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 말과 사물 9장 중 1-4절 요약

작성자
philo
작성일
2018-07-10 19:03
조회
136
9 인간과 인간의 분신들

1 언어의 귀환

1.1 재현들의 연쇄(인간의 정신 속에서 전개되는 성긴 시간상의 계열)을 끊고 세분하고 늘어놓고 영속적인 도표에 나누어 배치하기 위해 분석한 격자들의 체계 전체, 말과 담론에 의해, 특징과 분류에 의해, 등가와 교환에 의해 구성된 모든 갈짓자형 통로는 이제 그 전체가 작동할 수 있었던 방식을 다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폐지되었다.

1.2 마지막으로 무너진 “보루”는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우리는 고전주의적 사유로부터 영원히 단절되는데) 정확히 그 모든 격자 중 최초의 것, 즉 도표 안에서 재현의 자연 발생적이고 자연스러운 애초의 전개를 보장한 담론이다. 담론이 재현 안에서 기본적인 정돈의 수단으로서 실재하고 작용하기를 그쳤을 때, 이와 동시에 고전주의적 사유 또한 우리가 직접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1.3 우리가 고전주의와 근대성 사이의 문턱을 결정적으로 넘어선 것은 말이 더 이상 재현과 교차하지 않고 사물의 인식을 위한 자율적인 격자를 제공하지 않게 되었을 때이다. ...일단 재현에서 떨어져 나온 언어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분산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문헌학, 논리학, 해석학, 문학. 418

2 언어에 부과된 특이한 운명

2.1 일반 문법의 단일성, 즉 담론이 사라졌을 때, 언어는 아마 단일성이 복원될 수 엇을 다수의 존재 방식에 따라 출현했다.

2.2 [근대 에피스테메 이전에는] 언어는 거의 철학적 성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철학의 주된 관심은 언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장애를 제거하는 데 있었다. 19세기 말에야 언어는 사유의 영역 안으로 직접 되돌아갔다. ...니체가 철학의 과제를 언어에 과한 철저한 성찰과 밀접하게 관련짓지 않았다면, 20세기에야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19

2.3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누가 말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실제로 언어가 전적으로 결집되는 것은 바로 거기, 담론을 행하고 더 심층적으로는 발언권을 갖는 사람에게서이다. 말라르메는 니체의 이 물음, 즉 누가 말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말 자체(말의 의미가 아니라, 말의 불안정하고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고독과 미약한 진동 그리고 무 속에서 말한다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대답을 끊임없이 재고한다.

2.3.1 니체의 에케 호모, 말라르메의 담론의 집행자

3 문제 : 언어란 무엇이며, 언어를 실질적으로 온전히 나타나게 하려면 어떻게 언어의 윤곽을 그려야 하는가. 421

2 왕의 자리

1 “시녀들”- 이 ‘그림으로서의 재현’에서 모든 선이 교차하는 사람은 결코 재현에 현존하지 않는다. 424 그 모호한 자리의 주인은 시선에 의해 그림을 대상으로, 즉 그 근본적인 공백의 순수한 재현으로 변화시키는 관람자이므로 주체이다. 423

1.1 18세기 말 이전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생명의 잠재력, 노동의 생산성, 또는 언어의 역사적 밀도도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지식의 조물주가 고작 200년 전에 손수 만들어 낸 아주 최근의 피조물이다. 424

1.2 물론 일반 문법과 자연사 그리고 부의 분석이 어떤 관점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인지하는 방식이었다고 반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는 인간이라는 고유하고 특수한 영역을 결코 떼어서 다루지 않는 선들에 따라 유기적으로 구성된다. 424

2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에서는 ‘자연’의 기능과 ‘인간’의 기능이 일대일로 대립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자연은 실제적이고 무질서한 병치의 작용을 통해, 존재물들의 정연한 연속 속에서 차이를 솟아나게 하고, 인간은 혼란스러운 재현들의 연쇄에서 동일한 것을, 그것도 이미지들의 진열에 의해 나타나게 한다. ...이 대립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사이의 부정하기 어려운 관계가 점점 뚜렷해진다. 실제로 자연과 인간은 동일한 요소(동일성, 연속, 감지할 수 없는 차이, 부단한 연쇄)에 작용하고, 둘 다 분리 가능한 동일성과 가시적인 차이를 도표 형태의 공간과 정연한 연쇄에 따라 나누어 배치할 수 있게 해 주는 일반적인 분석의 가능성을 끊임이 없는 바탕 위로 잇달아 나타나게 한다. ...그러면 인간은 세계를 담론의 절대성 속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는데, 이는 담론이 세계의 재현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425

2.1 말하는 행위, 즉 명명하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재현이 접히면서 생기는 재현의 주름으로서, 사유의 단선적인 연쇄를 부분적으로 상이한 존재물들의 일정한 도표로 변화시킨다. 425

2.2 즉 시선에 주어지는 바와 같은 실제 세계는 존재물들의 기본적인 연쇄의 무조건적 전개가 아니라 이 연쇄의 엉클어진(반복되고 불연속적인) 조각들을 제공한다. 425

2.3 재현들의 계열에서는 양극단이 서로 마주치고, 동일한 사물이 여러 번 제시되고, 동일한 특성이 기억 속에서 중첩되고,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렇게 되어 광범위하고 무한하고 연속적인 표면에는 서로 구분된 특징들, 어느 정도 일반적인 특성들, 동일시의 표지들이 새겨진다. 따라서 말이 새겨진다. 존재물들의 연쇄는 이런 방식으로 인간과 재현들의 계열에 연결되면서 담론이 된다. 426

3 상보적 두 기능에 입각한 자연과 인간의 소통

3.1 고전주의적 사유에서...인간이 자연과 얽히는 것은 지식의 메커니즘과 이 메커니즘의 작용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의 광범위한 지식 속에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양자의 관계는 확실하게 예견할 수 있는 기능적 계기이다. 그리고 인간은 결코 고유한 밀도를 지닌 기본적인 실재로서, 모든 가능한 인식의 까다로운 대상이자 자주적 주체로서 거기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근대적 개인은 여기에서 배제되어 있다. 426

3.2 재현과 존재가 마주치는 지점에서...고전주의적 사유에 의해 솟아나게 되는 것은 바로 담론의 힘이다. 재현하는 범위 내에서의 언어, 이를테면 명명하고 재단하고 조합하고 말의 투명성 속에서 사물들을 보게 하면서 사물들의 매듭을 맺고 끊는 언어의 힘이다. 427

3.3 고전주의적 언어의 깊은 소명은 자연스러운 담론의 형태로건, 진실의 자료집, 사물의 묘사, 정확한 지식의 모음집 또는 백과사전의 형태로건, 언제나 ‘도표’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427

3.4 말은 정확히 (르네상스 시대의 경우처럼) 해독해야 할 표지도 (실증주의 시대의 경우처럼) 어느 정도 충실하고 통제할 수 있는 도구도 아니고, 오히려 존재물들이 드러나고 재현들이 정돈되는 출발점인 무색의 망을 형성한다. 언어에 관한 고전주의적 성찰이 부의 분석 및 자연사와 동일한 이유로 일반적인 배치에 일부분으로 포함되면서도, 부의 부넛과 자연사에 대해 길잡이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의 근거. 427

4 인간 과학 성립 불가능성 : 재현과 사물의 공통담론인 고전주의적 언어 안에서 맺어지는 것은 재현과 존재이므로, 서양 문화에서 이 언어를 사용하는 한, 인간의 삶을 그 자체로 문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428

4.1 “나는 생각한다”에서 “나는 존재한다” 로의 이행은 담론의 내부에서 자명성의 빛 아래 실현되었는데, 이 담론의 영역 및 작용 전체는 재현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을 서로 맞물리게 하는 데 있었다. 428

3 유한성의 분석론

1 자연사가 생물학으로, 부의 분석이 경제학으로, 특히 언어에 관한 성찰이 문헌학으로 바뀌고 존재와 재현의 공통의 장소인 고전주의적 담론이 사라질 때, 이와 같은 고고학적 변동의 깊은 동양 속에서, 인간은 지식의 대상인 동시에 인식의 주체라는 모순적인 입장을 띠고 출현한다. 429

1.1 이 새로운 현존의 동기, 이 새로운 현존에 고유한 양태, 이 새로운 현존을 가능하게 하는 에피스테메의 특이한 경향, 이 새로운 현존에 의해 말, 사물, 그리고 말과 사물의 질서 사이에 확립되는 새로운 관계. 429

1.2 재현 속에서는 이제 존재물의 동일성이 아니라, 존재물과 인간 사이에 확립되는 외부적인 관계가 드러난다. 생물, 교환의 대상, 말이 그때까지 말의 당연한 현장이었던 재현을 떠나 사물의 심층 속으로 물러나고 생명, 생산, 언어의 법칙에 따라 자체 안으로 들어박힐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존재와 함께, 재현의 능력을 지니고서, 생물과 교환의 대상 그리고 말이 떠나 버린 빈 공간에서 솟아오른다. 430

1.3 말하는 것은 인간. 430

1.4 어떤 관점에서 인간은 노동, 생명,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은 사유하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감추어져 있는 밀도와 완강한 선행성의 측면에서 이미 생물이자 생산 수단이며 인간 이전에 존재하는 말을 위한 매개 수단이라는 존재의 형태로만 인간 자신의 눈앞에 드러난다. 인간의 지식을 통해 인간에 대해 외부적이고 인간의 탄생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인간에게 밝혀지는 이 모든 내용.. 430 ...인간의 유한성은 지식의 실증성 속에서 그것도 긴급하게 예고된다. 431

1.5 그러나 인간의 경험에는 인간의 육체, 이를테면 모호하지만 사물의 공간과 맞물리는 불가능한 공간성을 갖는 일부분의 공간이 주어지고, 또한 모든 사물이 가치, 그것도 상대적인 가치를 띠는 데 근거가 되는 근본적인 욕구로서의 욕망이 주어지며, 모든 시대의 모든 담론, 모든 연속, 모든 동시성을 꿸 수 있는 언어가 주어진다. 432

1.6 이 실증적인 형태들 각각에서 인간은 자신이 유한하다는 것을 터득할 수 있고, 따라서 이것들 각각은 인간 자신의 유한성을 배경으로 해서만 인간에게 주어질 뿐이다. 게다가 인간의 유한성은 실증성의 가장 완벽하게 정화된 순수한 본질이 아니라, 실증성이 나타날 수 있는 출발점이다. 432

1.7 우리는 모든 경험적 실증성의 바탕에서,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제한으로 밝혀질 수 있는 모든 것의 바탕에서 유한성을 간파하는데, 이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동일한 유한성이지만, 즉 육체의 공간성, 욕망의 벌어진 틈새, 언어의 시간에 의해 표시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유한성이다.

1.8 더 정확히 말해 유한성의 분석론이 온전히 펼쳐지게 되는 공간은 반복의 공간, 이를테면 실증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일성과 차이의 공간이 된다. ...경험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유한성은 유한성 자체에 호응하며, 동일자의 형상을 띠고서 실증성과 실증성의 토대 사이에 존재하는 동일성과 차이이다. 433

2 어떻게 근대적 성찰이 이 분석론의 시초부터 동일자에 대한 어떤 사유, 차이가 동일성과 같은 것인 사유를 향해, 고전주의적 지식에 강요된 것과 같은 도표의 형태로 피어나고 펼쳐지는 재현을 우회하는가. 433

파) 유한성의 분석론에서도 드러나는 동일성과 차이라는 방식으로 인식론을 구성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의 인식 조건과 근대 에피의 조건의 차이가 뭔가. 없어 보인다라는 있을 수 있는 반론에 대하여.

2.1 고전주의적 철학으로 환원할 수 없는 동일자에 대한 사유가 명확히 드러나게 되는 지점들 : 선험적인 것이 경험적인 것을, 코기토가 사유되지 않은 것을, 기원의 회귀가 기원의 후퇴를 반복하는 것을 연속적으로 보게 되는 것. 433

2.2 유한성의 관념이 밝혀지기 위해 19세기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파) 유한성 개념은 아주 오래된 개념이다. 새삼 근대 에피에서 새로울 이유가 뭔가? 라는 반론에 대한 답으로 근대 에피에 나타나는 유한성 개념의 구조를 보여준다.

2.3 17, 18세기의 사유에서 인간의 유한성 개념 구조 : 무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해 방식은 ...인간의 경험성과 인간이 자신의 경험성에 관해 얻을 수 있는 인식보다 선행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인간의 경험성은 육체, 욕구, 말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절대적인 인식을 통해 이것들을 통제하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해 동시적으로, 그러나 양자 사이의 상호적인 참조나 순환성도 없는 가운데 근거가 되었다. 434

2.4 19세기 초엽에 형성되는 경험으로 인해 유한성은 이제 무한에 관한 사유의 내부가 아니라, 유한한 지식에 의해 유한한 삶의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경험 내용의 핵심에서 발견된다. 이로부터 이중화된 준거의 끝없는 작용이 유래한다. [인간 지식의 유한성과 인간 지식의 실증성의 상호근거적 관계?] 434

2.5 달리 말하면 고전주의적 사유에서 (무한으로부터 실증적으로 구성된 한정으로서의) 유한성은 육체, 욕구, 언어, 그리고 이것들에 관한 가능하고 한정된 인식인 부정적인 형태들을 설명해 주는 반면, 근대적 사유에서 (존재 방식, 역사성, 고유한 법칙을 갖는) 생명, 생산, 노동의 실증성은 인식의 제한된 성격을 생명, 생산, 노동 사이의 부정적인 상관관계로 정당화 하며, 역으로 인식의 한계는 비록 언제나 한정된 경험 속에서이지만, 생명, 노동, 언어가 무엇인가를 알 가능성에 확실히 근거를 제공한다. 434-435

2.6 경험내용이 재현의 공간에 놓여 있는 한, 무한의 형이상학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요구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험 내용이 재현과 분리되고 경험 내용의 존재에 관한 원칙이 경험 내용 자체에 내포되었을 때, 무한의 형이상학은 쓸모없게 되었고, 바로 그때부터 유한성은 자기 이외의 다른 준거를 갖지 않게 되었다. 그 때 서양에서 사유의 전 영역이 전도되었다. 436

3 형이상학의 종언은 서양의 사유에서 일어난 훨씬 더 복잡한 사건의 부정적인 양상일 뿐이다. 발 인간의 출현. ...근대 문화는 유한한 것을 인간 자신으로부터 사유하기 때문에 인간을 사유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와 고전주의 시대의 ‘합리주의’에서 인간은 분명히 세계의 질서에 따라 특권적인 자리를 할당받을 수 있었으나 사유의 대상일 수는 없었다. 436

4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

1 모든 인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인식이 인간 안에서 획득되는 만큼, 유한성의 분석론에서 인간은 기묘한 경험적-선험적 쌍을 이룬다. ...실제로 우리가 근대성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은 객관적인 방법을 인간에 대한 연구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때가 아니라, 인간이라 불리는 경험적-선험적 쌍이 구성되었을 때다. 그때 두 가지 종류의 분석이 발생한다. 437

1.1 우선, 육체의 공간. 요컨대 가능한 인식의 형태를 결정하면서 동시에 인식에 고유한 경험 내용을 통해 드러날 수 있는 인식의 본질이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하는 데로 이른다. 또한, 선험적 변증법 구실. 요컨대 인간에 관한 인식의 역사가 있는데 이 역사는 경험적 지식에 주어지고 경험적 지식의 형태를 규정할 수 있다는 점. 438

1.2 이 두 가지 유형의 분석은 서로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 더 나아가 분석론(또는 주체의 이론)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내용 자체가 선험적 반성으로 작용하므로. 438

1.3 그러나 사실상 인식의 본질이나 역사에 대한 탐구는 비판의 고유한 차원을 경험적 인식의 내용 쪽으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어떤 비판의 사용을 전제로 하는데, 이 비판은 순수한 반성의 실행이 아니라 일련의 다소 막연한 분할의 결과이다. 438

1.4 자의적일지라도 비교적 명료하게 해명되는 분할들

1.5 더 모호하고 더 근본적인 분할도 있는데, 이것은 진실 자체의 분할이다. 438

1.6 [여러 분할된 진실들 중에서] 여전히 모호한 것은 바로 이 참된 담론의 지위이다. 둘 중 하나이다. 즉 참된 담론이 경험적 진실의 본질과 역사에서 경험적 진실의 유래를 되짚어가는 가운데 경험적 진실에서 참된 담론의 근거와 본보기가 발견되고 그래서 실증주의적 유형의 분석이 행해지거나, 참된 담론에 의해 진실의 본질과 역사가 규명되는 가운데 진실을 참된 담론이 앞지르고 사전에 개략적으로 묘사하고 멀리에서 유발하고 그래서 종말론적 유형의 담론이 말해지거나 한다. 콩트와 마르크스. 사실을 말하자면 이는 양자택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험적인 것의 차원에서 경험적인 것을 강조하는 모든 분석에 내재하는 동요이다. 전비판적 순진성. 439

1.7 내적 긴장에 의해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을 분리 상태로 유지하지만 이 양자를 동시에 지향하게 하는 담론, 인간을 주체로서, 인식의 장소로서, 또한 경험적 인식의 내용에 직접적으로 현존하는 순수한 형태로서 분석할 수 있게 해 줄 담론, 요컨대 이 준미학 및 준변증법과 관련하여 주체의 이론을 통해 근거를 제공하고 이와 동시에 어쩌면 육체의 경험과 문화의 경험이 다 같이 뿌리 내리고 있을 제3항을 배래로 이 양자를 맞물릴 수 있게 해 줄 분석론으로 구실할 담론의 장소 : 체험. 440

1.8 근대적 반성에서 체험의 분석은 실증주의와 종말론의 철저한 부인으로서 확립되었고, 소홀히 취급된 선험적인 것의 차원을 복원하고자 했으며, 경험적인 것으로 축소된 순진한 진실의 담론과 인간이 결국 경험되기에 이르리라고 순진하게 약속하는 예언적 담론을 물리치고자 했다. 그래도 역시 체험의 분석은 혼합적인 성격의 담론이다. 440

1.9 체험의 분석은 육체를 통해 윤곽이 잡히는 본래의 경험과 자연에 대한 인식의 가능한 객관성을, 또한 실제의 경험을 통해 감추어지고 동시에 밝혀지는 의미의 밀도와 가능한 문화의 역사를 서로 맞물리게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체험의 분석은 인간에게서 경험적인 것이 선험적인 것을 대신하도록 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다급하게 요구된 바를 더 세심하게 충족하기만 할 뿐이다. 440-441

1.10 실증주의와 종말론에 대한 참된 이의 제기는 체험으로 회귀하는 데 있지 않고 ...인간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자문하는 데 있을 것이다.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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