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발제문(78~122쪽)

작성자
Yeonju Yu
작성일
2018-04-10 18:36
조회
63
■ 다지원 페미니즘 세미나 ∥2018년 4월 10일∥발제자: 유연주
텍스트: 수전 브라운밀러, 박소영 역,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오월의봄, 2018(1975), 78~122쪽.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강간>
-파시즘의 본질은 정상 사회가 남성적이라고 여기는 가치를 과장한 것이다.
-니체: “남자는 전쟁을 위해 훈련받아야 하며 여자는 전사의 즐거움을 위해 훈련받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 강간 이데올로기가 그 꽃을 활짝 피웠다.(78)
-“히틀러는 언제나 대중은 본질상 여성적이라고 말했으며, 그의 공격성과 카리스마는 청중에게서 마조히즘에 가까운 굴복과 복종-일종의 정신적 강간-을 이끌어냈다. …… 그는 청중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지배했다.”
-나치의 목표는 (…) 지배하는 것 (…) 나치는 대중이 연약하고 여성스럽다고 간주하고 제도적으로 관리하려고 했는데, 유대인 대중은 특히나 더 약하고 여성스럽다고 생각했고, 볼셰비키 대중도 유대인만큼 약하고 여성스럽다고 여겼다. 여성성을 열등함과 연결시키는 이런 논리는 자연히 강간을 억압 수단으로 삼는 결과를 낳는다.(79)
-1938년 11월 ‘수정의 방’ 폭동 사태: 유대인 여성을 윤간하는 사건이 처음으로 발생 (…) 독일이 정식으로 전쟁을 일으킨 후 여러 장소에서 계속해서 되풀이한 패턴의 원형.
-‘심각한’ 두 번째 단계: 유대인을 한 곳으로 몰아 총기 난사하거나 게토로 몰아넣었고, 결국은 짐칸에 실어 강제 수용소로 보낸 것이다.(이른바 ‘최종 해결책’)(80)
-목격담들: “그녀가 끌려나가는 것을 보고 살해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 바로 앞마당에서 그녀를 강간했다.”(81) “소녀의 어머니는 그들이 소녀를 죽일까봐 두려워서 작게 말했다. “저항하지마.” 소녀는 옷을 벗었다. 그들은 소녀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손전등으로 몸을 비추며 고문과 폭행을 가했다.“
-엄격한 ‘인종 오염’ 금지 명령에 따라 독일인이 유대인을 강간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인종 오염 금지 명령이란 1935년 뉘른베르크 인종법의 일부로서, 아리안의 ‘피’를 오염시키는 일을 막기 위해 결혼과 혼외정사를 금지했을 뿐 아니라, 그 자체의 비틀린 논리에 따라 강간까지 금지했다. 인종 오염 행위를 하다가 적발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심각한 갈등을 겪은 독일 병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82)
-독일군은 유대인 집단 일반에게 가학성애적으로 수치를 주는 일을 일삼았다. (…) 독일군이 바르샤바 게토에서 탄압을 강화한 시기에도 성적 수치심을 주는 수법이 한몫을 했다.(83)
-전시에 강간 이야기는 이용가치가 있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더 이상 여성의 말을 믿어주거나 여성만 겪는 특수한 비극을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주제로 간주할 정치적 필요가 없어졌다.
-독일군의 문건의 아이러니함: 독일군이 강간을 테러용 무기 삼아 상섭적으로 이용했다는 가설을 입증해준다. (…) 독일군이 이런 문건을 남기에 된 사유 (…) 독일 당국의 ‘공식’ 입장이란 “통제할 수 없는 일부” 독일군이 도를 넘은 추악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며 책임을 일부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었다. (…) 경쟁자에게 불리한 증거를 쌓아두고 싶은 지휘관의 욕망이 동기일 때도 있었다.(85)
-유대인의 철학과 관행을 흔드는 문제로서의 강간: 사람들이 랍비에게 찾아와 조언을 요구했기에 랍비들은 어떻게든 답을 내놓아야 했다.(86) “곤경에 처한 독실한 유대 여성에게 비난의 말을 던지고 싶지는 않을 것”, “ 우리는 고통받은 만큼 보상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 “쓸데없는 고통을 더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 문신
-물론 독일군이 러시아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유대인 여성들만 강간당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여성이 희생자였다.(87) -> 소련: “모든 점령지에서 성인 여성과 소녀들이 몹시 비열한 잔혹 행위를 당했다.”(88)
-전시 강간의 또 다른 양상: 군사적 응징 내지 보복의 수단으로 강간을 이용한 것 -> 프랑스: 프랑스의 무장 게릴라 단체인 마키가 저항 활동을 벌였을 때 이를 응징하려고 벌인 만행

<일본의 강간>
-난징: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일본)가 지배민족 이론-여기서는 중국이 ‘열등한 민족’의 역할을 강요받았다-에 사로잡혀 저지른 만행 (…) 난징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강간의 전모.(90) 난징에 남은 민간인들이 겪은 일은 대규모 성폭력의 도가니.
-장제스 총통의 명령으로 공식 뉴스는 침묵 (…) 비공식적 경로로 새어나왔다. 물론 난징은 의심의 여지없이 불법 잔혹 행위의 희생자였다. (…) 그런데 유독 강간 이야기만큼은 국제 언론인들도 조심스럽게-거의 언급을 꺼리는 태도로-다루었다.
-서방 언론이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난징에서 조직적인 대량 강간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보기 드물게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난징의 강간’이라는 말이 전 세계적으로 난징 침공의 대명사처럼 사용될 정도였다.(91)
-이 모든 피해가 ‘난징의 강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정작 보고서의 편집자가 강간에 관해 남긴 말은 이것뿐이다. “조사 방법 및 용어 선택에서 강간을 배제하긴 했지만, 부상당한 여성 중 65퍼센트는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연령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전시 강간 사건이 대체로 그래왔듯, 난징의 강간도 저 지점에서 입증되지 않은 전시 루머의 영역으로 밀려나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다. (…) 몇 년 전만 해도 조사하기 힘들다던-그토록 완벽하다던 ‘조사 방법 및 용어’ 선택에서 ‘배제’된-사실이 갑자기 중요하게 취급되기 시작했다. (…) 그들이 강간 범죄에 무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재판을 통해 드러났다. 옿려 강간 문제가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그들을 마비시켰던 듯했다.(92)
-기록에도 차별이 존재: 그 보고에서 추산한 바로는 하루 평균 적어도 10건의 윤간 사건이 있었다.(실은 ‘표본 사례’라고 부른 사건이 10건이었다,) 중국인의 이름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95) (…) 워낙 실상이 참혹해서 참담해질 뿐 아니라, 보고서 작성자가 사건의 경중을 따지는 관점 때문에 또 한번 참담한 심정이 된다.(96)

-미국: 수용소에서 강간당할 뻔했으며 그 사실을 알리려다가 보복성 폭력의 피해자가 된 미국인의 사례: 짐작하기에는 일본인 간수들이 서구인 억류자를 성 학대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듯 보였다.(99) (…) 수용소 당국에 강간 미수에 대해 보고했으나, 당국은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면서 오히려 그녀에게 갈비뼈 골절과 어깨 탈구를 선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여성에게 자행된 여러 가지 학대 중 가장 악랄한 행위는 군인의 쾌락을 위해 강제로 여성을 붙잡아서 제도화한 수용소 성매매 시설과 강제수용소 내에서 벌어지는 강간이다.
-군인들은 그 일을 마친 후 자기가 사용한 ‘인형’의 성능을 기록해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부정적인 보고가 3회 누적되면 죽음을 의미했다.(100)
-아리아인 여성 죄수로 이루어진 아우슈비츠 성매매 시설 이야기 (…) 그녀(의사)는 은밀히 그 여성들을 치료하고 낙태시술을 했다고 한다.
-전시 강간에서 한 여성이 피해자로 선택되는 이유는 그 여성이 적을 대표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여성이고, 고로 적이어서 선택되는 것이다.(101) 남자로만 구성된 군대는 특유의 남성지배 감각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고, 결국 추축국의 전쟁기계의 본질은 단지 그런 남성 이데올로기를 더 심한 강도로,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부풀려서 실행했다는 것이다.

<연합군의 강간>
-연합군의 강간, 비대칭적 증거: 연합군의 잔혹 행위를 드러내고 심판하기 위해 소집된 국제재판은 없었으며, ‘적’인 여성으로부터는 어떤 전쟁 범죄 증언도 수집되지 않았고, 우리 편인 연합군의 유죄를 입증하는 일급비밀 문서가 인정사정 없이 백일하에 드러난 적도 전혀 없었다. 강간을 연구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증거가 불공정하게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연합군이 강간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 여성 혐오 정서가(102) 영예롭고 복수심에 불타는 투쟁으로 위장하고 왕성하게 흘러넘쳐 행동으로 발산되었거나, 강간이 선한 싸움을 하고 있는 영웅적인 전투원의 활기찬 자기과시처럼 여겨진 것은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
-한편, 이데올로기적(애국주의, 민족주의, 반공주의 등) 선동에 동원되는 ‘우리 여자 지키기’ 서사: 좋은 불쏘시개(…)저 영광스러운 붉은 군대가 결국 베를린으로 가는 길에 “음탕한 독일 놈들”에 견줄 만큼 흉포하게 여자들을 강간했기 때문이다.
-증언들은 서로 비슷한데, 그 내용의 유사성은 기록을 조작하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전시 여성 경험의 보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108)
-전쟁 직후에는 아무도 독일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으나, 이후 그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 반공산주의 성향의 독일 교수들이 강간 기록을 수집해서 그로부터 민족주의적 의의를 찾으려 든 것 역시 뻔한 패턴의 일부일 뿐이다.(109) (…) 이 독일 교수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에렌부르크가 최전방 급보와 애국주의 전단을 써서 러시아 군대가 강간하게끔 선동했다는 것이다.(110) 베드나리크는 붉은 군대가 앙갚음으로 더 잔혹한 파괴를 일삼는 것을 막기 위해 독일 여성의 몸을 희생양 삼아 던져주자는 식으로(111) 에렌부르크가 고의로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 독일 교수들처럼 베드나리크도 책임을 떠넘길 누군가가 필요한 나머지 무리하게 외삽법을 적용한 것이다.

<소련군의 강간>
-소련군의 강간(112)에 특별히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자신들이 ‘새로운 소비에트 인간’이라고 그토록 생색을 낸 러시아인들이 결국 전시에는 구태의연한 인간 남자로 판명되었다는 사실이다. (…)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닌 진짜 문제는 오히려, 붉은 군대가 어떤 이데올로기의 교화를 받았든 그 교화 과정에 여성이 당해온 성적 억압은 내용으로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수용소 군도》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솔제니친은 전시 강간의 의미나 문제점, 실제로 효과가 있는 강간 억제 및 처벌 시스템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기는커녕, 강간은 애초에 범죄가 아니며 그저 술에 취하는 것을 과하게 즐기는 성향 때문(113)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는다.(114)

-다른 인종의 강간: 비토리오 데 시카의 영화 <두 여인>(1961)은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저 강간을 사뭇 다른 시점에서 제시한다. (…) 두 여성이 강간당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전쟁과 생존의 본질에 대해 던지는 가장 역설적인 논평이다.(115)
-강간하는 군인 역으로 아프리카인을 골랐다며 화를 냈다. 내가 기억하기로 로슨은 그 배역 선정이 노골적인 인종차별이나 다름없다고 여겼고, 누구나 알 듯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악당은 독일이니 영화 속의 강간범도 당연히 독일군이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 적이 강간을 하면 그 적이 얼마나 짐승 같은 자들인지 보여주는 증거가 되지만, 우리 편이 강간을 하면 그 사실을 화제로 꺼내는 행위가 정치적 협작이 된다. (슈투트가르트 지하철 사건을 둘러싼 논란)(116)

<미국의 강간>
-미국의 강간: 승리한 영웅에게 적용되는 유구한 전통에 따르면 해방자에게는 여성의 몸이 선물로 주어지곤 하는데, 이것이 마치 여성 개인이 ‘마땅한 보답’이나 일종의 모험으로 스스로 몸을 내놓는 것인 양 간주되어왔다. 하지만 실상은 경제적 궁핍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미군의 경우 자유거래 행위였다는 점이 흐릿하게나마 전시 강간과 차이를 보이지만 실상 전시 성매매와 전시 강간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 그들은 자기가 저지른 강간 행위를(118) 피해자도 책암을 공유하는 매춘 행위로 바꾸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 내가 아는 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미군이 성매매를 목적으로 여자들을 강제로 소집한 적은 없지만, 전쟁으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해방된 국가의 굶주린 여성에게 달러의 유혹이란 그 자체로 충분히 일정의 강제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전시 강간과 성매매를 실제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성매매가 가능해도 강간을 더 선호하는 부류의 남자들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119)
-제2차 세계대전 시기 군대의 강간 유죄판결 기록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 (…) 전체 유죄판결 중 3분의 2가 전쟁 기간이 아니라 점령 기간에 내려졌다는 점이다.(121) 점령 기간 유죄판결 건수가 늘어난 것은 1) 즉각 재판이 열리고 법적 조치를 취해서 2) 전쟁의 실상을 드러내는 수치 “점령 기간에는 군인 개인들이 재량껏 쓸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강간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3) 전쟁이 끝난 후 점령 기간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점령군과 민간의 책임 당국 사이에 협력 비슷한 것이 형성되었고, 그런 뒤에야 강간 사건이 사법처리될 기회가 좀 더 생겼을 것.(122)
[이렇게 생각한다] 미투 운동 두고 “수컷 씨 뿌리는 본능”? 틀렸다
최근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Too)’ 운동에 관해 “수컷이 많은 씨를 심으려 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인류학자인 이상희 미국 캘리퍼니아 리버사이드대 인류학과 교수가 이에 대한 반박글을 보내왔습니다.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로 부탁드립니다.

본능이라는 프레임은 성폭력 행위의 중심에 있는 권력과 폭력에서 관심을 돌리게 한다

한 정치인이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인간의 유전자를 보면 남자, 수컷은 많은 곳에 씨를 심으려 하는 본능이 있다”면서 “이는 진화론에 의해 입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그는 ‘진화론으로 입증된 본능’이 아니고 ‘본능을 제어하는 문화와 제도의 중요성’이 발언의 초점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문화와 제도가 중요하다는 그의 결론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 논의에 본능을 끌어오는 일은 과학적으로 틀릴 뿐 아니라 위험하므로 한마디 해야겠다. 미투 운동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행위는 진화론에 의해 입증된 수컷의 본능일까?

진화론은 특정 유전자의 비율이 세대를 거치면서 늘어나거나 줄어들면 진화라고 정의한다. 유전자의 비율이 늘어나려면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개체가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개체보다 더 많은 후손을 남겨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유전자를 많이 남기는 것이 진화론의 입장에서 유익하다”는 명제는 맞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유전자를 많이 남기면서 진화하는 것은 수컷뿐만 아니다. 암수 모두가 해당한다. 이 세상의 생물체는 동식물을 막론하고 암수 모두 유전자를 많이 남기기 위해서 다양한 행위를 펼친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수컷끼리의 경쟁은 암컷에게 가장 편한 방식이다. 수컷끼리 미리미리 서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순위를 매겨두기 때문에 가임기가 되면 큰 고민하지 않고 우위를 점한 수컷을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높은 순위의 수컷은 많은 씨를 뿌리게 되지만, 대다수 수컷은 암컷 가까이도 가지 못할 수 있다. 고릴라가 좋은 예다.

수컷끼리의 연대가 중요하다면 눈에 드러나는 경쟁을 하지 않는다. 침팬지가 좋은 예다. 이 경우, 암컷은 굳이 한 수컷을 선택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수컷과 섹스를 한다. 높은 순위의 수컷을 선택하는 대신 질 속에서 정자들끼리 경쟁하도록 놔두는 전략이다.

극단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수컷도 있다. 교미하는 동안 암컷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선물을 가져가기도 한다. 교미한 후에 다른 수컷의 정자가 들어오지 않게끔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 먹을 것이 자기 자신의 몸이기도 하다.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극단적인 결정이지만, 자신은 죽되 유전자는 남기게 되는 적응 양식이다.

섹스를 많이 한다고 새끼를 많이 낳는 것도 아니고, 많은 수의 파트너와 섹스를 한다고 많이 낳는 것도 아니다. 또한, 새끼를 많이 낳는다고 유전자가 많이 남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쥐처럼, 물고기처럼, 거북이처럼 많은 수의 새끼를 낳아서 그중 한두 마리만 살아남게 하는 경우도 있고, 사자처럼 한두 마리의 새끼를 낳아서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경우도 있다. 생물의 무궁무진한 세계는 실로 어메이징한 것이다.

‘씨를 많이 뿌리는 일’이 본능이라면 ‘가능한 한 많은 수컷과 섹스하기’도 본능이고, ‘섹스 후에 암컷에게 자진해서 잡아먹히기’도 본능이고, ‘경쟁 순위에서 밀려서 평생 섹스 구경도 못 하기’도 본능이고, ‘교미 직후 수컷을 죽여서 먹기’도 본능이다. 수천 마리의 새끼를 낳는 것도 본능이고 한 마리만 낳는 것도 본능이다. 본능은 천의 얼굴, 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투 운동에서 폭로하는 성폭력의 행위가 수컷의 본능이라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틀렸다. 성희롱, 성추행, 강간의 행위는 씨를 뿌리는 일이 아니다. 설사 강간의 결과로 임신이 되고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도, 이는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생식 행위라기보다는 사회학, 인류학에서 이야기하는 권력에 의한 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희롱부터 강간까지 일련의 행위가 본능에서 행해졌다는 주장은 단순히 과학 지식의 왜곡된 전달에 지나지 않는다. 본능이라는 프레임은 성폭력 행위의 중심에 있는 권력과 폭력에서 관심을 돌리게 한다. 우리 사회의 남성은 틈만 나면 정액을 뿌리고 싶은 본능에 움직이는 수컷으로 자리가 매겨지고, 제도는 그러한 자연적인 본능을 억제하는 수단이 되고, 여성은 수컷의 강한 본능을 억누르면서 보호해줘야 하는 암컷으로 자리가 매겨진다. 남성은 씨 뿌리는 수컷이 아니고 여성은 수컷이 뿌려대는 씨에서 보호받아야 할 순결한 처녀도 아니다. 왜곡된 본능에 인간을 자리매김하는 일은 과학 지식의 잘못된 전달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1481호 [W오피니언] (2018-03-13)
이상희 고인류학자·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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