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2019년 12월 29일 객체지향철학과 건축미학 세미나

작성자
kyu
작성일
2019-12-29 05:18
조회
400
2019년 12월 29일 객체지향철학과 건축미학 세미나
발제자: 김성규, 최윤철




A. 순환의 준거

중성자와 중수소, 파라핀은 각료와 간첩보다 더 실재적인 것도 아니고 덜 실재적인 것도 아니므로 첫 번째 조치는 이런 객체들을 구별함을 거부하는 일이어야 한다. (P.156_8~10)
라투르에게는 실재적인 물질적 존재자들의 특권적 계급을 일단의 인공적 가공물과 분리함으로써 이런 혼란을 제거하는 것은 관념론의 일종이다. 그런 견해는 다양한 힘겨루기를 거쳐매우 조심스럽게 드러나게 되는 행위자의 어리둥절한 특질을 실재하는 것들의 특질에 관한 선험적 독단으로 대체한다. 이런 까닭에 라투르에게는 일반적인 행위자 형이상학이 유일하게 진정한 형태의 실재론인 것처럼 보인다 (P.156_20~24/1~3)

일반적으로 유물론은 탁월한 실재론적 철학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상 유물론은 행위자들의 신비를 만물의 근원에 놓여 있는 확장된 물리적 질료라는 독단적인 관념으로 대체하는 은밀한 관념론이다. (P.157_6~9)
유물론자가 아니었던 라이프니츠조차도 자연적 모나드와 인공적 조립체를 비슷하게 구별한다. (P.157_11~12)
실재에 대한 그들의 주요 기준은 항상 인공적인 것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자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P.157_17~18)
무언가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그것에서 실재성을 박탈하지는 않는다.
(P.157_22~23)

라투르는 실재적인 것을 그것의 모든 일그러진 연합 관계와 분리하는 전통적인 태도에 반대하면서 사물은 연합 관계를 더 많이 맺으면 맺을수록 점점 더 실재적인 것이 된다고 주장한다.
(P.158_21~23)

즉 사물은 본질이라는 외로운 내적 핵심보다 오히려 자신의 효과와 동맹으로만 정의된다는 관점이 라투르가 견지하는 입장의 역설적인 핵심인데, 이 관점이 라투르의 모든 획기적인 견해와 한껏 과도한 주장의 원인이다.
(P.159_13~16)

라투르는 모든 행위자에게 동등한 종류의 능력, 즉 관계를 맺고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이런 오류를 단박에 폐기한다.
(P.160_16~20)

진리는 아무 유사성도 없이 한 행위자에서 다음 행위자로 이어지는 번역의 연쇄일 뿐이다.
(P.162_19~20)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마치 전선을 끊은 후에 전등과 스위치가 어떻게 서로‘대응’할 수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전체사슬에서”(PH, 73) 양극단, 즉 주체와 객체를 취했다. 이것이 ‘순환 준거’의 의미다.
(P.162_22~23)

우리는 세계에 덧붙여진 왜곡하는 지각의 층위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필터가 더 많이 있을수록 시야가 더 맑아지는 것처럼”(PH, 137) 오로지 매개자의 수를 증가시킴으로써 실재에 접근할 수 있다.
(P.163_7~9)

두 행위자는 항상 제3의 행위자가 매개하는데, 이 사실이 순환 준거의 궁극적인 교훈이다.
(P.164_6~7)
한 종류의 존재자(자연)에 질료를 할당하고 다른 한 종류의 존재자(인간)에 형상을 할당하는 대신에 라투르는 질료/형상 구별을 세계 전체에 퍼뜨린다. 이제 모든 행위자는 두 역할을 동시에 떠맡는다.
(P.164_21~23)

라투르가 현상학파에 거의 공감하지 않는 이유는 “현상학이 오로지 인간-의식에-대한-세계를 다룰 뿐”이기 때문이다.
(P.165_2~4)

라투르가 현상학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재론을 명백히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P.166_5~6)
그럴 수가 없는 이유는 이 ‘자연’ 즉, 이제는 [또한] 인간종을 포함할 지배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통-속-의-뇌 내부에서 바라본 세계의 광경을 구성한 바로 그 요소들과 같기 때문이다.
(P.166_14~21)

이 세 견해가 다른 듯 보일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같은 기본적인 오류를 공유한다. 다시 말해서, 정확히 두가지 가능한 존재 유형ㅡ자유로운 인간 의식과 시계처럼 기계적인 인관관계ㅡ이 있는 근대주의적 정화의 틀 속에서 모두 작동한다.
(P.167_10~14)
이 입장들 가운데 어느 것도 충분히 실재론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것들이 모두 개별 객체에 어ᄄᅠᆫ 실재성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P.167)



B. 관계의 실재론

대응 모형에 따르면 인간 마음속의 지식은 마음 바깥의 실재를 복사하는데, 여기서 이런 복사 작업은 다만 ‘점근적’일 수밖에 없어서 결코 복사 대사에 완전히 도달할 수 없다. (168)

하지만 모든 관계가 복사라기보다 오히려 번역이라면 광학적 모형은 실패한다. (169)

라투르에게 유추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가 오로지 번역의 순간에 존재하고 바로 그 번역으로 사실상 규정될 때에만 명백히 작동할 것이다. (170)

라투르의 관계주의는 매우 명료하다. 전통적 실재론과 달리, 사물은 다른 사물들과 더 적게 연결되어서 실재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동맹자들과 더 많이 연결되면 될수록 더욱더 실재적인 것이 된다. (170)

“우리는 세균이 자신의 연쇄적인 역사적 표현들을 조금 더 넘어서는 실체를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짐작한다.
“조금 더 넘어서는 무언가”로서의 실체에 대한 이런 느낌이 바로 라투르가 반대하는 것이다. (170)

“이미 존재하는 실체가 시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기록하지 않는다.”라고 화이트헤드의 말을 그대로 흉내 내어 말한다. 사물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과 분리되지 않고, 사실상 “각각의 요소는 자신이 맺고 있는 연합들로 정의 될 것이기에 그런 연합들이 각각 성사되는 순간에 생겨나는 사건이다” (170-171)

라투르는 단순히 행위자들의 형이상학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이 성사될 때 생겨나는 행위자들의 형이상학을 제시. 이러한 연합들이 변화하는 한, 지속하기 보다는 오히려 영구적으로 소멸하는 행위자들이 존재한다. (171)

존재자의 전적인 일시성, 즉 존재자는 자신이 세계와 맺고 있으며 고작 잠깐만 지속하는 특정한 일련의 관계들로 완전히 정의됨 (171)

기회원인론은 신을 유일한 화강암 기둥, 즉 단단한 실체로 여기는 반면, 독실한 라투르는 신 자체도 동맹의 강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다. (171-172)

행위자는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탐험가의 일종, “어떤 존재자도 그런 탐험, 그런 일련의 사건, 그런 실험이다. 만약 푸셰가 자신의 적이 수행한 실험을 받아들여서 아카데미의 지지를 잃고 대중적 반체제 언론의 지지를 얻는다면, 그의 존재자, 즉 자연발생은 다른 존재자일 것이다. 그것은 변하지않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172)

게다가 행위를 규정하려면 관심의 초점인 기질로 인해 어떤 다른 행위자들이 수정되거나 변형되거나 교란되거나 생성되는지 묻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72)

‘실체’라는 낱말은 역사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아래에 남아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행위자를 안정되고 일관된 전체로 모으는 것을 가리킨다. (173, 안정성)

독립은 고립된 개별 사물에 대한 출발점이 아니라 길게 이어진 변환들의 최종 결과인데, “파스퇴르가 작업을 더 많이 할수록 그가 공들이는 실체는 더욱더 독립적인 것이 된다.” (173)

기괴하게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가 더 많이 있는 것이 내 차의 연료통에 휘발유가 더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인 것처럼 발효균은 변환된 후에 더 실재적인 것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173)

인간은 다른 행위자들을 형성하기도 하고 그들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비인간 행위자들이 서로 형성하는 보다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현상이다. 라투르가 통상적인 실재론적 정신에서 벗어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돌의 객관적 실재성 보다 인간 사회를 선호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주체, 대상 이원론을 거부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라, 사물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로 완전히 정의된다는 그에 관점에 있을 뿐이다. (174)

헌 관계주의적 이론은 상식에 어긋나는데, 상식은 인간의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운 행위로 이따금 이리저리 떠밀리는 불변의 물리적 고체들로 구성된 세계를 단언한다. (174)

라투르의 관계주의는 현대 형이상학의 “의무 통과점”이 된다. 이유1_우리는 행위자에 대한 라투르의 관계적 정의를 수용, 이유2_자신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서 독립된실체에 관한 되살아난 이론을 추구할 수 있다. (175)

무엇보다 명제는 행위소다. 파스퇴르, 젖산 발효균, 실험실은 모두 명제다. (175)

명제는 수다스러운 정신과 대면하는 무언의 대상들로 구성된 자연과 관련된 입장이나 사물, 실체, 본질이 아니라, 접촉하게 되는 다른 존재자들에게 주어지는 계기다. (176)

모든 행위자는 명제인데, 요컨데 함께 있을라고 결코 기대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자신들이 결성한 연합의 정확한 성격에 깜짝 놀란 요소들의 놀라운 결합이다. (176)

“명제들 사이에 확립된 관계는 크게 벌어져 있는 간극을 가로지르는 대응 관계가 아니라, 내가 부각(articulation; 서로 규정하는 존재론적 관계)이라고 부르려 하는 것이다. 부각은 이미 성사된 접촉을더 잘부각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사물들의 관계가 더 잘 부각되기 전에 그것들이 이미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는 흥미로운 상황에 부닥친다. (177)

“명제는 객체들의 고정된 경계가 없다. 명제는 다른 존재자들의 역사에서 놀라운 사건이다. 부각이 더많이 이루어질수록 더욱 더 좋아진다.”
라투르에게 행위자는 인간행위자뿐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도 있고, 자신의 동맹이 지속하는 한에서만 계속 존재하고,동맹 관계를 더 많이 맺을수록 더욱더 실재적인 것이 되며, 이 행위자를 저 행위자의 용어로 번역할 수있는 다른 한 행위자를 통해서만 연결된다. (177-178)

관계를 세계의 질료로 깊이 신봉하는 라투르의 신념은 상식도 거스르고 주류 과학도 거스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78)

사실상 라투르의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강렬한 호소력은 대체로 그 견해가 나타내는 전적으로 불분명하고 부자연스러운 특질에서 비롯된다.
발효군은 실체라기보다 명제이며 명제는 다수의 행자가 필요하다고 말하게 하는 관계에 대한 그의 신념이다. (178)

그런데 라투르에게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런 우발적 사태가 다른 명제일 것이라는 점이다. (179)

하지만 그런 행위자들조차도 객관적 사태가 아닌 이유는 그것들이 서로 맺고 있는 연합들이 사태를 전적으로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179)

라투르의 경우에 과거를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대안적 판본의 과거, 즉 문제가 되는 그 순간에는 결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을 소급하여 산출함을 뜻한다. (179)

이제 이 판본(1864년)에는 한 가지 새로운 요소, 즉 ‘사람들이 그릇되고 무계획적인 실천으로 무심코 맞서 싸운 세균’이 포함되어 있다.
요컨대 1864년 이후에 정립된 1864년은 / 1864년 내내 1864년이 산출한 것과 같은 구성요소들과 조직들, 연합들을 갖지 않았다. (180)
(=181, 명제를 모든 행위자에게 확장한다면, 이런 시도는 1864년을 부각한 다른 표현들이 그 당시에 인간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핸 채로 1864년 자체 내내 있었음을 뜻한다.)

인간들이 세균을 인식하게 되려면 새로운 명제, 즉 파스퇴르를 과거에 일어난 무생물적 사건들과 연결하는 명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육이 파스퇴르가 그런 사건들을 반드시 수정하거나 전송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행위가 모든 행위자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81)

시간은 이제 ‘선형적’종류의 시간과 ‘퇴적적’ 종류의 시간으로 나뉜다.
1)선형적: 1864년이 1865년 전에 일어난다.
2)퇴적적: 1864년 이후에 산출되어 소급하여 1864년에 일어난 일의,,, 이룹로 만들어지는 것도 1864년에 일어난 일에 포함된다. (182)


따라서 ‘공기를 통해 퍼지는 세균은 1864년에 구성되었다’라는 진술과 ‘그것은 줄곧 존재했다’라는 진술은 아무런 모순 없이 둘다 가능하다. 또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1864년 후에 공기를 통해 퍼지는 세균은 줄곧 존재했다” (183)

결국 당연하게도 라투르의 시간론은 행위자란 아무것도 유보되지 않은 채로 철저히 부각된 사건이라는 자신의 관점에서 엄밀하게 도출된다.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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