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전쟁과 영화 6장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9-02-23 10:31
조회
684
전쟁과 영화 6장 - 시간적으로 앞선 자가 권리상 우선권을 갖는다

영화 ‘최후의 카운트다운’의 미 항공모함 니미츠 호는 1940년대로 시공간을 거슬러 간다. 그리고 일본군 함대가 진주만으로 진격하는 상황이 니미츠 호에 탐지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함장은 함대를 막을 것인지, 아니면 그냥 놔둘 것인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비릴리오는 항공모함을 ‘등대’에 비유하며, 영화 속 상황을 통해 현대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식별 수단은 역사를 억제하고 막는 수단처럼 이용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전쟁 기계는 시간을, 우리가 비자발적 주역으로 있는 군사 - 산업적 선전전의 소재로 만든다.

두 세계대전 사이 영국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과 탐지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는지 살펴보자. 할리우드에서 연기하던 레슬리 하워드는 선전 영화 제작을 위해 영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 시도는 실패에 끝났다. 이후 1943년 에른스트 루비치가 ‘사느냐 죽느냐’를 미국 관객에게 선보였다. 하지만 이미 그때 미국인들은 셰익스피어극을 하는 어둡고 초라한 배우들보다는 히틀러를 무찌르는 슈퍼맨을 원했다. 이 시기는 루스벨트가 전면전을 선언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번에 영국인들은 독일의 정보욕에 자극받아 새로운 착상을 하게 된다. 독일의 루프트바페는 폭격기인 동시에, 전장뿐 아니라 영국 영토를 촬영하도록 되어 있는 일종의 ‘전쟁 영화 제작자’였다. 연합군은 이에 대항하여 더 이상 단순 영화 제작 대립이 아닌, 뉴스 영화와 히틀러식 정보 영화의 연출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위장술이 아닌 과다 노출에 기대게 된다. 그 예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대대적으로 준비했던 순간을 들 수 있겠다. 훈련은 영국 동부 지방에서 이루어졌는데, 그때 이곳은 거대한 촬영장과 유사했다. 풍경은 보드지, 고무, 할리우드 무대 장치처럼 케이블로 제조된 허구적 시설로 뒤덮였다. 비릴리오는 이를 ‘시각적 거짓 정보화’작업이라 불렀다.

분쟁이 끝난 후, 1939년부터 시작된 영국 청음 탐지 서비스는 이제 동구의 나라들로 방향을 돌려, 국제 선전과 그 각본을 해독하는 임무를 계속 수행한다. 그리하여 영국 기술자들은 군사적 ‘특수 수단’에서 영화적 ‘특수 효과’로 쉽게 이행한다. 이 시기 sf 영화들에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장갑선, 탱크, 폭격기로부터 나온 무수한 실재적 요소들이 반영되었다.(스타 워즈, 에일리언) 군사 기술은 너무나 발전하여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며, 기술적 신체들의 비밀은 우리 안에서 머나먼 나라의 매혹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장치들의 접근성에 대한 욕망은 즉각성의 속임수를 반복했다. 그것이 영화 속 ‘허구의 비행선’들을 만들어 낸 게 아닐까 한다. 여기서 항공 역학은 ‘대기 유출 과학’의 가치를 느닷없이 상실하고 흐르는 시간의 병참술적 범신론이 된다.

영화 편집 기술의 발달로 이제 우연적 요인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미지는 ‘실내’에서 모니터를 통해 작업하는 연출가에 의해 마음대로 조작되고 덧칠된다. 전쟁에서는 전면적 개입이 폐지되고, 핵 억제는 영구적인 기술 효과 속에서 시나리오 효과를 사라지게 하려고 시도한다. 이 새로운 혼합물을 통해 세계는 전쟁 속으로 사라지고, 현상으로서의 전쟁은 세계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항공모함 나미츠의 선원들은 자신들의 작업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허구가 현실과 결합하여 자신들이 현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서양은 연극 도시의 정치적 환상에서 영화 도시의 정치적 환상으로 이행하게 된다. 논평이나 대본 없이 24시간 내내 뉴스 영상을 방영하는 미국 텔레비전 채널은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각의 일차적 질료’이자, 가능한 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일차적 질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청강적 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비디오나 워크맨은 ‘현실과 외양의 일부’이며, 단순히 이미지를 보거나 음악을 듣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현실을 연출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수만 명의 관객들이 몰려드는 대형 스타디움의 카메라는 과거처럼 특정 배우들만 비추는 게 아닌, 군중의 흥분과 절정을 비춘다. 이는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또한 자신을 드러내고 전시하는 이중의 심리학이다. 오늘날 살아 있는 범영화계는 우리의 눈 아래에서 예전에는 ‘질서 정연한 전쟁의 창조’ 속에 잘 숨어 있던 이 카오스를 전개한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가 갑자기 일상적 준거로부터 빠져 달아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근거 없는 행위가 아니라, 영화 행위다. 영화는 더 이상 영화적 발할라를 제안하는 전쟁적 토착성의 마법 의식이 아니다. 이미지 필름과 사운드트랙의 상업적 확산으로 낡은 영화의 이러한 놀라운 기술적 속성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천 명의 관객들이 있는 영화관을 한 명의 관객이 있는 것처럼 만들게 되는 시각에 의한 사회의 형태화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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