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호] 윌리엄 제임스의 독창성과 그 학문 세계에서 근본적 경험론의 의미: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의 한국어판 출판에 부쳐 / 민병교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3-31 20:58
조회
2161

윌리엄 제임스의 독창성과 그 학문 세계에서 근본적 경험론의 의미: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의 한국어판 출판에 부쳐

윌리엄 제임스의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갈무리, 2018)

민병교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 이 서평의 짧은 버전이 2018년 3월 26일 교수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AGR6RF


오늘날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미국 실용주의(American pragmatism)와 관련하여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에서 가장 다작했던 후기에 그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관심을 ‘근본적 경험론(radical empiricism)’의 … 발전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더 있었다. ― David C. Lamberth, William James and the Metaphysics of Experience, 1999, p. 9.

 

윌리엄 제임스는 미국 최초의 신심리학자(new psychologist)로서, 그리고 신심리학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1890)의 저자로서 한때 가장 권위 있는 심리학자의 위치에 올랐던 인물이기도 하고, 오늘날에는 실용주의 철학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가장 널리 평가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제임스가 심리학과 철학에 어떤 기여를 어떻게 얼마나 했는지에 대한, 그리고 그의 사상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또한 그의 사상들이 모두 타당한 것이라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연구자라면 그가 당대에 가장 ‘독창적인 그래서 도발적인’ 사상가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제임스를 이처럼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사상가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에 관해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가 다양한 독창적 개념들과 이론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제임스가 이처럼 독창적 개념들과 이론들을 제시할 수 있었던 근원적 토대는 무엇이었을까? 2018년 1월 말일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Essays in Radical Empiricism)』([1912] 2018, 도서출판 갈무리)1)에 관한 이 서평에서는 이 질문에서 시작해 근본적 경험론이 제임스의 학문 세계 일반에서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에 관해 간략히 다루고자 한다.

서평으로 책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 대신 이처럼 제임스의 학자 경력 맥락에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를 평가하는 내용을 다루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서가 출판된 지 100년이 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그 자체로 제임스 연구자들의 해석과 이들 간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2) 즉, 오늘날에는 제임스가 제시한 주장 자체의 타당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에 대한 해석의 타당성을 두고 제임스 연구자들 간 논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 제임스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가 아닌) 제임스 스스로가 저자인 이 책에 대해 마치 동시대에 출간된 책을 대하듯 일반적인 서평을 제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평가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근본적 경험론에 대한 일반적 소개를 하기에는, 그 내용 자체도 워낙 방대하거니와 제임스가 “가장 미성숙한 상태로 두고 떠난” 기획인 만큼(Taylor, 1996:112)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기에, 이 짧은 글에서 그 모든 내용과 그에 대한 해석 및 함의를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제임스의 학자 경력 내내 드러나는 철학적 태도로서 근본적 경험론과 이와 연관된 그 주요 측면들을 중심으로 제임스 학문 세계에서의 그 의미를 검토해보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려 한다.

그럼 ‘제임스를 당대의 다른 학자들과 구별시키는 독창성의 근원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이는 “인간 경험에 대한 구체적 준거”(Taylor, 1996:5)를 통해 사실들과 개념들을 제시하려는 그의 학문적 태도였다. 예를 들어,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인 의식의 흐름, 즉, “사고나 의식, 주관적 삶의 흐름(the stream of thought, of consciousness, or of subjective life)”(James, 1890:239)도 경험되는 그대로의 의식을 관찰할 때 발견되는 사실은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사고 과정뿐이라는 결론으로부터 도출된 개념이다(James, 1890:224-39). 이처럼 제임스가 독창적 개념을 제시했던 배경에는 경험되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충실한 관찰이 있었다. 물론 위 개념이 제시되었던 『심리학의 원리』의 출판 당시만 하더라도 제임스는 이 같은 태도를 아직 명확히 규명하지 않고 있었다.

심리학의 완성을 위해 (아직 명명되지는 않았으나 이후 근본적 경험론으로 발전되는) 형이상학적 탐구가 필요함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1894년 미국심리학회장 연설(“The Knowing of Things Together”)도 그 기반에는 이 같은 경험에 충실한 학문적 태도가 놓여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신심리학 시대를 연 영웅의 위치에 있었던 제임스는 이 연설에서 의식에서의 통일성(또는 단일성; unity)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해 어떻게 여러 사물들을 하나의 통일체로 경험하고 알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관한 기존의 설명들을 비판적으로 열거한다(James, 1895). 하지만 그는, 스스로 밝히듯, 상기 “주제에 어떤 새로운 통찰도 제공하지 않았다”(James, 1895:122). 하지만 이 같은 문제 제기 자체가 당시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왜냐하면 제임스가 『심리학의 원리』를 출판하면서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1890년대에 들어 급격히 지배적인 집단으로 성장한 독일의 실험 전통을 신봉하던 실험주의자들은 ― 제임스(James, 1890:192)의 표현 중 하나를 빌자면 “미시적 심리학(microscopic psychology)”은 ― 실험만을 과학과 심리학의 정당한 방법으로, 그리고 실험에서 생산된 사실의 축적만을 그 목표로 삼고 있었고, 따라서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 즉, 이들에게 정당한 심리학의 영역을 벗어난 ― 의식에서의 통일성 같은 문제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3) 하지만 제임스는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이 사실을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James, 1895:123-4), 당시 미시적인 실험심리학자들은 잘못된 전제들에 입각해 경험적 방법을 거스르며 심리학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비판했다.4) 이처럼 이 연설에서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의 근원에도 모든 심리학적, 철학적 탐구는 인간 경험에 충실히 기반하고 있어야 한다는 학문적 태도가 놓여 있었다.

이 연설에서 제임스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연구는 형이상학의 몫이 되”기 때문에(James, 1895:122), “어떤 전통적인 제한도 형이상학적이고 소위 인식론적인 연구를 심리학 서적들에 들어가지 않도록 할 수는 없다”(James, 1895:124)고도 선언한다. 이는 제임스 개인적으로는 그간 품고 있던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기획에 대한 공개적 선언이었기에 그의 학자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가 된다.5) 이처럼 의식의 통일성과 사물들을 통일체로 앎이라는 문제의 설명을 위해 시작된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탐구는 (그 해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기에) 단지 그 설명을 넘어선 훨씬 큰 기획이 된다. 그리고 그 기획의 중심에 근본적 경험론이 있었다. 또한 이런 맥락에서 제임스의 형이상학 기획은 그의 관점에서 철학의 영역인 동시에 심리학의 영역이기도 했고(Taylor, 1996:4-6), “실험실보다는 사람 중심 과학적 심리학의 가능성을 정당화”하는 역할도 했다(Taylor, 1996:6).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언되고 시작된 형이상학의 기획에서 근본적 경험론이라는 이름은 『믿음의 의지(The Will to Believe)』([1897] 1992)에서 처음 제시된다. 제임스는 여기서 이를 “철학적 태도”(James, 1992:447)라 일컫는데, 『근본적 경험론에 대한 시론』의 편집자인 페리(Ralph Barton Perry)도 언급했듯, 이 철학적 태도는 “제임스 교수의 모든 저작의 특성을 나타낸다”(페리, [1912] 2018:8). 그럼 이 철학적 태도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제임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것이 사실에 관한 가장 확실한 결론들을 미래의 경험이 펼쳐지면서 수정되기 쉬운 가정들로 여기는 데 만족하기 때문에 나는 ‘경험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근본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일원론의 학설 자체를 하나의 가정(가설; hypothesis)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실증주의라거나 불가지론, 과학적 자연주의 등으로 불리는 저 많은 어중간한(half-way) 경험론과는 달리, 근본적 경험론은 일원론을 모든 경험이 부합해야 하는 것으로 교조적으로 긍정하지 않는다. (페리, 2018:8; James, 1992:447)

 

이 정의에서 드러나는 근본적 경험론이라는 철학적 태도는 사실, 결론, 사상뿐만 아니라, 기존의 반쪽짜리 경험론에서는 인간 경험을 초월한 전제로 수용했던 일원론 같은 메타 사상들도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태도이다. 상기 정의는 1904년에 처음 출판된 “순수경험의 세계(A World of Pure Experience)”(제임스[2018]의 2장)에 이르러 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하나의 경험론이 근본적이려면, 그것을 구축할 때 직접 경험되지 않은 어떤 요소도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직접 경험된 어떠한 요소를 배제해서도 안 된다”(제임스, 2018:54). 또한 1909년 출판된 『진리의 의미(The Meaning of Truth)』에 따르면, 근본적 경험론의 “공준(postulate)은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경험에서 가져온 용어로 규정할 수 있는 것들뿐이라는 것이다”(페리, 2018:10; James, [1909] 1987:826). 이상의 정의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근본적 경험론의 측면은 인간 경험을 초월한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인간 경험의 수준에서 일어나고 확인되는 모든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는 방법론적 명제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그간 제임스의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문제 제기와 사상 제시의 원천이 되었던, 인간 경험에 구체적 준거를 두는 철학적, 학문적 태도가 근본적 경험론이라는 이름하에 드디어 체계적인 방법론적 명제로 제시된 것이고, 따라서 이것만으로도 제임스의 학문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 경험론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근본적 경험론의 방법론적 명제에 밀접히 연관된 것은 제임스가 1909년에 [『진리의 의미』에서; 인용자] 급진적 경험론의 ‘사실 언표(statement of fact)’라 부른 것이다”(Lamberth, 1999:18). 이는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그간 “경험론자는 사물을 영원히 분리된 채로 내버려 두며, 합리론자는 그의 ‘절대자’ 또는 [인간 경험을 초월한; 인용자] ‘실체’에 의해, 또는 그가 도입했을 수 있는 다른 어떤 허구적 합일의 작인에 의해 느슨함을 교정”(제임스, 2018:62)했다. 즉, 관계를 경험론자들은 경험되지 않는 것으로 배제하고, 합리론자들은 경험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초월적 실체를 상정함으로써 설명했다. 하지만 제임스의 근본적 경험론에서 “경험들을 연관시키는 관계는 그 자체가 경험된 관계여야 하고, 경험된 어떠한 종류의 관계든 체계 안의 다른 어떤 것이나 마찬가지로 ‘실재적인(real)’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제임스, 2018:54). 이를 통해 제임스는 경험되는 사실로서 관계를 배제하지도 않고, 경험되지 않는 초월적 실체를 상정하지 않고도 이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방법론적 명제와 더불어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근본적 경험론의 측면은 경험의 형이상학이다. 여기서 그간 제임스가 비판해온 실험심리학자들을 비롯한 학자들이 검증하지 않은 채 막연히 수용하고 기반하고 있던 전통적인 전제들이 완전히 해체된다. 이 경험의 형이상학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순수경험(pure experience)”(제임스, 2018)이다. 순수경험이란 “삶의 직접적 흐름(immediate flux of life)”(제임스, 2018:102)으로, “무엇(what)”인지 결정되기 이전의 “저것(that)”으로서의(제임스, 2018:28) 경험이다. 제임스는 이를 “세상에 단 하나의 일차적 재료 또는 물질, 즉 모든 것을 구성하는 재료”(제임스, 2018:20)로 제시한다. 즉, 제임스의 세계관에서는 순수경험 외에 어떤 것도 부재한다. 이 같은 순수경험의 형이상학에서는 그간 존재(entity)로 간주되던 것이 부정된다. 예를 들어, 의식도 존재가 아니라, 특정 맥락에서 경험의 앎으로서 기능(function)일 뿐이다(제임스, 2018:19, 234). 즉,

 

분할되지 않고 주어진 경험의 부분도 … 연합의 어떤 맥락에서 취해지면 인식하는 자의 역할, 마음의 상태의 역할, ‘의식’의 역할을 한다. 반면 다른 맥락에서 경험의 분할되지 않은 같은 부분은 인식된 사물의 역할, 객관적 ‘내용’의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어떤 군에서 그것은 사고의 역할을 하고, 다른 군에서는 사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양쪽 군에서 동시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이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제임스, 2018: 24-5)

 

이처럼 그간 존재로 간주되는 것이 특정 맥락에서 경험의 기능으로 설명되면서, 전통적인 사고/사물, 주체/대상 등의 이원론적 구조들도 붕괴된다. 이는 실재(reality)와 그에 대한 인식 간 이원론도 붕괴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제 앞에 놓인 대상을 특정한 형태를 갖고 특정한 거리에 있는 테이블로 지각할 때, 사람들은 제게 이러한 사실이 두 개의 요인에 의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는 지각될 수 있는 물질로서, 제 눈을 거쳐 저를 관통하는 것으로서 실재적 외부성의 요소를 제공하고, 다른 하나는 발생된 관념으로서 그러한 실재성을 대면하고, 그것을 분류하고, 그것을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지각된 테이블에서 어느 부분이 감각이고 어느 부분이 관념인지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넓이를 갖는 것과 넓이를 갖지 않는 것이 분해할 수 없는 조합으로 섞여듭니다. (제임스, 2018:220-1).

 

그렇다면 테이블의 실재는 무엇인가? 이 역시 인간 경험이고 그 기능일 뿐이다. 즉, “실재란 단지 그것이 ‘인식된-바’의 것일 뿐”이다(페리, 2018:10). 요컨대 제임스의 근본적 경험론에서는 모든 종류의 이원론이 붕괴되고, 오직 경험과 그 기능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근본적 경험론에 의해 그의 모든 심리학적, 철학적 사상들은 정당화 된다.지금까지 간략히 살펴본 바로도 알 수 있듯, 제임스의 학자 경력 맥락에서 근본적 경험론은 그의 모든 연구를 관통해서 드러나는, 독창적 사상 제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방법론적 명제의 정립이자, 당시 지배적인 지적 조류들의 형이상학적 전제들에 대한 경험을 중심으로 한 비판적 해체이자, 경험의,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한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형이상학의 제시였으며, 그의 모든 사상 체계를 정당화하는 토대였다. 따라서 근본적 경험론은 실용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지만, 제임스의 독창적 도발성이라는 매력이 가장 많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연구의 토대가 되는 기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근본적 경험론의 주요 글들을 묶은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은 제임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저서이고, 그 한국어 번역서 출판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의 근본적 경험론은 오늘날의 독자들인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진다. 이는 오래 전에 작성된 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가 그린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다시 제임스와 그의 동료들이 이들의 학문적, 제도적 적들과의 (심리학과 철학의 분리 문제를 둘러싼 투쟁을 비롯한) 투쟁들에서 승리하지 못했고(Bordogna, 2008:272; 민병교, 2017), 그 결과 사상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주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상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제임스가 위대한 사상가이고, 그의 사상이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영향을 후대의 심리학과 철학, 사회학을 비롯한 많은 분과에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상이 주류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그가 그토록 비판한 실증주의, 과학적 자연주의, 기계적 합리론 등이 단지 학계뿐만 아니라 현대인 전반의 사고를 지배하게 되었고,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의 근본적 경험론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계를 성찰해볼 수 있는 관점과 계기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여기서 오늘날 근본적 경험론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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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윌리엄 제임스의 사상과 특징(The Thought and Character of William James)』(1935a, 1935b)으로 유명한 페리(Ralph Barton Perry)의 “편집자 서문”(페리, [1912] 2018) 및 “옮긴이 후기”(정유경, 2018)에도 기술되어 있듯, 이 책은 제임스가 죽기 몇 해 전부터 구상한 기획이었으나, 실제로 처음 출판된 것은 그의 사후인 1912년 페리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원고들은 “12장 절대론과 경험론”(1884)을 제외하고는 1904-1906년 사이에 출판 또는 발표된 것들이다.

2) 제임스에 대한 연구만을 위해 형성된 윌리엄 제임스 학회(William James Society) 및 여기서 발행하는 『윌리엄 제임스 연구(William James Studies)』라는 학술지가 있을 정도이다.

3) 이 문제에 대한 실험주의자들의 입장은 실험심리학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분트(Wilhelm Wundt)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스크립처(Edward Wheeler Scripture)의 비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신심리학은 … 심리학사에서 새로운 방법을 [즉, 실험을; 인용자] 도입했기에 새롭다고 불린다.”(Scripture, 1895:282)라고 언급하며, (제임스의 이름이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그 지칭 대상이 제임스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구심리학자는 “바늘 끝에서 얼마나 많은 천사가 춤출 수 있는가?” 같은 쓸데없고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객체아, 의식의 통일성, 정체성의 의식 등”에 관한 글을 쓴다고 비아냥댄다(Scripture, 1895:283). 그리고 “당신이 [즉, 스크립처의 관점에서 구심리학자인 제임스가; 인용자] 저 구름 위에서 사변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실험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인용자] 정보가 부족해서 굶주리고 죽어가고” 있다고 불평한다(Scripture, 1895:283).

4) 1893년 독일의 철학자-심리학자인 슈툼프(Carl Stumpf)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임스는 이미 “실험심리학자들은 아무 소득이 없는 연구를 하고 있다. … 실험을 잘못되고 결실이 없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모두 폐기하는 결과에 이를 것”(Perry, 1935b:181)이라고 쓰고 있었다.

5) 동시에 이는 곧 심리학-철학 비분리 선언이기도 했기에, ― 그것도 당대 최고의 권위자에 의한 것이었기에 ― 심리학과 철학의 분리 문제를 둘러싼 투쟁이 전면적으로 시작되기도 한다(민병교, 2017).

 

참고 문헌

민병교. 2017. “고립된 윌리엄 제임스와 철학에서 분리된 심리학: 심리학사의 사회학적 재구성.” 『사회와 역사』 114집:285-337.

정유경. 2018. “옮긴이 후기.” Pp. 282-292.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정유경 옮김. 서울: 도서출판 갈무리.

제임스, 윌리엄(James, William). [1912] 2018.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정유경 옮김. 서울: 도서출판 갈무리.

페리, 랠프 바튼(Perry, Ralph Barton). [1912] 2018. “편집자 서문.” Pp. 5-13.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정유경 옮김. 서울: 도서출판 갈무리.

Bordogna, Francesca. 2008. William James at the Boundarie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James, William. 1890. The Principles of Psychology, vol. 1.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James, William. 1895. “The Knowing of Things Together.” Psychological Review 2(2):105-124.

James, William. [1909] 1987. “The Meaning of Truth.” Pp. 821-978. In William James Writings 1902-1910, edited by Bruce Kuklick. The Library of America.

James, William. [1897] 1992. “The Will to Believe, and Other Essays in Popular Philosophy.” Pp. 445-704. In William James Writings 1878-1899, edited by Gerald E. Myers. The Library of America.

Lamberth, David C. 1999. William James and the Metaphysics of Experienc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erry, Ralph Barton. 1935a. The Thought and Character of William James: As Revealed in Unpublished Correspondence and Notes, Together with His Published Writings, vol. 1. Boston and Toronto: Little, Brown and Company.

Perry, Ralph Barton. 1935b. The Thought and Character of William James: As Revealed in Unpublished Correspondence and Notes, Together with His Published Writings, vol. 2. Boston and Toronto: Little, Brown and Company.

Scripture, Edward Wheeler. 1895. Thinking, Feeling, Doing. New York: Chautauqua Century Press.

Taylor, Eugene. 1996. William James on Consciousness beyond the Margi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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