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5/15 플라톤 대화편, 『알키비아데스 2』

작성자
bomi
작성일
2020-05-15 18:48
조회
457
삶과예술 세미나 ∥ 2020년 5월 15일 금요일 ∥
텍스트: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1,2』, 김주일, 정준영 옮김, 이제이북스, 2014. "알키비아데스2"

『알키비아데스』에 등장하는 '다수', '다중(대중)'에 관해

「알키비아데스 1」

소크라테스: 그러면 자네는 아이였을 때도 정의로운 것들과 정의롭지 못한 것들을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군 그래. (...) 누구한테서 배웠나? 내게 좀 말해 주게.
알키비아데스: 다중 한테서요
소크라테스: 자네가 다중에게 그 공을 돌린다면 적어도 대단한 교사들한테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네. (55, 56p)

「알키비아데스 2」

소크라테스: 알키비아데스, 그렇다면 무분별한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말해야 우리가 옳게 말하는 것일 게야. 당장 자네 또래들 중에 어떤 이들이 (실제로 그렇듯이) 무분별하고, 심지어 더 나이 든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할 경우에 말이야. 자, 제우스께 맹세코, 생각해 보게. 자네는 한 나라의 사람들 가운데 분별 있는 사람은 소수고, 자네가 미쳤다고 부르는 무분별한 사람은 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171, 172p)

소크라테스: 자네는 많은 사람은 '무분별'하고, 소수의 사람은 '분별 있다'고 하지 않나?
알키비아데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무언가를 보고서 양쪽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알키비아데스: 예.
소크라테스: 그러면 조언할 줄은 알되, 어떤 조언이 더 좋고 언제 하는 것이 더 좋은지는 모르는 사람을 자네는 '분별 있다'고 하는가?
알키비아데스: 그건 아니죠.
소크라테스: 내 생각에는, 전쟁하는 것 자체만을 알고, 언제 하는 것이 더 좋고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하는 것이 더 좋은지는 모르는 사람도 자네가 '분별 있다'고 부르는 사람이 아니겠군. 그렇지?"
알키비아데스: 예. (183p)

소크라테스: 자네는 많은 사람은 '무분별'하고, 소수의 사람이 '분별 있다'고 했었지?
알키비아데스: 그랬죠.
소크라테스: 우리가 다시 하는 말이네만, 많은 사람이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있는데, 내 생각에 이는 그들이 대개 지성은 없이 판단만을 신뢰하기 때문일세. (186p)
소크라테스: 나라든 혼이든 장차 옳게 살고자 한다면, 이 앎에 매달려야 하네. 그야말로 병자가 의사에게, 또는 안전하게 항해를 하려는 사람이 키잡이에게 매달리듯이 말일세. 이 앎 없이는 재산의 소유나 육신의 힘,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어떤 것에 관한 운의 바람이 힘차게 불면 불수록, 그것들로부터 더 큰 잘못이 생겨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일 듯하기 때문일세. 이른바 아는 것 많고 재주 많은 사람이, 고아처럼 이 앎은 잃고 다른 것들에 대한 하나하나의 앎에 이끌려서, 숱한 악천후를 맞는 게 정말 당연하지 않은가? 내 생각에 이것은 그가 큰 바다에서 키잡이 없이 지내며 길지 않은 시간의 인생을 달리는 탓일세. (187p)

[미주] *다수
플라톤 철학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대화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다수는 처음에는 수적인 의미만을 갖고 나타나지만, 이 구절에서 '다수는 무분별하다'는 규정을 받듯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다수는 특정한 성격을 갖춘 집단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이 번역본에서는 수적인 의미가 두드러질 때는 '다수' 또는 '많은 사람'으로, 집단의 성격이 두드러질 때는 '다중'으로 번역했다. (196p)

[미주] *다중
다중(hoi polloi)과 소수(hoi oligoi)의 대비는 플라톤 대화편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플라톤은 철학이 소수에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국가>의 철인치자(철인통치) 사상과 결합되면 엘리트 주의로 귀결된다. 흔히 플라톤 철학과 관련해서 칼 포퍼와 같은 이는 이런 측면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다중과 소수를 대비할 때 다중의 무비판성, 글고 그로 인해 중우정으로 전락할 위험에 대해 철학적 비판의 칼날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은 곧잘 무시된다. 우리의 대화편에서 보듯이 플라톤은 철학을 가지고 당대의 정치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보이는 소크라테스의 모습과 일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질문>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하는 '다수'와 '소수'의 비교를 '다수성'과 '소수성'의 비교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 자료>_ 『노마디즘 1』, 이진경 지음, 휴머니스트, 2002

『천의 고원』의 다수성(majorité) 소수성(minorité)
다수적 언어 (다수어) 와 소수적 언어 (소수어)

표준어는 원래 그것을 사용하던 사람이 누구고, 얼마나 많았는지에 상관없이 표준어가 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다수'에 의해 사용된다. 이에 반해 다른 지역적 언어들은 표준어가 아닌 언어, '방언'이 된다.
표준어가 보여주듯이 다수적 언어는 결코 다수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다. 표준어는 다수에 의해 사용된다는 이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에 의해서, 혹은 정치적, 지리적 중심인 수도 근방의 언어라는 이유에서 표준어가 된다.
권력에 의해 표준어가 된 언어는 교육에 의해서든, 매체에 의해서든, 원래 그 언어를 사용하지 않던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되며, 다른 지역이나 지방의 언어활동이 맞추어져야 할 모델이나 표준이 된다.
박언이 소수적인 언어인 것도 이러한 다수적 언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지, 소수(실제 소수의 사람)가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다.
"다수적 언어의 단일성과 방언의 복수성을 단순히 대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방언은 변천과 변이의 지대를 갖고 있으며, 다행히도 소수적인 언어는 변이의 고유한 방언적 지대를 가지고 있다" _ 천의 고원 중.
소수적인 언어란 다수적인 언어를 변형시키고 변이시키는 성분이며, 새로운 종류의 언어를 생성하는 언어라고 저자들(들뢰즈 가타리)은 정의한다. 다시 말해 다수적인 언어를 변이시켜 새로운 종류의 언어(활동)를 만들어내는 것은 모두 '소수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방언 아닌 소수적 언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천의 고원』의 저자들은 문체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의 (다수적!) 언어 안에서 다양한 (소수적인!) 언어들을 생산하는 것을 강조했으며, 자국어 안에서 이방인이 되는 것, 일종의 '외국어'로 쓰는 것에 대해 말한 마 있다.

<결론>
1) 소크라테스는 '지성이 없이 판단만을 신뢰하는 것' 을 비판하고 지성(자기 인식)에 의한 더 좋은 앎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더 좋은 앎을 항해술 중 '키잡이'에 비유한다.
2) 소크라테스는 "웅변가 대 대중" 이라는 구도에서의 배움보다는 "함께하는 토론" 에서의 배움을 중시한다. 전자는 지성(자기인식) 없이 세간의(혹은 웅변가의) 판단을 신뢰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후자는 더 좋은 앎 즉 키잡이 기술을 탄생시킬 수 있는 배움으로 볼 수 있다.
3)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 웅변가(수사학의 대가)와 정치가와 권력자는 각각 범주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보면 같은 맥락에 놓여있는 인물 유형들이다.
4)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다수로부터 배움, 혹은 다수로서의 배움은 중심 혹은 표준적 배움이다. 이러한 배움-가르침은 지성 없이 이루어지는 판단만을 신뢰하게 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배움-가르침을 통한 앎은 공동체를 고정시키는 앎, 새로운 앎의 탄생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서 공동체의 변화를 가로막는 앎이다.
5) 반면 소수의(소수적) 앎은 토론을 통해 (지성, 자기인식을 통해) 배우는-가르치는 앎이며 기존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형시키는 성분들을 지닌 키잡이로서의 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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