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110 - 151

작성자
ujida
작성일
2018-12-07 19:40
조회
1306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마지막 파트에는 벤야민이 어린 시절 관찰 했던 집안의 ‘가구’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어머니의 세탁물 옷장”은 벤야민에게 “반짝이는 낙원”이다. 그는 금기의 장소였던 부모님의 침실을 언급하며, 커튼이 쳐져 있는 음침한 한쪽 구석을 “어둠”, 이나 “지옥”으로, 비단 향 주머니가 흔들거리고, 라벤더 향기가 나는 어머니의 옷장을 “천국”으로 묘사한다.(111) 이는 기존에 벤야민이 ‘노란색 장신구’로 상징되는 어머니의 세계를 다루던 방식과 유사하다.

집에 있는 ‘책상’은 벤야민에게 놀이의 공간이다. 벤야민은 학교의 책상을 ‘지루한’ 것으로, 집 책상을 ‘아늑한’ 것으로 표현한다. 그는 집 책상과 “합심”하여 학교 책상에 맞선다고 말하는데, 이는 지루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반항 같은 것으로 읽힌다. “고통의 도구” 이던 공책, 컴퍼스, 사전 등은 여전히 그 곳에 있지만, 더 이상 (학교에서처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이 사실은 벤야민에게 위로가 된다. 벤야민이 집 책상 위에서 하는 행위는 겉종이를 벗겨내는 놀이나, 그림 오리기,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옛날 공책 들여다보기 등 이다. 그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거나 자신을 얽매던 어떤 것이 무력화되는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을 드러낸다.(113-116)

장롱 서랍장은 벤야민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던 최초의 옷장이다. 어머니의 열쇠꾸러미 없이도 열 수 있었던 유일한 가구, 이곳에서 벤야민이 발견하고자 했던 ‘선물’은 모직 덩어리다. 이 선물을 찾기 위해 서랍장 속을 탐색하는 그의 작은 손은 과자를 넣어둔 캐비넷을 탐색하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벤야민은 하나의 완성된 사물 대신 부스러기나, 파편,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어떤 것들에 관심을 두고, 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그 과정을 독자들에게 느린 템포로 보여준다.(118-119)

금기의 장소이지만, 어린 벤야민에게 여전히 접근이 가능했던 곳은 책장이다. 아버지의 책들은 그가 읽도록 허용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물쇠로 잠겨있지도 않았다. 나무테두리에 불투명한 색색의 유리들로 이뤄져 있는 이 가구는 부모님의 부재 시 벤야민이 금기를 깨고 넘어갈 수 있는 영역이었으며, 그는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책을 꺼내어 몰래 읽는다. 내용을 이해할 수도 없고, 신경이 온통 현관문에 가있었으면서도 그가 이 곳에 있는 책들을 읽었던 이유는 금기를 깨는 쾌락과 관련된다.(120)

벤야민에게 찬장은 “신전이 있는 언덕”이다. 천정까지 닿은 높이의 이 가구는 육중한 크기와 그 속에 들어있는 ‘보물’들 때문에 벤야민에게는 범접하기 힘든 영역이다. 그 속에 들어있는 ‘은색의 가보’들을 실제로 사용하거나 볼 수 있는 날은 사교모임이 열릴 때 뿐이다. 그는 화려한 식기들을 보며 즐거움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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