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작성자
absinth
작성일
2019-07-23 20:12
조회
825
<기생충>의 찝찝함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사람들은 "공감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얼핏 보아도 <기생충> 안에서 다양한 공감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반지하 방을 전전하며 과외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기우(최우식)의 모습은 돈 없던 청년 시절의 우리를 닮았다. 살면서 한 번 쯤은 기정(박소담)처럼 자신의 고용주 앞에서 허풍도 떨어봤을 것이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사회 풍자적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송(정현준)이 조현병에 걸렸을 까 전전긍긍하는 엄마 연교(조여정)의 모습 위에 정신질환의 위험성을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겹친다. 남성 운전기사와 젊은 여성 사이의 사건을 둘러싼 성적 긴장, 호흡기 질환의 전염에 대한 두려움, 북한에 대한 비유 등은 현대 한국 사회의 초상을 그린다.

두번째로 많이 들리는 말은 "어딘가 좀 찝찝하더라"는 평이다. 공감의 측면과 달리 이 부분은 그게 어디서 연원하는 건지 단번에 파악하기 쉽지 않다. 자괴감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서 자괴감이라 함은 계급적 자괴감을 말한다. 봉준호 감독 스스로도 밝혔지만, 영화는 초기에 두 가족을 대칭적으로 그리기로 했다가 기택(송강호)의 가족에 더 무게를 두는 쪽으로 변경됐다. 그래서 우리는 동익(이선균)의 가족보다는 기택의 가족 쪽에서 조금 더 공감의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가지지 못한 자의 진영에서 주된 공감이 형성될 때 자기 연민과 패배감이 환기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찝찝함들은 모두 기택의 가족 쪽으로 편중된 공감이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객의 평이 양극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쪽에서는 부유층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해 표현한 부분에 이의를 제기한다. 왜 부자들은 꼭 멍청한데다가 허영심에 차 있는 식으로 묘사되어야 하냐는 것이다. 반대쪽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제기된다. 이들은 극빈함이 과장되게 표현된 지점들, 이를테면 반지하, 냄새, 서로 옥신각신하는 을과 을의 싸움에 비판의 중점을 둔다. 한 쪽에서는 동익의 가족을, 다른 쪽에서는 기택의 가족을 옹호하고 싶어한다. 이쯤에서 <기생충>의 찝찝함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동일시에서 야기되는 것 이상의 무엇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만의 고유한 찝찝함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기생충>이 몰입을 피하는 법

<기생충>은 빈자나 부자에 대한 공감에 최적화된 영화는 아니다. 사회 현실을 다룬 르뽀나 다큐멘터리가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나름 기술적인 방식으로 완전한 공감의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 일단 양극단을 배치한 뒤 각각의 극단을 다소 결여되게 하거나 과장되게 꾸밈으로써 어느 쪽에도 완전한 몰입을 어렵게 만든다. 필자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나서야 주인공 부자 부부의 이름이 동익과 연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몰입할 대상의 식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연교는 바보 멍청이에 순진해 빠진 자본가로 묘사된다. 그녀의 감정은 피상적이고 연극적인데다가, 어딘가"심플"하다는 느낌을 준다. 기택의 가족에 동일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기우는 네 번의 입시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그는 학부모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도 자기 할 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노골적으로 다혜(정지소)의 손목을 잡는 대범함을 보인다. 기정은 학력도 변변치 못한 가난뱅이지만 연교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허풍을 떤다. 기택은 벤츠를 한 번도 운전해 본 적이 없지만 컵 안의 물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노련한 코너링을 보인다.

유동적 이미지를 차용해 고정된 동일시를 방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생충>은 영화적 요소들의 용도를 계속해서 바꿔치기하는 전략을 보인다. 영험한 산경수석을 꼭 품에 안았던 기우는 그 똑같은 돌덩이에 의해 가격을 당하고 졸도하고 만다. 물을 뿌린다는 행위도 그렇다. 기택은 노상방뇨자가 흘리는 물에 대해 물로 앙갚음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 물은 기택의 가족 위로 쏟아부어지는 비구름의 물, 옆집 반지하 주민이 퍼내는 물의 모습을 띠고 다시 나타난다. 자본가를 칭송하는 용도로 쓰였던 모르스부호는 근세(박명훈)의 손에서 다송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컵스카우트의 놀이로 전환된다. 그리고 결국 기택의 손에서 아들을 향한 소통의 도구가 된다. 충숙(장혜진)과 문광(이정은) 사이에서 벌어지는 협박하는 자와 협박당하는 자의 놀이는 채 5분도 되지 않아 곧바로 역전된다. 이 전환과 역전의 반복, 대칭된 두 극 사이의 거울 놀이는 그 자체로 <데칼코마니>라는 영화의 초기 제목을 충실하게 반영한다.


거울놀이와 동일시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거울놀이다. 동익의 가족이 여행을 간 틈을 타 기택의 가족이 그곳에 눌러 앉는다. 두 부부는 거대한 저택의 내부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이 때다 싶어 기우가 치고 들어온다. "나 다혜랑 결혼할 생각이에요." 집이라는 공간은 의미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과외생의 집, 내가 가정부로 일하는 집, 자동차 뒷좌석에 사장님으로 모시는 사람의 집은 조만간 아내와 며느리의 집이 될 참이다. 이들은 이 집이 자신들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이런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가장 완전하게 젖어 있는 캐릭터는 문광이다. 그녀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로서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앞장 선다. 문광은 그 집에 거주한다는 사실 때문에 실제로는 자신이 '선'을 중심으로 철저히 이쪽 편에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외형적 동일성이 내형적 이질성을 가린다.

기생이라는 테마는 거울 놀이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생이란 근본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에 노동력을 판매하여 상품을 생산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운명을 말한다. 과외가 되었든, 집안 일이 되었든, 운전이 되었든 말이다. 기우나 기정, 기택이나 충숙은 자신들이 동익의 저택이라는 공장에 들러붙어 연명하는 기생충임을 직시한다. 그런데 이 기생충이라는 말은 사실 숙주 쪽에서 기생하는 쪽을 깎아내릴 목적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이는 숙주 쪽도 사실은 기생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해야 할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영화는 실제로 연교가 전적으로 기택의 가족이 짜 놓은 판에 철저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계급의 역전을 보여준다. 거울 놀이의 반복은 주인과 노예,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일방적 의존성이 사실은 양방향의 의존관계였다는 것을 폭로한다. 데칼코마니가 수단이라면 기생은 그것을 통해 밝혀지는 내용이다.

계급의 구별은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처럼 끝없는 동일시와 상호의존성의 관계를 폭로하면서도 영화는 두 계급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소통불가능성의 간극이 놓여있음을 강조한다. 다송이나 연교 모두 깜빡거리는 조명등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끼지만, 누구도 이것이 근세의 발화문이는 것을 의식하지 못 한다. 기택에게 냄새란 없앨 수 없는 계급적 한계를 상징한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냄새가 퍼지는 것을 막지 못 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침수된 자신들의 집에 도달한 뒤에야 이들은 깨닫는다. 우리가 바보같이 잠시 꿈을 꾸었구나. 저들의 일부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구나. 대립은 점차 강화되고 결국 적대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적대감은 기택의 살인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기택은 자신의 딸을 찌른 사람이 근세임에도 복수의 칼날을 근세가 아닌 동익에게로 향한다.

기생충이 숙주를 죽인다.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과거 소련의 선전물이었다면 바로 이 시점에서 노동계급의 승리가 천명되면서 극이 종료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봉준호의 영화는 이와 조금 다른 길을 밟는다. 혁명의 장본인인 기택은 당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끄러움에 떨며 지하실로 숨어들어가고, 기우는 자조 섞인 웃음을 터뜨린다. 계급 사이에는 적대만 늘었을 뿐 바뀐 것은 없다. 찝찝하고 한심스러운 감정이 우리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더 한심한 건 기우가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도 쉽사리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한다는 것이다.


거울놀이의 끝에서

4수에도 실패했던 청년 기우의 독백이 시작된다. "아버지, 저는 돈을 많이 벌 생각이에요. 정말 노력할 겁니다." 곧이어 번듯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기우와 부동산 업자가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배치된다. 부동산 업자는 알랑방귀를 뀌며 기우를 인도한다. 영화 초반 구부정하게 기어들어갔던 그 철문은 기우의 입성식을 환대하는 철문으로써 새롭게 반복된다. "집에 들어서고 나면, 어머니가 좋아하던 그 마당이 보이겠죠" 이어서 마당에서 햇빛을 쬐고 있는 충숙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 이제 아버지는 그냥 나오시면 되는 겁니다." 어두컴컴했던 지하실에서 기택이 걸어 나온다. 이어서 두 부자의 포옹. 성공한 아들의 신화가 펼쳐지고, 서민의 꿈이 막 실현되려는 것만 같다. 그런데 이처럼 인물의 독백 뒤에 그 독백의 내용을 묘사하는 장면이 배치됨으로 인해 혼동이 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실제 현실에 대한 묘사인가? 아니면 꿈에 젖은 독백인가?

감독이 정말 기술적인 기교를 부리는 부분은 바로 다음이다. 두 부자의 포옹 뒤에 영화가 시작됐던 바로 그 장면, 반지하의 창문이 나타난다. 응? 이건 뭐지. 하긴 영화의 진짜 시작은 기우가 그 철문을 들어갈 때부터가 아니라, 기우가 살고 있는 이 방의 창문이 나타나는 부분에서였지. 그 동일한 반지하의 창문 아래에서, 영화 초반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노력했던 기우의 얼굴이 수미상관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이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기우의 입성식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고 있었나.

<기생충>의 진짜 찝찝함은 혁명이 실패했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거울놀이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직면하는 데서 온다. 말하자면 이는 환상을 이룰 수 없다는 자조적 인식이 아니라,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꿈꾸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나는 못되고도 허영심에 찌든 부자들을 조소하고 불행한 기택 가족의 서민적인 면들에 크게 공감을 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그 집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지난한 거울놀이의 여정의 끝에 이르러 영화는 그 거울을 우리 자신에게 들이밀면서 묻는다. 지금 당신 자신의 안에 있는 계급의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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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24 11:20
    저 역시 '명징'하게 계급이 나눠지지 않았던 요소들 눈에 띄었어요. 동익 부부 외출했을 때 클래식 틀고 우아하게 춤추는 근세네, 어설픈 악센트 굴리며 희화화된 연교와 대비되는 기정의 언변과 테크닉 같은데서요. 말씀해주신 "냄새"가 물질적 조건의 극명한 간극을 드러내기도 하지만요. 가제였던 '데칼코마니'에서 '기생충'으로 바꾸길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한편 '자본'의 관점에서 근세의 지하방에 걸린 김대중 사진(아주 잠깐 스쳐가는)이 의미심장했어요. 인테리어 서적 포함 근세의 정치성. 취향 드러내는 부분인데, 김대중 정권은 매주 5명의 노동자 구속시킬 정도로 억압적이었고, IT산업 받달시키며 신자유주의에 너무도 충실했던 정권이었죠. 그 점에서 동익이 IT회사 사장이고, 근세가 대만 카스테라하다 망했다는 설정 역시 아이러니합니다. 그럼에도 김대중 사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며, 박사장 리스펙하고, 같은 무산자에게 살인 저지르는 근세에게서 계급분열과 지배적 헤게모니가 읽히기도 했구요. 참 8번째 문단 마지막 줄, 아마 기택이 찔린 게 아니고 딸 기정이 찔린 거였죠? 글 잘 읽었습니다.

  • 2019-07-26 21:37
    아 제가 기택이 찔렸다고 썼었네요 ㅠㅜ 김대중 사진 걸려 있던 거는 기억도 못 하고 있었네요 ㅋㅋ 말씀해주신 디테일한 부분들을 같이 감안해서 생각해보니까 더 재밌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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