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작성자
seomok
작성일
2020-08-11 21:03
조회
370
<숲은 생각한다> 에필로그

너머라는 관념이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에서 어떻게 형상화되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방법은 인류학이라는 학문 안에서 시선이 어떤 의미인지 재고하라고 한다. 저자는 이미지와 함께 생각하는 법을 습득하기를 권유한다. 인간이 아닌 스핑크스의 질문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것”에 대해 다시 사유해야 한다. 이 질문에서 아침에 네 발로 걷는 인간은 우리 인간도 시초에 동물이였다는 것을, 두 발로 걷는 동물은 유일한 인간이라는 것을, 세 발로 걷는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인식하는 인간들의 기호 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해 상기시켜준다. 여기서 다른 존재들과 공통되는 속성은 유한성, 기호에 의한 매개, 삼차성이다. 삼차성은 생명이 규칙적인 습관으로 자기를 연속시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포착한다. 숲의 사고가 우리를 경유하는 과정은 숲처럼 생각하기, 즉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이다.

1장 “열린 전체”에서는 상징적인 것이 표상에 쓰이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열려 있다”라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타자와 비인간들)이 확장되는 현실을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을 해야 한다. 이원론은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핵심적인데 이원론에서 벗어나려면 언어를 “지방화”하여야 한다.

2장 “살아있는 사고”에서는 비인간 자기들이 사고하고 관계를 창출하며 연합하는 형식에 따른다. 우리 인간도 그 특성의 일부라는 점을 개진한다면 차이를 넘어서는 인류학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다.

3장 “혼맹” 에서는 죽음이라는 생명의 본질적인 문제를 루나족이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설명한다.

4장 “종을 횡단하는 피진”에서는 “다종”은 생태학이 아닌 인류학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며, 그것이 도달하는 결론은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점이다. 수많은 다종의 존재들과 접촉하며 사는 루나족조차 인간의 관점을 고수한다. 우리 인간이 도덕적인 생명체라고 사고하는 존재 방식은 다른 생명들을 주시하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인간적인 것 “너머”의 사고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러한 사고도 넘어야 하지만 여전히 인간적이다.

5장 “형식의 노고 없는 효력”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을 지탱하는 형식의 작동 방식에 대해 논했다. 형식은 그 자체로 실재하며 형식을 활용하는 존재들에 의해 증폭된다.

6장 “살아있는 미래”에서는 죽음을 숙명으로한 생명 자체의 지속성에 대해 영적인 영역이 어떻게 말해주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에필로그에서는 “일반적인 것”은 실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부류”로서의 ‘사자’는 생명의 산물이지만, “타입”으로서의 ‘사자’는 인간적인 상징 형식의 산물이다. 인간적인 것 너머의 사자와 인간적인 것의 사자는 둘다 창발하는 실재이다.

창발하는 실재들의 기호작용으로 생성된 개념과 부류는 주재자들의 영역인 영역을 탄생시켰다. 수많은 죽음은 생명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실재다.

창발이란 분리를 넘나드는 연결을 추적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고 너머는 더 넓은 곳을 표상한다. 인간의 언어에 기호작용이 있다는 것은 언어라는 의미 이상의 기호작용과 언어가 관계한다는 것을 상기한다.

루나족을 통해서 식민지적으로 특수하게 굴절된 다종의 자기들의 생타학이 실재한다는 것을 설명했다. 만약 생태학을 구성하는 자기들의 일부가 사라진다면, 특정한 삶은 종말을 맞게 된다. 사라지는 그들의 부재를 애도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로인해 모든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듯이 우리 또한 창발하는 실재로서 임무에 충실한 특정한 자기들에 의해 소명될 수 있다. 인류세라는 위기 앞에 서있는 우리는 숲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연마해야 한다.

아마존의 원주민은 생각하는 숲의 사고에 의해 그들 자신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가 성찰한 야생의 사고는 우리 또한 야생의 숲에 속한 존재라는 것이다.

생명의 습관으로 점철된 우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우리”를 만들어내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반성은 덧없으며 저 너머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일반적인 것에 대해 성찰하는 동시에 우리 너머에 있는 “거기에서” 확장되는 일반적인 것을 이해하며 우리를 열어둠으로써 이 세계에 존재하는 ‘우리’는 번영할 수 있다.

마치며…..

<본다는 것의 의미>에서 존버거는 인간은 종으로서 동물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최초의 회화 주제가 동물이었으며 최초의 표상은 동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동물과 인간의 구분은 인간들이 동물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생겨나 동물은 언제나 관찰되는 대상으로 단절되었다. 이렇든 본다는 것은 단절이고 이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 변화의 중심에 있는 동물원이라고 말한다. 동물은 우리가 더 많이 알게 되면 더 멀리 떨어지게 되는 언제나 인간의 이성에서 확장되기만 하는 지식의 대상이다. 살아있는 어떤 것이 개체로서의 종이 아니라 무한한 종으로서의 너무나 인간적인 시선의 동물들은 배제되고 타자로서만 존재한다. 동물이 겪는 고통과 착취는 인간이 겪는 그것과 연결되어있다. 동물에 대한 억압은 인간의 억압을 표상한다. 이런 형식 시스템 속에 은폐되어 착취는 형식화되고 정당화되었다. 저자의 마지막 어구처럼 소박하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면서 살아있는 미래에게 내가 선물이 될 수 있는 자기로 창발하고 싶다.
전체 0

전체 399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새책공지] 스피노자, 『에티카』 ― 3월 5일 시작!
영대 | 2024.02.15 | 추천 0 | 조회 644
영대 2024.02.15 0 644
공지사항
세미나 홍보 요청 양식
다중지성의정원 | 2022.01.11 | 추천 0 | 조회 2497
다중지성의정원 2022.01.11 0 2497
공지사항
다중지성 연구정원 세미나 회원님들께 요청드립니다.
다중지성의정원 | 2019.11.03 | 추천 0 | 조회 4388
다중지성의정원 2019.11.03 0 4388
공지사항
[꼭 읽어주세요!] 강의실/세미나실에서 식음료를 드시는 경우
ludante | 2019.02.10 | 추천 0 | 조회 4880
ludante 2019.02.10 0 4880
공지사항
세미나를 순연하실 경우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ludante | 2019.01.27 | 추천 0 | 조회 4973
ludante 2019.01.27 0 4973
공지사항
비밀글 인류학 세미나 참가자 명단 - 2019년 12월
다중지성의정원 | 2018.02.26 | 추천 0 | 조회 42
다중지성의정원 2018.02.26 0 42
393
<에티카> 다음 세미나(3/26) 공지입니다
영대 | 2024.03.23 | 추천 0 | 조회 31
영대 2024.03.23 0 31
392
<에티카> 다음 세미나(3/19) 공지입니다
영대 | 2024.03.15 | 추천 0 | 조회 29
영대 2024.03.15 0 29
391
<에티카> 다음 세미나(3/12) 공지입니다
영대 | 2024.03.09 | 추천 0 | 조회 60
영대 2024.03.09 0 60
390
다음 세미나(2/6) 공지입니다
영대 | 2024.02.04 | 추천 0 | 조회 276
영대 2024.02.04 0 276
389
다음 세미나(1/30) 공지입니다
영대 | 2024.01.29 | 추천 1 | 조회 238
영대 2024.01.29 1 238
388
다음 세미나(1/23) 공지입니다.
영대 | 2024.01.18 | 추천 0 | 조회 279
영대 2024.01.18 0 279
387
다음 세미나(1/16) 공지입니다.
영대 | 2024.01.11 | 추천 0 | 조회 232
영대 2024.01.11 0 232
386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첫 날(1/9) 공지입니다
영대 | 2024.01.04 | 추천 0 | 조회 315
영대 2024.01.04 0 315
385
[새책공지] 매튜 스튜어트,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 1월 9일 시작!
영대 | 2023.12.29 | 추천 0 | 조회 1368
영대 2023.12.29 0 1368
384
<롤랑의 노래> 첫 날(12/5) 공지입니다
영대 | 2023.11.25 | 추천 0 | 조회 415
영대 2023.11.25 0 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