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카르타 선언 3~4장 발제

작성자
Gorani
작성일
2022-03-27 16:28
조회
285
3장 <상품과 커먼즈>

1. 16세기, 중세 봉건제의 정점이자 근대 자본주의의 시작

16세기는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고, 마녀 사냥이 일어났으며 감옥과 대서양 노예무역이 탄생했다. 영국에서 인클로저가 처음 대대적으로 시행됐고, 영국의 사유화가 시작됐다. 당시 영국은 튜더 왕조가 통치하던 시대였다. 튜더 왕조는 중앙집중화된 권력과 새로운 계층(젠트리)을 만들었다. 중앙집중화된 권력을 위해 관습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로마법과 성실청(the star chamber, 오심과 독재로 대표된 기관)을 통해 통치했으며 종교개혁으로 수도원과 그에 부속된 공유지를 해체해 젠트리가 종획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코벳은 종교개혁을 토지 수탈(빈곤화의 원인)과 마그나카르타의 위반으로 이해했다. 수도원의 해체는 영국의 오래된 환대 풍속을 축출했으며 토지를 상품으로 만드는 계기였다. 그는 마그나카르타와 교회를 연결시켜 주교의 파문이 저항의 권리였음을 말한다.
커머너들 또한 공통체의 보존을 위해 반란(1549년 <기도서반란>, <케트의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들은 런던으로 행진하기보다 영국 저지대 전역에 야영지를 만들었다. 가장 큰 반란은 마우스홀드히스에서 했는데 1만 6천명의 소매상인, 자작농, 커머너들이 참가했다. 그들은 대안정부를 만들고 공통체를 완전히 파괴하는 종획자들을 비난했다. 1526년 근대사의 가장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반란인 독일 농민반란은 관습적인 삼림권의 복원을 요구했다.
로버트 크로울리는 1548년 하원에 자신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농장을 빼앗는 자들, 지대를 비싸게 받는 자들, 종획자들, 임대업자들, 고리대금업자들을 비난했다. “유랑민들이 훔치고 강탈하고 차지하기 시작한다면 당신들이 바로 그 원인이다. 당신들은 그들이 파고 갈아서 생계를 벌어야 할 땅에 울타리를 쳐서 그들이 쓰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2. 커머너(커먼즈)와 인클로저(상품)

16세기 중반은 공통체와 상품이 서로 경합한 시기였다. 공통체는 휴머니즘적 어휘와 시민적 삶(civic life)에 속하는 특수한 수사로서 공적 일(res publica)과 연관되어 있으며 온정주의(paternalism)와 환대를 함축했다.
커머너들은 다양한 형태의 커머닝에 의존했다. 토니는 ‘작은 공통체’(a little commonwealth)인 시골 공동체의 특징을 얘기했다. 많은 수의 시골집 거주자와 일용노동자는 경작지가 없지만 공유지를 사용해 돼지, 거위, 닭, 암소를 키웠다. 이러한 공동경작지는 문서기록이 아닌 관습과 전통에 의존하며 토지의 경계는 많은 주민들이 확신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됐다. 환대풍속은 살림을 잘하는 것과 관련해 특별한 중요성을 가졌다. 상호부조의 우애, 품앗이와 공동의 보호가 작은 공통체를 만들었다. 황지(야생의 땅)에서 취한 땔감, 식량, 재료는 사람들(땅도, 집도, 방목권도 없는 사람들)을 커머너로 만드는 것을 도왔다.
당시 돼지방목 관습은 널리 행해지는 것이었다. 모든 집에 돼지 한두 마리는 있었는데 돼지는 할당된 텃밭, 정원과 함께 궁핍을 막아주는 요소였다. 다른 가축들도 필요했다. 쟁기를 끌고 물건을 운송하는 말, 우유와 치즈를 제공하는 암소가 필요했다. 삼림소유자는 커머너에게 돼지방목권을 허용했고, 경작되지 않은 땅의 자투리는 커머너들에게 암소를 키우는 장소가 되었다. 이들은 그 당시의 터를 커먼즈라고 불렀다. 농민의 경제는 방목지에 의존했다.
이에 반해 인클로저는 땅과의 정신적 유대를 파괴했고 커머너를 다양한 노동규율에 종속시킴으로써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예비 작업을 했다. 케이크와 맥주의 축출, 스포츠의 축출, 춤의 회피, 축제의 폐지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신체에 대한 엄밀한 규율이 여기에 속한다. 땅과 신체는 그 마법적 힘을 잃었다.
⇒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것과 케이크, 맥주, 스포츠, 춤, 축제를 없애고 남성과 여성의 신체에 대해 엄밀한 규율을 하는 것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노동계급은 범죄집단으로 간주되었으며 여성들의 힘은 해로운 것으로 비난받았다. 생계를 잃고 방치된 많은 ‘자매들’은 생활수단과 자립의 상실을 겪었다. 이는 마녀사냥을 통해 여성의 신체에 공포를 가하는 길을 마련했다. 공통의 에스토버스가 있어야할 자리에 불붙은 장작들이 들어선 것이다.

3. 마그나카르타 → 상품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독특한 탐구

16세기 마그나카르타는 “묘한 휴지기”였다. 1596년 셰익스피어는 ‘존 왕의 삶과 죽음’을 쓰며 마그나카르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튜더 왕조와 국교에 충성했기 때문에 극 내용 또한 존 왕의 시대가 아닌 튜더 왕조의 시대상을 비추어 썼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야기하는 무질서(반란)에 대한 소문과 고문이며 상품에 대한 긴 대사이다. 상품은 리처드 1세의 서자인 사생아에 의해 극에 도입된다. 셰익스피어는 상품에 대한 독특한 탐구(사생아의 이해할 수 없는 긴 독백)로 마그나카르타를 대체한다.
독백은 광기의 테마에서 시작한다. “미친 세상! 미친 왕들! 미친 협정!” 상품의 광기가 나온다. 상품은 유용하고 편리하다. 상품은 이윤과 이득을 위해 사고 팔린다. 간계가 정직한 거래를 대체한다. 소매치기보다 더 정직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성노동자의 사랑보다 더 진지한 사랑도 없어 보인다. 이타주의와 탐욕이 같은 형태를 가진 듯하다. 사기 전에 물건을 꼭 살펴보라. 세상은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
상품의 이중적 성격은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인 형태를 띤다. 이로 인해 상품은 불투명성을 갖게 된다. ‘사생아’는 상품의 사회적 관계를 투명하게 만든다. 포주, 브로커, 고리대금업자는 상품의 이름으로 행동하며 강탈(강간)이 상품이 숨기는 현실이다.
16세기의 경제적 변화로 여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삶의 터전인 공유지를 잃었고 법적 변화로 합당한 양의 에스토버스는 사라졌다. 셰익스피어가 표현한 것은 상품의 셋째 의미, 즉 다른 것보다 앞서서 일어난 여성 신체의 소외와 비인간화다.
⇒ 상품은 첫째, 이타주의와 탐욕을 같은 형태로 보이게 하는 속임수이다. 둘째,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사물들 사이의 관계로 불투명하게 만든다. 셋째, 여성 신체의 소외와 비인간화이다. 이 특징들은 현재도 유효할까?
여성 노동의 폄하와 여성 신체의 격하는 개방된 야생지의 인클로저, 공유지의 상실, 시골 마을의 인구감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소유자들과 임대업자들이 2~3배의 지대를 받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곧바로 사악한 행동에 뛰어들어 남자는 교수대를 장식했고 여자는 유곽으로 들어가 항상 비참하게 가난했고 결국 모든 질병과 궁핍으로 찌든 거리에서 누워 죽어갔다.
⇒ 여성운동에 대한 낙인, 젠트리피케이션, 청년 실업, 지방소멸이 떠올랐고, 공통장을 상상하는 것과 여성운동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4. 17세기, 상품과 마그나카르타의 양립

커머닝은 굶주림과 상품이라는 큰 적을 만났다. 마그나카르타는 소홀한 취급을 받은 16세기를 지나 17세기에 들어와 변형됐다. 혁명적 투쟁에서 마그나카르타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고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 에드워드 코크가 상품과 마그나카르타를 양립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4장 <상실된 헌장과 발견된 헌장>

1. 나무의 이야기 – 혁명의 기억, 박해받은 자(공유하려는 자)의 유령들

What kind of times are they, when a talk about trees is almost a crime because it implies silence about so many horrors?
나무에 관해서 말을 하면 그토록 많은 참사에 대해 침묵하는 셈이기에 거의 범죄가 되는 그런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인가?
브레히트는 예속(enslavement)과 대량학살에 반대해 글을 썼다. 예속과 대량학살은 반파시즘 세대가 나무 이야기, 우애, 혁명을 뒤로 미루며 맞서 싸운 것이었다. 그는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인내를 당부했다.
⇒ 이 글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해요. 저는 지금의 한국 정치를 보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을 파시스트로 규정하고, 주도권을 잡는 두 개 진영 모두 과거 혁명의 기억을 뒤로 한 채 서로 싸우는 것 같았어요. 또한 최근 리베카 솔릿이 인터뷰를 통해 한국 페미니스트들에게 5년 후가 아닌 50년 후를 바라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And I won’t tell you where it is, so why do I tell you anything? Because you still listen, because in times like these to have you listen at all, it’s necessary to talk about trees.
나는 그게 어딘지 말하지 않으려는데, 그러면서 왜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말하는가? 당신이 여전히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며, 이런 시대에는 당신이 듣게 하려면 나무에 대해 말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드리엔 리치가 브레히트에게 대답했다. 그녀에게 나무들은 예배당(박해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일어난 심층적인 혁명의 기억을 숨기고 있으며 버섯을 게더링할 수 있는(함께 따는 행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여성친화적 생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발제자 번역 추가]
전쟁을 행하는 국가와 예속(enslavement)이 공유지 강탈 및 여성 폭행(assault)과 맺는 관계는 17세기에 시작됐다. 그리고 도끼는 두 가지 의미에서 승리했다. 다시 말해 머리 베기와 나무 베기, 국왕 시해와 삼림제거로.

이 장은 두 헌장에 대해 각각 하나의 테마를 다룬다. 하나는 그것이 어떻게 발견되어 헌정체제의 보루가 되었는가(발견된 헌장)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이 어떻게 상실되어 단지 국지적이고 관습적인 관행이 되었는가(상실된 헌장)를 다룬다.

2. 도끼의 이야기 – 군주정 몰락과 삼림 철거

1649년 찰스 1세(1625년 스튜어트 왕조의 두 번째 왕으로 즉위, 전제적인 통치 방식으로 의회와의 갈등이 심해져 국가 분열의 내전을 초래해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당함)의 참수는 유럽 왕궁들을 오싹하게 했다. 왕은 공화정(commonwealth)의 적으로서 왕국의 근본적인 체제를 위반한 죄로 재판을 받았다. 체제에는 나라의 법도 포함됐는데 이는 마그나카르타에 있는 말이다.
군주정의 몰락과 삼림의 철거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그 대답은 커머너들에게 있다. 1585년 마녀로 몰려 교수형을 당한 마가렛 하켓은 이웃 밭에서 허락 받지 않고 콩을 따거나 어떤 사람의 땅에서 나무를 가져가 토지관리인과 싸우게 되었다. 키스 토머스는 이 사건을 친밀한 이웃관계와 사적소유 의식 성장과의 갈등으로 보았다. 마그나카르타에 있는 에스토버스에 대한 권리는 이웃공동체 관계의 일부였지만 당시 삼림 치안판사였던 존 맨웃에 따르면 그 헌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삼림법이 대부분의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깨끗이 잊혀졌다고 말했다.
⇒ 이를 통해 군주정의 몰락은 사적소유(또는 의회의 자유)를 대변하는 공화정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며, 삼림(커먼즈)의 철거와 맞물리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commonwealth는 환대의 공통체이거나 종획자들이 주도해 세운 공화정으로 이중 해석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3. 여성 폭행(마녀 사냥)과 여성의 투쟁

17세기 영국에서 수천 명의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거나 교수형을 당했다. 특히 나이 든 여성들, 병 고쳐 주는 여성들, 약초를 사용하는 여성들, 조언자 역할을 하는 여성들, 가난한 여성들에 대한 체계적 테러가 자행되었다. 마녀들을 단죄하는 증거에는 방목권, 돼지방목권, 에스토버스 등 공통권과도 연관이 있었다.
⇒ 왜 특정 여성들에게 체계적인 테러를 자행했을까요?
여성들은 공통권을 보존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본격적인 추수가 끝난 후 남은 이삭을 줍는 오래된 관습은 여성들이 통제했으며 추수가 끝난 밭으로 갈 때 여성들의 지도자인 추수의 여왕이 행렬을 이끌었다.
⇒ 이삭줍기는 밀레의 그림에도 나옵니다. 이삭줍기는 자신의 농지가 없기에 주운 이삭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최하층 빈민이 주로 했고, 밭 주인은 추수 때 땅에 떨어진 이삭을 일부러 줍지 않아 일종의 사회보장제도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는 이 관습을 여성들이 통제(운영)했다는 것, 밭으로 갈 때 추수의 여왕을 정해 퍼레이드를 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1626~28년 길링엄포레스트 반란은 여성들이 이끌었다. 1627년 레스터포레스트 반란을 지켜본 한 관찰자는 몇 명의 무식한 여성들이 그 반란을 이끌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1632년 포레스트오브딘 반란은 신비로운 인물인 레이디 스키밍턴이 이끌었는데 대포를 가져와 발포를 명령해 포수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삼림 커머너들의 투쟁은 잉글랜드 계급투쟁 역사의 주된 단계였다. 1680년 공통권을 가진 커머너들은 애쉬다운 포레스트의 종획을 반대하는 청원을 했다. 1689년 그들은 산울타리를 무너뜨려 도랑으로 던진 후 그 위에 법원의 명령문을 놓고 흙으로 덮었다. 실천이 법을 파묻은 것이다. 애쉬다운 포레스트의 종획은 50년에 걸친 항의, 협상, 타협의 과정이었으며 그 결과 삼림 전체가 종획되는 일이 결코 없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땅이 개방된 채로 있다.
⇒ 애쉬다운 포레스트는 현재도 있고, 위키백과의 설명엔 커먼즈 언급을 하지만 투쟁의 역사는 안 나와 있습니다. 엄청 힘들고 고된 투쟁이었을 텐데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지속된다는 게 멋집니다. 하지만 과거 혁명의 의미가 현재까지 이어지진 않는 것 같았습니다.

4. 상품과 마그나카르타의 양립가능성, 에드워드 코크

에드워드 코크는 의회의 주도적인 입헌주의자이며 법조계의 거물, 자산가, 상업가였다. 그는 마그나카르타를 왕을 모시지 않으려는 자라고 말했다. 삼림 탄압에 선행한 것은 왕과 의회의 줄다리기였다. 마그나카르타는 근대 헌법으로 전환됐으며 봉건적 특권을 서술한 문서에서 상업, 재산, 개인주의에 적합한 헌장으로 전환됐다. 코크는 이 전환을 도왔다.
코크는 삼림헌장을 나라의 백성에게 이전의 권리를 되찾아 주는 선언적 법이라 불렀다. 그는 common이란 단어를 동사로 사용하기를 강조하며 사물이나 자원이 아닌 관습적 활동으로 이해하길 바랐다. 그는 마그나카르타를 근본적인 법으로 격상시켰지만 삼림헌장은 제정법과 판사들의 법에 종속시켰다.
⇒ 코크가 말한 common이 동사로 사용되고 관습적 활동이라는 것은 이 개념이 삶과 맞닿아 있으며 법이나 행정의 영역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상화되지 않는 소수자 운동, 마법적인 힘을 지닌 공통장은 무엇일지 상상해봅니다.
그리고 최근 장애인 권리보장 관련 출근길 투쟁에 대해 많은 시민들의 혐오 발언을 보면서, 일상에서 소수자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법과 행정에 얽매이지 않는 게 필요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이 됩니다. 마치 코크가 common의 의미를 잘 포착했지만 그걸 지켜주는 삼림헌장은 제정법과 판사들의 재량에 맡겨버린 것처럼요.
영국 혁명(English Revolution, 1642~1660, 영국시민전쟁 발발부터 부르주아 공화정 시기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1649년 찰스 1세가 단두대에 처형되고, 1660년 찰스 2세가 즉위하기 전까지 부르주아 공화정(commonwealth)이 통치함)이 시작되자 초기 조치로 왕정이 침해했던 삼림을 보존했는데 이는 부유한 커머너(tenant, owner, occupier)를 위한 것이었다.

5. 발견된 헌장

민중의 투사인 존 릴번은 최초의 민주적인 정치당, 수평파를 조직했다. 수평파는 마그나카르타를 민족 개념과 연결했다. 수평파의 목표는 남녀노소 모두 개인의 권리, 자유, 안전, 복지를 얻는 것이었다. 마그나카르타는 영국인이 물려받은 법적 생득권이 되었다.
1648년 9월 11일 수평파는 4만 명의 서명을 받아 의회에 대청원을 했다. 이 청원은 공유지와 배상의 문제를 제기했는데 민중주권, 전쟁 시 군복무 강제 반대, 종교의 자유, 독점과 매점에 대한 처벌과 고통받은 사람에 대한 배상, 최근 종획된 모든 땅의 개방 등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폭정에 대한 방어책은 커머닝의 보존과 연결되었다.
1649년 5월 수천 명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신의 모습으로 창조된 어엿한 청원자이며 공통체의 자유에 대한 동등한 권리가 있음을 치안판사에게 상기시키고, 하원에 <여성들의 청원>을 제출했다. 그들은 수평파가 투옥되는 것에 항의했고, 군복무에 항명한 록키어의 죽음을 규탄하며 계엄령을 비난했다.

6. 상실된 헌장

영국 왕정복고(공화정 지도자 크롬웰의 사망, 1660년 찰스 2세 즉위) 이후 비국교도들의 권리를 빼앗고 집회가 금지됐으며 삼림 및 커머닝 제한, 대서양 노예무역, 식민지, 마녀 사냥이 다시 시작됐다. 왕정은 마그나카르타에 대해 코크와 반대되는 해석을 했다. 코크는 마그나카르타 39조의 “그 어떤 자유민도”에 농노를 포함했지만 왕정복고는 재산을 가진 자유보유자(freeholders of property)를 지칭했다. 자유에 대해서도 왕정복고는 봉건 의무금의 완화를 의미했지, 근본적인 권리나 자유 및 영국인의 생득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코크는 1606년 <버지니아 회사>의 특허장 작성을 도왔다. 아메리카의 다른 식민지들의 특허장 또한 마그나카르타를 언급했다. 이 식민지의 개척자들은 왕의 권위에 맞서는데 마그나카르타를 활용한 반면 자신들이 원주민의 숲지대를 침입하게 되었을 때는 삼림에 관한 조항을 무시했다. 마그나카르타는 식민지의 자유와 탐욕스런 제국 모두의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커머너들의 헌장은 상실되었지만 마그나카르타는 배심원제의 보존, 인신보호영장, 고문의 금지라는 세 측면에서는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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