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9_발제] 제10고원(p.44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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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jectapple
작성일
2019-02-09 15:37
조회
302
제 10고원. 1730년 – 강렬하게-되기, 동물-되기, 지각 불가능하게-되기

p. 443-, 어느 관객의 회상

동물-되기. 그것은 닮음(=유사성)을 겪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음. 닮음은 동물-되기에는 오히려 장애물이나 정지가 될 뿐임. → 분자-되기. 이것은 쥐들의 번식, 즉 무리와 더불어 존재하며, 가족, 직업, 혼인 같은 거대한 그램분자적 역량들을 잠식해 들어감. → 불길한 선택. “애완동물”과의 일종의 결연 계약. 일종의 끔찍한 협정. → 전쟁 기계나 범죄 기계처럼 자기 파괴에까지 이를 수 있는 배치물의 설립) → 비인격적인 변용태들(=정서들)의 순환, 즉 하나의 교류. 기표작용하는 기획들을 뒤흔들어 전복시키고 인간의 것이 아닌 성을 구성해냄. → 저항할 수 없는 탈영토화. 그것은 오이디푸스, 혼인, 또는 직업과 관련된 재영토화 시도들을 사전에 무효로 만듦.

inq. 오이디푸스, 금기
inq. 다나 해러웨이, 반려종 선언

p. 444-, 어느 박물학자의 회상
박물학의 주요 문제 중의 하나는 동물들 상호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 그것은 후일의 진화론, 즉 계보, 친족관계, 혈통, 계통 등의 용어로 규정되는 진화론과는 전혀 다른 것임.

처음에 계보라는 모티프가 없었다면 진화론은 진행될 수 없었을 것임. 반대로 박물학은 계보라는 모티프 또는 적어도 그 모티프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몰랐음. 다윈 자신도 ① 친족 관계라는 진화론적 주제와 ② 차이들이나 유사성들의 합과 가치라는 박물학적 주제를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함. → 박물학은 무엇보다도 차이들의 합과 가치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진보나 퇴행, 연속성과 대규모적인 단절은 생각해낼 수 있지만 본래적인 의미의 진화, 즉 변양의 정도들이 외부 조건에 좌우되는 혈통의 가능성은 생각해낼 수 없음. 박물학은 처럼 관계들의 견지에서만 사고할 수 있을 뿐 처럼 생산의 견지에서는 사고할 수 없는 것임.

그러나 매우 중요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 관계들의 층위에서임. 왜냐하면 박물학은 동물들 상호간의 관계를 두 가지 방식으로, 즉 계열 아니면 구조로 파악하기 때문임.

① 어떤 계열에 따라 나는 a는 b와 닮았고, b는 c와 닮았고... 이 모든 항들 자체는 그 계열의 근거인 완전성이나 질이라는 단 하나의 탁월한 항과 다양한 정도로 관계를 맺고 있음. 시낙자들이 <비율에 기반한 유비>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히 그것. → 하나의 계열 전체를 따라 또는 하나의 계열에서 다른 계열에 걸쳐서 차이를 나타내는 유사성들을 가짐. → 유비의 첫 번째 형식은 더 감각적이고 대중적이라고 간주되며, 상상력을 필요로 함.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근면한 상상력임. 근면한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계열의 곁가지들을 고려하고, 외관성의 단절들을 보충하고, 가짜 유사성들을 몰아내고 진짜 유사성들을 점증시키며, 진보와 퇴행 또는 퇴보를 동시에 고려해야만 함.
② 구조에 따라 나는 a와 b의 관계는 c와 d의 관계와 같다고 말하는데, 이 관계들 각각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의 완전성을 실현하고 있음. (ex. 아가미와 수중 호흡의 관계는 폐와 대기 중 호흡의 관계와 같으며, 심장과 아가미의 관계는 심장의 부재와 기관(氣管)의 관계와 같음.) 이것이 <비율관계에 기반한 유비> → 하나의 구조 내부에서 또는 하나의 구조에서 또 하나의 구조에 걸쳐 서로 유사하게 나타나는 차이들을 가짐. → 유비의 두 번째 형식은 왕도로 간주될 수 있음. 왜냐하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조합 가능한 독립변수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각각의 구조 안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상관항들을 발견하기도 함으로써 유비의 두 번째 형식은 등가관계를 정하려는 지성의 모든 원천을 필요로 하기 때문임.

그러나 계열과 구조라는 이 두 가지 주제는 서로 아무리 다르더라도 박물학에서는 항상 공존해 왔으며, 외견 상 모순되어 보여도 실제로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타협을 이루어왔음. 왜냐하면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자연>은 거대한 미메시스로 여겨졌기 때문임.

inq. 다큐프라임 사라진 인류 1부 멸종, 2부 생존

① 한편으로 <자연>은 단계적인 닮음에 의해 계열의 모델과 근거로서 존재자들 모두가 모방의 대상으로 삼는 신이라는 최고항을 향해 나아가면서 진보적이거나 퇴행적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모방하는 존재자들의 사슬이라는 형식으로 고려됨. ② 다른 한편으로 <자연>은 이번엔 질서 잡힌 차이에 의해, 모든 것이 모방하는 모델 자체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모방해야 할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는 거울 속의 <모방>이라는 형식으로 고려됨.

관념들은 죽지 않음. 오히려 관념들은 어느 시점에 과학의 지위를 획득하다가도 다시 그것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다른 학문들의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었음. 따라서 관념들은 적용과 지위를 바꿀 수 있고, 심지어 형식과 내용도 바꿀 수 있지만 행보, 자리바꿈, 새로운 영역배분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보전함. 관념들은 항상 다시 사용됨. 그것들은 항상 사용되어 왔지만 극히 다른 현재적 양태로 사용되었기 때문임.

한편 동물들 상호간의 관계는 과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꿈의 대상, 상징의 대상, 예술이나 시의 대상, 실천과 실천적 활용의 대상이기도 함. 다른 한편으로 동물 상호간의 관계는 인간과 동물,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인간과 원소들, 인간과 무리적 우주 및 미시-물리적 우주 등 여러 관계들 속에 놓여있음.

“계열-구조”라는 이중 관념은 어떤 시점에서는 과학의 문턱을 넘어가지만 그것은 과학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고 또 과학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는 다른 학문들의 영역으로 옮겨가서 가령 꿈, 신화, 조직 등의 연구에 기여하기 위해 인간과학들을 고무시키기도 함.

관념들의 역사는 결코 연속적이어서는 안 되며, 유사성뿐만 아니라 혈통이나 계통에 주의해야 하며, 그리하여 하나의 관념을 가로지르는 문턱들, 관념의 본성과 대상을 바꾸어버리는 관념의 여행들을 표시하는 것에 만족해야 함. 이리하여 집단적 상상력이라는 관점 또는 사회적 지성이라는 관점에서, 동물들 상호간의 객체적 관계는 인간과 동물 간의 특정한 주체적 관계 속에 다시 놓이게 되었던 것임.

p. 448-,
융은 집단적 무의식으로서의 <원형> 이론을 만들어냈는데, 이 이론에서 동물은 꿈, 신화, 인간 집단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 동물은 진보와 퇴행이라는 이중의 측면을 포괄하고 있는 계열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으며, 이 계열에서는 각각의 항이 리비도를 변형시키는 역할을 함. (변신 또는 변형) 꿈을 다루는 모든 방식이 여기로부터 나오는데, 왜냐하며 어지러운 이미지가 주어지면 그것을 그것의 원형적인 계열로 통합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물학에서와는 달리, 여기에서 계열의 우월한 항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님. 사자, 게, 맹금류, 이 등 하나의 동물이 특정한 행위나 기능과 관련해서, 무의식의 특정한 요구에 따라 인간에 대해 우월항이 될 수도 있음. (...) 융의 모든 저서에서는 계열들과 그 항들, 그리고 특히 거기서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동물들이 자연-문화-자연의 전환 주기들을 보증하는 <비율에 기반한 유비>에 따라, 모든 미메시스가 자신의 그물망 안에 자연과 문화를 통합함. 바로 이것이 “유비적 표상”으로서의 원형임.

상상력, 계열을 따라 유사성들을 설정하는 것, 모든 계열을 가로지르며 그것을 [마지막] 항으로까지 데려가는 모방, 이 마지막 항과 동일화하는 것 등이 갖는 명성을 구조주의가 그토록 강하게 규탄했던 것은 우연일까?

외적 유사성을 넘어서 내적 상동성으로 향하기. 상상적인 것의 계열적 조직화가 아니라 지성의 상징적·구조적 질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함. 유사성들을 점증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신비스러운 참여의 한가운데서 <인간>과 <동물>의 동일화에 도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음. 차이들을 정돈해서 관계들의 일치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 왜냐하면 동물은 나름대로 변별적 관계나 종차의 대립에 따라 분배되며, 마찬가지로 인간은 해당 집단에 따라 분배되기 때문이다. 토템 제도 하에서는 특정한 인간 집단이 특정한 동물 종과 동일화된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집단 A와 집단 B의 관계는 종A’과 종 B’의 관계와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 즉 각각 독자적인 동물 토템을 가진 두 인간 집단이 있는 경우, 어떤 점에서 두 토템은 두 집단 간의 관계와 유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지를, 가령 까마귀와 매의 관계는 어떤지를 규명해야 하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커다란 혁명이었다. 구조주의에 와서 모든 세계가 훨씬 더 합리적인 것이 되었다. 계열과 구조라는 두 모델을 검토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진정한 분류 방법이라는 이유로 후자를 크게 칭찬하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전자를 어두운 희생의 영역으로 추방하며, 환상과 몰상식이라고 단정한 바 있다. 희생이라는 계열적 주제는 본래적 의미의 토템 제도라는 구조적 주제에 자리를 양보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여전히 원형적 계열과 상징적 구조 간에는 많은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주 5. 하지만 계열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비-스트로스는 계열과 구조라는 두 테마의 타협을 인정한다. 구조 자체는 친근성에 대한 극히 구체적인 느낌을 내포하고 있으며, 구조는 관계들의 상동성을 조직해나가는 두 계열 위에서 수립되는 것이다. 특히 “역사의 생성”은 이런 상동성을 항들의 유사성과 동일하로 대체하는 복잡화나 퇴락을 야기할 수 있다. pp. 152, 토테미즘의 이면

p. 451-, 어느 베르그송주의자의 회상
앞서 말한 것 중 엄밀함을 유지하려는 우리의 관점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인간을 가로지르면서도 인간을 포함하는, 그리고 동물뿐 아니라 인간도 변용시키는 아주 특수한 “동물-되기”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1730년부터 1735년까지 세상은 온통 흡혈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구조주의는 이러한 생성들을 해명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구조주의는 생성을 부정하거나 적어도 생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관계들의 대응은 생성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회를 모든 방향으로 관통하는 그런 생성들과 마주칠 때 구조주의는 그것에서 참된 질서에 등을 돌리고 통시성의 모험들을 다시 세우는 퇴락의 현상을 보는 것이다.

inq.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중
당신이 보행이라는 주제 위에서 수영의 변주들을 연주해 보아야 거기서 수영의 규칙을 이끌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물 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할 줄 알게 되면, 그때 당신은 수영의 작동방식과 보행의 작동방식이 서로 관련이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수영은 보행을 연장시킨 것이지만 보행은 당신을 수영으로 인도해주지는 않는 것이다. 그처럼 지성의 작동방식에 대해 원하는 만큼 지성적으로 사고해 보아도 이 방법으로는 결코 그것을 넘어서는 데 이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도 신화 연구 과정에서는 동물이 무언가가 되는 동시에 인간이 동물로 되는 신속한 행위들에 끊임없이 직면했다. 이러한 생성의 블록들을 두 관계들의 대응에 의해 설명하려는 시도는 항상 가능하겠지만 분명 그것은 관찰되는 현상을 빈약하게 만들어버린다. 분류틀로서의 신화는 차라리 단편적인 이야기들과 같은 이러한 생성들을 거의 등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아노미”현상들이 모든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는 뒤비뇨의 가설을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 그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들은 신화적 질서의 퇴락이 아니라 환원불가능한 다이나미즘인데, 이 다이나미즘은 도주선들을 그리며 신화의 형식들과는 다른 표현의 형식들을 내포하고 있다.

되기(=생성)는 결코 관계 상호 간의 대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사성도, 모방도, 더욱이 동일화도 아니다. 계열에 대한 구조주의의 모든 비판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생성한다는 것은 계열을 따라 진보하는 것도 아니고 퇴행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특히 되기는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융이나 바슐라르에서처럼 이 상상력이 최고도의 우주적인 또는 역학적인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동물-되기는 꿈이 아니며 환상도 아니다. 되기는 완전히 실재적이다. (...) 인간이 “실제로” 동물이 될 수는 없으며 동물 또한 “실제로”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되기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 인간의 동물-되기는 인간이 변해서 되는 동물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실제적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다른 무엇 되기>는이 다른 무엇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실제적이다.

즉, 되기에는 자기 자신과 구별되는 주체가 없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리고 되기는 왜 항을 갖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항은 나름대로는 그것의 주체이고 그것과 공존하며 그것과 블록을 이루는 다르기 되기 속에서만 포착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되기에 고유한 현실 원칙이다. (“우리들의 지속”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서로 소통하는 온갖 상이한 “지속들”의 공존이라는 베르그송의 생각)

결국 되기는 진화, 적어도 혈통이나 계통에 의한 진화는 아니다. 되기는 계통을 통해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데, 모든 계통은 상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되기는 항상 계통과는 다른 질서에 속해 있다. 되기는 결연(alliance)과 관계된다.

만일 진화가 참된 생성들을 포함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가능한 계통도 없이, 전혀 다른 생물계와 등급에 있는 존재자들을 이용하는 공생이라는 광활한 영역에서이다. 고양이와 비비를 취하는 생성의 블록이 있을 경우 C형 바이러스가 결연을 이루어냄, 미숙한 뿌리와 특정한 미생물 사이에서 생성의 블록이 있을 경우 잎에서 합성된 유기질 결연이 만들어냄. 리좀권. 신-진화론이 독창성을 주장해 올 수 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진화가 덜 분화한 것에서 더 분화한 것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오히려 소통되고 전염되기 위해 유전적인 계통적 진화이기를 그치는 이런 현상들과 관련해서이다. 따라서 우리들로서는 이처럼 이질적인 것들 간에 나타나는 진화 형태를 “역행(involution)”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단 이 역행을 퇴행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되기는 역행적이며, 이 역행은 창조적이다. 퇴행한다는 것은 덜분화된 것으로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역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선을 따라, 주어진 여러 항들 “사이에서”, 할당 가능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는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는 일을 가리킨다.

신-진화론
① 우선 동물은(종, 속 등과 같은) 특징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환경 저 환경마다, 또는 동일한 환경 내에서 가변적인 개체군들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운동은 오직 또는 주로 계통적 생산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로 이질적인 개체군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소토을 통해 일어난다. 되기는 리좀이지 결코 분류용 수형도나 계통수가 아니다. 되기는 결코 모방하기도, 동일화하기도 아니다. 그것은 또한 퇴행하기-진보하기도 아니다.
② 또한 그것은 생산하기, 즉 계통을 생산하기, 계통을 통해 생산하기도 아니다. 되기는 자기 나름의 고름을 갖고 있는 하나의 동사이다. 그것은 “-처럼 보이다.”, “-이다.”, “-와 마찬가지이다.”, “생산하다” 등으로 귀착하지 않으며 우리를 그리로 귀착시키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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