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 세미나 발제문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8-07-10 13:56
조회
20
7/10 <말과 사물> 발제문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16장. 인간, 그 모호한 존재

1. “따라서 여기[고전주의 시대]에는 18세기를 지나서 구성되기 시작할 [근대의] 인간과학이 거론될 여지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18세기 이전 시기에 대한 분석의 결과는, 오히려 인간과학과는 정반대로, 재현의 이 같은 고전적인 공간 속에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곳에는 언제나 [재현을 위한, 그렇지만 그 자체가 부재인] 왕의 자리만이 존재한다. 물론 그곳에서도 ‘인간 본성’은 분명히 재현되어 있었다. 즉 인간 본성을 자연에 대립시켜 관계시키는 재현의 양분(兩分) 속에서 볼 때, 또는 하부재현적인 인간 고유의 영역 속에서 볼 때, 그곳에 인간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재현의 고전적인 공간 속에서 인간은 ‘두께를 갖는 최초의 실체로서, 가능한 모든 인식의 지고한 주체이자 난해한 대상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푸코가 그의 책 『말과 사물』에 ‘인문과학에 대한 고고학’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426)

2. “[인간과학의 조건이란? 인간의 진정한 탄생이란?에 대한] 푸코의 답변은 매우 분명하다. 즉 인간은 오로지 재현이 불가능하며 또 재현적이지도 않은 그 어떤 심급의 충격 아래에서 재현의 ‘고전적인’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도래할 때만 지식의 공간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말하자면 애매한 것 또는 그 어떤 깊이의 차원이 솟아오를 때만 비로소 인간이 지식의 공간 속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순간의 도래를 위해서는 우선 생물학이 탄생해야 했고, 정치경제학과 문헌학이 탄생해야 했다. 이제 생명체가 지니는 가능성의 조건이 생명 그 자체 속에서 탐구되며(퀴비에), 교환과 이익의 조건이 노동의 깊이 속에서 탐구되며(리카르도), 담론과 문법의 조건이 랑그의 역사적인 깊이 속에서, 언어적 굴절의 체계 속에서, 어미의 계열 속에서, 어간의 변형 속에서 탐구된다(그림, 보프). ……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의 변화와 맞물려서 인간은 이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발견되게 된다. 먼저 한편으로 인간은 노동, 생명, 언어에 의해 지배되는 무엇으로서 발견되며, 또 이로써 인간은 생물학, 정치경제학, 문헌학에서 모델을 찾게 될 새로운 실증과학의 대상으로서 발견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기 고유의 유한성의 범주 위에서 바로 이러한 새로운 실증성을 세우는 것으로서도 발견된다. 무한한 것을 대상으로 하는 형이상학을, 근대에 이르러, 생명, 노동, 언어 속에서 자신의 ‘선험적인(transcendantal)’ 구조를 발견하는 유한한 것을 대상으로 하는 분석이 대체하게 된 이유가 이것이다.” (428)

3. “결국 이로써 재현 속에서 동일한 것이 누렸던 [고전적인] 통치권이 무너져 내리게 된다. 왜냐하면 마치 이론상의 소외(aliénation de droit)가 그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은 이제 본질적인 다름에 의해서 가로질러지게 되며, 또 인간 스스로가 말, 노동, 욕구에 의해서 인간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현을 파열시켜버리는 이 같은 혁명 속에서는 [고전 시대와 달리] 더 이상 차이가 같은 것에 종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여기에서는 같은 것이 다른 것을 통해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니체의 혁명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430)

4. “이 점[방향을 잘못 잡은 인간과학]에 관한 푸코의 생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인간이 [고전 시대에] 재현의 대상으로 취해졌을 때 인간과학은 결코 구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의] 인간이 자신에게서 그 어떤 역사를 발견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인간과학은 구성되지 않았다. 사실 인간과학이 구성된 것은 오히려 이와 반대로 [현대에 이르러] 인간이 ‘비역사화’되었을 때, 사물들(말, 생명체, 생산물)이 인간과 인간의 재현으로부터 사물들 자신을 해방시킨 그 어떤 역사성을 받아들였을 때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에 이르러] 생물학, 정치경제학, 문헌학이라는 새로운 실증과학들을 모방하면서 인간과학이 구성되었다. 즉 인간과학이, 자신의 특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재현의 질서 위에 무의식적인 것이라는 근원을 얹어가면서 재현의 질서를 다시 고쳐 세웠던 것이다.” (431)

5. “푸코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오로지 사라져버린 인간의 공백 속에서만 사유를 할 수 있다. 이 공백은 결핍을 파헤치지도 않으며, 또 채워 넣어야 할 어떤 빈틈을 규정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사유가 마침내 새로이 가능하게 된 어떤 공간이 펼쳐진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실제로 유한성에 대한 분석이 우리에게 권유하는 일은 인간과학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의 새로운 이미지를 세우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진정으로 권유받고 있는 일은, 사유가 불가능한 것 또는 비-사유의 바깥에서 더 이상 그것과 대립되지 않는 사유, 반대로 사유가 불가능한 것을 사유 자신 속에 자리 잡게 함으로써 사유가 불가능한 것과 본질적인 관계 속에 놓이게 되는 사유(예를 들어 이 경우 욕구는 ‘사유의 한복판에서 언제나 사유되지 않는 것으로 남는 무엇’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결과를 놓고 볼 때 직접적으로 애매한 것과의 관계 속에 놓이게 되는 사유, 사유의 성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균열에 의해서 이론적으로 가로질러지게 되는 사유, 바로 이러한 사유의 새로운 이미지를 세우는 일인 것이다. 균열은 결코 채워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균열은 사유에 있어서 가장 높이 있는, 사유의 최고의 대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균열을 채우지 못하며 접합하지 못한다. 오히려 반대로 균열이 인간 속에서 인간의 최종점을 이루며 사유의 기원점을 이룬다. 나를 위한 코기토가 마침내 녹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 결국 인간과 관련된 지식 속에서는 오로지 [구조주의적 인간과학인] 민속학, 정신분석학, 언어학만이 유한한 것에 대한 분석의 커다란 세 축을 형성하면서, 실질적으로 인간을 넘어서게 된다.” (432)

6. “푸코 자신이 자기의 방법을 고고학적 방법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푸코의 이 새로운 계획을 사유가 발생하는 곳, 사유가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잠기게 되는 곳인 그런 ‘바닥’, ‘바닥-아래’에 대한 연구로 이해해야 한다. 푸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이 바닥 속에는 매우 다양한 지층이 있으며, 더 나아가 변이, 지형학적인 전복, 새로운 공간의 조직이 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때에] 사유의 고전적인 이미지를 가능케 한 변이, 또는 [고전 시대에] 사유의 근대적인 이미지를 준비한 변이가 그러한 것들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변이 대신] 사회학적인 인과성의 ‘역사’, 심지어는 심리학적인 인과성의 ‘역사’에 의존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실재적으로 인과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어떤 사유의 이미지를 전제하고 있는 이런저런 공간 속에서 전개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런저런 시대 속에서 그 시대의 지식의 공간을 결정하는 순수 사유의 사건, 근원적인 사건 또는 선험적인 사건을 인지해내야만 한다.”

7. “사유의 새로운 이미지, 또는 사유하기가 의미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가 오늘날 철학에 부여된 과업이다. 그리고 바로 이 과업에서 철학은 과학과 예술보다 훨씬 많은 변이의 능력과 새로운 ‘공간’의 능력을 보일 수 있다. 철학에서 또다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푸코의 책들은 그 책들 자체를 통해서 깊이 있는 답변, 가장 활기가 넘치는 답변, 아울러 가장 확실한 답변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우리는 『말과 사물』이 새로운 사유에 대한, 위대한 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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