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5/8 『차이와 반복』 2장 2절

작성자
bomi
작성일
2022-05-08 15:54
조회
349
들뢰즈와의 마주침 세미나 ∥ 2022년5월 8일 일요일 ∥ 손보미
텍스트: 『차이와 반복』질 들뢰즈, 김상환 옮김, 민음사

2장 대자적 반복

2절


<시간의 두 번째 종합: 순수 과거>

시간의 첫 번째 종합은 시간을 현재로 구성하지만, 이 현재는 지나가 버리는 현재다. 시간의 첫 번째 종합이 일어날 수 있으려면 또 다른 시간이 있어야 한다. 달리말해 시간의 첫 번째 종합은 필연적으로 어떤 다른, 두 번째 종합을 전제한다.



습관의 수동적 종합은 보다 심층적인 기억의 수동적 종합을 전제한다. 하비투스와 므네모시네, 혹은 하늘과 대지의 연대.
- 시간의 시원적 종합인 습관은 지나가는 현재의 삶을 구성한다.
- 시간을 근거짓는 종합인 기억은 (현재의 근거가 되는, 지나가는 현재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 즉) 과거의 존재를 구성한다.


<기억, 순수 과거, 현재들의 재현>

과거가 두 현재 사이에 끼어 있다는 통념이 있다. 이 통념상의 과거(반과거)는 과거로 사라진 현재 자체가 아니라 각각의 사라진 현재를 특별하게 특수한 것으로서 겨냥하는 요소다.
과거 일반이 그 안에서 각각의 사라진 현재를 겨냥할 수 있는 요소인 한에서, 사라진 현재는 현행적 현재 안에 ‘재현전화’되어 있다.

그런데 사라진 현재가 (기억의 능동적 종합을 통해)
현행적 현재 안에 재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행적 현재 자체가 이런 재현 안에서 다시 재현되어야 한다. 재현은 본질적으로 단지 어떤 것을 재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재현은 또한 그 자신의 고유한 재현성을 재현한다. 따라서 사라진 현재와 현행적 현재는 시간의 일직선 위에서 계속 이어지는 두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현행적 현재는 필연적으로 또 하나의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그 새로운 차원을 통해 현행적 현재는 사라진 현재를 재-현하고 또 그 차원 안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재현한다.
현행적 현재는 사라진 현재의 회상을 형성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반조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능동적 종합은 결코 대칭적이지는 않지만 서로 상관적인 두 측면을 지닌다. 재생과 반조, 재기억과 재인, 기억과 지성 등이 그것이다. 사라진 현재의 재생과 현행적 현재의 반조라는 이중의 측면을 생각할 때, 기억의 능동적 종합은 재현의 원리라 불릴 수 있다.
습관의 수동적 종합이 가능한 모든 현재 일반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재현의 원리인 기억의 능동적 종합은 그 위에 정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종합은 그 심층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전자가 현재라는 조건 아래 순간들의 수축을 통해 시간을 구성하는 반면 후자는 현재들 자체를 서로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시간을 구성한다.
기억의 능동적 종합이 이뤄지지는 조건은, 즉 사라진 현재가 재생될 수 있고 현행적 현재가 자신을 반조하는 것은 과거의 순수 요소에 의해서이다. 이 과거는 과거 일반, 또는 선험적 과거에 해당한다. 이 과거는 모든 재현에 전제되고 있는 과거다.

시간의 첫 번째 종합(습관의 수동적 종합)은 시간 안에서 살아 있는 현재를 구성하고 과거와 미래를 그 현재의 비대칭적인 두 요소로 만든다.
반면, 시간의 두 번째 종합(기억의 수동적 종합)은 시간 안에서 순수 과거를 구성하고 사라진 현재와 현행적 현재를 본래적 과거의 비대칭적인 두 요소로 만든다.


<과거의 네 가지 역설>

역설 1. 각각의 과거는 자신이 한때 구가했던 현재와 동시간적이다. (동시간성의 역설)
역설 2. 과거 전체는 그것이 과거이기 위해 거리를 둔 현재와 공존한다. (공존의 역설)
역설 3. 과거 일반의 순수 요소는 지나가는 현재에 선재한다. (선재의 역설)
역설 4. 과거 자체가 자기 자신과 공존한다.

역설 1. 각각의 과거는 자신이 한때 구가했던 현재와 동시간적이다.
만일 과거가 한때 현재였다가 새로운 현재가 나타나기 때문에 구성되는 것이되려면, 현재는
지나가기 위해 현재인 ‘동시에’ 과거여야 하며, 과거는 먼저 한때 현재였던 ‘동시에’ 과거로서 미리 구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현재가 언제나 지나가고 또 새로운 현재를 위해 지나가는 것은 과거가 현재로서의 자기 자신과 동시간적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두 번째 역설, 공존의 역설이 뒤따른다.

역설 2. 과거 전체는 그것이 과거이기 위해 거리를 둔 현재와 공존한다.
만일 각각의 과거가 자신이 한때 구가했던 현재와 동시간적이라면, 사실 모든 과거는 그것이 과거이기 위해 지금 거리를 둔 새로운 현재와 공존하는 셈이다.
베르그손은 각각의 현행적 현재는 단지 지극한 수축 상태의 과거 전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과거가 있었다.”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과거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끈덕지게 자신을 주장하면서 사라진 현재 속에 내속하고, 현행적 현재와 더불어 공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있다.”
과거는 시간의 즉자적인 측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시간 전체의 순수하고 일반적이며 선험적인 요소를 형성한다. 과거는 자신을 즉자적으로 자신 안에 보존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수축을 통해서만 생겨나는 새로운 현재에 의해 전제된 것으로 자신의 위상을 정립함으로서 새로운 현재와 공존한다. 따라서 선재의 역설이 앞의 두 역설을 완성한다.

역설 3. 과거 일반의 순수 요소는 지나가는 현재에 선재한다.
따라서 시간의 실체적 요소, 즉 결코 현재였었던 적이 없는 본연의 과거가 있는 셈이고, 이것이 근거의 역할을 맡는다. 이 요소 자체는 재현되지 않는다. 재현되는 것은 언제나 현재인데 시간이 재현 안에서 그렇게 펼쳐지는 것은 바로 순수 과거에 의해서이다.
초월론적인 수동적 종합은 동시간성과 공존, 그리고 선재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이 순수 과거와 관계한다. 반대로 능동적 종합은 사라진 현재의 재생과 새로운 현재의 반조라는 이중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재현이며, 이러한 능동적 종합은 초월론적인 수동적 종합에 의해 근거지어진다.

역설 4. 과거 자체가 자기 자신과 공존한다.
- 습관의 수동적 종합에서 현재는 계속 이어지는 순간이나 요소들의 지극한 수축 상태다.
- 기억의 수동적 종합에서 현재는 모든 과거 전체의 지극한 수축 정도를 지칭한다.
현재가 현재 자신과 공존하는 과거의 지극한 수축 상태라면, 이는 오로지 과거 자체가 먼저 무한하게 상이한 이완과 수축의 정도들에 따라, 무한하게 많은 수준들에서 자기 자신과 공존할 때에만 그렇다; 베르그손의 원뿔의 비유

정신적인 삶 안에서 현재들은 서로를 침범하면서 계속 이어진다. 이어지는 현재들은 일관성이 없고 대립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각각의 현재가 어떤 다른 수준에서 ‘똑같은 삶’을 펼친다는 인상을 받는데 그것이 바로 운명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운명은 정위 불가능한 연관들, 원격 작용들, 재취합과 공명과 반향의 체계들, 객관적 우연들, 신호와 기호들, 공간적 상황과 시간적 계속성들을 초월하는 어떤 역할들 등을 함축한다. 운명은 수준의 선택인 자유와 잘 부합한다. 각각의 현행적 현재가 앞선 현재와는 다른 수준이나 등급에서 삶 전체를 다시 취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때 이 모든 수준과 등급들은 공존하고 있으며, 결코 현재인 적이 없었던 어떤 과거의 바탕으로부터 우리의 선택에 내맡겨진다.
우리가 능동적 종합의 관점에서 서로 다른 현재들의 계속을 경험한다면, 그 계속의 사태는 또한 수동적 종합 안에서 일어나는 과거의 수준들의 공존이기도 하며, 그 공존은 언제나 증대해간다.


<물질적 반복과 정신적 반복>




수동적 종합들은 분명 재현 이하의 사태들이다.
습관의 수동적 종합을 체험하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의 즉자 존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일까?
아주 오래 전 주어진 대답은 플라톤적 의미의 상기다. 상기는 자발적 기억의 모든 능동적 종합과는 본성상 다른 어떤 수동적 종합이나 비-자발적 기억을 지칭한다. 만일 과거의 즉자 존재가 있다면, 상기는 그것의 본체(누메나)이거나 그 본체에 사로잡힌 사유이다.
순수 과거는 지나가는 현재들에 힘입고 또 그 현재들을 이용하는 가운데 재현 아래에서 나타나지만 오로지 과거만이 고집스럽게 자신을 주장하는 가운데 내속하며, 그 안에서 현재들이 지나가고 서로 충돌하는 요소를 제공한다. 두 현재 사이의 반향은 단지 끈덕지게 향존하는 어떤 물음만을 형성한다. 그 물음은 찾고 답하고 해결하라는 엄격한 명령 아래 재현 안에서 어떤 문제의 장으로서 전개된다. 하지만 응답은 항상 다른 쪽에서 온다. 즉, 모든 상기는 에로스의 성격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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