객체』를 읽어나가면서 과속방지턱처럼 순간순간 이해가 힘든 부분을 만나게 된다. (OOO를 빈칸으로 생각한 독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먼은 1장 '객체지향 존재론과 예술: 첫 번째 요약'을 통해서 OOO의 기본 원리를 개관한다. 하지만 그 개관이 현학적일 뿐만 아니라, OOO의 개관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이 철학의 그 전반적인 상황, 즉 발생 배경이나 핵심 가치 등을 이해하기 힘들다. OOO를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전회'(material turn)로 일컬어지는 흐름의 형성 배경과 그 흐름에서 OOO의 위치와 OOO가 표방하는 주요 개념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물질적 전회는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적 전회는 현실에 접근하는 인식과정이 매개를 통해야만 하고, 그 인식은 다시 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지금껏 자연적, 생물학적, 기술적이라고 여겨온 것들이 실상은 사회역사적·정치적·문화적 구성물이며, 언어적 인식의 산물이라는 사유를 널리 퍼트렸다. 그로 인해 ‘인식론’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이때부터 존재론은 언어의 감옥에 갇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인식론에 대해 반발하며 물질을 재평가하는 물질적 전회—존재론적 전회라고 지칭하기도 한다—가 등장했다. 물질 속에서 물질들에 의존하며 물질로 살아가는 인간이 인간 너머의 존재, 즉 비인간(non-human) 존재의 역량을 발견했고,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포괄하는 물질 자체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재평가는 물질이 수동·불변·정태적인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생기·능동성·생산성·행위자성 등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여겨지게 했다.

이러한 물질적 전회의 흐름을 타고 많은 이론이 등장했는데, 바로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이론이다. 여기에는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우리가 탐구할 그레이엄 하먼의 OOO, 마루엘 데란다의 어셈블리지 이론(assemblage theory), 정치학자 제인 베넷의 신기론(new vitalism), 퀑탱 메이야수가 처음으로 주장하고, 이안 보고스트, 티모시 모튼, 레비 브라이언트 등이 이끌고 있는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 캐런 배러드의 행위적 실재론(agential realism)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신유물론의 범주에 있는 이론 중에는 인식론적 특성을 보이기도 하는데, 특히 ANT가 그렇다.)

OOO는 사실 사변적 실재론의 한 분파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주장을 하는 사변적 실재론자들에게 공통점은 오직 하나뿐인데, 그것이 바로 반-상관주의(anti-correlationalism)다. 반-상관주의는 칸트가 주장한 상관주의, 즉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부분이 세계의 사물들과 인간의 인식에 대한 상관성(correlation)뿐'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세계를 인간과 여타의 것(비인간)으로만 구별하는 이분법적인 근대주의의 주요한 시각이 바로 상관주의인데, 사변적 실재론자는 이를 강력히 거부하는 것이다. 『예술과 객체』의 중심 관념은 "감상자와 예술 작품이 함께 융합하여 제3의 상위 객체를 구성한다"(395)는 것이다. 여기에는 감상자와 예술 작품이 평평한 존재로서 각각의 객체로 존재하지만, 이것이 융합하여 또 다른 객체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 기묘한 관념은 인간과 여타의 것(비인간)으로 구별하던 이분법적인 근대주의를 벗어난 비근대주의적인 OOO의 관념이라 할 수 있다.

OOO의 핵심은 예술

OOO는 "제일 철학으로서의 미학"(27)을 말한다. OOO에서 핵심이 예술인 것이다. 그래서 하먼은 『예술과 객체』를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OOO의 예술론은 만만치 않다. 우선 OOO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OOO의 주요 개념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개념이 '실재적 객체'(real object, RO), '감각적 객체'(sensual object, SO), '실재적 성질'(real quality, RQ), '감각적 성질'(sensual quality, SQ)이라 할 수 있다. 하먼은 책에서 이것을 "표준적인 OOO 용어"(72)라고 말하면서 여러 쪽에 걸쳐(72쪽부터 77쪽 정도) 설명한다. 하지만 그 설명이 그리 쉽지 않을뿐더러 책의 목표가 예술론이기에 OOO를 기반을 둔 예술론에 방점을 두고 있어 이 용어를 아주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의 설명을 이해했더라도 과속방지턱은 여전하다.

이후에 이 용어가 약어로만 나오거나 (OOO의 용어임을 구분할 수 없게) 일반적인 단어인 양 실재적 객체, 감각적 객체, 실재적 성질, 감각적 성질 등으로 서술되면서 내용파악에 혼란을 겪게 한다. 이 책을 수월하게 읽기 위해서도, OOO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이 표준적인 OOO 용어를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 RO(real object)로 표기하는 실재적 객체는 플라톤의 이데아나 칸트의 물자체, 라캉의 실재(계)와 유사한 개념으로 인간의 인식이 닿을 수 없는 객체를 말한다. 유념해야 할 점은 OOO에서는 이데아, 물자체 등의 개념까지도 객체로 본다는 점이다. "OOO 맥락에서 객체는 고형의 물질적 사물보다 훨씬 더 넓은 것을 뜻한다. … 사건과 행위를 비롯하여 모든 것"(27)이 포함된다. SO(sensual object)로 표기하는 ‘감각적 객체’는 실재적 객체의 그림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 접촉하기 힘든 실재적 객체(RO)를 그나마 우리는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인식할 수 있는 객체가 감각적 객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의 구성요소들은 대부분 감각적 객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재적 객체라고 모든 방식의 접근이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막힌 부분과 접근 가능한 부분이 존재한다. 여기서 RQ(real quality)로 표기하는 실재적 성질은 접근이나 인식이 완전히 막혀 있는 실재적 객체의 특성을 의미하고, SQ(sensual quality)로 표기하는 감각적 성질은 어느 정도의 유추를 통해 실재적 객체에 접근할 수 있는 특성을 의미한다. 이 개념들은 다시 2 × 2의 네 가지 쌍의 긴장(tension) 관계를 형성한다. 바로 RO-RQ, RO-SQ, SO-RQ, SO-RQ이다. 하먼은 "아름다움이 예술의 본령"이라고 하면서, "오로지 RO-SQ 긴장으로 인해 우리는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76) "아름다움의 의미는 … 어떤 실재적 객체가 자신의 감각적 성질 뒤로 사라지는 상태로 명시적으로 정의된다."(77)라고 말한다. 앞 문장과 뒤 문장은 사실상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RO는 실재적 객체과 SQ는 감각적 성질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RO-SQ의 긴장, 즉 '실재적 객체와 감각적 성질의 긴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낯선 용어인 직서주의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글의 서두에 이미 암시했듯이, OOO는 반직서주의 진영에 있다. 『예술과 객체』에서는 보통 '즉물주의'로 번역되는 리터럴리즘’(literalism)을 직서(直敍)주의로 번역한다. 그 이유는 미니멀리즘을 비판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된 즉물주의와는 다른 용법으로 하먼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먼은 리터럴리즘을 '객체는 은유적으로 암시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성질들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여 혹은 그 성질들로 환언하여 규정될 수 있다’라는 신조로 본다.(19) 따라서 번역자 김효진은 ‘상상·감상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함’을 의미하는 ‘직서’(直敍)를 택하여, 하먼이 드러내고자 했던 의미를 분명히 했다. 하먼은 OOO이 반직서주의적 면모와 예술의 본령인 아름다움을 ‘RO-SQ의 긴장’에서 깨닫게 되는 것에 대해 “양초는 교사와 같다”라는 구글 검색에서 무작위적으로 찾아낸 익명의 평범한 시의 한 행으로 설명한다. 이 문장은 ‘은유’인데, 그렇기 때문에 어떤 미학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본다. 즉 인식할 수 없는 ‘실재적 객체’(RO)로서 양초와 교사가 은유라는 형태(양초=교사)의 ‘감각적 성질’(SQ)로 인해 긴장을 형성할 때, 우리를 끌어들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재적 객체가 자신의 감각적 성질 뒤로 사라지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양초’를 직서하여, “연소하면서 빛을 내도록 불이 붙는 중앙 심지가 있는 왁스 혹은 지방의 원통이나 덩어리”[양초의 정의]로, ‘교사’를 직서하여, “가르치는 사람, 특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교사의 정의]으로 바꾸어 “[양초의 정의]는 [교사의 정의]와 같다”라고 표현한다면, 양초나 교사에 관한 지식을 제공할지언정 “양초는 교사와 같다”라고 했던 표현이 만든 분위기는 사라진다. 하먼은 “직서주의는 절대 아름답지 않고, 따라서 미학의 일종도 아니다”(327)라고 말한다. 직서주의는 객체를 그 성질들로 환원하는 일종의 ‘환원주의’이기도 한데, 하먼은 『예술과 객체』를 읽는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바람을 말한다. “내가 바라는 바는 이 책의 독자가 객체를 … 환원하지 않으면서도 아무튼 객체에 초점을 맞추는 지식 없는 인지 형식들이 나란히 현존함을 인식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28)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예술이 그런 종류의 인지 중 하나다.”(28) 그래서 OOO는 예술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형식주의의 난파에서 보물을 구출하다

아름다움을 철저히 옹호하는 OOO가 형식주의인 것은 객체의 ‘자율성’을 추구한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객체를 환원할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객체를 다른 것(지식)으로 대체하거나 배제할 수 없기에 그 객체는 자율성을 확보한다. “사과는 … 맥락에 무관하게 여전히 같은 사과”(26)인 것이다. 이것은 자족적인 미학인 형식주의의 면모다. 하지만 몇 차례 언급했듯이, 하먼의 형식주의는 기이한 형식주의다. 형식주의지만, 난파된 근대적 형식주의는 아니다. 이를 위해 기존의 형식주의의 결함을 밝히고 그곳에 OOO라는 새로운 천을 덧대어 수선한다. 하먼이 OOO로 형식주의를 불러오는 방식은 임마누엘 칸트의 형식주의적 논의로 기초를 다진 후(2장 형식주의와 그 결점), 마이클 프리드가 버린 연극성을 다시 주워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놓고(3장 연극적인, 직서적이지 않은), 실추되었던 클레먼트 그린버그의 성취를 복권한다(4장 캔버스가 메시지다). 그러면서 하먼은 이들이 닿지 못했던 새로운 객체에 대한 사유와 객체들이 조형한 장면으로, 즉 OOO의 방식으로 새로운 형식주의를 드러낸다. 그뿐 아니라, OOO 방식의 형식주의가 비근대적이고 반직서적이라는 것에 쐐기를 박기 위해 근대적 형식주의가 난파된 이후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들, 일례로, 해럴드 로젠버그, T.J. 클라크, 로잘린드 크라우스, 자크 랑시에르 등의 예술론을 OOO 관점에서 비판하고(5장 전성기 모더니즘 이후), 직서적인 표현으로 보이는 다다와 초현실주의가 직서적이 아닐 수 있음을, 그렇기에 미학적 면모를 보일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6장 다다, 초현실주의 그리고 직서주의). 하먼은 OOO 예술론이 지낸 다섯 가지 특정한 함의를 말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의 제목이 '기이한 형식주의'다.

OOO가 지닌 형식주의가 기이할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과 그가 주목하는 객체가 결합하여 전적으로 새로운 객체를 형성한다"(332)라는, 칸트와 그린버그, 프리드의 형식주의가 보여주지 않았던 관념을 중심 관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하먼은 "자율적인 것은 주체도 아니고 객체도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의 연합체"(400)라는 기이한 형식주의를 말하기 위해 그 많은 문장을 한 줄 한 줄 써내려 간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과 객체』는 물질적 전회라는 새로운 계절에 발맞춰 폐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예술 현장을 찾아가 그곳에 숨어 있는 보물들을 모아 예술의 본령을 복원하려는 하먼의 모습이 서려 있다. 그의 기이한 형식주의가 예술의 나쁜 새로운 나날들을 좋은 아름다운 나날들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예술과 객체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2년 4월 5일 <프레시안>( https://bit.ly/3vZHfSe )에 게재되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브뤼노 라투르 : 정치적인 것을 다시 회집하기』(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1)


브뤼노 라투르의 진화하는 정치철학에 관한 선구적인 해설서이면서 객체지향 정치학을 발전시키려는 실험적 시도다. “라투르의 고유한 정치철학에 대한 해설서”로서 제시되는 이 책에서 하먼은, 이전의 저작 『네트워크의 군주』에서 시도한 대로, 브뤼노 라투르를 본격 철학자로서 고찰한다. 이 책에서 하먼은, 존재론과 정치철학의 관련성에 의거하여, 라투르의 사상적 단계를 세 단계로 구분하며 초기 라투르, 중기 라투르, 후기 라투르를 각각 대표하는 세 가지 저작, 즉 『프랑스의 파스퇴르화』, 『자연의 정치』, 『존재양식들에 관한 탐구』를 정치철학적 견지에서 주의 깊게 검토한다.


비유물론 : 객체와 사회 이론』(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사회적 세계에는 어떤 객체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특정한 피자헛 매장은 그 매장을 구성하는 종업원과 탁자, 냅킨만큼 실재적일 뿐만 아니라, 그 매장이 종업원과 손님의 삶에 미치는 사회적 및 경제적 영향과 피자헛 기업, 미합중국, 행성 지구만큼 실재적이기도 한가? 이 책에서 객체지향 철학의 창시자인 저자 그레이엄 하먼은 사회생활 속 객체의 본성과 지위를 규명하고자 한다. 객체에 대한 관심은 유물론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고 흔히 가정되지만, 하먼은 이 견해를 거부하면서 그 대신에 독창적이고 독특한 '비유물론' 접근법을 전개한다.


네트워크의 군주 : 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19)


현대 철학의 ‘사변적 전회’를 선도한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과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 만나는 풍경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브뤼노 라투르를 현대의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설득력 있게 고찰하고 있는 이 책은 ‘자연’과 ‘문화’의 이분화를 넘어서는 ‘실재론적 객체지향 형이상학’을 인류세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철학으로 제시한다. 브뤼노 라투르를 형이상학 철학자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와 더불어 라투르를 경유하여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공히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사물들의 우주 : 사변적 실재론과 화이트헤드』(스티븐 샤비로 지음, 안호성 옮김, 갈무리, 2021)


이 책은 비상관주의적 사고에 대한 사변적 실재론의 일반적인 주장, 즉 인간 정신이 관계하고 이해하는 방식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사물 및 객체에 대한 주장을 탐구한다. 스티븐 샤비로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현재에 지배적인 사변적 실재론 사상을 예상했고 그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한 세기 동안의 형식화와 정화를 향한 집요한 근대주의적 시도를 거쳐, 어쩌면 애초에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시대에 화이트헤드는 마치 우리의 뇌리에 스며들듯이 돌아온 것이다.


존재의 지도 : 기계와 매체의 존재론』(레비 브라이언트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0)


자연주의와 유물론을 당당히 옹호하는 한편으로, 이들 친숙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문화 자체가 어떻게 자연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브라이언트는 범생태적 존재론을 지지하는데, 요컨대 사회는 담론과 서사, 이데올로기 같은 기표적 행위주체들과 더불어 강과 산맥 같은 비인간의 물질적 행위주체들도 고려함으로써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생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브라이언트는 새로운 기계지향 존재론의 토대를 구축한다.

전체 0

전체 484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484
New [80호] 상호-비평(inter-criticism)의 수행을 따라가는 흥분의 정동ㅣ임대근
자율평론 | 2024.03.26 | 추천 0 | 조회 21
자율평론 2024.03.26 0 21
483
[80호] 『벤야민-아도르노와 함께 보는 영화: 국가 폭력의 관점에서』를 읽고ㅣ유건식
자율평론 | 2024.03.25 | 추천 0 | 조회 22
자율평론 2024.03.25 0 22
482
[80호] 관찰자들의 다중우주ㅣ이수영
자율평론 | 2024.03.14 | 추천 0 | 조회 80
자율평론 2024.03.14 0 80
481
[80호] 『초월과 자기-초월』을 읽고ㅣ강지하
자율평론 | 2024.03.12 | 추천 0 | 조회 60
자율평론 2024.03.12 0 60
480
[80호] 아직도 신이 필요할까?ㅣ김봉근
자율평론 | 2024.02.23 | 추천 0 | 조회 386
자율평론 2024.02.23 0 386
479
[80호] 『예술과 공통장』 권범철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4.02.05 | 추천 0 | 조회 352
자율평론 2024.02.05 0 352
478
[80호] 그라디바를 통한 동아시아의 ‘여성’ 정체성 모색ㅣ백주진
자율평론 | 2024.01.28 | 추천 0 | 조회 172
자율평론 2024.01.28 0 172
477
[80호] 하바로프스크블루스ㅣ김명환
자율평론 | 2024.01.23 | 추천 0 | 조회 226
자율평론 2024.01.23 0 226
476
[80호] 『초월과 자기-초월』 김동규 역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4.01.06 | 추천 0 | 조회 551
자율평론 2024.01.06 0 551
475
[80호] 살아있는 체계이자 인지 과정으로서, 개별적인 인간의 자율성을 논증하는 혁명적 생물학 연구ㅣ정경직
자율평론 | 2024.01.05 | 추천 0 | 조회 658
자율평론 2024.01.05 0 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