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발터벤야민에 대해_패터 손디

작성자
bomi
작성일
2018-11-23 17:16
조회
685
삶과예술 세미나 ∥ 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 발제자: 손보미
텍스트: 발터 벤야민 『베를린의 어린시절』,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4

<지나간 것으로부터 희망의 불꽃을>_ 페터 손디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우리 시대 산문 쓰기의 가장 아름다운 전범 중의 하나인 ... 이 책은 개인의 추억이 어린 거리들, 사람들, 대상들, 내면 풍경들을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작은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 감히 그러한 것들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푸루스트와 마찬가지로(벤야민은 그의 역자였다) 지나간 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27)

2. 자기는 "자신의 독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권에서 주인공은 독자가 지금 손에 잡고 있는 소설을 쓰기로 결정하는데, 말하자면 소설로 하여금 스스로를 따라 잡는 동시에, 결코 잊지 못할 방식으로 시작의 두려움을 완성의 승리감과 결합시킬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 셈이다. (30,31)
벤야민이 자신의 독자로서 쓴 [베를린의 어린 시절]이 공원, 즉 티어가르텐의 동물원에 대한 묘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33) (...) 그의 책 속의 한 구절은 프루스트 소설의 핵심적인 경험, 즉 어린 시절의 것은 거의 모든 것이 여러 해 동안 죽은 듯 숨어 있다가 마치 우발적인 것처럼 갑자기 한 사람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삶은 갓 태어난 아기를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품에 안는 어머니처럼 여전히 다감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는다." (34)

3.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과 벤야민의 '어린 시절'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 즉 과거를 찾아 나서며, 그것을 재발견함으로써 그리고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의 일치를 통해 시간 자체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프루스트에게 있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것의 목표는 시간 자체의 소멸에 있다.
하지만 벤야민에게서는 다르다. '베를린의 어린 시절을 환기하려는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의도는 벤야민이 개인적인 소품들의 주제로 선택한 많은 장소, 사람, 사건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 특징을 보면 쉽게 간파할 수 있다. (37)

4. 회고적 시선

동물원, 찬장, 글자 익힘용 블록상자. 그러한 것들 속에서 벤야민은 그의 나중의 삶의 조짐과 초기의 흔적들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의 회고적 시선은 다른 사물들에게도 가 닿는데, 물론 거기서 먼저 간파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개인적 프로필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환경이다. 역으로 이러한 환경이 벤야민 본인에게 작용해 그의 의식적 성찰의 대상이 된다. (41)

5. 프루스트의 기억, 벤야민의 기억

프루스트는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치기 위해 과거를 찾아 나선다. 그러한 노력은 오직 과거가 현재와 일치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데, 유사한 경험들만이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의 진정한 목표는 온갖 위험과 위협으로 가득 찬 미래 - 그것의 궁극적 위험은 죽음이다 - 로부터의 도피이다.
이와 반대로 벤야민이 과거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미래이다. 그의 기억이 되찾으려고 하는 거의 모든 장소는 [베를린의 어린 시절]의 <수달>에서 표현하고 있는 대로 "앞으로 다가올 것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의 기억이 어린 시절의 사람들을 "미래를 예언하는 소명을 다하고 있는 모습"(<두 개의 수수께끼>) 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루스트는 과거의 메아리를 주의 깊게 듣는다. 벤야민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의 첫 음을 듣는다. (43)

6. 벤야민의 시간

프루스트와 달리 벤야민은 시간성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없다. 그는 사물들을 탈역사적인 정수 속에서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대신 그는 역사적 경험과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거, 하지만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과거로, 그리고 미래를 약속하는 과거로 되돌려 보내진다. 벤야민의 시제는 완료형이 아니라 온갖 역설로 가득 차 있는 미래완료형이다. 미래인 동시에 과거인 것이다. (44)

7. 프루스트의 형식, 벤야민의 형식

프루스트와 벤야민의 시간 체험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는 또한 두 사람의 작품의 형식상의 차이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데, 30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과 산문 소품 모음집 사이에는 커다란 심연이 존재하는 것이다. 데자뷔의 시인은 어린 시절의 체험이 새롭게 빛날 순간을 찾고 있다. 따라서 그는 삶 전체에 대해 들려주어야 한다. 이와 반대로 벤야민은 후일의 사건들은 무시하고 미래의 징표들이 감추어져 있는 어린 시절의 순간들을 환기시키는 데 전념할 수 있었다. (46)

8. 유리구슬

벤야민이 선호하는 대상 중에 눈 온 풍경 등과 같은 장면이 들어 있는 유리구슬이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46) ... 알레고리가인 벤야민에게 있어 이런 구슬들은 성유물함같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재현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피난처가 될 가능성이 아주 많았다. [베를린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러한 체험들이 담겨 있는 세밀화들은 그러한 구슬을 닮았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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