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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왜 여성에 비해 큰 권력을 갖게 되었나?

작성자
amelano joe
작성일
2018-02-24 20:39
조회
3761
남성은 왜 여성에 비해 큰 권력을 갖게 되었나?

문단, 화단, 연극계, 법조계, 교계, 대학, 정치권.... 그러니까 우리 사회 전역이 성희롱과 성추행은 물론이고 성폭력이 자행되는 공간이라는 것은, 미투 운동을 통해 그것에 대한 폭로가 집단화, 전면화되기 전에는, '공공연한 비밀'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일반화된 성추행과 성폭력이 권력관계 때문이라는 것은 여러 언론의 논평을 빌지 않더라도 이제 주지의 사실로 되었다. 그렇다면 왜 남성이 여성에 대한 우월한 권력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일까?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의 근간이 되는 성차별은 왜 생겨나게 된 것일까?

아마도 가장 오래된 것은 성별 분업일 것이다. '원죄에 대한 처벌'로서 남성이 노동을 맡고 여성이 출산을 담당한다는 식의 분업. 하지만 분업 그 자체가 남성에게 권력을 주는 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각 시대마다 이 분업적 조건 속에서 남성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는 사회관계들이 발전되어 왔다. 우리가 지금 긴급하게 제기해야 질문해야 할 질문은 '우리가 사는 현대에 남성에게 더 큰 권력을 주는 사회관계가 무엇인가?' 이다.

첫째로는 마녀사냥이다. 마녀사냥은 자본주의가 여성에 대한 공격을 통해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여성을 남성에 종속시키는 남성권력의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이었다. 실비아 페데리치가 <캘리반과 마녀>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이 이 주제이다. 그런데 남성에 의해 수행되는 이 마녀사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성추행/폭행 피해자가 항변하거나 폭로할 때 그녀를 ‘꽃뱀’으로 몰아 집단적으로 지탄하는 것이 그 한 사례이다. 꽃뱀사냥의 본질은 마녀사냥이다.

둘째로는 가사노동의 무상화다. 자본주의는 '고용된 노동'만을 노동으로 평가하고 고용되지 않은 모든 노동, 특히 가사노동을 비노동으로 평가하여 무상으로 수탈한다. 여성에 대한 수탈은 자연에 대한 수탈과 더불어 자본주의적 수탈의 양대 축을 이룬다. 실비아 페데리치가 <혁명의 영점>에서 서술하고 있듯이,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급 운동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가사노동은 여전히 무상으로 수탈되고 있다.

셋째로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억압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여성의 보통선거권은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반화되었다. 선거권에 대한 억압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는 지금도 억압되고있다.

여성의 임금노동에의 진출이 억제하기 힘든 시대적 추세가 된 20세기 이후에는 넷째의 사회관계가 작용한다. 그것은 남녀의 임금차별이다. 이것은 여성의 진출영역에 대한 정치적 제한/억압과 더불어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하는 중요한 축으로 기능한다. 여성에 대한 수탈은 임금차별을 통해 지금도 다른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조건들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축적체제를 유지하고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의 조건은 자본관계 그 자체가 제공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남성들은 이러한 관계를 수행하는 행위자들이다. 즉 남성은 자연과 여성에 대해 자본이 자행하는 수탈을 적극적으로 돕거나 적어도 방조하는 지위에 있는 행위자들이다.

여성이 이러한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여성보다 훨씬 잘 조직되어 왔고 그것의 힘으로 문화적 우월성까지 과시해온 남성집단보다 더 우월한 조직화의 수단을 발명해야 한다. 미투 운동이 보여주는 조직화의 중요한 힘은 공감이다. 남성의 조직화가 이해관계와 권력의 배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과는 달리 여성의 조직화가 정동의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태이다.

미투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월한 권력을 사용하여 여성신체와 정신에 대한 희롱, 추행, 폭행을 자행한 인물들에 대한 규탄, 고발, 제척은 아마도 긴 여정의 첫 걸음일 것이다. 여성이 더 이상 자본의 수탈대상으로 되지 않을 수 있는 실질적인 사회적 관계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하는 것이 그 다음의, 그리고 중요한 여정으로 남아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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