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호] 대의제 민주주의의 허상, 시민이 자유를 누리는가?ㅣ이미경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9-04-09 21:43
조회
265
 
 

대의제 민주주의의 허상, 시민이 자유를 누리는가?


이미경 (청소년 독서 동아리 〈토로로〉멘토)


 

 

개인이 일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삶의 가치를 전환할 만한 전기가 되는 사건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한 사건들이 없어서 일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순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좋은 팔자를 타고났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펼쳐진 나름의 사건 사고들을 거치며 그 시련 앞에 좌절하기도 하고 그것을 이겨내려고 애쓰는 가운데 정신적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나에게 가장 최근의 인생 충격은 세월호 사고였던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세월호는 ‘사고’라기보다는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 모두가 그 이전까지 알고 있던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완전히 처참한 형태로 완전히 뒤집어 전 국민의 사고를 전환시킨 일이기 때문이다. 50% 이상의 지지를 받고 뽑힌 대통령이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것도 의문이었고 위급상황에서 ‘청와대는 콘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발뺌하는 것도 우스웠다. 즉 지금까지 내가 학교 교육을 통해 배웠던 지식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는 ‘제대로 된 배신’의 경험을 몸에 새기게 된 사건이었다.


내가 가진 애국심이란 게 별 게 아니어서 그저 미루지 않고 세금 내고, 나라가 금하는 사소한 범칙 사항들을 어기지 않으려 하고 선거 때마다 국민으로서의 할 도리를 다하려고 애쓰면서 사는 정도가 대부분일 것이다. 한일전에서 우리나라가 이기기를 바라고, 누군가 국위 선양할 일이 생기면 한 나라 국민이란 사실에 뿌듯해하며 만약에 일제강점기로 돌아간다면 유관순 같은 삶을 살리라 다짐도 해보는 소시민으로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와 대통령 탄핵 등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이제는 태극기를 보아도 애국가가 나와도 결코 애틋해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해 내 가슴 속에 큰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균열의 틈에 미련 없이 정을 들이댄 책이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 자유>다. 어렴풋이 한글에 눈떠가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내가 가지게 된 이 의심과 배신감의 실체를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이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할 만큼 이 책은 헬 조선이 된 현재의 대한민국을 적나라하게 투시하고 우리의 눈을 가리고 이념이 된 대의제 민주주의의 허상을 낱낱이 까발려준다.


‘4년(대통령의 경우 5년) 중 단 하루만 주권자가 되게 하는 선거’란 말부터가 참으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성인이 된 후로 우리는 그 하루 우리 손으로 우리의 대표를 뽑으면서 내가 가진 정치적 성향을 확인하는 데 만족해왔다. 그리고 나머지 1458일을 지배받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민주적이라고 믿었던 절차와 과정이 오히려 우리 자신을 정치 현장에서 소외시키는 역할을 했다니 이 얼마나 기가 찬 노릇인지……. 이 책을 읽고 나니 교과서를 달달 외우며 오직 이것만이 진리인 듯 착각하며 살아온 내 지식 체계가 한없이 가여워지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신자유주의와 대의 민주주의가 일부 권력층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명히 알려주고 교육과 언론, 대중문화와 상식, 이념을 어떻게 통제하고 장악하는지를 일반 시민들이 알기 쉽게 풀이해준다. 삼권분립이라는 명분 좋은 허구를 국민들이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끔 전 방위적으로 세뇌하는 모습을 고발함으로써 대의 민주주의를 굉장히 발달한 정치 형태로 알아 온 우리들의 인지 상태에 허를 찌른다.


3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은 선거철에만 시장과 양로원을 돌고 뽑히고 나면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국민적 대표성은 망각한 채 갑질을 시작한다. 민생을 살피는 데 뜻을 두기보단 자기가 속한 당의 이념을 현실화시키는 데 앞장선다.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법관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권능을 국민의 위에서 행사한다. 헌법의 꼭대기에 있다는 권한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부정은 교묘하게 감춘다. 400조가 넘는 예산을 집행하는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낸 세금을 포장만 잘하면 녹조 강을 만들고 전 국토를 헤집어도 방해받지 않는다. 이런 모든 일에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은 있으나 마나 한 문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읽는 내내 만나게 되는 사실들을 받아들이기가 힘겨운 면이 적잖았다. 그동안 내가 믿었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당하는 경험은 결코 즐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면되어온 진실을 들여다보는 용기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혜택이다. 현재의 삶과 다가오는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를 사는 한 개인으로서 나는 상당히 비관론자에 가까운 삶을 살았음을 인정한다.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을 삼포 세대로 명명하면서도 대안을 만드는 데는 인색한 기성세대들의 행태를 보면서 암울한 헬 조선엔 미래가 없다고 지레 포기하는 심정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저자는 나의 이런 비관성을 보란 듯이 깨부수어 준다. 이 모든 모순을 관통하는 투시 안만 내비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도 확실하게 제시한다. 개헌을 통해 삼권의 독점을 최소화하고 삼부가 가진 권력을 시민과 나누며 시민이 권력을 견제할 방안으로 시민 입법(국민 발안), 시민 주도의 국민 투표, 시민 심사 위원단 제도를 제시하고 사법권에 대해서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법관의 탄핵 발의를 제안한다. 기본 소득제를 실시하여 약자의 삶에 더 집중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하며 그런 실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끔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뛰어난 권력자의 천 걸음보다 국민 모두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해지는 이유다.


어리석은 국민으로 살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권의 책을 통해 다 알기는 어렵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을 할 생각도 여력도 없는 일개 국민으로 이 땅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운명이니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며 간섭하는 국민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난파선이 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우리는 선장과 선원들의 몸을 깨무는 수천 마리의 생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 자유>가 아마 그 선봉장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19년 2월 18일 <대자보>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bit.ly/2UqGu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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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군주제적 대의민주주의에서 대의 정치가들이 전유하고 향유해온 정치지대는 다중의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재전유되고 사회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절대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민주화하고, 직접민주주의를 민주화하며, 집회민주주의와 일상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힘으로 기능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절대적 구성역량과 헌법의지에 의한 모든 민주주의의 민주화, 이것이 촛불다중혁명이 가리키는 이정표다.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19)

맑스는 철학이나 정치경제학을 역사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보면서 『자본』을 ‘철학 비판’을 잇는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저술했다. 제2인터내셔널 이후의 맑스레닌주의와 알튀세르주의 전통은 『자본』을 다시 ‘정치경제학’이나 ‘철학’의 하나로, 즉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거꾸로 읽어 왔다. 이 책은 『자본』의 모든 범주들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쌍방, 즉 두 계급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범주로, 이 갈등과 투쟁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사적 범주로 읽어가는 ‘정치적으로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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