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1/3 『프루스트와 기호들』 2부 제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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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01-0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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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원 기획세미나, 삶과 문학. ∥2020년 1월 3일∥
『프루스트와 기호들』 질 들뢰즈, 서동운, 이충민 옮김, 민음사, 1997. p.225~250


제 4장 세 가지 기계

『찾기』는 [프루스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구이고, 다른 사람들도 이 기구의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나의 독자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독자일 것이다.>

『찾기』는 기구일 뿐 아니라 기계이다. 현대의 예술 작품은 기계이며 그러므로 작동한다.

프루스트는 우리에게, 자기의 작품을 읽지 말고 그 작품을 이용해서 우리 자신을 읽어 보라고 충고한다.

우리는 창조하는 것은 회상하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적 사고를 프루스트가 어떤 식으로 새롭게 꾸몄는지를 살펴보았다. 요컨대, 프루스트가 새롭게 꾸민 바 회상과 창조는 이제 동일한 생산의 두 측면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서 <해석>,<해독>,<번역>은 생산 과정 자체이다. 심지어 사유함조차 사유 속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오직 인상만이 마주침의 우연성과 효과(우리가 인상으로부터 겪는 폭력)의 필연성을 자기 안에 겸비하고 있어서 모든 생산은 인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모든 생산은 하나의 기호로부터 출발하며 또한 심오하고도 애매 모호한 비자발성을 전제한다.

해석이 생산하는 의미는 경우에 따라서 법칙이기도 하고 본질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하나의 생산물이다.

책을 생산함에 있어서 『찾기』 전체는 세 종류의 기계를 사용한다. 그것은 <부분적 대상들의 기계(충동)>, <공명 기계(에로스)>, <강요된 운동의 기계(죽음)>이다. 이 기계들 각각은 진리를 생산한다. 왜냐하면 생산된다는 것, 시간의 효과로서 생산된다는 것은 진리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은 부분적 대상들의 분할을 통해서, 되찾은 시간은 공명을 통해서 생산된다. 또한 잃어버린 시간은 이와는 다른 방법, 즉 강요된 운동의 폭을 통해서 생산된다. 이때 이 상실, 이 잃어버리는 일은 바로 다름아닌 작품이 되며, 또 작품이 형태를 갖추기 위한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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