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의 사변적 실재론> 6~7장

작성자
Seo
작성일
2022-05-29 16:01
조회
638
6장 기계의 내부

- 성질을 띠지 않은 사건이 없는 것처럼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신체도 없다. 들뢰즈는 본질적이지만 가변적인 이들 특성을 기계의 '욕망', '특이성들', '이념', '코드' 혹은 '역능들'이라고 일컫는다. (255)
- 이념은 그로부터 의미와 성질들이 비롯되는 비기표작용적 요소, 기계의 "순수한 강도적 물질", 사물의 사적인 내부적 특성. (256)
- 들뢰즈의 경우에 욕망은 물 혹은 용암과 같은 것. (256)
- 욕망은 관계적 표현들의 배후에 있는 모터다. 그러므로 들뢰즈는 욕망을 역능의 견지에서 규정. (256)
- 형상은 기계의 무엇임이고 현실적 표현은 기계가 행하는 것이라면 욕망은 기계가 지니고 있는 것. (256)
- 욕망은 현실태의 "현시적 내용"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는 잠재적인 "숨은 내용"이다. 이런 까닭에 기계는 "욕망하는-기계"로 규정된다. (256~7)

1. 존재로서의 역능들
- 들뢰즈가 종종 기계의 욕망적·초험적·잠재적 측면을 기계의 '무의식'이라고 일컫는다. (257)
- 무의식은 기계들과의 우발적인 마주침을 통해서 회집한다. (257)
- 무의식은 기계의 잠재적 측면이고,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물질 자체"다. (258)
- 들뢰즈가 '무의식'의 '욕망'에 관해 서술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기계 존재론과 관련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258)
- 기관없는 신체와 마찬가지로 욕망은 존재자의 잠재적 측면에 속하다. 어떤 기계의 욕망은 그 기계의 실재적 특성들이다. (258)
- 각각의 기관없는 신체를 '채우는' 존재는 욕망이다. (259)
- 욕망은 기계가 현실태로 현시되게 하는 원인이지만 언제나 그런 현시적 표현들과는 종류가 다르다. 그러므로 욕망은 초험적이다. (259)
- 한 기계의 욕망은 여타 기계에 의해 직접 경험될 수 없는 사적 실재. "욕망의 객관적 존재는 실재적인 것 자체다". (259)
- 욕망이 현실태로 번역되게 되는, 기계의 내부적인 강도적 물질. (260)
- 욕망 또는 강도적 물질은 들뢰즈가 기계의 무의식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260)
- 욕망은 한 기계의 내부에 있는 물질로, 현실태의 폭풍막이들로 둘러싸여 있기에 다른 기계들의 욕망과 직접 접촉하지 못한다. (260)
- 강도적 물질로서의 욕망이 이 기계와 저 기계 사이의 차이를 설명한다. 욕망으로 인해 두 기계는 서로 다른 기계인데, 그것들이 여타의 것에 의해 동일한 것으로 마주치게 될지라도 그렇다. (261)
- 각각의 들뢰즈적 기계도 자신의 욕망을 지니고 있다. 기관 없는 신체가 언제나 욕망인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욕망은 본질적이지만 가변적이다. (262)
- 한 기계의 최초 관계들이 욕망을 생성한다. (262)
- 타르드는 들뢰즈보다 수십 년 전에 욕망이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낳는 바로 그 "분자적 응집물들"의 보편적 구성요소라고 제안. (264)
- 각각의 기계는 자신의 내부적 욕망 또는 강도적 물질이 있다. 그것은 그 기계 안에서 부분적 객체들과의 연결 관계들이 생성하는 것이고, 그 기계가 다른 기계들에 현시되는 방식의 원인이다. (265)
- 기계의 기관 없는 신체, 형상 또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욕망도 비관계적이다. (265)
- 들뢰즈는 기계의 네 번째 측변을 가리키기 위해 '역능'과 '특이성', '코드', '이념'이라는 용어들도 사용한다. (266)
- 첫째, 욕망은 "기계의 역능과 관련된 것"이고 "욕망에 관한 기호는…역량(푸이상스)에 관한 기호다". (266)
- 그것(역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힘이라고 간주하는 것보다 더 원초적이다("잠재력"). (267)
- 욕망, 역능, 푸이상스 혹은 잠재력은 기계를 특징짓는 내부적 실재다. 그것은 오직 간접적으로 서술되고 경험될 수 있을 따름이다. (267)
- 우리는 어떤 신체를 그것이 행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예를 들어 비오는 날 로테르담 다리, 보행). (268)
- 기계를 그 역능들에 의해 규정하는 것은 들뢰즈가 '행동학'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269)
- 잠재력 또는 역능은 '무언가를 위한' 잠재력이 아니다. (270)
- 욕망 또는 역능의 또 다른 동의어는 '특이성'이다. (271)
- 특이성들은 언제나 "고유의 문제적 장에 분배되"어 있거나 혹은 "객관적으로 각기 다른 심급들"에 자리하고 있다. (271)
- 역능과 욕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실적 항들은 결코 그것들이 구현하는 특이성들과 유사하지 않다". (271)
- 특이성은 기계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태가 그것의 표현이 되는 내부적 특성이다. (272)
- 특이성은 "전개체적 존재"로 규정된다. 특이성은 어떤 기계를 이 개체 혹은 저 개체로 마주칠 가능성을 위한 조건이다. (272)
- 특이성은 현실화가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바로 그 의미에서 '전환점'이다. (272)
- 특이성은 연장적 공간 안에 자리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어떤 "위상학적 공간" 혹은 "순수한 강도적 공간"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일단의 특이점이 분배된 이런 강도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바로 기계의 기관 없는 신체다. (273)
- 개체화는 현실화이고, 어떤 존재자의 현실화는 그 존재자의 환원 불가능한 내부적 실재, 즉 기관 없는 신체와 그것을 채우고 있는 역능들, 역량들, 욕망 또는 특이성들에 준거를 두고 있다. (275)
- 욕망 또는 역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코드는 언제나 자신의 "받침대"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 없는 신체가 있다. (276)
- 들뢰즈는 "모든 기계는 자기 안에 구축된, 자신의 내부에 저장된 일종의 코드가 있다"라고 확언. (276)
- 기계의 핵심에는 '기표작용적 사슬'들이 있다. 그 이유는 이들 사슬이 기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들 기호 자체는 의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277)
- 현시적 상징과 내부적 내용 사이의 대응 이론과 달리 코드 개념은 역능이 어떤 의미에서는 사물이 바로 그 핵심에 새겨져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278)
- '이념' 역시 존재자의 의미와 성질들의 현실적 이중체에 대한 그거로서 기능하는 존재자의 내부적 실재 또는 사적 심층과 관련되어 있다. (279)
- 각각의 문제는 잠재적이고 '무의식적'인 완전한 이중체를 구성하려면 자신의 이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신체가 자신의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자신의 이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279~280)
- 성질을 띤 의미-사건은 언제나 독자적인 특질을 갖춘 무언가와의 마주침에서 비롯된다. (280)
- "특이점들의 현존과 분배는 전적으로 이념에 속한다". 어떤 기계의 이념은 그 기계의 기관 없는 신체에 대한 특이성들의 분배와 동일하기에 그 기계의 전개체적인 내부적 실재다. (280)
- 역능들 또는 특이성들로서의 모든 이념은 자신의 현실화된 표현들과 닮지 않은 순수 잠재태다. (283)
- 이념은 이 기계의 존재를 여타 기계으 ㅣ존재와 구분하는 것으로, 들뢰즈는 이것을 미분화라고 일컫는다. (283)
- 다양체는 "특이성들의 집합체"다. 그러므로 다양체라는 용어는 기계의 잠재적 측면을 강조한다. (283)
- 모든 기계는 하나의 다양체인데, 요컨대 무언가의 단위체가 아니면서 단독적이고, 다양한 사물이 아니면서 다양하다. (286)
- 욕망은 존재자의 사적 실재이고, 이런 의미에서 "유일한 주체는 기관 없는 신체의 욕망 자체다". 이런 내부적 실재가 기계의 물질, 기계의 실체 그리고 기계의 본질이다. (187)


2. 본질은 이중체다
- 욕망은 실체와 물질 자체라고 일컬어진다. (288)
- 본질로서의 욕망은 기계가 경험의 구체적 대상으로 개체화하는 사태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다. (289)
- 본질은 순전히 잠재적이다. 본질은 현시될 수 없다. (289~90)
- 본질은 특수한 본질들이기에 서로 환원될 수 없다. 각각의 본질은 하나의 실재적 존재자, 하나의 물리적인 것, 일종의 역능 혹은 강도다". (291)
- 잠재적 성질들(특이성들, 욕망)은 언제나 그것들의 현실적 표현들 '이상'의 것이다. (293)
- 각각의 기계는 신체와 욕망, (비-)존재와 잠재력, 형상과 이념이라는 잠재적 이중체를 지니고 있다. (293)
- 회집체의 관계 혹은 현전은 언제나 자신의 내부적 실재 이하의 것이다. 모든 것은 감싸여져 있다. (293)
- 모든 기계는 그것이 필요한 푸이상스를 갖추고 있기만 하다면 연결하기와 수축시키기를 통해서 다른 기계들의 본질을 변경하려고 시도해 본다. (294)
- 들뢰즈의 경우에 '초험적'이라는 용어는 기계의 잠재적 측면을 가리킨다. (295)
- 사실상 잠재적인 것의 초험적 지위가 기계 존재론의 핵심이다. (296)
- 그 초험적 장은 잠재적 이중체다. (296)
- 한 기계는 다른 한 기계의 잠재태와 직접 상호작용할 수 없다. 경험 세계는 상호작용 중인 기계들의 푸이상스에 따른 현실적 표현들만 포함하고 있을 따름이다. (297~8)
- 한 편으로 기계는 실재적이고 현실적이며 관계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는 실재적이고 잠재적이며 비관계적이다(실재적인 기계 존재론).
- 어떤 기계의 현실태는 언제나 그 기계의 내부적 실재를 하나의 현실태로 번역한 것. (301)
- 실재의 분열증은 모든 것이 자신의 고유한 내부적 실재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기계이고, 모든 기계는 관계 속 자신의 표현들로 환원될 수 없다. 모든 기계는 관계-외적인 비-존재가 있는데, 말하자면 역능들(욕망, 특이성들, 이념, 코드)을 갖춘 신체(문제, 형상, 관)가 있다. 이것이 기계의 본질이다. (301)


네 번째 간주 - 마누엘 데란다와 회집체 이론
- 환원 불가능한 개별적 존재자(회집체)들을 부각하는 한편으로 본질이 현존한다는 점은 명확히 부정. (303)
- 그 존재론(회집체)은 어떤 존재자도 결코 그것이 다른 존재자들(과 맺은 관계들)로 환원될 수 없다고 구상하는 하나의 실재론이다. (304)
- 존재자는 자신이 맺은 관계들의 외부에 있다. 모든 회집체는 그 구성요소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창발적 특성들로 특징지어진다. (304)
- 기질은 회집체의 성향과 역량이다. 특성들의 현실화는 이들 기질에 의존한다. (305)
- 데란다는 어떤 회집체의 잠재적 역량들을 그 회집체의 "가능성 공간"이라고 일컫는다. (305)
-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가 하나의 종으로 규정할 것이 데란다에게는 또 하나의 회집체에 불과한 것. (307)
- 데란다의 존재론에 따르면 개별적 회집체들은 서로 비슷한 회집체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307)
- 데란다는 유를 그가 "다이어그램"이라고 일컫는 것으로 바꾸어 제시. 다이어그램은 수많은 회집체가 공유하는 '보편적 특이성들'의 집합. (308)
- 모든 다이어그램은 한낱 어떤 보편적 가능성 공간에 속하는 지대에 불과한 것. (309)
- 그것(우주적 평면)은 그야말로 전면적인 형이상학적 지위를 갖춘 실재다. "다이어그램은 구체적 회집체들의 부분으로 현존할 뿐 아니라 순수 잠재태의 공간, 우주적 일관성의 평면과도 연결되어 있다. (310)
- 들뢰즈는 초-개체적인 잠재적 구조를 상정하는 대신에 본질을 기계 내부로 이동시킴으로써 본질이 고정되어 있기보다는 오히려 가변적인 이유를 보여준다. (311)
- 데란다는 '차이와 반복'에서 제시된 형이상학의 시각에서 들뢰즈의 전작을 해석. (312)
- 어떤 잠재적 연속체로서 '시작'한 다음에 조각들로 절단되는 세계가 정확히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이 제기된다. (312)


7장 기계와 변화

- 존재자들이 어떻게 해서 정말로 서로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해내는지 설명할 두 번째 종합이 있어야 한다. (319)

1. 이접적 종합
- 각각의 관계는 하나의 현재. 각각의 현행적 관계는 기계들의 잠재적 측면을 현실화한 것. 잠재적 객체는 순수 과거의 한 조각. (319)
- 역능 또는 이념 자체가 결코 또 다른 기계에 현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320)
- 욕망이 순수 과거에 속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현재로의 현실화와 동시간적. (320)
- 이접적 종합은 바로 "현재가 지나가게 하는 원인이 되"는 이런 과거, 이런 "과거의 순수 요소" 혹은 "선험적 과거"와 관련이 있다. (321)
- 이접적 종합은 우리에게 어떤 기계가 맺는 관계는 다른 기계들의 현실태로의 수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 기계의 역능들의 활성화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321)
- 각각의 관계에서 이접적 종합은 관점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기계의 이념에 준거를 둔다. 그러므로 중간 휴지는 "변신의 현재, 행위에 필적하게 되는 동등하게-되기"를 나타낸다. (322)
- 기계들 사이의 모든 연결 관계는 이접적인데, 말하자면 잠재적 본질들로 환원 불가능한 채로 남아 있는 이들 본질의 국소적 표현들이다. (325)
- 관계의 원인으로서 작용하는 것은 기계의 코드, 욕망, 역능들, 이념 또는 특이성들, 즉 기계의 본질 또는 내부적 물질이다. (328)
- 무엇이든 모든 관계는 서로 배타적인 기계들을 하나의 인접한 현실적 표현으로 나타내는 연결, 수축 또는 관조다. (329)
- 생산한다는 것은 하나의 온전한 사중체 - 부분적 객체와 흐름, 즉 성질을 띤 의미-사건에 의거하여 마주치게 될 수밖에 없는 기관 없는 신체와 특이성들을 갖춘 기계 - 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330)
- 어떤 기계를 생산하는 것은 동시에 그 기계에 의해 포섭된다는 것을 뜻할 수밖에 없고, 포섭한다는 것은 수축시킨다는 것, 연결한다는 것, 첫 번째 종합을 수행한다는 것을 뜻함. (330)
- 두 번째의 이접적 종합은 기계의 역능들이 기계가 현실태로 마주치는 것의 근저에 놓여 있는 한편으로 이와 연결하여 그 동일한 현실태가 바로 그 특이성들 또는 욕망에 자신의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331)
- 연결은 언제나 부분과의 연결이다. 기계의 부분들은 기계의 역능들을 생성하기에 연길의 이면은 기록 또는 등록이다. 기록되는 것은 어떤 기계와 관련된 욕망 또는 특이성들의 분배다. (332)
- 난초와 말벌은 둘 다 독자적인 코드의 내부적 사슬을 갖추고 있다. 난초를 마주치는 말벌은 난초를 자신이 생산되는 중에 자신이 포섭하는 부분적 객체 중 하나로 만든다. 그리하여 현실적 난초는 말벌의 잠재적 내용을 공-결정하게 된다. 동시에 난초는 말벌을 자신의 생산자 중 하나로 마주치고, 따라서 말벌은 난초의 잠재적 내용을 공-결정하게 될 수 있다. 요컨대 모든 "생산은 즉각 소비이며 하나의 기록 과정인데, 어떤 종류의 매개도 없다". (336)
- 양립할 수 없는 기계들을 인접한 흐름으로 결합하는 연결이 존재한다. 그런 관계의 이면은 이접이고, 이접은 현재 자신들이 공-생산하는 것의 특이성들을 새기거나 추가하거나 제거하거나 망쳐놓거나 혹은 살짝 건드리는 다른 존재자들로 가장 잘 이해된다. (338)
- 연결적 종합은 존재자들을 인접한 현실태로 결합함으로써 차이를 "없애버리"지만, 이접적 종합은 차이를 사물의 핵심에 새긴다. (338)


다섯 번째 간주 - 그레이엄 하먼과 사중 객체
- 들뢰즈가 존재자들을 실재의 더 기본적인 지층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환원한다는 이유로 가장 강경하게 그릴 비난.
- 객체 자체는 관계-외적인 측면이 있다. 이런 관계-외적인 특성이 객체에 대한 우리 경험의 일부가 아니라 객체 자체의 일부. (341)
- 들뢰즈는 이들 측면을 기계의 신체와 특이성들이라고 일컫고, 한편으로 하먼은 객체의 실재적 객체와 실재적 성질들이라고 일컫는다. (342)
- 감각적 성질들은 실재적 객체(여전히 관계들의 외부에 남아 있는 것)의 성질들이 아니고 오히려 그 객체의 두 번째 단일체(자신의 소여에 전적으로 내재적인 것)인 하나의 통일된 객체의 성질들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부분적 객체라고 일컫고, 하먼은 감각적 객체라고 일컫는다. (342)
- 하먼과 들뢰즈는 변화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에 관해 대체로 동의.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에서는 이 방식이 '대리적 인과관계'라고 일컬어진다. 하먼은 유추에 의해 대리적 인과관계의 본설을 설명. (343)
- 이런 타자되기가 대리적 인과관계의 정수다. 하먼의 사중체에 의거하여 표현하면 비유를 구축할 때 우리는 제3의 객체 - 원재료와 종류가 다른 실재적 성질들을 갖출 새로운 객체 - 를 만들어 내기 위해 두 객체의 감각적 성질들에 의존한다. (343)
- 대리적 인과관계에 관한 하먼의 이론은 (내가 보기에) 이접적 종합에 관한 들뢰즈의 관념에 전적으로 어울린다. 생성된 역능들은 그것들을 생성하는 모든 현실태와 종류가 다르다. (344)
- 그런데 하먼의 철학과 들뢰즈의 철학은 변화가 언제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그것들 각각의 설명을 살펴보면 어긋난게 된다. (344)
- 하먼의 경우에도 한 존재자 속 실재적 성질들(들뢰즈의 특이성들)과 실재적 객체(들뢰즈의 신체)의 이중체가 가변적인 본질을 구성한다.
- 하먼의 경우에 변화는 제로섬 게임으로, 객체는 급격한 변형을 겪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346)
- 변화에 대한 하먼의 설명은 두 가지 위험을 물리치려고 고안되는데, 이들 위험은 (1)존재자들은 변화할 수 없다는 것과 (2) 존재자들은 끊임없는 생성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 (347)
- 변화를 유한한 횟수의 기회에 한정하는 것은 추가적인 논증이 필요. (348)


2. 되기라는 개념
- 리좀의 본질에서 이루어진 변이는 "되기" 혹은 "실체 자체로서의 변화"라고 일컬어진다. (349)
- 되기는, 초험적인 것이기에 인간의 느낌 혹은 여타 종류의 직접적인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기계의 푸이상스의 변이와 관련되어 있다. (350)
- 되기는 "가장 지각할 수 없는 것"이고 "한쪽 평면에서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은 나머지 다른 한쪽 평면에서는 지각할 수 없는 것이다". (351)
- 되기는 현실태에서 그것을 닮지 않은 잠재태로 이행한다. (353)
- 되기는 기계의 내부적 물질 또는 이념의 변이와 관련되어 있다. 기계는 운동하고 흐르고 변화하는 물질, 특이성들과 표현의 특질들을 운반하는 물질이다. (353)
- 이런 변화는 한 기계의 다른 기계들과의 마주침에서 비롯되지만, 잠재태와 현실태 사이의 종류 차이로 인해 그런 관계들은 언제나 '원격' 상태에 있게 된다. (354)
- 생성됨과 생성함의 이런 보편적 구조로 인해 이념은 단지 기계의 물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의 불타오르는 생동적인 중핵"이고 "실재의 고동치는 핵심"이다. (355)
- 모든 기계는 "한편으로는 욕망하는 기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기적 기계이거나 기술적 기계 혹은 사회적 기계다. (356)
- 한 기계가 다수의 다른 기계를 자신의 생성자들로 수축시키는 한에서 그것은 사회적이다. (356)
- 반면에 한 기계가 다른 기계들에 의해 포섭되는 한에서 그것은 기술적이다. (356)
- 제3의 기계에 의한 수축만이 두 기계를 결합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을 떠올리자. (357)


3. 회집체와 강도
-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기계들'이 필요하다. 회집체라는 것은 자신의 특이성들이 다른 회집체들과의 마주침에서 비롯되는 결과이게 하는 것이다. (358)
- "자신의 연결들을 늘림에 따라 반드시 본성상의 변화를 겪는 다양체의 차원이 이런 식으로 불어난 것이 바로 회집체다". (358)
- 회집체는 "귀속될 수 없는" 채로 남아 있는데, 말하자면 언제나 자신이 맺은 관계들의 외부에 있다. (360)
- 회집체는 코드를 수축시켜 자신의 이념을 바꿀 수 있다. (360)
- 어떤 존재자가 다른 한 사물의 기능원이 되면, 이 상황으로 인해 그 존재자는 어떤 표현 패턴들에 갇히게 됨으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게 된다. (361)
- 만사는 해당 역능들에 부합하는 특정한 우발적 마주침에 의존한다. (361)
- 모든 되기는 변환이다. (363)
- 착란증은 "욕망하는-기계들의 새산의 경과로 이루어지는 기록"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364)
- 욕망은 생산되어야 하므로 원칙적으로 가변적인 것이기에 극한에서 기관 없는 신체를 채우는 것은 이념적 사건 자체다. (365)
- 되기의 이접적 종합은 반현실화를 수반하는데, 말하자면 자신이 아니었던 것이 된다. (366)
- 들뢰즈는 강도들이 자리하고 있는 단일한 보편적 심층(혹은 힘, 혹은 과정, 혹은 차원)이 모든 존재자의 근저에 놓여 있거나 모든 존재자에 스며들어 있다는 자신의 초기 관념을 거부했음을 떠올리자. 이런 거부 사태 이후에 '강도'는 존재자의 특이성 또는 푸이상스의 엄밀한 동의어가 된다. (366)
- 강도는 되기를 통해 바뀔 수 있다. 한 기계가 다른 한 기계를 어떻게든 변경하는지 여부가 그것들의 마주침의 강도에 의존하기 때문. 그리고 마주침의 강도는 관련되는 기계들의 잠재적 이중체들에 의존. (367)
- 강도는 다양체의 내부적 물질을 가리키는 적절한 동의어다.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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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노동] 게릴라세미나 1회(처음~127)
케이 | 2022.09.18 | 추천 0 | 조회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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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공지] 『임상노동』 ― 9월 18일 일요일 시작!
ludante | 2022.08.30 | 추천 1 | 조회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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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공지] 『아이돌이 된 국가 ― 중국의 인터넷 문화와 팬덤 민족주의』 - 7월 24일 일요일 오후 4시 시작!
ludante | 2022.07.20 | 추천 1 | 조회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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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속성과 교차성』, 7월 3일 세미나 일정
jy-yun | 2022.06.27 | 추천 1 | 조회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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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공지] 전지윤, 『연속성과 교차성』 ― 6월 26일 시작!
jy-yun | 2022.06.20 | 추천 1 | 조회 1344
jy-yun 2022.06.20 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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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사변적 실재론(8장~)
sodam | 2022.06.05 | 추천 3 | 조회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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