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래스 쏘번, ?들뢰즈 맑스주의: 민중이 없는 시대의 소수정치?, pp.113-145

작성자
no-mad
작성일
2021-09-04 14:17
조회
242
니콜래스 쏘번, ?들뢰즈 맑스주의: 민중이 없는 시대의 소수정치?, 조정환 옮김, 갈무리, pp.113-145

소수적 저자로서의 맑스
1.
● ?리비도 경제?에 실린 「맑스라는 이름의 욕망」에서 료타르는 맑스의 리비도 경제 속에서 자본을 하나하나 축자적으로 ‘기소’하려는 강박관념(‘노인’ 맑스, ‘고발자’)과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개념적이고 실천적인 설명의 지속적 지연(인류와 자연의 공산주의적 화해를 열망하는 ‘소녀 맑스’) 사이의 분열을 식별한다. 114
2.
● 료타르의 주장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맑스의 열한 번째 테제(‘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하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를 중시하는 것이다. 료타르의 주장은 맑스 속에서 두 가지 이항대립을 설정한다. ‘기소/실천/의 이항대립과 ’자본/(프롤레타리아트의 ‘어울리는 애인’인) 비유기적 자연의 충만한 몸체‘의 이항대립이 그것이다.
● 스피박은 열한 번째 테제가 이론과 실천 사이의 이항대립을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자기동일적인 것을 지속적으로 ‘다르게 만들려고’ 하는 비판과 실천의 형식에 대한 권고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틀에서 볼 때, 맑스의 자본 비판(료타르가 말하는 ’기소‘의 계기)은 그의 교전의 한 측면이 아니라 그의 실천에 내재적이다. 극복의 운동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불러내어지는 것은 (노동자 운동의 환경의 일부인) 자본과의 이 매혹적인 교전 속에서, 이 비판 속에서이다. 115-116
3.
● 이론/실천 및 프롤레타리아트/자본의 이항대립을 소수정치학으로 간주할 수 있다. 116
● 맑스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노동자 운동의 일부였지만, 그 노동자 운동은, 맑스가 웬일인지 대표해야만 했던 이미 도달한 민중이 아니라 형성중인 민중이다. 116
● 맑스는 ?자본?을 쓰다가 말다가를 부단히 반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맑스는 노동자 운동의 투쟁에 참가했다가 또 그것으로부터 물러나곤 한 것으로 유명하다. 117
● 그는 분명히 ’사소한 주제‘인 그 특별한 사건에 끼어들어 골치를 썩이면서 그것과 교전한다. 118
● 자본이 자신의 한계를 부단히 극복하기 때문에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을 관통해서 그 자신을 극복할 필요 때문에 야기되어진 [맑스의] 이 연기는 강렬하고 복잡한 교전이 발생하게 되는 지평을 구축하는 일에 내재적이다. 119

가따리의 집단 분석
1.
● 나[저자]는 집단 형성에 관한 가따리의 연구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가따리의 정치적, 임상적, 그리고 이론적 작업은 집단 형성의 문제로 가득 차 있다. 그 자체로, 집단이라는 문제는 그의 작품을 전체로서 읽기 위한 하나의 관점이다. 그리고 실제로 소수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집단 형성의 문제이다. 내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좌파-정치 환경에 관한 가따리의 연구작업이다. 119-120
2.
● 들뢰즈와 가따리가 정치 집단들과 맺은 각각의 관계에서 보면, 들뢰즈의 정치학이 특별히 실천적이지는 않았던 반면, 가따리는 급진 정치에 평생 동안 가담했다. 가따리의 기반은 아카데미에 있지 않았고 라 보르드의 정신병원에 있었다.
3.
● 포스트 68 소집단들의 독단주의에 대한 가따리의 감각이 점차 증가하는 것을 고려하면, 가따리가 그것에서 빠져나올 길을 제시한 것은 들뢰즈였던 것으로 보인다. 122
● 집단에의 몰입과 거리두기 사이의 긴장은, 가따리는 ‘집단의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홀로 있는 사람’이었다는 들뢰즈의 언급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집단 형성에 대한 이러한 감각은 ‘떼-형태’(pack-form), 즉 집단 관계의 소수적 양식에 대한 들뢰즈와 가따리의 설명에 중심적이다. 123
4.
● 가따리는 소수적 교전의 긴장과 정동적 복잡성을 보여주면서, 급진 집단들에의 연루가 자신의 정치적 기획에 핵심적이엇다고 여전히 완강하게 주장한다. 124
5.
● 가따리가 자신의 집단분석 이론을 정교화하는 것은 그 자신의 교전 양식의 맥락 속에서이다. 124
6.
● 가따리의 정치집단 분석은 자생성주의적인 아나키즘과 레닌주의 정당의 ‘민주집중제’ 사이의 이분모델에 대한 거부에서 시작한다. 125
● 문제는, 들뢰즈가 집단적 생산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통합unification’이라고 서술한 형식을, 그리고 가따리가 사회체를 횡단하는 발명의 화학적 ‘결정’ 모델을 제시한 형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 들뢰즈의 ‘집중주의’ 혹은 ‘통합’은 집단과 대중 형성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리비도적 관계를 ‘분석하기’의 과정으로 제안된다. 125
7.
● 가따리는 집단이라는 일반적 문제틀을 집단 형성의 두 종류 혹은 두 양식(주체집단과 종속집단)에 관한 분석가로 제시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가따리가 집단에 대해 더욱 신중해졌다는 점이다. 126
● ‘주체집단들’은 소수정치의 집단상관항이다. 그들은 소수적 실천을 행하려 하며 외부로 개방되려 하고 발화와 집단적 구성의 혁신적 형식을 발전시키려 한다. 이 속에서 그들은 집단의 ‘죽음’을 허용한다. 다른 한편, ‘종속집단들’은 조직의 몰적 양식들을 현시하며, 적대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외부에 대항하여 [집단의] 응집성을 유지하려 하는 집단들이다. 127
8.
● 종속집단의 고전적 모델은 공산당과 그것의 뜨로츠끼주의적 분파들이다. 가따리가 보기에 이 모델들도 소집단들로 나타난다. ... 가따리는 이 모델의 출현을, 그가 1917년의 ‘레닌주의적 절단’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 위치시킨다. 128
9.
● 가따리는 사건이 ‘결정되는 상이한 질서들’에 대한 좀더 복잡한 분석을 제시한다. 그는 특히 레닌에, 볼셰비즘의 조직적 정치적 이론적 윤리적 측면세 초점을 맞추면서, 1903년 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2차 대회의 말미에 있었던 ‘근본적 레닌주의적인 돌파의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129
● 가따리는 이 ‘전문적 볼셰비키 스타일과 태도, 그리고 새로운 ’투사 주체성‘을 진술의 도그마로의 경직화, 발산적 발화를 통제하는 기능을 하는 지배적 발화의 형성, 원칙 문제에서 거의 포리부동할 정도의 전술적 유연성과 결합되어 분열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취미, 개방성을 제한하는 기능을 하며 슬로건과 교조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고무하는 무력함의 새로운 영역, 그리고 그 이후로 ’대중들‘로 알려지곤 한 사람들에 대한 경멸적 태도 등으로 서술한다. 그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이 투사 모델이다. 129-130
10.
● 분석가로서의 주체 집단에 대한 들뢰즈와 가따리의 이해로 되돌아가면서, 우리는 레닌주의적 절단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들뢰즈와 가따리가 단순한 반당 입장을 제시한다고 추론해서는 안 된다. 130
● ?선언?은 ’코뮤니즘이라는 유령에 관한 부르주아지의 ‘소문’에 ‘당 자체의 선언’을 대치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당은 일단의 조직적 규약이나 강령으로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체에 대한, 그리고 현대의 사회주의 조직에 대한 내재적 비판으로 제시된다. 131
11.
● 맑스는 공산당을 뚜렷이 구본되고 시간을 초월한 조직 형식으로 제시하지 않고 투쟁하는-프롤레타리아의 내용에 내재적인 (그리고 그 내용은 다시 자본의 특수한 배치에 내재적이다) 교전양식으로 제시한다. 132
● 우리는 맑스가 말하는 ‘당’을, 특수한 역사적 경험들과 운동들을 통해 발전하는 일단의 경험, 실천, 그리고 지식이 발전해 나오며, 이와 동시에 특수한 경험을 초월하고 또 이 운동들의 여러 측면들에 비판적 태세를 유지할 수 있는 한편, 특정 순간들에는 투쟁의 촉진자로 작동하고 있는 그러한 평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들뢰즈의 ‘통합’ 모델과 ‘분석가’로서의 집단이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133-134
● 집단행동에 대한 들뢰즈와 가따리의 이해와 맑스의 당에 대한 생각은, 즉자적 투쟁의 자발성이나 국지적 투쟁의 적실성을 긍정하는 모델과는 달리, 협소한 찬당-반당 이분법의 어느 한쪽으로 잘못 포괄되어서는 안 될 공명점들을 갖고 있다. 134

저항에 대항하는 창조(들뢰즈와 푸코)
1.
● 저항 개념은 탈근대의 정치적 담론에서 꽤 중요하게 취급된다. 저항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이러한 태도는, 암묵적으로는, 푸코와 연결되어 왔다.
2.
● 조항의 문제특은 푸코에 대한 들뢰즈의 교전 속에서 끈덕지게 존속하는 주제이다.
● 들뢰즈 주장의 요지는 만년에 푸코가 ‘자신이 중오한 것에 갇힌’ 느낌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권력power의 문제이다. 이에 그는 ‘어떤 출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고 들뢰즈는 주장했다. 들뢰즈는 ?성의 역사? 1권을 썼지만 출판하지 않고 절필했던 8년 동안을 주목하면서 ‘주체화’와 ‘자기 기술’을 중심으로 2권과 3권이 나온 세 번째 탐구 양식을 푸코 작품 전체의 생산물로, 그의 발명, 위기, 탐색의 ‘단절선’이자 그 자체로 ‘창조성의 표지, 궁극적 일관성의 표지’인 어떤 봉쇄로서 제시한다. 들뢰즈가 이 지점을 저항의 문제에 대한 푸코의 극복으로 본다는 것은 분명하다. 136
3.
● 들뢰즈는 자신과 푸코의 차이를 분명하게 제기하면서, (권력보다는) 욕망의 아상블라주의 일차성을, 그리고 아상블라주의 구성에서 탈주선의 중심성을 정립하는 데 집중했다. 들뢰즈는, 그에게서 탈주선과 욕망 관계가 일차적이며 그래서 정치적 구성의 자리가 일차적이기 때문에 그는 ‘저항이라는 현상의 자리를 위한 어떤 필요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1997d: 189). 다른 한편, 푸코에게서는 권력의 배치가 일차적이며 자신의 작품의 탈주선에 상응하는 어떤 등가물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정치는 오직 권력에 대한 ‘저항’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정치는 이상하게 정당한 동기를 갖고 있지 않고 거의 반작용적인 현상으로 남는다. 푸코에게서 저항은 권력의 핵심에 놓여 있지만 이런 식으로 그것은 언제나 권력 배치에 기능적이다. 138
● ‘위기’ 이후의 푸코 작품에서, 들뢰즈는 저항의 문제가 극복되는 것으로 본다. 그는 그 새로운 작품을 푸코 작품 전체에 스며 있었던 ‘외부’의 문제틀을 최종적으로 해결한 것으로 읽는다. 탈주선 자체로서, 혹은 일종의 활력론 속에서 미결정된 힘의 우선성으로서 말이다. 그것은 권력이 굴절되고 개방되는 방식에 대한, 그리고 외부/힘이 ‘삶의 스타일들’의 발명 속에 ‘접히는 과정’ 속에서 사건으로서의-자기의 공간이 생산되는 방식에 대한 강조이다. 138-139
4.
● 푸코 작품 전체에 대한 들뢰즈의 독해(1988)는 푸코식의 ‘저항의 우선성’을 통해 니체의 초인을 고찰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들뢰즈가 보기에, ‘저항’은 정치의 나쁜 모델이며 궁극적으로는 푸코 자신이 극복하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결론
1.
● 이 장은, 소수정치(학)이, ‘민중’의 형식에서건 혹은 자기선언적 주변인의 형식에서건, 어떤 윤곽지어진 동일성에 정초한 정치적 모델에 대한 직접적 도전을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현존하는 정체성의 물신화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이 몰적 모델에 대항하여, 소수정치는 정체성들, 프로그램들, 그리고 실천들을 횡단하는 그 내부의 창조, 구성, 그리고 변화의 과정 속에서 이해된다. 이 장은 이 창조의 소수적 양식과 기법을 서술하고자 했다. 140
● 소수정치(학)은 사회적 관계를 지향하는 정치(학)이며 동일성을 넘어서는 생성의 가능성을 지향하는 정치(학)이다. 141
● 소수정치(학)의 어떤 특권적 장소나 주체도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각각의 소수적 관심을 긍정하는 다원론적 과정은 아니다. 소수자들이 소수정치(학)을 실현하는 것은, 그들이 지속적으로 사회관계에, 그리고 사회적인 것의 탈영토화의 선들에 개방되는 한에서일 뿐이다. 141
● 소수정치(학)에서는, 주변적 정체성을 물신화하기보다, 특수한 소수자적 상황이나 이접들이 격렬하게 교전되고 가공되고 복합되어, 정체성의 그 ···이거나/아니면(either/or)의 이접들을, 이접들을 횡단하는 운동들과 치환들 속으로 개방하여 포함된 이접의 강렬한 환경이 출현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 특수한 것은, 소수자들이 그들의 영토를 바꾸고 자신들의 경계를 다양화함에 따라 (정체성이 아닌) 혁신의 장소가 된다. 142
● 교전의 환경은 활력으로, 논쟁으로, 지속적 심문, 계략, 발명의 과정으로 충전된 ‘끊임없는 활기’이다. 왜냐하면 소수자들은 이 사회적 관계들과 교전하고 그 관계들을 그것들의 몰적 효과로부터 벗겨내어, 들뢰즈와 가따리(AOE: 382)가 수수께끼처럼 주장하듯 끊임없이 갱신되는 ‘새로운 대지’의 호출 속에서 ‘누구나/모든-것 되기’로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 143
2.
● 이 일반적 과정 너머에서, 사회적인 것에 대한 소수적 관계는 카프카의 ‘이중 흐름’으로, 즉 현대의 사회적 배치들의 장소이자 그것의 탈주선들의 자리로 설명된다. 143
● 소수정치는, 카프카의 이중 흐름의 두 번째 측면을 따라, 자본주의 사회체의 흐름들과 배열들 속에서 균열들, 금들, 일탈들을 찾아내고 현실화하려 한, ‘가장 현대적인’ 정치운동들(즉 프롤레타리아트와 코뮤니즘)과 친화성을 갖는다. 143
● 그러한 소수적 배치는 집단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계주로서 작동하는 집단의 경계선 위에서 창조의 중심들로 기능하는 저자됨의 형식들 속에 그것의 상관물을 갖는다. 맑스의 창조양식은 그러한 저술됨을 현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143-144
3.
● 소수적인 것은, 이러한 양식들, 스타일들, 그리고 기법들 너머에 어떤 강령도 갖고 있지 않다. 144
● 소수적인 것은 어떤 최종 목표도 갖고 있지 않다. ‘오직 정체만이 해로울 수 있을 뿐이다.’(Kafka 1999: 148) 144
● 요컨대 정치운동을 해석하는 방법은, 그것들의 다수적 경향과 소수적 경향을, 그것들이 어떤 동일성의 관계를 탈영토화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무엇을 창조해내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특정한 시대에 노동운동의 기관들이 새로운 유형의 주체성을’, ‘주체성의 진실한 전쟁들’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생산해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가따리의 고찰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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