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11/12 『슬픈 열대』, 14장~16장.

작성자
bomi
작성일
2019-11-12 18:43
조회
49
다지원 – 인류학 세미나 ∥ 2019년 11월 12일 ∥ 발제자: bomi
텍스트: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14장~16장.

14 마법융단

이렇게 해서 나는 노무자 주거지역과 저소득층 집단주택으로 특징지어지는 아시아가 내 눈앞에서 그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어떠한 형태의 이국정서도 벗어던져버리고 5천년의 공백기를 지낸 끝에 이제 다시, 아마도 기원전 3000년대에 아시아가 발명했을 저 음울하지만 효율적인 생활양식을 복원하려 하고 있는 내일의 아시아이다. 이 생활양식이 그후 지표를 이동하여 근대에와서 '신세계'에서 잠시 지체하게 되자, 사람들은 그것을 아메리카 고유의 문화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후 이 문화는 1850년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일본에 도달하고, 계속해서 세계일주를 마친 후게 지금은 그 기원지로 되돌아온 것이다. (277,278)

4,5천 년의 끝에 가서는 역사는 한 사이클이 끝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즐겨 생각한다. 인더스 강의 도시로 시작한 도시문명, 산업문명, 부르주아문명이, 유럽이라는 번데기 안에서의 오랜 퇴화 과정을 거친 끝에 대서양의 대안에 가서 성숙하게끔 운명지워진 문명과 그 기본 정신에서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들 생각한다. 제일 오래된 구세계는 나이 어렸을 때 이미 신세계의 밑그림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표면적인 대조나 외면상의 특이성을 경계한다. 그런것은 단시간 동안밖에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국정서라고 이름하는 것은 고르지 못한 리듬을 말하는 것으로 몇 세기 동안은 의미가 있어서 서로가 함께 나누어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같은 하나의 운명을 가리어 덮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줌나강 언덕에 섰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그리스의 열 왕들이, 그리고 스키타이와 파르티아 제국이, 또 베트남 해안에서의 로마 해군의 원정대가, 여러 민족을 병합한 무굴 황제의 궁정이 모두 이국정서를 그런 것으로 느껴듯이 말이다. (278, 279)

비행기가 카라치에 착륙하자, 달의 사막처럼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타르 사막에 해가 떠오른다. 넓고 긴 황야마다 여러 밭들이 작은 그룹들을 이루면서 여기저기 나타난다. 해아 좀더 높이 중천에 오르면, 경작지들이 서로 이어져 장밋빛과 녹색의 기조 위에서 조화된 한 장의 연속된 화면을 선사한다. 그 빛깔은 오랫동안 사용되어서 군데군데 닳아서 헤어진 곳도 있고, 또 해어진 곳을 꾸준히 기워온 흔적도 있는, 낡은 장식 융단의 그윽한 멋을 담은 퇴색한 빛깔과도 같았다. 이제 인도에 온 것이다.
밭의 구획은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형태나 색채는 전혀 무질서하지 않다.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집합체를 형성하건 간에 언제나 하나의 균형 잡힌 전체를 이루게 되는데, 마치 그 각각의 윤곽을 초잡을 때, 클레와 같은 화가의 지리학적 몽상처럼, 전체와의 관계를 사전에 숙고라도 한 것 같았다. 이 모두는 촌락, 그물 모양의 밭, 늪 언저리의 작은 수풀, 이 세 가지가 형성하는 삼위일체 주제의 되풀이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극도로 희귀하고 조화롭고 자의적인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280,281)

최소한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한쪽은 다른 쪽과 정반대의 관계로 나타난다. 한쪽은 항상 이득을 보고 다른 쪽은 항상 손해를 보아왔다. 마치 양측이 공동사업을 벌여오는 과정에서, 한쪽이 모든 이익을 독차지하고 다른 쪽은 보수로 얻은 것이 비참함밖에 없었다는 듯이. 한쪽의 경우, 규칙적인 인구의 증가가 농업과 공업의 발전을 가능케 함으로써 자원이 소비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대하였다. 같은 혁명이 다른 쪽에 대해서는 18세기 이래로 정체한 채 머물렀던 부의 총체에 대한 개인의 몫을 착실히 저하시켜왔따. (282,283)

15 군중

구세계의 미라가 돼버린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건, 또는 신세계의 신생 도시 이야기를 하건 우리는 물질적이나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최고의 가치들을 도시생활과 결합시키려드는 버릇이 있다. 인도의 대도시들은 일종의 빈민굴이다. 한데 우리가 불명예라고 여겨 부끄러워하는 일이나 나병처럼 꺼리는 일들이 인도에서는 종국적인 사회현상으로서 나타나는, 즉 인간들의 밀집 - 생활 조건의 차이를 무시한 '밀집' 그 자체가 존재 이유인 밀집 - 에서 오는 (단순한) 도시생활의 (자연스러운) 현상에 불과할 따름이다. (284)

>>>유럽은 식민정책을 펼치며, 그 후 자유-보호무역을 펼치며, 아메리카에, 인도에, 아시아에 자본주의를 수출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인간상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 숫자가 적절하게(현 산업 현장에 딱 필요한 만큼) 있어서는 안 되고 아주 많이 풍부하게 있어야 한다. 즉, 기업이나 공장에 들어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며 생활을 유지하는 자본주의 산업의 (현)역군들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산업의 (현)역군이 되어야 하고 (되길 바라지만), 당장은 일할 수 없는, 풍부한 산업예비군이 있어야만 한다. 이 산업예비군들이 도시빈민이다.
오늘날의 풍부한 취준생은 취업자들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자본주의의 필수요소다.<<

이런 인간관계의 악화는 유럽인의 정신으로서는 우선 이해할 수 없는 것같이 여겨진다. 우리는 마치 원초적 상태 - 혹은 이상적 상태 - 가 이와 같은 적대관계의 해소에 해당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급 간의 대립을 투쟁이나 긴장이라는 형태로 이해하려 든다. 하지만 여기서 '긴장'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령 긴장될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벌써 찢겨 나가고 없다. (289)
게다가 '긴장'이라는 개념으로 생각을 해본다고 해도 그 결과가 우울한 데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그 경우에는 모든 것이 너무도 긴장돼 있어서 이미 균형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체제 그 자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체제를 파괴하기부터 시작하지 않는 한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경우 우리는 금방 애원자들과의 관계에서 애초부터 불균형하게 돼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을 엽신여겨서가 아니라 그들이 존경을 통해서 우리를 타락시키기 때문에 그들을 내쫓아야 한다. (290)

16 장터

그러나 관습, 주거, 생활양식으로 볼 때는 가장 미개한 민족에 가까우면서도, (현대적) 백화점 못지않은 복잡한 구조의 시장을 조직할 줄 아는 이곳 주민들의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봐야만 한다. 겨우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이들의 시체가 온통 들판을 뒤덮었다. 대부분이 벹틀로 베를 짜면서 살아오던 그들은, 식민지 지배자들이 멘체스터에 면직물 시장을 개설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전래의 가업을 행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굶주림과 죽음으로 몰렸다.
오늘날에 와서는 일년의 절반이 물 속에 잠긴다고는 해도 경작이 가능한 토지는 구석구석이 황마 재배를 위해 활용되고 있는 터이지만, 이 황마는 물에 침적시키는 과정을 거친 후 나라얀간지와 캘커타의 공장으로 보내어지거나 또는 유럽이나 아메리카로 직송되고 있다. 그 결과 방식은 달라졌다 하더라도 종전의 경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문맹인데다 반라로 살아가는 이들 농민들은 그 생계가 세계 시장의 경기변동에 좌우되게끔 돼버렸다. (그들의 식량 조달원으로서) 고기잡이이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주 식량원인 쌀은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농업 - 그나마 경작지 소유자는 극소수이다 - 에서 얻는 미미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서 그들은 가슴 아픈 수공업에 시간을 쪼개어 쓰지 않을 수 없다. (305, 306)

이곳(벵골)에서는 (말하자면) 중세의 주민이 단번에 공장 수공업 시대로 뛰어들어 세계 시장의 먹이가 된 셈이다. 여기 주민은 출발점부터 도달점까지 소외의 체제 하에서 살아왔다. 원료는, 영국이나 이탈리아에서 수입되는 방적용 실을 사용하는 뎀라의 직조공에게는 완전히 외국산이고, 란갈분드의 삯일꾼에게는 그 일부분이 외국산이다. 그리고 이곳의 불쌍한 사람들은 입을 것을 사 입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단추까지 옷에 달아 입기는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에 제품은 벵골의 어디를 가든지 '외국의 규격에 의거해서' 그 형식이 결정된다. (307)

그들은 자기들이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도리어 강제 노동이나 식량 배급이나 주입된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해방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길이 일을 얻고, 색량을 획득하고, 정신적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역사의 진화 과정이 그들에게 주는 당연한 수단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척해야 마땅하다고 여기던 갖가지 상황들도 새로이 제시된 명백한 현실 앞에서 눈이 녹듯이 힘없이 사라져버린다. (309)

아시아에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시아가 미리 보여주는 우리의 미래상이다. 인디오의 아메리카에 대해서는 나는, 지금은 그곳에서조차도 믿을 수 없는 덧없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인간이 자기 세계와 호흡을 같이하던 시대의 영상, 즉 자유의 행사와 자유의 표상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존재하던 시대의 영상을 몹시 소중히 여기고 있다.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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