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4, 5부

작성자
bomi
작성일
2023-05-03 18:52
조회
188
4부

<서발터니티로부터 이동하기>
과테말라와 멕시코의 도탁민 여성들
진 프랑코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에게, 특히 한 명의 특별한 ‘서발턴’인 멘추에 관한 논쟁들과 주장들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다. 엘리자베스 부르고스-드브레가 전사한 멘추의 대담과 증언은 스페인어로 나온 지 1년 뒤인 1984년에 영어 번역본이 출간되자마자 유명해졌고 논란이 되었다. 어쨌든 이 증언은 서발턴인 멘추를 공공 지식인으로 만들어 주었고, 그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357)
『나의 이름은 멘추: 마야, 퀴체족 인디오 여인의 기록』, 유정태 옮김, 지산미디어, 1993

스피박은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 「역사」 장의 두 군데 각주에서 멘추의 증언을 언급한다. 거기서 멘추는 독자들에게뿐만 아니라 편집자이게도 일부 정보의 공개를 유보했다고 밝힌다. (361)

멘추의 이야기에는 증언하라는 명령과 감추라는 명령 사이의 경합이 있다. 비밀 유지는 공동체의 관습을 방어하려는 전략으로서, 자신들의 관습이 외부의 면밀한 조사에 버틸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364) 그러나 멘추의 증언이 출간된 이후, 이제 토착민 공동체의 관습은 스스로 서발터니티에서 나와 시민권으로 들어가려고 해온 토착민 여성들에 의해서 권리의 이름으로 면밀하게 조사되고 있고 우리는 그 역사적 궤도를 따라가야만 한다.

멕시코와 안데스 지역에서는 네 세기가 넘도록 토착민 공동체들이 거듭 다시 만들어졌다. 정복 이후에 토착민들은 처음에는 인디오 공화국으로 조직되었고, 나중에는 권력은 제한되었어도 공유지가 있는 인디오 촌락으로 조직되었다. 19세기에는 자유주의 개혁 정책이 공유지의 법적 기반을 와해시켜서, 많은 공유지가 지주들의 차지가 되었다. 1910~1917년 혁명의 여파로 비로소 토착민에 대한 태도에 급진적 변화가 일어났고, 토착민은 그제서야 토지와 국적을 약속받아 혁명 이후 국민의 일부로 다시 상상되었다. (365)
1980년대에는 소작농을 자급 농민 이상의 수준으로 전환시키려는 간철헉 지도들이 있었으나 199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은, 멕시코 혁명에 의해 개시되었던 농업 개혁 강령을 변경시켰고, 공유지의 사유화를 허용했다. 이때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자급 경제의 농업 기반이 파괴되었는데 위기가 특히 심했던 곳이 치아파스였다. (367)

1970년대 석유 산업 붐이 일어나면서 치아파스의 남성들은 석유 공장에서 시간제로 일했고, 여성들은 마을 살림을 돌보도록 남겨졌다. 그렇지만 다른 정황도 있었다. 정부가 라칸돈 정글의 토지를 경작을 위해 무상 분배하고 무토지 농민들이 이 땅을 개척하면서 여성의 위상이 달라졌다. (367) 소수의 잔존 좌파 투사들과 이주해 온 토착민 농민이 힘을 합쳐 라칸돈 정글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탄생했으며, 젠더화된 서발턴은 서발터니티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았다.

사파티스타군에 들어간 여성들은 무기 다루는 법을 배우고 여성의 공동체 정치 참여를 가로막는 관습에 도적했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봉기자의 여성형인 insurgentas로 칭했고, 여성권리선언을 작성했다. (368) 1994년 1월에 라칸돈 정글에 사파티스타군이 출현하여 “신자유주의에 맞선 제1차 반란”을 선포했을 때, 여성들은 지자체들의 점거에 가담했다. 이제 사타피스타군의 약 40퍼센트가 여성들로 추산된다. (369)

사파티스타군의 여성 사령관 에스테르는 토착민의 권리 문제와 이 법안을 놓고 시민사회와 협의하기 위한 연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이름은 에스테르이지만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사파티스타 반군의 일원이지만 이 순간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일개 토착민 여성이고 지금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거예요.” 이는 차이들을 존중하는 나라를, 인디오이면서 멕시코인이 될 수 있는 나라는 고대했던 담대한 조치였다. 그녀는 토착민 공동체에 있는 전통적인 여성 종속을 인정하고 여성 억압을 언급하면서도, 토착민 공동체가 자신들의 문화를 가져야 할 권리와 그 공동체 내에서 여성이 가져야 할 권리 역시 천명하면서, 토착민 공동체를 온정주의적인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는 정부의 시도를 함축적으로 거부한다. 이러한 실행은 서발턴이 헤게모니로 옮겨 가는 경로의 전형을 보여 준 장관이었다. (371)

토착민 지식인 마르가리타 구티에레스와 콜롬비아 활동가인 네이스 팔로모는 토착민 여성의 요구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차별화해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71) 그들은 “개인적인 것은 여성들의 사회적 삶의 맥락 안에서, 자유와 책임에 근거해 이런저런 형식으로 행동하고 자유롭게 독립적일 수 있다. 토착민 여성은 바로 이러한 자율성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라고 논의한다. 여성들이 자신들 나름의 조건들에 따라 시민권에 입장할 때 개인적인 것의 재의미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372)

치아파스 토착민 여성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바로 “발생적인 공적 역할”을 해나가는 데는 여러 길이 있다는 점이다. (373)

스피박의 관점에서 서발턴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적 이동성의 노선에서 격리된 사람들”을 망라한다. (372) 그리고 스피박이 옹호하는 것은 일종의 아래로부터의 세속적 교육이며, 이는 국제기구와 엔지오의 의심스러운 자비와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교육에는 실로 많은 상이한 형식들이 있다. (373)





5부

<응답>
뒤를 돌아보며, 앞을 내다보며

1983년 여름에 개최된 ‘맑스주의적 문화 해석들: 한계들, 프런티어들, 경계들’이라는 학술 대회에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권력과 욕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을 때, 나(스피박)의 요점은 저항을 위한 유효한 제도적 배경이 아예 없다면 저항은 인지될 수 없다는 것, 즉 누군가가 다른 무언가를 하고자 했을 때 제도적 정당화라는 것이 아예 없으면 그 다른 무언가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380)

문학 비평가로서 나는 텍스트를 해명해 주는 ‘주변부적’marginal 계기를 주시한다. (푸코와 들뢰즈, 칸트 같은 지식인들이 충분히 이론적인 논의를 할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특정한 종류의 신념들이 누설되는 지점들을 주시한다.) 역설적으로 그 계기가 텍스트에 ‘정상적인’ 것, 텍스트의 규범을 이루는 것에 대한 감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381)

나는 맑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영향하에 부바네스와리를 읽고 서발턴 연구회의 영향하에 그녀를 다시 코드화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억압 자체인 서발터니티가 벵골 농촌 빈민들의 저변에서 정상성으로 받아들여지던 현장에 발을 내디뎠다. 그러한 서발턴 공간에서 그들과 어울리면서 가르치기에 관해 배웠다. 모든 가르치기는 변화를 시도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공유된 현장을 상정한다. (382)

현장에서 나의 일은 선생의 일이었다. 즉 욕망을 비강제적으로 재배치하고, 공공 영역에 대한 직관을 함양하는 일-정상성에 개입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또한 서발터니티를 위기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384)

우리는 모든 세대가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서발턴에 관한 한 그 점을 잊어버린다. 나는 두 세대에 바두리 집안 여성들이 그녀를 읽는 법을 망각해 왔음을 깨닫고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그 점에 집중했다. 그것은 교육의 실패에 대한 서사였다. (385)

전위된 제국주의(하부제국주의들의 증식)에 대한 하비의 글은 공산주의는 민족 해방 진영의 진보적 부르주아지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는 레닌의 논의를 반복하는데 나는 이 논의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387) 그람시가 가르쳐 준 교훈은, 서발터니티 내부에서 해방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은 계급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서발턴 연구가 하나의 분석 범주로서 계급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하비와 서발턴 주의자들의 진퇴양난 사이에 아래로 이동하는 나의 궤도가 놓여 있다. 나는 교육을 하나의 *대리보충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대리보충은 하나의 대안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388)

*대리 보충 代理補充 :
원래의 것을 보완하는 새로운 형태. 데리다에 따르면, 이것이 현실적인 작동 원리이며, 순수한 원본은 일종의 추상적인 환상일 뿐이라고 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지구화와 그 불만들』에서 개발 도상국들은 초국적 기관들에 맞서 자체의 의제를 설정하게끔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를 아래쪽 청중에게 전달하려면 인내심을 갖고 세심하게 서발턴들을 귀 기울여 듣는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에 투신한 지식인으로서 우리가 서발터니티 속에서 공공영역에 대한 직관을 창안해 낼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이 선생의 일이다. 이러한 가르치기 작업이 수행되지 않으면, 서발턴들은 스스로를 재현할 수 없어 재현되어야 하는 서발터니티 속에 남는다. ‘한’one 자아를 집단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공공 영역에서의 일이다. 이를 맑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계급의 견지에서 이해했고,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도입했다. (389)

라니지트 구하의 글, 「식민 시기 인도 역사 기술의 몇 가지 측면」을 읽고 그가 이끌던 서발턴 연구회의 작업에 크게 압도된 나는, 나는 유럽 연구자로 머물게 만드는 감옥에서 나 자신을 빼내어 서발턴의 고립된 거주지 속으로 밀어 넣고 그 이야기를 다시 코드화했다. 나는 구하를 따라 “서발턴은 차이의 공간에 있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지만 사실 (이를 통해 나는) 제도적 정당화 구조를 갖지 못하는 것에 관해 생각했다. (390)

『자본』1권에서 이성의 공적 사용을 뒤집어 주체를 프롤레타리아로 만들 때, 맑스는 교육자다. 그는 가르치려 애쓰며, 노동자들이 자신을 생산의 행위자로 생각하게끔 그들의 감정을 재배치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자신이 본 유일한 혁명을 저널리즘적으로 기술하는 글을 쓸 때 길고 놀라운 수사적 문단을 내놓으며 프롤레티리아 혁명한테 올바른 순간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여기서 뛰라고leap 말한다. 이 요청은 실천적으로 긴급한 것츠럼 보인다. 합리주의자 맑스는 여기서 이성의 제한된 사용을 요청한다. (391)

부바네스와리 바두리를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내 이모할머니의 특이한singular 자살을 이론의 합리성과 혁명적 순간의 다급함 사이에 있는 간극 속에 끼워 넣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맑스적 의미에서 그녀를 재현하는 것이 나의 과제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 제스처와 과제는 아직 집단성과 공공 영역에 관한 고찰들로 나타날 수 없었다. 이것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에세이의 출발점이었다. 서발턴을 차이의 상태로 이해한 것(구하의 경우)이 출발점은 아닌 셈이다. (393)

부바네스와리의 교훈들 1) 1986년 루프 칸와르가 사티로 자살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경전을 수긍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욕망은 재배치되어야 했다. 나는 부바네스와리가 상황의 명령들에의해 강제로 그 욕망을 재배치했다고 느꼈다. 2) 부바네스와리는 텍스트로서의 죽음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즉 아무 응답도 없는 상황들을 내가 읽게 만들어 주었다. 자살 폭파범들은 그 욕망들이 재배치된 하나의 집단성을 형성한다. 죽겠다는 그들의 결정은 부바네스와리의 결정과도 유사한 어떤 것이었다. 그녀를 유일무이하게 만들었던 것은 죽음을 미루겠다는 두번째 결정의 젠더화 과정이었다.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어서,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없어서, 같은 대의명분을 위해 당신이 나와 함께 죽을 때, 우리는 하나의 합의를 기념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극단의 행동과 맞먹는다. (395)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의 궤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편으로 학교가, 다른 한편으로 서발턴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 정의의 법적 도구로서 세속주의에 대한 탐색이 남아 있다.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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