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3부 발제 (수정중)

작성자
voov11
작성일
2023-04-19 07:53
조회
167
1.죽음과 서발턴

- 사티의 죽음
죽음은 서발터니티가 해소되리라고 기대하는 곳. 그러나 서발턴의 죽음에 의해 제기되는 질문들은 죽음이 위대한 평등 주의자라는 믿음과 상충됨.

스피박의 에세이는 여성의 젠더화된 서발터니티가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죽음과 연관되고 있는지, 죽음이 어떠한 방식으로 그녀의 젠더화된 서발턴적인 조건과 연관되고 있는지 검토함. 구하의 에세이도 함께 검토

(죽어야지만 역사에 기록되는 여성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 부바네스와리 자살

이론가들이 피억업자에게 주체라는 위치를 주는 것은 본질적인 유토피아 정치를 대변하도록 몰아가는 것이다.(204)
또한 바두리의 죽음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결과적으로 사티는 말할 수 없다.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

이 글은 서발턴이 죽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부터 시작하여 죽음 이후의 삶의 시나리오로 끝낸다.

서밭턴은 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2가지 이유로 부네바네스와리의 죽음이라는 전형을 초과하거나 어긋난다.

1) 서발턴이라는 용어로 확정적인 계급위치를 뜻한다면 부바네스와리는 서발턴이 아니다.

중간계급의 그녀는 서발턴이 아니며, 스피박은 이에 대해 구하의 서발터니티의 정의에 더 의존한다. (차이성 속의 동일성)

이때 설득력 있는 견해는 부바네스와리의 종속성을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규정한다는 것이다. (계급이 위더라도 젠더가 여성이면 아래)

2)서발턴의 지나치게 의미있는 말/금이라는 실제 사례에 위배됨.

오히려 그녀의 죽음은 이유들이 넘쳐났고 자살자체가 저항의 힘을 가질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스피박이 수수께끼 자발적 침묵의 전형으로 이 여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자살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고, 강조하려고 하고, 말하려고 시도한다. (프라이데이와 상반)

왜 프라이데이는 노예이지만 서발턴이라 규정되지 않을까?

서발터니티는 말의 실패와, 행위 능력의 비-인정과 겹쳐 있음이 강조된다. 프라이데이는 말할 수 없으나 (혀 자름), 부바~ 말을 한, 서발턴의 형상화된 전형 구실을 한다.
할 수 없음이 말하는 것은 말 할 수 없음이 아니라 말의 실패다

스피박이 부바~를 서발턴의 전형으로 선택하는 것은 완전한 전형이 아니라 불완전한 전형을 선택하는 것이고.
즉 문자 그대로 해석에 그녀가 저항하는 것이 서발턴 말하기의 불/가능성을 이해하는데 중심적이다.

전형은 항상 그 자체를 뛰어넘어가고, 증거하는 차원을 열고 타자들을 향하며 자아를 넘어선다. (데리다)

즉 하나의 전형이 아닌 전형은 특이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전형은 특수함들을 통해 위태로운 일반화와 연결되고, 일반화에 기여하는데, 바로 이것이 전형의 기능이 수행되는 방식이다. (규범적이지 않은 전형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규범적이지 않음으로 일반화에 연결된다?)

동어반복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논점과 범례가 서로 불연속적이어야만 한다 (진짜 서발턴이 서발턴이라고 말하는 것은 동어반복, 그러니 불완전한 전형의 형상이 서발턴이라고 주장되며 말할 수 없음을 말한다?)


- 자살

부바~의 자살은 무슨 의미인가? 자살이라는 것도 서발턴 주체에게 비전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부바는 자유의지와 독립성의 표본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유의지와 독립성은 저의가 담긴 용어인데 인가된 자살이라는 힌두교의 심리전기적 서사의 틀안에 넣는다.

그럼에도 자살은 금지된 행위이며 이러한 죽음은 남성에게만 허용되는데, 부바는 오히려 죽음과 생리일짜를 맞춤으로써 금기를 역전시킨다.
사티 - 자살이라는 사회적 텍스트를 서발턴 입장에서 다시 쓰는 것이다. (보통은 희생적인 사티라는 이미지를 덧 씌우지만 스피박은 그렇게 안한다?)

스피박은 자살 폭파로 인해 살인자, 희생자의 동반 사망이 자아와 타자 모두를 향한 사형, 애도라고 말함. (같이 죽기 때문에 불명예란 없다)
자살폭탄과 사티의 공통점은 희생자들이 죽는 다는 것이다. 자살폭파 안에는 윤리적 시도와 형언할 수 없는 사이의 모순이 있다고 인정한다.

자살이란 구성적으로 해독불가능하며, 본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살을 서발턴적인 죽음의 사례로 만든 것은 자살 그자체에 관한 뻔한소리들, 단정하는 것에 의한 의미의 폐제다.


- 젠더, 섹슈얼리티, 폭력, 페미니즘

부바의 서발터니티는 젠더화된 조건이며, 종별성은 성차화된 여성적 몸의 조건으로 표시된다. (생리중)

이러한 몸들은 탈안정화의 잠재력이 투입되어 있다.

스파박이 부바의 몸에서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내가는 것은 무엇인가,

부바는 추가로 자신의 몸을 통해 코드화된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젠더화된 서발터니티의 기호다.
(위의 사례에서는 죽을 때 불륜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순결해야한다는 것에 종속됨으로써 잠재력이 제거된다.)


-재현 윤리적 책임 상상의 기능

자살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은 죽음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죽음의 특이성은 우리에게 이해하려는 노력과 애도하는 태도를 주문하는데,
역사적 주체로서의 젠더화된 서발턴은 그러한 복원에 저항하리라는 점을 알고 있어도 그렇다.

분석과 설명 그자체가 정동을 폐제하는 것을 불완전한 전형이 전략적으로 막는다면, 기원에 있는 이중구속의 재현의 과제에 연류된 윤리적 시도를 가리킨다.

정동에서 윤리적 응답으로의 이동은 책임으로의 도정에 필수적이다. 정동의 노동에 대해 결과적인 것이라는 의미와 시도와 비용이라는 의미에서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윤리적 애도 만이 아니라, 불완전한 전형의 죽음은 더 끌어당긴다?)

-죽음 이후의 삶을 살기

죽음은 서발터니티 안에서 서발터니티를 나타내는 속성이라기 보다는 드러냄으로 기능한다.

찬드라의 죽음 (낙태와 죽음)
찬드라의 죽음이라는 에세이에서 역사가의 임무는 서발턴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사건을 맥락화 하고 사건에 두터운 세부를 제고하는 것이다. 사실의 건조한 뼈대를 제공하는 법이 국가가 파현하는 특사라면, 역사가는 공동체의 복합적인 실천과 믿음을 기록하는 자 일것이다.

하지만 구하의 서벌턴은 말할 수 있는가? 찬드라의 침묵은 자연스러운 것이다.(여동생의 말등에서 살펴볼 수 있는 비극의 어조)

결국 서발턴 여성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재현해줌으로써 복원하려는 구하의 시도는 스피박의 주장을 강조할 뿐이다.

범죄에 대한 댓가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죽음의 사라지븐 그녀들의 죽음이기도 하다.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



2. 말하기와 죽기 사이에서

-부정성의 노동

서반구에서 노예의 반란과 저항을 충분하게 가치 평가하면서도 실상 다소 실증주의적으로, 즉 반란과 저항이라는 이 실증적 행위들의 선행조건들로 보이는 반복적 부인과 지속적 부정성의 심층적 행위들을 적합하게 평가하지 않은채로 가치평가 한 것 같음

잠재적 저항행위로서 자살의 가능성에 수반된 조건은 무엇인가?

노예가 반란행위에 나서면서 기꺼이 자신의 죽음에 직면하겠다는 것은 자살에 준하는 것이다. 이 기꺼이 하겠음이 나타내는 것은 노예의 삶을, 내가 다른 곳에서 검토한 바로는 죽음에 - 묶인 - 주체의 삶인 노예의 삶을 규정하는 가능성의 조건들과 관련된 심층의 부정성의 계기이다.

말하고 듣는 행위들과 살고 죽는 행위들에 수반되는 가치들인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와 잉여가지 사이의 복합적인 변증법적 연관에 의해, 말하는 능력과 죽는 능력이 언제나 이미 깊숙히 코드화 되는 영역이 바로 정치적 영역이다.

삶또는 정체성을 비현상성으로 지칭하는 것이 삶 /정체성에의 집중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필수적인 수순이며, 자살행위에서 삶/정체성을 최종적이고 총체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덜 모순적이고, 덜 역설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

행위능력의 가능성에 대한 부인으로서 자살가능성은 특정한 정황에서는 행위능력의 가장 강한 천명에 기반이 될 뿐만 아니라 앎의 한계를 아는 능력을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심문장)

-더글러스의 이야기

잠재적 죽음의 부정성을 전유하며 자유의 토대로 전화시킬 수 있게 됨. 자신의 죽음의 부정성 포용함으로써 자신의 행위능력을 주인의 안녕이 아니라 자신의 안녕을 위한 것으로 복권 시킴
개인의 행위능력과 인견의 자유를 위한 환경을 설정하는 데서 부정성이 하는 역할에 관한 더 진전된 통찰

묶인 것을 풀어주는 타나토스에 묶이는 과정이다.
서서 죽임을 당하는 것과 달리다 죽임을 당하는 것은 다르다. 서서는 능동적인 전유이며 자신의 죽음을 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의 책임자는 노예이다
(주인은 죽음이라는 위협을 가해서 잉여가치와 교환가치를 얻고, 실제적인 죽음은 아무런 가치를 주지 못한다.)

주인과 노예 사이의 목숨을 건 투쟁은 노예의 행위 능력을 통제에 놓고 벌이는 투쟁이다.
이러한 죽음 을 통해서 (실제-죽음 가능성과 대면하면서) 노예의 날은 날려보내고, 상징적 죽음을 달성한다.


-새로운 주체의 위치

이처럼 노예의 남은 생을 부활하게 하는 것은 심층의 부정성이라는 점이다. 그의 새로운 삶이 탄생과 자유 추구를 키우고 지속시키는 것은 죽음의 부정성에 깊이 묶이는 것이고, 묶임을 풀기라는 원칙에 깊이 묶이는 것이다.

죽음에 묶인 주체에서 이런 유형의 조건들 아래 죽음을 포용 하는 것이 상징적-죽음에 필연적으로 선행하며, 노예의 주체 - 위치가 철폐되고 이와 같은 주체가 더욱 해방된 주체-위치로 재탄생하는 것에도 필연적으로 선행한다고 주장함.

상징적 행위로서의 선택은 죽음 가능성을 포용하기를 구성하며, 이 포용은 그 가능성 자체에 선행한다.

두가지의 이론적 결과가 나오는데 삶에의 집중을 묵시적으로 해지하는 것이 에로스의 에너지를 자유롭게 하여 해방된 집중의 에너지들이라는 형식으로 즉각회귀한다는 점

발화상의 죽음이라는부를 수 있을만한 것과 실존적인 실제-죽음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 사이의 공간이 열리는 덕분에 우리는 상징적 죽음이라는 통념을 발화상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되는 역동적인 변혁적 관여로 재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죽임을 당하는 수동성과 죽어버리는 능동적 입지 사이의 대립 구조가 침울하게 되풀이 된다.

더글러스가 스스로를 표명하는 영역과 함께하면서도 그것과는 상이한 영역에서 내가 제안하고 있는 바는 노예의 자유추구는 부정성의 노동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더글러스의 이야기 부정성에 접근하는 것은 그의 말하기 능력, 그의 글쓰기 능력에 달려있다.

노예들은 이러한 경우가 많았겠지만 말하기, 글쓰기 능력이 없다면 그들의 통찰은 전해지지 못할 것이다. 총체적이려면 글을 익혀서 정치적으로 전개하는 가운데 표현되어야 한다.

일기와 능력덕에 더글로서는 순수한 에로스적 묶임의 형태라는 결정적 계기를 이 순환안에 삽입하 수 있게 된다. 타나토스의 유대


더글러스가 죽음-작업을 자양분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 근본적이다.

형식에서도 의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 지식의 정동적인 구조에서도 매혹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그것을 전유하고활용한다.

자선적의 정동적인 형식이 느슨하나마 블루스의 그것이다.

노예사회를 추동하는 죽음 작업의 구조를 이루는 근본적 역설은 죽음 위협을 부인하며 묶임을 푸는 힘이 주인에 의해 노예를 주인의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욕망에 묶는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만약 노예가 불가능하게도 묶이지 않은 주체로서 묶인다면 그의 주체-위치의 불가능한 부정성은 그의 행위 능력과 잠재적 자유를 천명하는 유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글의 부정성은 그의 행위 능력과 잠재적 자유를 천명하는 유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어떤 노예가 자기모순적인 주체의 축도인 한에서 그 노예는 근본적으로 부정성에 의해 구성된다. 그가 이 부정성에 의지하고 부정성의 힘을 전유할 때 부정 변증법은 자유를 향한 그의 왕도가 된다.






3. 참전 서발턴들

묘비의 인종과 교리에 있어서의 차별은 안된다라는 것
전몰자들 각자의 이름을 밝혀 추모해야한다는 원칙이 유럽에 한정에서만 지켜졌다는 것이다.

인도인 군대는 목소리와 행위능력이 거부된 종속형태로서의 스피박젇인 서발터니티와 영국육군 장교 서열의 측면에서 정의되는 서발터니티 사이의 어떤 만남을 제공한다.

인도라는 명칭을 묘비에서 빼기
뇌브샤펠에서는 모든 개인의 이름이 거명되지만 바스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처럼 바스라 기념의 인종/서열의 연쇄 따른 차별은 인도인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토착민 부대의 생명과 죽음은 영국인의 생명과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고 간주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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