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8/7 『들뢰즈 맑스주의』 pp.54~83

작성자
bomi
작성일
2021-08-07 12:24
조회
251
공통진실찾기 세미나 ∥ 2021년 8월 7일 토요일 ∥ 손보미
텍스트: 『들뢰즈 맑스주의』니콜래스 쏘번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pp.54~83


1장 서론: 맑스의 위대함

<소수정치>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적인 것과 다수적인 것은, 삶의 과정들과 태도들treatments을 설명하는 표현들이다. - 소수적인 삶, 소수적인 태도. (54)

다수적 관계들은 그 자체로 고정된 동일성의 관계들이다. (54)
다수적인 것이 가수적이고 표준과 관련된다면, 소수적인 것은 집합으로부터 벗어나는 변이와 생성의 관계다. (55)

사람들은 동일화된 몰적 배치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러한 배치에 대항해 정치(학)가 출현한다. (55)

다수적인 것은 ‘아무도-아님(nobody)’ 소수적인 것은 ‘누구나-임(everybody)’이다. (55)

소수적인 것은 삶의 일탈 혹은 탈영토화의 과정이다. 소수적인 것은 집단들의 운동 속에서, 그들의 변이, 변화, 그리고 차이 속에서 나타난다. 또한 그것은 어느 누구도 ‘소유권’을 갖지 않는 것의 생성이다. (56)

소수적인 것은 동일성(다수적인 것)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소수적인 것은 언제나 이러저러한 다수적 혹은 소수적 배치 속에서 전쟁을 하고 있다. (57)

다수정치가 한 덩어리의 ‘민중’을 이루는 시민들을 전제하는 통치 체제, 즉 사법적으로 정의된 동일성 위에 기초한 통치 체제임에 반해 소수정치는 ‘민중이 없다’는 기본적 조건에서 시작한다. 이때 정치는 민중을 재현하는 영역이 아니라 민중들의 창조의 영역이다. (57)

소수적인 것이란, 그들의 운동과 표현들이 모든 면에서 ‘갇힌’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정치가 출현하는 곳은 바로 그들이 갇힌 복잡한 상황들로부터이다. 여기서 정치는 더 이상 동일성을 촉진하고 강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혁신, 실험, 그리고 뒤섞임의 과정이다. 그 속에서 (새로운) 공통체의 형식들, 실천의 기술들, 윤리적 태도들, 스타일들, 지식들, 그리고 문화적 형식들이 구성된다. (58)

맑스의 정식에서 코뮤니즘은 전체로서의 삶에 내재적인 운동이다. 그것의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는 현존을 요란스럽게 요구하고 있는 동일성이 아니다. 그것은 현존하는 관계들과의 교전을 통해 그 자신의 극복과 폐지를 모색하는 이 관계들과의 교전양식이다. 따라서 코뮤니즘 운동은 특수한 집단이 소유권을 갖는 그 무엇이 아니라 교전의 양식, 정치적 변수들과 기술들의 열린 집합이다. (59)

맑스의 코뮤니즘에 대한 들뢰즈의 공명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누구나-임(everybpdy)’을 포함하는 전 지구적 아상블라주에 대한 지각과 이 누구나-임의 소수적 극복(혹은 생성)에 대한 강조 속에서이다. (60)

들뢰즈의 코뮤니즘적 공명은 지가 베르또프의 영화 실천을 해석할 때 분명히 나타난다. 들뢰즈는 소비예뜨 혁명 초기에 활동한 베르또프가 물질의 변증법을 구성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는 에이젠쉬타인이 인간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는 변증법을 작동시킨 것과 대비된다.
베르또프는 무한한 상호작용의 물질적 우주와 물질의 눈의 비인간적 지각을 조합했다. 들뢰즈는 이 같은 조합을 “현실에 대한 코뮤니즘적 해독‘의 본질이라 주장한다. 왜냐면 그 조합은 ’물질의 공통체와 인간의 코뮤니즘의 동일성‘을 보여 준 것이었고 따라서 앞으로 올 인간, 즉 물질의 상호작용에 적실한 인간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61)
하지만 들뢰즈는 소비예뜨 국가의 경화 속에서 ’아버지의 귀환‘이 있은 이후에, 자신의 정치(학)을 묘사하는 데에 코뮤니즘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게 되었다. (62)


<탈맑스주의에 반대하여>

차이의 정치(학)에 대한 관심과 맑스주의가 서로 만날 가능성은 오랫동안 신그람시주의적 탈맑스주의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신그람시주의적 탈맑스주는 ’탈‘이라는 말이 비판적 교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많은 점에서 맑스주의적 문제틀로부터의 탈주였다. 이러한 탈주는 생산의 정치(학)에서부터 민주주의 및 시민사회의 정치(학)으로의 이동을 표현했다. (63)

신그람시주의적 탈맑스주의와 달리 들뢰즈의 맑스와의 교전은, 생산의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문제에 의해 완전히 횡단된다. 들뢰즈는 맑스를 따라 삶의 생산이라는 영역 속으로, 즉 정치, 경제, 사상, 문화, 욕망 등에 걸친 모든 과정들, 흐름들, 제약들의 지평인 생산의 영역으로 침잠한다.
맑스주의의 문제틀에 대한 들뢰즈의 교전은 이탈리아 맑스주의의 한 조류인 오뻬라이스모(노동자주의, 1960), 아우또노미아 (자울주의, 1970) 와 일정한 관계가 있다. (64)

노동이 거의 사회성의 본질이면서도 매우 문제시되지 않는 지금, 생산(혹은 노동과 자본)의 정치(학)이 재활성화되는 맥락에 잠재적 맑스를 놓는 것이 중요하다. (65)
들뢰즈의 잠재적 맑스는 오빼라이스모와 아우또노미아 조류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이 조류에 대한 소수적 독해는 들뢰즈의 맑스가 갖는 가능성과 그것의 함축들 중의 일부를 탐구할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정치적 배치에 관한 유용하도 영향력 있는 관점과 비판적으로 교전할 수 있게 한다. (65)


<각 장들의 개요>

이 책이 가진 세 가지 특수한 관심사 (66,67)
1) 이 책은 맑스의 코뮤니즘과의 공명을 강조하는 맥락 속에서 들뢰즈의 소수정치(학)의 기법과 스타일을 발전시켜 핵심적인 맑스주의 문제틀에 대한 소수적 독해를 진행시키고 또 소수적 관점에서 특정의 코뮤니즘 운동들 및 조류들과 비판적으로 교전하려 한다.
2) 이 책은 맑스에 대한 들뢰즈의 교전의 특유한 측면들을 숙고한다.
3) 이 책은, 들뢰즈의 잠재적 맑스를 채워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의 일련의 새로운 연관들과 가능성들 속에서 어떻게 열릴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해서, 새로운 자료들을 그러모아 들뢰즈의 텍스트들 외부에서 새로운 연관을 만들려고 한다.

2장: 소수정치(학)의 일반적 틀을 서술한다.
3-5장: 들뢰즈와 맑스 사이의 특유한 교전 지대에 초점을 맞춘다; 프롤레타리아트(3장) 자본, 기계, 노동, 그리고 통제 (4장), 노동거부(5장)
6장: 맑스의 코뮤니즘에 대한 들뢰즈의 관계라는 문제로 되돌아가서 이것이 민주적 정치(학)에 어떻게 하나의 도전을 제기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2장 소수정치(학): 갇힌 창조의 스타일들

들뢰즈는 일반적인 생성의 이론가도, 순수한 탈영토화의 이론가도 아니다. 들뢰즈의 과제는 삶의 복잡성에 상응하는 정치(학), 인간적인 것을 무한히 상호작용하는 물질적 우주에 어울리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정치(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75)

정치는 주로 (몰적) 동일성에 대항하는 (소수적) 차이의 과정이다. 이 둘은 물질 속의 두 경향들처럼 지속적인 상호관계속에 존재한다. 정치는 소수적 과정을 증폭시키기 위한 것이고 이는 사회정치적 관계들과의 지속적 교전을 통해서만, 그리고 삶의 방식의 복잡한 구성 속에서만 가능하다. (76)

2장에서는 복잡한 정치 과정의 기법들과 스타일들, 다시 말해 소수정치의 구성양식들을 탐구하려 한다.


<민중이 없다.>

’민중이 없다‘는 소수적 조건을 보여주는 역사
- ’민중‘의 두 가지의 위대한 역사적 모델은 미국의 ’신세계인‘과 소비예뜨의 ’프롤레타리아트‘이다. 이 형상들 속에는 아버지도, 특수성도 없이 완전히 ’새로운 인간‘의 상호 혼합적 메시아주의가 있다. 전자는 ’형제들의 사회‘ 후자는 ’동지들의 사회‘이다. (77,78)
- 하지만 이 민중들은 지속될 수 없었다. 레닌이 소비예뜨를 해체시킴과 더불어, 아버지들이 다시 질주해 왔다. (78)
- 미국과 소련 경험의 실패로 인해 (스딸린주의와 히틀러주의 속에 구성된 민중의 형식으로 ’새로운 인간‘인 민중 모델의 실패가 최종적으로 확인됨으로써) 민중의 모델이 점차 죽은 것으로 인식되는데 들뢰즈에게서 이것은, ’제3세계‘의 식민주의 경험 속에서 처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들뢰즈는 이것들이 식민화되고 있는 사람들의 실재하는 정치적 잠재력의 희망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79) 따라서 들뢰즈의 '민중이 없다'는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민중이 없다는 것은, 민중이라는 사회-정치적 형상이 최상의 경우에는 흘러넘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그 자체로 정치를 종말에 이르게 한다는 주장이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정치는 민중을 재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도래할 민중‘을 창조하는 과정으로 된다. (80)

들뢰즈-가타리는 ’민중이 없다‘는 기초적 조건으로부터 구성의 일련의 소수적 기법들과 양식들을 개발하는데 여기에서 특권적 인물은 카프카이다. (80)
들뢰즈-가타리는 ’카프카‘를, 모든 것을 (함수관계와 탈주선을 가진) 아상블라주들로 바꾸고자 하는 특정 모델의 ’글쓰기 기계‘를 가지고 심리학적, 전기적, 개인주의적 독해에 도전하는, 그리하여 그 독자들에게 실험적 효과를 유발하고자 하는 차아조의 한 형식으로 탐구한다. (81)

카프카 글쓰기 기계의 세 가지 구성요소: 편지, 단편, 장편 소설.
장편소설은 사회적 아상블라주들을 강조하고 일기는 ’리좀 그 자체‘로, 모든 작품이 분배되는 환경이자 장소로 간주된다. (81)

소수 민중들의 문학은 ’역사학‘과는 완전히 다른 일종의 민족 ’일기‘이다. 들뢰즈-가따리의 독해에서 이 소수 민중의 일기는, 민중이 없는 때에, 소수자 구성의 패러다임적 조건으로 된다. (82)

소수문학의 규정적 특징들 (82)
1) 그것들은 일반적으로 ’탈영토화라는 높은 계수‘를 가지고 언어와 주요 형식들에 영향을 미친다.
2) 개인은 사회적 관심사에 의해 완전히 횡단되며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3) 그리고 그것들은 ’집단적 발화‘의 양식을 만들어낸다.

”소수 문학이란 소수 언어로 쓰여진 문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자들이 다수 언어로 만들어내는 문학을 말한다.“_ 들뢰즈-가따리 『카프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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