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호] 서양미술사를 관통하는 새로운 시선 :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드러내는가ㅣ안진국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06-07 21:19
조회
722

서양미술사를 관통하는 새로운 시선 :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안진국 (미술비평가)






먼지 쌓인 문서를 다시 펼쳐보는 것은 과거에 대한 존중이며, 현재에 대한 반성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하는 것은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미술사 연구소에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원고가 놓여 있다. 1905년 세상을 떠난 학자가 남긴 미완의 원고다. 집필자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은 서양미술사의 학문적 기틀을 놓은 대표적 빈 학파 미술사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연구 업적에 걸맞게 이 원고의 제목은 『조형예술의 역사적 문법』이다. 적어도 115년 전에 집필된 원고가 내 앞에 놓일 수 있었던 것은 1966년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독일어책과 2004년 영역본으로 출간된 책을 긴 시간 동안 부여잡고 씨름해 온 미술사학자 정유경의 노력 덕분이다.


‘조형예술의 역사적 문법’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알로이스 리글이 조형예술에 있는 문법을 역사적 맥락에서 연구한 미완의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조형예술의 기본논리가 역사적으로 변하는 과정을 정식화하고자 했다. 이 기본논리를 그는 ‘문법’이라 명명한다. 리글은 문법이 단지 말하거나 단지 알아듣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 없고, 언어를 학문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처럼, 조형예술에서도 예술 작품을 학문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문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조형예술의 문법이다. 리글은 이 책을 접하는 독자에게 경고하는 듯 이렇게 말한다. “이 강의는 모든 예술 시기에 대한 일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급자들에게만, 아니면 적어도 가장 중요한 기념비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일 수 있습니다.”(294)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읽는 방법만 조금 달리하면 일반 독자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논의되었던 서양미술사의 방법론을 지루하게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어서 서양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20세기 후반부터 리글에 대한 재해석과 재평가가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앞부분에 독서의 높은 장벽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897~1898년에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단행본 수고’와 1899년 여름 학기의 ‘강의록’이다. 이 단행본 수고와 강의록은 모두 ‘조형예술의 역사적 문법’이라는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제목이 같다는 것에서 눈치챘겠지만, 이 두 원고가 다루는 핵심내용은 같다. 구성이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동일한 곳을 향하고 있다. 사용하는 개념도 같다. 하지만 집필 목적이 서로 달라서 전개 방식이나 다루는 범위에 차이가 있다. 두 글의 무게감을 비교해보자면, 앞에 있는 제1고 단행본 수고가 훨씬 무겁다. 읽기 쉽지 않은 글이다. 서양의 고대와 중세, 근대에 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전문적인 내용이 많다. 하지만 제2고 강의록은 문장 자체가 읽기 쉽게 쓰여 있을 뿐만 아니라, 예시를 구체적으로 들어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수월하다. 옮긴이 해제에서도 “첫 번째 원고가 다소 읽히지 않는 독자라면 강의록인 제2고부터 먼저 읽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을 쉽게 읽는 방법은 3분의 2 정도 뒤에 있는 제2고 강의록을 먼저 읽는 방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강의록의 쉬운 문체와 구체적 예시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자연과의 경쟁’, ‘자연의 개선’, ‘신체적으로 개선된 자연’, ‘무기적 모티프’, ‘유기적 모티프’, ‘결정성 모티프’, ‘둥글림’, ‘개체성’, ‘촉각적 평면’, ‘시각적 평면’, ‘절대적 평행면’ 등의 리글이 제시하는 개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쓰여있기 때문이다. 전반부에 있는 단행본 수고에도 같은 개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예시가 적고 관념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그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그렇다 보니 자칫 이러한 개념어가 지닌 의미의 맥락을 놓쳐서 다시 앞장을 들춰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독서를 더디게 하고, 힘겹게 한다. 아마도 이 책은 (독일어본이나 영역본도 그렇겠지만) 원고가 집필된 순서에 따라 단행본 수고(1897~1898년)를 전반부에, 강의록(1899년)을 후반부에 배치한 듯 보인다. 독서를 할 때, 앞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읽을 가능성이 큰데, 그것보다는 뒤에 있는 강의록을 먼저 읽으며 개념들을 명확히 이해한 후, 앞의 제1고 단행본 수고를 읽는다면, 내용 파악이 쉽고, 읽기에도 훨씬 수월할 것이다.


리글은 이 책에서 고대 미술과 그리스도교 중세 미술, 근대 미술에 나타나는 특징을 체계화하려 시도한다. 그는 고대, 중세, 근대 시대에 미술이 ‘무엇을 위해’(목적), ‘무엇을’(모티프), ‘어떻게’(입체와 평면) 드러내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미술의 목적[무엇을 위해]이 사용목적, 장식목적, 표상목적이 있다고 보는데, 그 중 표상목적이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표상목적을 ‘강자에 의한 조화’와 연결한다. 리글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고대에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할 때, 혼돈은 사라지고 질서가 잡힌다는 생각이 중심에 있었으며, 이런 생각이 신들이 최강자로서 모든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관, 즉 인간과 닮은 형상을 가진 여러 신을 숭배하는 의인관적 다신론 세계관을 형성했다. 인간은 이러한 세계관이 조형예술로 구체화하길 원했고, 그로 인해 표상목적의 예술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표상목적의 예술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불완전하고 무상한 자연을 넘어서 신들처럼 강하고 완벽하고 불멸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곧 ‘자연과의 경쟁’이며, 이렇게 탄생한 예술 작품은 ‘개선된 자연’이었다. 고대 미술, 즉 의인관적 다신론의 미술은 자연의 신체적 완성(신체적으로 개선된 자연)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자연은 불완전하고 무상한 것으로 고대부터 종교의 지배 아래 있었다. 갈릴레이가 발견한 자연법칙이 종교적 억압을 받았던 사례로 알 수 있듯이, 중세 시대까지도 종교는 자연법칙을 지배했다. 그때까지 종교와 예술은 근본적으로 하나였다. 자연법칙이 종교로부터 해방된 것은 자연과학적 세계관이 확립된 근대에 이르러서다. 하지만 이때도 미술의 창작은 ‘자연의 개선’을 추구했는데, 이전에는 신들처럼 강하고 완벽하고 불멸을 위한 개선이었다면, 이때부터는 인과적 맥락에서 불완전한 자연에 조화를 부여하기 위한 개선으로 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렇게 ‘자연과 경쟁’하며 ‘개선된 자연’을 보여 주는 미술 작품이 드러내는 모티프[무엇을]를 리글은 ‘무기적 모티프’(생명 없는, 죽은)와 ‘유기적 모티프’(생명 있는)로 구분한다. 고대인은 무기적 모티프, 더 정확히는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결정성 모티프’를 추구했는데, 이것이 영원하고 불변하는 모티프로 여겼기 때문이다. 고대인은 유기적 모티프조차도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형태로 양식화(무기화)함으로써 그 형태에서 영원불변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러한 고대인의 경향은 고대 이집트의 인간 환조 형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팔과 다리의 운동능력을 억압하여 평면화시킴으로써 유기적 모티프를 억제해, 영원한 것, 관념적인 것, 양식화된 것을 보여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리스 시대에 오면 정신의 운동, 유기적인 것, 생명의 진실을 얼마간 허용하는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적당한 ‘둥글림’과 ‘운동’으로 유기적 모티프를 허용했다. 더불어 공간과 시간도 용인되었다. (대표적으로 <라오콘>을 통해 이러한 특성을 알 수 있다.) 이때부터 무상한 것(유기적인 것)은 영원하고 일반적인 것(무기적인 것)으로 고양되지 않고 무상하게 재현되기 시작했다고 리글은 판단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미술 작품의 시대적 특징을 ‘근거리시야’, ‘통상시야’, ‘원거리시야’로 구분하여 개념화한 것과, 이것을 ‘촉각적 평면’과 ‘시각적 평면’[어떻게]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옮긴이 또한 해제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이 부분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촉각적 평면은 3차원 입체를, 시각적 평면은 2차원 평면을 말하는데, 이 두 개념에 동일하게 ‘평면’이라고 붙인 것이 독특하다. 그 이유는 시각이 어떤 것을 인식할 때 평평한 망막을 통해 오로지 평면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깊이의 인식은 결국 촉각적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촉각적 경험이 없이 시각 감관만으로는 깊이의 의미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결국 우리는 촉각의 경험을 상기하면서 시각 자극을 입체로 이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리글은 입체를 ‘촉각적 평면’으로 명명한다. 그는 바라보는 주체와 사물의 거리를 개념화하고, 그것을 특징을 촉각적 평면과 시각적 평면으로 분석함으로써 시대별 미술 작품 양상을 체계화한다. 리글은 시각적 수용을 근본적으로 배제했던 고대 이집트 미술의 평면성을 부분만 보게 되는 근거리시야로, 고전기 헬레니즘 미술의 입체적 형태를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통상시야로, 로마 후기 미술의 평면성 부각을 부분은 흐릿해지고 오로지 전체만 보게 되는 원거리시야로 설명한다. 한 세기 전에 쓰인 원고임에도 이러한 개념화와 체계화는 대단히 흥미롭고 신선한 지점이다.


분명 『조형예술의 역사적 문법』은 일반 독자가 읽기 쉬운 개론서는 아니다. 서양미술사와 작품에 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원래 원고에는 도판 없이 다양한 사례가 오로지 글로만 제시되었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번역본에는 글에서 거론된 작품의 도판과 설명을 시각화한 이미지를 다수 수록하여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집어 펼치는 대부분의 사람은 서양미술사에 관심이 있어서 일 것이다. 이런 일반 독자라면 이 책이 결코 못 읽을 책은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제2고 강의록부터 먼저 읽고, 제1고 단행본 수고를 읽는다면, 읽기 훨씬 수월할 것이다. 리글이 남긴 이 미완의 책은 읽어나가기 까다롭지만, 그의 논의는 무척 색다르고 충분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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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0년 6월 5일 <크리틱-칼>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s://bit.ly/3h2fEb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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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예술과 다중』(안또니오 네그리 지음, 심세광 옮김, 갈무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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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성이 협의의 예술사회는 물론이고 생산사회와 소비사회 모두를 횡단하면서,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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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말하고, 즐기고, 고통을 받으며 숨을 쉬고 있는 한 자기의 삶에 대한 관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술로서의 삶>은 바로 이러한 철학의 물음에 충실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재커리 심슨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물음에 예술로서의 삶이라는 철학자들의 통찰을 나름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니체,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마리옹, 카뮈, 푸코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를 수놓은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제시한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저자는 ‘예술’을 매개로 정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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